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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마빡 이야기/2013

딴지일보 마빡 2013. 12. 24

by 꾸물 2021.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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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찌질한 위인전 <12> - 넬슨 만델라 (下)

 

기사 - [위인]찌질한 위인전 <12> - 넬슨 만델라 (下)

2013. 12. 24. 화요일 편집부 홀짝 지난 기사 [찌질한 위인전 <1> - 시인 김수영 (上)] [찌질한 위인전 <2> - 시인 김수영 (下)] [찌질한 위인전 <3> - 반 고흐 (上)] [찌질한 위인전 <4> - 반 고흐 (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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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24. 화요일

편집부 홀짝

 

 

 



지난 기사

[찌질한 위인전 <1> - 시인 김수영 (上)]
[찌질한 위인전 <2> - 시인 김수영 (下)]
[찌질한 위인전 <3> - 반 고흐 (上)]
[찌질한 위인전 <4> - 반 고흐 (下)]
[찌질한 위인전 <5> - 간디 (上)]
[찌질한 위인전 <6> - 간디 (下)]
[찌질한 위인전 <7>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上)]
[찌질한 위인전 <8>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下)]
[찌질한 위인전 <9> - 존 F. 케네디 (上)]
[찌질한 위인전 <10> - 존 F. 케네디 (下)]
[찌질한 위인전 <11> - 넬슨 만델라 (上)]

 



지난 일요일에 터진 이슈로 인하여 
월요일에는 그와 관련한 많은 기사들이 본지의 마빡을 장식했다. 
물론 필자의 연재가 월요일이 아닌 화요일에 올라온 것이 
이슈 기사에 밀린 탓이라는 변명은 아니다. 
그보다는 일요일을 보내면서 아마도 월요일에는 보다 시의성 있는 기사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필자의 게으름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었기 때문일 게다. 


결국, 내가 게을렀다는 얘기다.


넬슨 만델라 편을 준비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정치를 하기 위한 권력이 아닌 권력 그 자체를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한 권력은 
시대와 인종, 국가를 초월하여 참 많은 점이 서로 닮아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찌질한 위인전> 넬슨 만델라 편에서 이러한 것들을 모두 다룰 수는 없는 관계로, 
관심 있는 독자들은 만델라의 자서전을 비롯한 관련 도서를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대한민국의 오늘이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얼마나 많이 닮아 있는가를 확인하고 놀라게 될 것이다.

 

 

 

국민의 권리를 박탈하는 법은 필연적으로 국민 권익 보호 운운하며 제정되게 마련이었다.

-넬슨 만델라,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中

 

 

폭력과 비폭력 

 

앞서 말한 바(上편)와 같이, 만델라는 간디와 몇 가지 유사한 면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만델라 또한 간디처럼 비폭력 저항 노선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1950년대 초반 만델라는 ANC의 투쟁 노선을 지휘하는 핵심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백인 정권에 맞서 비폭력 저항을 실천했다.

 

당시 ANC의 비폭력 저항의 시작은 비교적 적은 수의 운동가들이 인종차별 법안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불복종 운동이었다.

 

불복종 운동만으로 국민당 정권이 태도를 바꿀 리 만무했기 때문에 이것은 일종의 상징적 의미가 강했다. 불복종 운동의 주된 목적은 흑인 저항 운동가들이 강경한 백인 정권에 담대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더 많은 흑인 대중의 참여를 촉발시키기 위함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음은 이를 바탕으로 전국적인 총파업과 함께하는 대규모 저항운동의 전개였다. 비폭력 노선의 핵심은 얼마나 많은 수의 참여 인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평화적으로 사회 기능을 마비시키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국민당 정권은 당연히(?)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흑인들의 저항을 ‘적법한 절차’에 의거하여 진압했다. 수백 명 이상이 체포되었고,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국민당 정권은 한편으로 교묘하게 ANC의 저항을 교란하기 시작했다. ANC의 배후에 공산주의 선동가들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저항에 참여한 다수의 대중이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을 동안 저항 운동의 지도자들은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 이 지점에서 이미 등뼈가 찌릿해짐을 느끼는 독자들이 있을 줄 안다. 세상이 이렇다. 가진 권력을 지키는 것을 제1목적으로 하는 권력이 하는 짓이란 게 뭐 별다른 게 없다.- 만델라는 비폭력 저항의 한계를 절감하기 시작한다.

 

※이후로도 정부는 끊임없이 만델라와 ANC를 공산주의자로 몰아가고자 하는데, 1957년 재판 당시의 재미있는 일화를 아래에 소개한다.

 

머리(Murray)는 처음에는 비교적 좀 알고 있는 듯했으나 베랑제가 반대신문을 시작하자 그 본질이 드러났다. 베랑제는 머리에게 여러 서류들에 있는 여러 구절을 읽어 준 뒤 그것들이 공산주의 사상을 띠고 있는지 아닌지를 가려 보라고 말했다. 베랑제는 첫 번째 구절을 그에게 읽어주었다. 그것은 평범한 노동자들이 서로 협력하고, 서로를 착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머리는 공산주의 사상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베랑제는 그 성명은 남아프리카 전 수상인 말란(Malan) 박사가 쓴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랑제는 그에게 두 가지 다른 성명서를 계속해서 읽어 주었고, 머리는 둘 다 공산주의 사상을 묘사하고 있다고 했다. 이것들은 사실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험 링컨과 우드로 윌슨이 발언한 것이었다. 이 반대신문의 절정은 베랑제가 머리에게 어떤 문장을 읽어 주자 머리가 주저하지 않고 “철저한 공산주의 사상이다”라고 말한 순간이다. 그러자 베랑제는 그것은 머리 교수 자신이 1930년 대에 썼던 성명서라고 밝혔다.

-넬슨 만델라,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中

 

병든 나라에서는 건강으로 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그 병을 먹고 사는 사람에게는 모욕이다.

-넬슨 만델라

 

<찌질한 위인전>의 간디 편에서 필자는 간디의 비폭력 저항이 확고한 신념이 아닌 전략의 일환일 수도 있다는 점(적어도 초기에는)을 언급한 바 있다. 간디 편에서의 그러한 언급이 필자의 ‘추정’이었다면, 만델라는 스스로에게 있어 비폭력 저항이 어떤 의미였는가를 그의 자서전에 뚜렷하게 밝힌다. 비폭력 저항은 어디까지나 전략적 차원으로써 투쟁의 한 방편이었다는 것이다.

 

만델라가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저항하는 동안 일관되게 주장했던 것은, 자신들이 어떤 투쟁 방식을 선택하느냐는 온전히 흑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상대에게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비폭력 저항으로도 상대가 움직이지 않으면 폭력을 선택한다. 일단 폭력의 가장 낮은 단계인 사보타주로 저항한다. 그럼에도 변화가 나타나지 않으면 인명을 살상할 수도 있는 테러 전술로 전환한다. 이마저도 먹히지 않으면 국지적 게릴라 전을 비롯한 전면전도 불사할 것이었다.

 

만델라가 이렇게 확고한 입장을 견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에는 그 어떤 타협의 여지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인간의 기본권인 자유를 놓고 양보와 타협이 존재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 따라서 자유는 폭력을 통하여서라도 반드시 쟁취해야만 하는 가치라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만델라의 입장은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되는 그 순간까지 흐트러짐이 없었다.

 

 

물론, 폭력적 저항에 따르는 많은 윤리적, 도덕적 문제가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흑인들이 무장 투쟁 노선을 선택하면서 다수의 백인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했다. 비록 남아공 내 흑인들의 무장투쟁은 만델라의 수감 후 본격화 되긴 했지만 그 기틀을 만델라가 마련한 이상 그 또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만약 만델라가 체포되어 수감되지 않았다면 그 자신이 무장투쟁의 선봉에 섰을 것이기도 했다.(만델라는 ANC의 무장 조직 ‘민족의 창’을 만든 장본인이자 초대 사령관이었다)

 

그러나 백인 민간인 희생에 대한 비판에 맞서는 만델라는 당당했다. 당시의 만델라는 오히려 이렇게 되묻는다. ‘희생된 백인들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만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를 무장하게 만든 것은 누구인가?’

 

 

 

 

 

[사회]영화 '변호인', '안녕들 하십니까'에 답하다

 

기사 - [사회]영화 '변호인', '안녕들 하십니까'에 답하다

2013. 12. 24. 화요일 yibumsuk 고려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주현우 씨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대한민국 사회의 돌풍을 넘어 각계각층의 의견을 표출하는 신드롬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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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24. 화요일

yibumsuk

 

 

 

고려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주현우 씨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대한민국 사회의 돌풍을 넘어 각계각층의 의견을 표출하는 신드롬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주현우 씨의 대자보는 1. 철도민영화를 반대하는 철도노조 사안과 밀양 송전탑, 부정선거 의혹에 대하여, 2. 88만원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의 안타까움을 적고 있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 전문>

1. 어제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다른 요구도 아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4,213명이 직위해제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던 그 민영화에 반대했다는 구실로 징계라니. 과거 전태일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놓아 치켜들었던 ‘노동법’에도 “파업권”이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정부와 자본에 저항한 파업은 모두 불법이라 규정되니까요. 수차례 불거진 부정선거의혹,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란 초유의 사태에도, 대통령의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의 국회의원이 ‘사퇴하라’고 말 한 마디 한 죄로 제명이 운운되는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입니다.

시골 마을에는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고, 자본과 경영진의 ‘먹튀’에 저항한 죄로 해고노동자에게 수십억의 벌금과 징역이 떨어지고, 안정된 일자리를 달라하니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을 내놓은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2.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1997~98년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앞서 말한 그 세상이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한편, 송강호 주연의 영화 '변호인'은 개봉 3일 만에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1000만 관객을 동원했던 '7번방의 선물' 보다 빠른 속도로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영화 '변호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 길을 걷게 됐던 부산의 학림 사건(부림 사건)을 모태로, 실존했던 한 고졸 변호사가 사회참여로 나아가는 성장기를 영화를 통해 그리고 있습니다.

 

 

송강호 씨는 부림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역할을 연기했습니다. 당시 부림 사건은 국가보안법이 정권의 안보를 위한 도구로 쓰이는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되어 김광일 변호사의 권유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문재인 변호사가 사건의 변론을 맡았습니다. (부림 사건 자세히 보기 - 위키백과).

 

배우 조민기 씨가 국가보안법으로 기소한 검사 역할을 소화했습니다. 실제 모델인 최병국 전 국회의원은 부림 사건의 피해자인 김 모 씨가 "사건의 수사책임자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일하는 것은 부적절 하다고 판단해 총선 연대에 낙천명단에 포함시켜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울산광역시 남구에서 내리 3선에 연이어 당선됐습니다. 다른 한 피해자는 "최병국 검사가 대공분실로 찾아와 수사를 지휘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당시 검사가 관련자들에게 3년에서 10년의 중형을 구형했다"고 회상했는데, 이런 장본인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회의 모순을 생각하게 합니다.

 

실제 부림 사건의 책임 검사였던 최병국 새누리당 한나라당 전 의원 

 

이번 글에서는 영화 '변호인'의 모티브가 된 '부림 사건'과 이 영화가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안녕들 하십니까'에 대한 답변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의학]의학적 관점에서 본 속담의 의미

 

기사 - [의학]의학적 관점에서 본 속담의 의미

2013. 12. 24. 화요일 raksumi 세상은 어떻게든 돌아가고 벌써 1년이 지났네요. 많이 힘들어해서 우리 어머니도 제 눈치 보던 것이 기억납니다. 잔소리 많던 애 엄마도 제 앞에서 정말 흔치 않게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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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24. 화요일

raksumi

 

 

 

세상은 어떻게든 돌아가고 벌써 1년이 지났네요. 많이 힘들어해서 우리 어머니도 제 눈치 보던 것이 기억납니다. 잔소리 많던 애 엄마도 제 앞에서 정말 흔치 않게 조심하였고. 날씨도 점점 추워오네요. 뭐든 해결이 다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의학적 관점에서 본 속담의 의미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합니다.

 

 

 

1. 간에 기별도 안 간다

 

음식을 조금 밖에 못 먹었을 때 쓰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영양소로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이 있습니다. 이 중 우리의 몸에서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는 것은 탄수화물과 지방입니다(물론 알콜도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으나 일단 여기서는 패쑤). 실제 지방도 에너지원으로 쓰이고 의외로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뭐 중요한 것 아니니까 일단 패쑤.

 

아무튼 우리가 가장 많이 섭취하는 탄수화물은 우리 몸 안으로 들어와서 분해가 됩니다. 그 분해를 담당하는 것이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인데 이 인슐린으로 인해 탄수화물은 포도당이 됩니다. 영어로는 glucose라고 합니다.

 

이 포도당은 생성이 되면 일단 에너지(영어로는 fuel)를 내는 데 가장 먼저 사용됩니다. 근육과 두뇌 등 우리 몸의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곳에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그곳에 저장을 하게 됩니다.

 

차린 건 없지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포도당을 저장하기에는 근육이나 뇌의 용적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은 포도당이 가는 곳이 바로 간 입니다. 물론 간에는 포도당의 형태로 저장되지 않고 글리코겐(glycogen)의 형태로 저장 됩니다. (참고로 운동을 하게 되면 그 에너지원으로 포도당을 먼저 쓰는데 일단 근육의 포도당을 먼저 쓰고 간의 포도당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나서 지방을 사용하게 되지요)

 

단, 배고플 때 음식물을 먹으면 필요한 곳. 그러니까 근육, 머리, 기타 등등 신체 중요한 부위 에너지로 쓰이고 나서 그러고도 행유여력(行有餘力 - 일을 다하고도 오히려 남는 힘이 있음)하면 간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도 이런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죠. 그니까 음식을 조금 먹을 때 이 속담 쓰는 거 맞습니다. 정말 포도당이 간에도 가지 않습니다.

 

간에 포도당이 저장되는 경우, 간이 저장할 수 있는 맥시멈 포도당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간에도 저장되고 남은 포도당이 있다면 배 둘레로 가는 지방이 되어 배둘레햄이 됩니다. 당연히 이 지방은 간에서 포도당이 대사 되고 나서야 사용 되니 운동으로 지방을 태우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2. 간이 부었다

 

가만히 있어. 내가 천국을 보여줄테니까.

 

이것은 겁을 상실한 사람에게 쓰는 말입니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와 같은 의미이죠.

 

이렇게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 이상으로 음식을 먹게 되면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근육과 뇌에 포도당으로 쌓이고 나머지는 간에 포도당으로 저장되고 그래도 남으면 나중에 굶을 때를 대비하여 에너지원을 비축하기 위하여 지방으로 저장 됩니다. 참고로 저장형태로는 지방이 가장 좋습니다. 저장 대비 가장 많은 칼로리를 낼 수 있습니다.

 

간에는 포도당 뿐 아니라 지방도 쌓이게 되고 이렇게 간에 지방이 쌓이면 바로 지방간 입니다. 간이 부었다는 것은 배가 불렀다는 것이고 이것은 살만 하다는 뜻이 되니까 살만해지면 조금 굶어도 괜찮으니 당연히 겁을 상실하게 되지 않겠습니까?(이해가 안 가면 억지로 외우십시오)

 

‘간이 콩알만 해 졌다’ 도 비슷하게 이해 바람.

 

 

 

 

 

[국제]알고 먹는 건 아니다 -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

 

기사 - [국제]알고 먹는 건 아니다 -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

2013. 12. 24. 화요일 독일특파원 타데우스 BGM: 크리스마스 노래 모음 또 다시... 연말연시다. 작년 12월 19일 멘붕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얼추 절추 추스르고 살다 보니 벌써 일 년이라는 시간이 훅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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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24. 화요일

독일특파원 타데우스

 

 

 

BGM: 크리스마스 노래 모음

 

 

 

또 다시... 연말연시다.

 

작년 12월 19일 멘붕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얼추 절추 추스르고 살다 보니 벌써 일 년이라는 시간이 훅 지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앞으로 이런 겨울을 네 번은 더 버텨야 '말이 안통하네뜨' 공주님의 통치 기간도 끝나는 걸.

 

대학가에 들불처럼 번져가는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에도 불구하고 이 연말 우울하게 하루하루를 방구석에서 보내고 있을 딴지스들을 위해 오늘은 따뜻한 사진 몇 장 가져왔다.

 

대략 4시 경, 을씨년스러운 하늘을 바라보며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향하다.

 

독일에 각 도시마다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은 길고 추운 독일의 겨울을 조금 더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대표적인 행사라 할 수 있다.

 

이 마켓은 대략 11월 마지막 주부터 12월 23일까지 약 한 달간 운영되며, 짧은 해와(대략 4시 반이면 어두워 진다.) 그로인해 추운 겨울을 조금은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독일의 모든 도시가 크리스마스 마켓을 운영하지만, 대도시의 상업화된 촌스러운 분위기보다는 시골 작은 도시의 오래되고 전통있는 그 모습이 더 예쁘다.

 

이 시기 유럽을 여행하게 되면 꼭 한번 들려서 맛난 것도 맛 보고, 사진도 찍고, 옆에 놀러 온 다른 사람들과 므~흣~한 시간도 가져보시라 권하고 싶다.

 

 

그 중 오늘 필자가 찾은 곳은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전체사진을 찍지 못해 인터넷에서 퍼온 위 사진이 바로 마켓의 가장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시청 앞 광장이다.

 

발이 팔에 달린 것도 아닌데 사진을 발로 찍는 실력을 지녔기 때문에 좌린횽을 납치하고 싶었으나, 그게 쉽나. 독자 스스로들 '아쉬운 마음' 달래며 사진을 감상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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