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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마빡 이야기/2014

딴지일보 마빡 2014. 09. 16

by 꾸물 2021.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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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례를 통해 살펴본 박희태의 변명

 

기사 - [정치]판례를 통해 살펴본 박희태의 변명

2014. 09. 16. 화요일 벨테브레 박희태 전 국회의장. 6선 국회의원에 한나라당 대표를 지냈으며 현재는 새누리당의 상임고문이자 건국대 로스쿨의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이중국적을 지닌 딸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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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16. 화요일

벨테브레 

 

 

 

박희태 전 국회의장. 6선 국회의원에 한나라당 대표를 지냈으며 현재는 새누리당의 상임고문이자 건국대 로스쿨의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이중국적을 지닌 딸의 이화여대 특례입학 파문으로 법무부장관에서 열흘 만에 낙마하였고 전당대회에서 당협위원장들에게 돈 봉투를 돌리다가 불명예스럽게 정계를 떠나는 등 흑역사도 있었지만, 폭탄주의 원조이며 명 대변인으로서 정계에 나름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인물이라 하겠다.

 

 

그러나 비슷한 연배의 서울대 동문들이 대통령 비서실장, 주일대사, KBS 이사장 등으로 승승장구하는 사이 잊혀진 인물이 되어버린 박희태. 역사 속의 인물인줄 알았던 그가 실시간 검색어로 돌아왔다. 문제는 뜬금없이 뉴스를 탄 이유가 성추행 의혹 사건이라는 것.

 

이 손가락으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추석 연휴 직후인 9월 11일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어느 골프장에서 법조계 지인들과 라운딩을 하던 박희태는 20대 여성 캐디에게 신체 접촉을 했고, 불쾌감을 느낀 해당 캐디는 라운딩 도중에 교체를 요청했다고 한다. 결국 박희태는 고소 크리를 당하게 되었고 조만간 강원지방경찰청에 소환 조사를 당할 거라는 이야기. 얄궂은 것은 강원지방경찰청에서 수사하는 사건의 경우 일반적으로 춘천지검이 관할하는데(박희태의 주소지나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이송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박희태는 한때(1983~1985) 춘천지검장을 역임한 대선배라는 것. 전임 제주지검장이 공연 음란 혐의로 제주지방경찰청→제주지검의 수사를 받고 있는 점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비추어 확정판결이 나지 않은 사실관계에 대해 단정적으로 언급하는 건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특히 명확한 물증을 찾기 힘든 강제추행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만을 근거로 처벌되는 이들도 적지 않기에, 억울하게 처벌받는 이들도 분명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원로 법조인으로 로스쿨 석좌교수가 될 정도로 권위 있는 법학박사 박희태 선생의 셀프 해명을 중심으로, 형사처벌 가능성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선 MBN과의 전화인터뷰 내용이다. 

 

"내가 손가락으로, 손가락 끝으로 가슴 한 번 툭 찔렀다는 이런 이야기에요. 그것을 이제 만졌다 이렇게 표현을..."

출처 - MBN

 

박희태 선수. 마이 억울한 듯싶다. 손가락 끝으로 가슴을 툭 찌른 것과 만진 것은 엄연히 다르다. 인정! 그렇다면 박희태는 무죄인가?

 

박희태에게 적용될 것이 유력한 형법 제298조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하는 것을 그 구성요건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손가락으로 툭 찌른 정도를 폭행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무리 정치 9단에 폭탄주의 대가라고 하나 손가락으로 천하를 평정했다는 무슨 무협지에 나올법한 고수는 아니지 않겠는가? 물론 손가락으로도 세게 찌르면 아프다. 박희태도 이를 의식했는지 절대 세게 찌른 건 아니라고 강조를 한다.

 

"귀엽다는 수준에서 '터치'한 거고..."

"예쁘다 정도로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는 수준에서 (터치) 한 것"

출처 - 노컷뉴스

 

여기서 잠깐.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이다. 손가락으로 귀엽다는 수준에서 터치를 했다면 항거가 곤란한 정도는 아니었겠지? 이런 변명을 예상했던 대법원 또한 가만있지 않았으니...

 

강제추행죄는 상대방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항거를 곤란하게 한 뒤에 추행행위를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되는 것이며, 이 경우에 있어서의 폭행은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의 것임을 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
(대법원 2002. 4. 26 선고, 2001도2417 판결)

 

즉 살짝만 건드려도 추행이 될 수 있다는 것. 위 판례의 사실관계에 대해 부연하자면 피고인은 와이프가 경영하는 식당의 지하실에서 여종업원 두 명과 노래 부르며 놀다가 그중 한 명이 노래를 부르는 사이 다른 한 명을 뒤에서 껴안고 블루스를 추면서 가슴을 만졌다는 것. 이에 대해 대법원은 '피해자와 춤을 추면서 피해자의 유방을 만진 행위가 순간적인 행위에 불과하더라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행하여진 유형력의 행사에 해당하고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추행행위라고 평가될 수 있는 것으로서,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어 강제추행에 해당된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므로 박희태의 해명처럼 손가락 끝으로 가슴을 찔렀거나 귀엽다는 수준에서 터치한 게 사실이라면 박희태는 유죄를 피하기 힘들어진다.

 

 

 

 

 

 

[산하의 가전사]슈바이처와 헬레네

 

기사 - [산하의 가전사]슈바이처와 헬레네

2014. 09. 16. 화요일 산하 산하의 가전사 “가끔 하는 전쟁 이야기 사랑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왜 전쟁과 사랑이냐... 둘 다 목숨 걸고 해야 뭘 얻는 거라 그런지 인간사의 미추, 희비극이 극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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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16. 화요일

산하 

 

 

 



산하의 가전사

끔 하는 쟁 이야기 랑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왜 전쟁과 사랑이냐... 둘 다 목숨 걸고 해야 뭘 얻는 거라 그런지 
인간사의 미추, 희비극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얘깃거리가 많을 거 같아서요.” 

from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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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이처와 헬레네

 

자신의 삶을 던져 불우한 이들을 돕는 의사는 참 많다. 돈에 눈이 벌건 의사도 많은 게 사실이고 정치적으로 한심하다 싶을 정도로 꼴통인 의사도 허다한 건 맞지만, 그래도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직업으로서 인간의 마음에 내재된 선한 본성을 기꺼이 발현시키는 이들도 적지 않아. 그 헌신의 도가 넘어서면 어김없이 붙는 칭호가 ‘슈바이처’다. 한국의 슈바이처라는 호칭은 고 장기려 박사에게 헌정돼 있고 얼마 전 돌아간 이태석 신부는 ‘수단의 슈바이처’라는 호칭이 붙어 있다. 소록도에 오래 근무하신 오동찬 의료부장님은 ‘소록도의 슈바이처’로 불리고 전진상 의원을 세운 벨기에 여의사 배현정 원장님은 ‘시흥의 슈바이처’라고 불리지.

 

 

이 슈바이처의 원조(?)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오랜 분쟁의 땅 알사스 로렌 지방 출신이야. 독일과 프랑스가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힘의 논리에 따라 탁구공처럼 왔다 갔다 하기도 했던 곳이지. 프랑스 혁명을 진압하려는 유럽 열강에 맞서서 프랑스인들이 소리 높여 불렀고 오늘날 프랑스 국가가 된 ‘라 마르세예즈’가 탄생한 건 바로 알사스 로렌 지방의 스트라스부르였어. 슈바이처가 태어난 도시지. 하지만 독일을 통일한 프로이센의 기세 앞에 프랑스가 만판 깨진 뒤 이 지역은 독일의 차지가 된다(1871).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그 상황을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이지.

 

슈바이처는 1875년 생이야. 4년만 일찍 태어났으면 프랑스인이었겠지만 그는 독일 사람으로 태어난다. 이런 접경 지역 사람들의 특징은 대개 극단적으로 나타날 때가 많아. 일종의 변경 의식으로 어느 한 쪽에 편입되려는 완강한 집착을 보이거나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입장을 견지하거나. 슈바이처도 독일인이든 프랑스인이든 별 관심이 없었던 듯 해. 그의 성 자체가 독일어로 ‘스위스인’이라는 뜻이고 스위스 출신 이민의 후예라는 말도 있으니까.

 

그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고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꽤 저명한 신학자이자 바흐의 권위자인 음악가이자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했어. 그의 글을 아마 요즘 한국 기독교 목사들이 접한다면 아마 거품을 물고 이단 취급할지도 몰라. 그는 역사적 인물로서 예수에 접근했고 처녀수태니 하는 건 취급하지 않고 세례 요한을 만난 예수에서부터 출발하니까.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에 대한 견해만 해도 '묵시적 유대 선지자로, 그리고 세상 종말이 그의 사역 가운데 올 것(마 10:23)이라고 희망하였던 선지자'로 봤고 세상 종말이 오지 않자 죽음을 택했다는 식의 해석을 했으니 기독교 탈레반이라 할 한국 기독교 목사들로서는 눈이 튀어나올 일이지. 그래서 종종 슈바이처를 이단이라고 비난하기도 해. 하지만 하느님이 누구를 천국에 부르실지는 난 확실히 안다.

 

각설하고, 그 학자로서, 음악가로서, 연주자로서 안온한 삶을 누리던 그가 아프리카 정글 속에 뛰어들게 된 이유는 간단해. '나는 이렇게 행복한데 이 행복를 나만 누려도 되는가' 하는 아주 간단하지만 무척 복잡한 질문이었어.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아무 문제가 아니지만 그 답을 찾으려면 인생이 무척 꼬일 수도 있는 질문.

 

일찍이 아프리카인들의 고통을 자주 설교에 인용했던 아버지의 기억과 독일계와 프랑스계 모두에게서 '돼지'라고 불리우면서도 말 한 마디 못하고 감내해야 했던 동네 유태인의 처지에서 받은 느낌도 그렇겠지만 그는 애초부터 떡잎이 좀 특이한 사람이었어. 좋은 옷을 입히려는 부모에게 '남들은 이렇게 입지 못하는데 왜 나만!'을 외치는 아이였고 ‘도련님’이라는 호칭에 상처를 받는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하려고. 그런 그에게 나병에 걸려 부락으로 쫓겨난 채 죽어간다는 콩고의 흑인들의 이야기는 큰 감응을 줬고 '그들을 어떻게 도울까?'의 고민은 금새 ‘의사’라는 답을 내 왔던 거지.

 

그는 나이 서른부터는 전혀 새로운 봉사자로서의 삶을 살 생각을 하고 의학 공부를 시작한다. 우리 나라로 치면 중견 신학자에 음대 교수님으로서 탄탄대로를 걷게 될 바로 그 순간에 인생 경로를 틀어 버린 거지. 그가 해부학 강의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나이는 서른 살이었다고. 내 친구가 그래도 미쳤다고, 다시 생각하라고 하겠다. 슈바이처 주변 사람들도 그랬어. 의대 공부하던 중 그는 헬레네 브레슬라우라는 아가씨를 만나게 돼. 나이 차이는 많았지. 동료 교수의 딸이었으니.

 

헬레네

 

 

 

 

 

[IT]상품 가치 전쟁 3편 上(1977년 Apple II와 1981년 IBM PC)

 

기사 - [IT]상품 가치 전쟁 3편 上(1977년 Apple II와 1981년 IBM PC)

2014. 09. 16. 화요일 trexx 지난 기사 [1편 - 90년대 MS Windows와 1984년 Apple Macintosh System Software ] [2편 - 1979년 Sony Walkman과 2001년 Apple iPod] 1. 상품 소비의 중심 9 월 9일 이벤트 후 9월 12일 팀쿡은 Char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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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16. 화요일

trexx

 
 
 

 

1. 상품 소비의 중심

 

9 월 9일 이벤트 후 9월 12일 팀쿡은 Charlie Rose Show에서 

아직까지 TV는 70년대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하필이면 왜 70년대 일까?

 

미국인들이 한 때는 부자들의 권력과 영향력에 맞서 싸웠고 중산층 천국을 실현했다.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샘 피지게티

 

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 미국이 최강국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뉴딜정책* 이후 두터워진 중산층이 있었기 때문이다.

 

* 뉴딜 New Deal 정책

1929년 뉴욕 주식시장 주가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추진하였던 제반 정책. 국가 경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정책을 추진한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지명 수락연설에서 사용한 용에 뉴딜 New Deal에서 유래되었다.

'뉴딜정책의 핵심은 MB가 이룩한 4대강과 같은 토목사업이 아니라 부자 증세에 있었다.'

 

영화 백투터 퓨처(1985년 작)에서 1950년대 중산층을 묘사하면서 거실에 있는 TV를 보여주고 있다.

 

1950년대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구매하여 보급된 대표적인 가전 제품이 TV다. 소리에 머물렀던 기존의 Radio 광고에서 상품을 눈으로 확인 시켜주는 TV광고로 인하여 중산층의 소비는 치솟게 되지 않았나 싶다. 1950년대 이후 미국은 시장경제 생산 및 소비의 중심이 중산층이 된 것이다. 경제 중심이 중산층 가정으로 들어오자 미국 문화의 중심 또한 중산층에서 시작하게 된다. (미국 문화의 시작이 차고(Garage)에서 부터 시작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맥OS 에서 제공하는 디지털오디오워크스테이션의 이름도 개러지 밴드(Garage Band)다. )

 

가정용 컴퓨터 시장을 가전제품 시장으로 완벽히 이해한 동갑내기 두 사람이 50년대 태어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바로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말이다.

 

가정용 컴퓨터의 시작을 알린 MITS사의 Altair 8800

 

 

 

2. 가정용 컴퓨터의 시작

 

1977년 6월 10일 가정용 컴퓨터로 발표한 <Apple II>는 엔지니어 스티브 워즈니악과 '히피' 스티브 잡스의 합작품이다. 물론 보드 설계와 구동 소프트웨어 일체를 스티브 워즈니악이 전적으로 만들었다. 잡스는 워즈니악이 만든 제품에 편승하여 이익만 취한 것일까?

 

스티브 워즈니악(좌)과 스티브 잡스(우)가 절친이던 바로 그 때.

 

당시 시장에 먼저 나와있는 가정용 컴퓨터는 <Apple II>가 아니였다. MITS사의 <Altair 8800>는 사용자가 직접 조립 해서 만드는 제품이었지만 1974년에 <Apple II>보다 먼저 나와 있었다. <Altair 8800>은 지금처럼 모니터와 키보드를 사용하는 제품이 아니었다. 본체 앞면에 On-Off 토글스위치와 표시등으로 입출력하도록 만들어진 장비였다. 가정용 컴퓨터라기 보단 인텔 8080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장착한 공학용 장난감에 가까웠다. (MicroSoft의 빌 게이츠는 본 제품으로 BASIC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3. 워즈니악, TV와의 인연

 

2007 년 키노트에서 화면이 에러가 나서 멈추자 잡스는 워즈니악이 만든 

TV 전파 방해기로 대학교 기숙사 학생들에게 장난친 이야기를 했다.(31초부터)

 

워즈니악은 자서전에서 홈브루 컴퓨터 클럽(Homebrew Computer Club : 1975년 실리콘밸리에서 만들어진 초기 컴퓨터 취미 생활자 클럽)에 참석하게 된 동기가 마이크로프로세서 등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친구 알렌이 “내가 HP에서 모임 하나를 알게 됐는데, 텔레비전과 비디오 단말기 같은 걸 만드는 사람들의 모임이야" 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워즈니악은 대학생 때 기숙사 학생들을 골탕먹이기 위해 TV-Jammer(방해 전파기)를 만들었고, HP에서 근무하면서 비디오 단말기(VCR)에 대한 작업, 잡스의 꼬드김으로 아타리(Atari)에서 아르바이트로 TV 콘솔게임을 만든 경험이 있었기에 홈브루 모임에 자연스럽게 참석하게 된 것이다.

 

그 무렵 나는 컴퓨터의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고, HP(당시 워즈가 다녔던 회사)의 계산기 업무에 온통 빠져있었다. 그러니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 깜깜한 상태였다.

그러나 TV 단말기에 관한 모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래, 이런 자리라면 내가 할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했다.

떨렸지만 나는 그 모임에 나갔다. 어떻게 됐을까? 모임에 가기로 한 나의 결정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그날 밤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밤 가운데 하나였다.

'iWoz (2장 괴짜 엔지니어의 천재적인 프로젝트) - 스티브 워즈니악 & 지나 스미스

 

*마이크로프로세서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보통 CPU라고 통용되기도 한다. CPU가 칩에 달려있는 경우가 마이크로프로세서이다. 1971년 인텔의 엔지니어 테드 호프에 의해 발명된 제품이다. 테드 호프는 Busicom사로부터 복잡한 계산이 가능한 전자계산기 회로설계를 의뢰받게 되는데 당시 칩은 On-Off 스위치기능만 있었기에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테드 호프는 컴퓨터에 저장된 명령을 확인하고 수행 하는 즉, 두뇌 역할을 수행하는 칩을 처음으로 만든 것이다.

 

 

 

 

 

[음주]술에 관해

 

기사 - [음주]술에 관해

2014. 09. 16. 화요일 raksumi 오늘 인터넷에서 정말 이상한 글을 보았습니다. '할 말은 하는 신문' 에서 나온 글인 것 같은데 전문을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 돈을 더 내야 해서- 스크랩한 것이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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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16. 화요일

raksumi

 

 

 

오늘 인터넷에서 정말 이상한 글을 보았습니다. '할 말은 하는 신문' 에서 나온 글인 것 같은데 전문을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 돈을 더 내야 해서- 스크랩한 것이 돌아다니길래 읽어보았습니다. 

 

 

게 무슨 말인지 막걸리인지?

 

먹고사니라 만사 귀찮은 딴지스들은 아래 링크 쿡 눌러 전문 확인하라

출처 - 조선일보

 

이번 기회에 딴지스들이 좋아하는 술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복잡하고 읽지도 않을 실 것 같아서 액기스(extract) 만 적어봅니다. 

 

 

 

1. 알코올의 분해과정

 

술은 화학적으로 에탄올입니다. 화학식으로는 CH3CH2OH 이렇게 쓰는 데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할 것 같습니다. (정말?)  저는 고딩때 화학식 공부하면서 '언젠가 먹고 말거야' 하는 치토스틱한 생각에 더 잘 외웠던...

 

손에 손잡고 에탄올을 넘어서

 

이 에탄올은 물에 잘 녹습니다. 간략하게 우리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에탄올의 분해 과정을 식으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C2H6O(Ethanol)→C2H4O(Acetaldehyde)→C2H4O2(acetic Acid) →Acetyl-CoA→3H2O+2CO2

참 지랄맞게 쉽죠~

 

'에탄올'에서 '아세트알데하이드'로 변하는 과정에서 alcohol dehydrogenase (ADH : 알코올탈수소효소) 가 작용하고 '아세트알데하이드'에서 아세틱 액시드'로 변하는 과정에서는 acetaldehyde dehyderogenase (ADHL :아세트알데하이드 탈수소효소)가 작용합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로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물을 많이 소모하므로 술 마신 다음날 미친듯이 물을 찾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나는 아직도 배 고프 목 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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