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알다시피 필자는 종종 야구에 대한 글을 쓰곤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빠'로서 메이저리그, 그 중 보스턴과 관련된 몇몇 글들을 쓰곤 했다. 하지만 지난해 우승 이후에 야구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다. 아는 분덜은 아는 것처럼 보스턴 레드삭스의 성적은 그야말로 최악 오브 더 최악이다. 경기는 커녕, 경기 결과를 보는 것도 처참하다 못해 슴가 한 켠이 쓰릴 정도로 고통스런 시즌을 보내는 마당에 글까지 쓰는 게 하릴없이 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쓰기 싫다.
하지만 필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졸라게, 너부리 편짱이 지시한 중요 프로젝트를 준비하겠노라 꼼꼼히 계획해둔 일까지 미뤄가며, 어제 늦게 마신 술로 인해 슬슬 신호가 오는 배를 부여잡고 타자를 후다닥 내리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야구 역사의 획기적인 발견이라 할 수 있는 '투수 김성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마이클 조던의 페이더웨이 슛을 직접 보고, 메시의 볼 트래핑을 실시간으로 시청하고, 사이영상과 MVP 동시 수상이 유력해보이는 커쇼의 투구를 보는 것 정도가 스포츠팬인 내 인생에 주어진 행운의 전부라고 생각해 왔던 필자. 요금 연체로 스포츠 케이블이 당장 오늘 끊긴다고 해도 여한이 없는 투수를 그것도 '뜬금 없이' 보게 된 것이다.
자. 여기 최고의 투수가 있다. 창원 새누리스 2군 소속으로, 쿠바 선수처럼 미국 메이저리그에 입성하기 위해 탈출을 감행하고, 브로커를 동원하는 위험천만한 계획을 꾸밀 필요도 없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여. 단 두 차례의 불꽃 같은 투구만으로도 안정적인 투구폼, 제구, 마인드 등의 모든 덕목을 완벽하게 보여준 이 투수를 주목하시라.
아. 씨바 시간없다. 본론으로 바로 드가자.
초대형 투수의 등장.
일단 김성일(창원새누리스 2군)투수의 투구를 감상해 보자.
김성일 투수의 불꽃 투구 (25초부터)
김성일투수는 단 두 개의 공(계란)을 선보였다. 단 두개의 공(계란)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위대한 투수인지 딴지가 아니면 그 누구도 거들떠 보지않았을 그의 투구를 졸라 꼼꼼히 분석해보자.
1. 차분한 등장.
경남 창원시의회 본회의장. 수많은 팬들이 몰려있었을 뿐더러, 곳곳에 카메라까리 자리 잡고 있는, 투수에게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무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우 차분히 마운드에 올랐다. 등판을 준비하는 투수에게 반드시 필요한 투수 코치의 콜도, 몸을 풀기 위한 워밍업도 없었다. 팀이 필요로 할 때 언제든 자신을 던지는 일전불퇴의 각오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2. 상황과 조건을 따지지 않는 겸허한 자세
김성일 투수의 위치가 안상수 타자와 가까웠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투수의 마운드는 타자가 서 있는 홈플레이트보다 10인치(25.4cm) 정도 높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거 무슨말이냐. 타자와 투수가 같은 높이에 있을 경우 전적으로 타자에게 유리하다는 말 되겠다.(사실 메이저리그의 경우 1968년까지는 15인치 였으나, 투수들이 지나치게 타자를 압도하는 바람에 5인치 낮췄다). 헌데 김성일 투수는 자신이 매우 불리한 위치, 즉 타자와 같거나 오히려 살짝 낮은 위치에서 투구를 감행했다. 상황과 조건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투구에만 집중하는 진정한 스포츠맨쉽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3. 한국의 부동산 정책과 흡사한 매우 안정적인 투구폼
가장 일반적인 투구폼은 팔이가 어깨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며, 높은 키킹과 릴리스 포인트(공을 손에서 놓는 포인트)를 통해 공이 위에서 아래도 메다 꽂는 느낌의 '오버핸드'다. 머 대충 투수의 7-80%가 오버핸드 투구폼을 장착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요게 오버핸드
하지만 김성일 투수는 바로 오버핸드 투구폼에서 팔의 위치(신장의 3/4정도)와 릴리스 포인트가 조금 내려오는 '쓰리쿼터'를 선보였다. 주로 나이가 있는 노장 투수들이 애용하는 투구폼. 올해 나이 70세, 투수로 보면 이미 두 번은 어깨가 아작났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깨에 무리를 주는 '오버핸드'를 구사하지 않음으로써 구속과 무브먼트의 위력을 잃은 대신 완벽한 '쓰리쿼터'를 구사하여 정교한 제구력과 안정성을 두루 갖춘 투수계의 거북이로 등극한 것이다.
메이저리거 '챈호퐉'과 꼭 닮은 몸의 3/4정도에 공을 뿌리는 완벽한 쓰리썸쿼터
자. 끝까지 안상수 타자에게서 시선을 놓지 않는 안정적인 투구폼을 보라. 팔의 높이과 각도, 정확한 시선, 굽히거나 틀어지지 않는 안정적인 상체 발란스, 게다가 순식간에 주머니에서 공(계란)을 꺼내 세트 포지션에서 곧바로 투구로 이어지는, 그 어떤 빠른 주자도 도루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퀵모션'까지...
안타깝게도 공개된 영상과 사진을 통해서는 김성일 투수의 하체를 확인할 수 없다만, 투구 시 보여지는 상체 모든 곳의 무브먼트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의 하체는 매우 안정적이고 강철 같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겠다.
언뜻 봐도 안정적인 하체 밸런스
이렇듯 투구폼에서부터 관록과 연륜, 선수 생활을 길게 보는 안목까지, 그야말로 신이내린 투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4. 현대 야구를 뛰어넘은 완벽한 제구
김성일 투수는 매우 빠르게, 타자가 예측을 할 겨를도 없이 2번의 불꽃 투구를 시전했다. 동영상에 나타난 김성일 투수의 시선과 공(계란)의 위치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볼 때, 그는 매우 빠른 쓰리쿼터+퀵모션을 구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의도한 곳에 정확히 공(계란)을 내리 꽂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완벽한 제구를 해낼 수 있는 투수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에 공(계란)을 집어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연스레 예상해 볼 수 있겠다.
그리도 또 하나. 투수를 안정적으로 리드하는 포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우리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 너클볼 투수 팀 웨이크필드의 경우 팀에서 그를 위해 전담포수 덕 미라벨리를 다시 트레이드해 델꼬온 경우도 있으니 투수에게 포수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는 법. 김성일 투수는 이 세상의 야구 이론을 뛰어넘는 독보적인 선수라 할 수 있겠다.
끝으로 구종을 보자. 속사포와 같았던 투구로 인해 구종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첫 번째 구종은 매우 빠른 포심 패스트볼(직구), 그리고 중요한 두 번째 구종은 바로 써클체인지업(가장 많이 구사하는 체인지업)으로 볼 수 있겠다.
써클체인지업으로 보이는 김성일투수의 그립
안상수 타자의 몸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공(계란)의 궤적
뚜렷하지는 않지만 모든 손가락이 살짝 벌어진 상태에서 공(계란)을 쥐고 있는 김성일 투수의 그립과, 공(계란)이 안상수 타자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휘어나는 것으로 볼 때, 써클체인지업이 확실하다 할 수 있겠다. 우리는 90년대 말 LA 다저스에서 맹활약했던 ‘챈호퐉’을 통해 확인했다. 확실한 직구와 직구를 던질 때와 폼은 같지만 속도가 느리고 궤적이 휘는 체인지업의 조합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말이다.(그래서 챈호퐉을 내새운 컴퓨터 이름도 체인지업이었다). 그는 자신이 던진 두 개의 공을 통해 '직구와 써클체인지업의 조화 + 제구' 두 마리 토끼를 한큐에 잡는 위력을 선보였다. 더 이상의 설명이 무의미할 뿐이다.
5. 신의 영역에 도달한 마인드.
마인드. 아무리 신이 내린 투구폼과 구속, 제구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을 관리하는 마인드가 허접할 경우 제 기량을 뽐내기도 전에 구장의 뒤켠으로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게 된다. 2000년 혜성처럼 등장한 릭 엔키엘이 그러했다. 신인이었던 릭 엔키엘은 2000년 31경기에 등판해 11승 7패, 3.50의 방어율, 197개의 삼진을 잡으며 신인왕 투표에서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뚜렷한 이유없이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현상)’ 겪으며 무너지기 시작. 이후 투수로서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고 타자로 전향해 평범한 이력만을 남기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플레이오프 첫 경기 등판 부진으로 인한 심적부담과 두려움을 원인으로 뽑기도 한다. 이렇듯 투수에겐 공과, 마음의 컨트롤이 모두 필요하다 할 수 있는 것. 이 부분에서도 김성일 투수는 단연 돋보인다.
창원새누리스 2군 김성일 투수가 상대한 타자는 바로 창원야구협회위원장 안상수 타자였다. 보온병을 들고 타석에 들어서 온 야구팬들을 경악시킨 바로 그 선수. 일개 새누리스 2군 투수가 협회장을 겸직하고 있는 타자를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 게다가 김성일 투수는 옛 진해구 육군대학 터로 결정된 NC다이노스 야구장 입지를 마산종합운동장으로 변경한 것에 대한 항의라는 정치적 목표도 가지고 있었으니 부담감은 ‘곱하기 100’. 하지만 그는 그런 심적부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완벽한 투구를 선보였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준비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투구와 함께 새누리스 출신인 안상수 타자를 배려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김성일의 투구폼과 제구력을 보았을 때, 그는 두 개의 공을 모두 정확히 안상수 타자의 마빡에 정통으로 꽂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상대적으로 부상의 위험이 덜한 타자의 오른팔 알통 부근에 첫 번째 빠른 포심패스트볼(직구)을 던지고는 예측하기 힘든 두 번째 써클체인지업(체인지업)은 타자의 머리를 향하다가 바깥쪽으로 빠지게끔 완벽하게 제구함으로써 타자에게 위압감을 주되 함께 '탱자탱자'하는 동료로서 상대의 몸땡도 배려하는 꼼꼼함까지 선보인 것이다.
완벽한 투구폼과 제구능력. 거기에 일반인이 상상하기도 힘든 대범함이 깃든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창원새누리스 2군 투수 김성일은 100년 야구역사에 길이 남을 투구를 선보인 것이다.
'김성일상'을 제정하라.
그의 나이 70세. 이 노익장의 투구는 수백, 수천 년 이어질 야구 역사 곳곳에서 회자 될 것이다. 투수가 갖추어야할 모든 것을, 그것도 완벽하게 갖춘, 시대를 홀라당 타임워프하고도 남을 김성일 투수의 등장은 야구팬은 물론 야구를 모르는 모든 스포츠팬들에게도 축복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투수는 마운드에 서 있을 때 비로소 빛이 나는 법. 전임 창원야구협회장이 행정절차에 따라 진해 육사부지에 건립하기로 한 야구장을 버리고, 행정절차를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마산 야구장에 옆에 있는 마산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을 허물고 야구장을 새로 지어 혈세를 낭비한다는 이유와 창원(진해) 시민들의 요구를 무시했다는 분노가 그를 움직였다고 해도, 투수가 마운드가 아닌 회의장에서 공(계란)을 뿌린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은퇴 선수들에 대한 복지연금 약속도 가볍게 말을 바꾸고, 아픈 선수들을 보살피겠다고 해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등 돌리고 만날 생각도 하지 않는 새누리스 프론트의 모습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긴 하다만, 경기장에서 아름답게 보온병을 들고 있는 안상수 타자와 상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 김성일 투수가 던진 불꽃볼(계란)을 복원해 안상수협회장의 트레이드마크인 보온병에 담아 영구보존함과 함께 미국 메이저리그의 사이영상처럼 한국 최고의 투수를 꼽는 '김성일상'을 제정하는 것이 이 땅의 야구인 모두와 역사에 길이 남을 '투수 김성일'에 대한 당연한 예의임을 다시금 강조하며, 필자는 급하게 쓰느라 참고 있던 똥이나 누러 갈까 한다.
6.25가 북침이냐 남침이냐는 질문 자체는 의미가 없다. 그 질문에 '여러 가지 설이 있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통진당 이정희 대표는 그녀 스스로의 무식을 폭로하고 있을 뿐이다. 엎어치든 메치든 1950년 6월 25일의 전면전은 북한의 기습에 의해 시작된 게 맞다. 그리고 그 전쟁은 3년을 끌면서 수백만의 한국인의 목숨과 수십만의 외국인의 목숨을 앗아갔다. 모든 사태에서는 항상 그렇듯 초동대응이 대단히 중요하다. 사태 초반의 게으름이나 판단착오가 어떤 비극을 가져오는지는 세계사가 증명한다.
6.25의 시작은 흔히들 반공웅변대회에 등장하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로 알고 있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이미 새벽 3시에 인민군은 오늘날 고현정 소나무가 서 있는 정동진에 기습 상륙해서 한국군 8사단의 허리를 자르려 들었고 개성 지역의 포격은 4시 45분쯤 시작됐다. 육본 정보과장 김종필 중위(우리가 아는 그 이름 맞다)는 4시 30분쯤 포탄이 막 떨어진다는 7사단 일직 장교의 보고에 눈이 번쩍 뜨이고 있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한국군 수뇌부는 뭘 하고 있었던가. 우선 코끼리라는 별명을 지닌 육군 참모총장 채병덕은 전날 육군 장교 클럽 오픈을 기념한 미군 군사고문단과의 술자리에 지쳐 자고 있었다. 새벽 2시를 넘어 귀가했으니 아마 정신도 없었을 것이다. 정보과장 김종필은 정보국 장교들을 호출하는 한편 작전국으로 달려갔다. “당장 비상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나 작전국 일직 사령의 답은 완강했다. “저는 그럴 권한이 없습니다,”
권한이야 총장에 있었다. 이미 총장 집에는 득달 같은 전화가 걸려 와 있었다. 6사단 7연대장 임부택 중령의 전화였다. 새벽 5시 10분쯤. '화천 지구에 적 공격!'을 알리는 다급한 목소리에 부관은 총장의 부인을 깨웠고 부인은 총장을 깨웠지만 술 취한 총장은 "어차피 38선에서 노상 있는 분쟁일 거이야.” 하면서 꿈 속을 헤매고 있었다. 전화를 수없이 돌려도 총장이 나타나지 않자 육본의 장교가 직접 발바닥에 불이 나게 달려왔고 그제야 채병덕은 꿈나라에서 벗어나게 된다. “뎐군 비상하라우.” 평안도 억양의 총장 명령이 떨어졌지만 비상은 쉽게 걸리지 않았다.
채병덕
작전국장은 장창국 대령. 그런데 이사 간 지 얼마 안 된 그의 집에는 전화가 없어서 연락이 닿지를 않았다. 애가 탄 헌병 백차가 출동해서 장창국 대령의 집 근처로 추정되는 곳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방송을 해 댔다. “장창국 작전국장님 비상입니다. 비상입니다.” 채병덕 참모총장도 이제는 서둘러 국방 장관 신성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은 건 국방장관 비서실장 신동우 중령. “당관님 당장 바꾸라우.” 그때 신동우 중령이 한 말은 길이 역사에 남는다. “장관님은 숙소에 계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장관님은 영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일요일에는 아무도 만나시지도 않고 전화도 받지 않으십니다.” 이 영국 신사 국방장관을 만나기 위해 그 황망한 시간, 다급한 순간에 코끼리 채병덕은 쿵쾅거리며 달려가야 했다. 그가 신성모에게 상황을 보고한 건 3시간이 지난 뒤였다.
신성모
그래도 준비가 돼 있었던 동부전선의 6사단과 8사단은 인민군의 공격에 대응했지만 서부전선은 쉽게 붕괴됐다. 분단 이후 끊겼던 경의선을 몰래 이은(이 부분에선 논란이 있지만) 인민군은 세상에 기차를 타고 개성역에 내려서 개성을 장악해 갔다. 이때 인민군에 넘어간 개성은 지금도 우리 땅이 아니다.
국군이 인민군의 전면남침을 제대로 파악한 건 9시 경, 남침이 시작된 지 대략 5시간이 지난 뒤였다. 38선 전역에서 공격이 시작됐고 북한 공군기도 서울 상공에 나타나고 개성이 벌써 적의 손에 넘어갔지만 전면전이라는 걸 파악한 건 그만큼 늦었다. 당연히 대응도 늦었고 그 지연의 댓가는 국군이 치러야 했다.
작전국장 장창국은 아침에 아내와 함께 찬거리를 사러 갔다 돌아와서는 집에서 편안히 쉬고 있었다. 하도 헌병들이 사이렌을 울려서 무슨 일인가 나가보니 자신을 찾고 있었다, 기절초풍하여 그 짚차에 몸을 싣고 내달려 육본에 도착한 게 10시. 인민군이 공격을 시작한 지 7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리고 비슷한 시간 신성모 국방장관은 경무대에 도착했다. 그러나 아침 잠 없는 늙은이 이승만은 자리에 없었다. “경회루에 낚시 가셨습니다” 다시 경복궁으로 뛰어들어가서 보고한 게 10시 30분이었다.
전쟁의 첫날 7시간은 그렇게 한심하게 지나갔다.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데만 7시간이 걸렸다. 이 날을 복기해야 하는 이유는 다시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전화가 빗발쳐도 별 거 아니라며 코를 골았던 육군 참모총장의 실수가 그렇고, 핫라인 하나 없는 작전국장의 처지가 그렇고, 일요일에는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는 최악의 영국 신사 신성모는 그 하이라이트였다. 누구도 책임지는 이가 없고 누구도 정리하는 이도 없이 작전국장님, 참모총장님, 국방장관님만 부르짖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한국군은 바야흐로 몰락하고 있었다.
그나마 우리는 지금 그 7시간이 얼마나 다급했는지를 알고, 누가 어떤 삽질을 했는지 대충 알고 있다. 그 사실들이 끊임없이 복기되고 추정되고 스토리의 일부가 되어야 반성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만약 채병덕 총장이 어디서 뭐하고 있었는지가 비밀로 남아 있다면, 신성모의 행적이 안개에 싸여 있다면, 그 둘이 그저 단단한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면, 국으로 "니들을 몰라도 돼" 이러고 있다면 그 미스테리 하에서 누가 누굴 믿을 수 있을 것이며 과연 우리 군은 무슨 교훈을 얻어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이 궁금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연애를 하고 누군가를 만났다는 식의 이야기는 믿지 않는다. 7시간 동안 무슨 음모를 꾸며 세월호를 수장시켰다는 주장에도 반대한다. 결국 궁금한 건 대통령으로서 수백 명이 갇혀 있는 배의 침몰 소식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냐일 뿐이다. 어떤 보고를 받고 무슨 지시를 내렸고 어느 정도로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는지가 미치도록 궁금한 것이다. 하물며 세월호가 뒤집힌 그날은 일요일도 토요일도 아닌 수요일이었는데, 신성모처럼 일요일 핑계도 대기 어려운 상황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7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다. 6.25 때 7시간은 고려의 옛 고도였던 개성을 순식간에 내주는 시간이었다. 갈팡질팡 오락가락의 최고봉을 달리며 수뇌부 스스로 사람들을 헛갈리게 한 시간이었다. 하물며 평일 오전 대통령의 시간에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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