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딴지 마빡 이야기/2014

딴지일보 마빡 2014. 10. 02

by 꾸물 2021. 12. 27.
반응형

 

 

[국제]이슬람 이야기 <2>

 

기사 - [국제]이슬람 이야기 <2>

2014. 10. 02. 목요일슈르나 관련 기사 [이슬람 이야기 (1)] 이슬람과 IS를 알아보는 시간이 돌아왔다. 지난 글에서는 이슬람 초기로 타임워프하여 시아파와 수니파의 양대 종파를 낳은 역사에 대해

www.ddanzi.com

2014. 10. 02. 목요일

슈르나

 

 

 



관련
 기사


[이슬람 이야기 (1)]

 

 

 

이슬람과 IS를 알아보는 시간이 돌아왔다. 

 

지난 글에서는 이슬람 초기로 타임워프하여 시아파와 수니파의 양대 종파를 낳은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다. 몇몇 성급한 사람들은 'ㅅㅂ 그냥 두 종파가 있고 역사적으로 원수가 되어서 서로 죽이네 살리네 한다로 끝내면 되는 거 아니었어?' 라고 빡칠 수 있겠으나, 진정하라. 꼭 설명해야 했던 알리, 우스만, 무아위아 외에도 우마르 같은 사람의 특성은 알아두는 게 좋다. 앞으로 할 이야기에서 최소 한 번은 언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발 그럴 수 있길) 그리고 솔까말, 재밌었잖냐. 그럼 됐잖아. 물론 역사적/정치적 관점만 푼 것이고 종교적/신학적으로는 다른 셈족 계열 일신교와 어떻게 다른가 정도를 짚기엔... 미안타. 내 공부가 아직 모자라다.

 

이제 시간을 점프하여 다시 현대로 돌아와보자.

 

그 동안 이슬람교는 아랍 지역을 벗어나 넓게 전파되면서 세계 종교로 발돋움했다. 특히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는 신도의 수와 비율에서 모두 세계 1위의 이슬람 국가다. 그간 있었던 십자군 전쟁, 살라딘의 간지, 터키의 자랑인 오스만 제국에게 처발린 이야기 등등은 생략한다. 다만 이 이야기 하나는 기억해두는 것이 좋다.

 

십자군 전쟁과 살라딘의 시대인 중세까지는 그리스-로마의 유산을 더 많이 보존하고 연구한 아랍이 유럽보다 철학/과학/문화 분야에서 죄다 앞서있었지만, 중세가 끝나며 오스만 제국에게 패권이 넘어갈 때 즈음부터는 그 찬란한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이 내용을 숙지한 상태로, IS가 발흥한 과정에 대한 현재의 이야기를 해보자.

 

솔직하게 인정하겠다. 이하의 내용 중에서 세부적인 정보-날짜, 경위 등은 틀릴 가능성이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잘못 알고 있다 해서 너님이 알고 있는 게 맞다는 의미는 아니나, 그래도 너님 보기에 오류가 있으면 지적하라. 물론 그런 건 큰 줄기에 비하면 전혀 중요치 않다는 건 알고 있으리라.

 

현재 미승인국가 (아무도 승인해주고 싶어하지 않고 있다) 인 IS가 점유하고 있는 지역은 시리아의 일부와 이라크의 일부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도 진행중인 시리아 내전과 이라크 내전의 교전 당사자들이다.

 

내전의 주체들은 이렇다. 각 나라의 정부군, 그리고 그 정부군과 싸우고 있는 수니파 반군, 여기에 꼽싸리 끼어서 오랜 독립 국가의 염원을 실현해보려는 쿠르드 족.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각각 삼국지가 열리고 있고, 두 개의 삼국지는 현재 하나가 되었다. 그 이유가 오늘 제대로 디벼볼 IS, Islamic State, 이슬람 국가의 출현 때문이다.

 

중동 지도에 문맹인 자들을 위한 해설.

왼쪽이 시리아 영토, 오른쪽이 이라크 영토다. 그리고 회색이 IS의 점유지역이다.

 

그리고 이게 놈들의 1차 목표다. 그렇다. 1차 목표가 이렇다. 

최종 목표는 이슬람에 의한 세계 통일이다. ㅎㄷㄷ

 

 

이놈의 내전들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내전만 두 개니 하나씩 디벼보자.

 

먼저, 시리아.

 

시리아는 현재 아사드 부자의 연이은 집권으로 독재 치하에 있다. 당연히 2011년의 아랍권 민주화 혁명의 불길을 피해갈 수 없었다. 문제는 아사드 일가가 수니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시아파에서 분화된 알라위파라는 소수 종파다. 수적으로 극소수다 보니 절대다수인 수니파를 제대로 밟아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독교를 자기 지지기반으로 삼고서는 수니파를 안 까지는 않으면서, 그러니까 교묘히 잘 까면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민주화 혁명의 불길이 이르렀다.

 

혁명을 요구하는 민중의 대다수는 당연히 수니파다. 그럼 생각해보자. 시아파-기독교-기타 종파-기타 소수 종교를 다 긁어모아 합쳐도 수니파에 안 되는 상황에서, 가뜩이나 수니파를 은근히 탄압해오던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고 수니파 정권이 탄생하면? 말 그대로의 헬게이트가 열릴 것이다. 그래서 비 수니파들은 살기 위해서라도 아사드 독재 정권에 적극 협력할 수밖에 없다. 이러자 시리아의 알 카에다 지부는 수니파 민중들에게 무기를 지급하고, 나아가 자기들이 직접 시위대가 되어주었다.

 

그 결과, 나라가 두 동강이 났다. 시리아 정부군과 알 카에다가 되어버린 혁명세력의 맞짱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 북동부의 쿠르드 족 자치구도 자기 보호를 위해 무기를 든다. 2011년 후반이 되어 민주화 운동이 좀 격하구나 싶던 것이 진짜 내전이 되어버렸다.

 

2005년의 아사드. 국제 사회가 뭐라 해도 강경진압을 고수하다가 내전을 불러왔다.

 

시리아 정부군은 내내 밀리다가 2013년 들어서 제대로 반격해 전세를 뒤집었다. 시아파 국가인 이란이, 알라위파도 시아파에서 갈라져나간 동포랍시고 지원을 해주었다. 레바논에서는 무장단체에서 합법정당으로 성장한 특이한 이력의 헤즈볼라가, 자기네 지지율을 까먹어가면서까지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해주었다. 이 때문에 알 카에다가 주축이 된 시리아 반군(인지 혁명군인지)은 전쟁의 주도권을 잃고 밀리는 형국에 처했다. 설상가상으로 반군 또한 두 개의 파벌로 갈려 투닥투닥하는 상황이 되었다. 간단히 보면 '아예 새 국가를 세우자'는 쪽과 '헐, 님 자제염' 하는 쪽 정도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2014년 4월에는 아사드 대통령이 '올해 안에 내전 끝낸다'고 호언장담을 했고, 실제로 6월에는 재선까지 된다.(내전 중의 선거에 선거감시단을 파견한 나라 중 부카니스탄이 있다는 것은 깨알같은 현실 개그다.) 이게 올해 6월 초까지의 일이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선 합법정당이니 약간의 태클이 가능하긴 하지만, 대략 이런 상황이었다.

 

 

다음, 이라크.

 

이라크의 유명한 남자, 후세인 정권은 수니파 정권이었다. 그리고 지난 회에 얘기했듯, 이라크의 시아파는 60%에 달한다. 절대다수는 아니지만 적지도 않다. 그리고 후세인은 수니파답게 시아파를 물심양면으로 깠다. 그러다 이라크 전쟁으로 후세인이 훅 갔다. 특히 은신한 후세인의 검거 과정에서 시아파가 큰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체포된 후세인을 서둘러 사형시켜 버린 것도 시아파가 한 일이다.

 

도망다니던 사담 후세인을 잡긴 했는데, 만약 해를 넘길 경우에는 

후세인의 나이가 70이 넘어가기 때문에 법에 의거하여 사형이 불가능해진다.

때문에 말리키 정권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판결 후 사흘만에 그를 사형했다.

집행일은 2006년 12월 30일. 말일 처형만은 아무래도 불쌍해서 그랬다고.

 

그리고 후세인 정권 후 들어선 말리키 총리 정권은 시아파 정권이다. 복수의 시간이 온 것이다. 이라크의 수니파는 시리아의 아사드 지지자들과 똑같이 공포에 떨었다. 그나마 미군이 있을 때는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지만, 미군이 떠나자마자 양 종파는 눈치를 보지 않기 시작했고, 말리키 정권의 연이은 탄압은 수니파로 하여금 내전의 문을 열어젖히게 했다. 문제는 수니파 쪽에는 알 카에다 이라크 지부가 있었다는 것이다. 얘네는 시리아 반군과 정반대의 형국을 만들었다. 내전을 주도하는 입장이 되어 이라크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까지 차지해버리는 기염을 토해버렸다. 물론 이후에는 잠시 잃기도 하고. 북쪽의 쿠르드 자치구가 살기 위해 내전에 참전하여 제3의 유력 플레이어가 되어 전선이 확장되기도 하였지만, 주도권은 아직도 반군에게 있다.

 

내전이 이렇게 된 이유는 거의 다 이라크 정부군의 무능 때문이다. 걸프전 이후 후세인은 군부가 자신을 위협할 가능성을 두려워하여 군사 분야의 인재들을 자기 친위대에 몰아주고 여기에 지원을 퍼부었다. 덕분에 이라크 전쟁에서는 참패했고, 이라크 관리를 시작한 미국은 후세인 친위대의 인사들을 죄다 잘라버리는 병크로 이라크군의 약체화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때문에 이후 집권한 말리키 정부가 사용할 군사력은 3류 수준이었고, 역으로 이렇게 잘린 요인들이 반군에 들어가 활동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그나마 미군에게 훈련받은 인재라도 써먹어야 했겠지만, 쿠데타를 염려한 말리키 총리는 이런 병력을 검문소에 배치하는 뉴 병크를 저질렀고, 내전 발발 직후 검문소 병력은 당연하게도 전멸한다. 거기다가 시리아에서 밀리는 통에 이라크 쪽으로 넘어온 ISIL 인사들까지 반군에 가세했다.

 

이라크 정부군은 현재 영토를 방어하는 게 역량의 전부인지라, 결국 시아파 정부는 시아파 민중의 궐기를 요청했다. 이에 화답한 시아파 민병대는 정부군보다 역량이 월등하다. 후세인 정권, 미국, 기타 수니파 무장단체와 싸운 것이 이라크 시아파의 역사이니 당연하다. 여기에 미국과 이란의 지원이 들어오자 간신히 대등한 싸움을 벌일 수 있게 되었다.

 

어쨌든 전쟁이 상당히 자기들 입맛에 맞게 돌아가자 이 친구들,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 ISIL의 아이디어에 자신들도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앞서 4월에 이미 ISIS라는 단어가 등장한 바 있다. 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의 약자다. 이전에도 인적 교류는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두 내전의 반군들이 결합하기 시작한 것이다.

 

솔직히 난 야한 합체 사진을 짤로 쓰고 싶었지만...

 

합체는 정확하지 않지만, 2014년 6월 중순경부터 시작된 것 같다. 아사드 대통령은 내전 승리를 내다보며 재선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지만, 두 파벌로 나뉘어 갈등하던 시리아 반군 진영이 이때를 기점으로 면모를 달리하고 있었다.

 

ISIL을 부르짖던 친구들은 이미 알 카에다를 탈퇴해있었다. 그리고 다른 파벌은 아직 알 카에다 소속이었다. 당연히 빡친 알 카에다는 ISIL의 토벌을 명령했는데,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역으로 ISIL이 상대를 흡수(!)해버렸다. 내부 분열로 투닥투닥하던 시리아 반군이 통일된 것이다. 그리고 이라크 반군을 맡고 있는 지부도 알 카에다를 탈퇴해버렸다. 그래서 알 카에다는 아라비아 반도 지부 자체에 토벌령을 내린다. 그랬더니 아라비아 반도 지부는 하라는 토벌은 안 하고, 자신들의 인원과 자원을 고스란히 반군들에게 갖다바쳤다. 혈압이 올랐을 알 카에다 지도부에게 애도를. (이 부분은 세부 경위가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건 알 카에다와 같은 연합형 무장 단체의 특징 때문이다. 어차피 테러 단체는 지역 기반의 조직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런 각 지역의 토착 조직들이 모여서 연합을 구성한 게 알 카에다와 같은 대형 조직이다. 때문에 '지부'라고 표현은 하지만 지역 조직들은 원래 존재하고 있던 무장 단체인 거고 이들을 알 카에다 지도부가 포섭하여 가입시킨 형태다. 그런데 이런 상하 관계가 깨진 것이다. 덕분에 현재 알 카에다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가장 치열한 투쟁 현장인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자라난 정예들이 하루아침에 배신을 때린 것이니.

 

이렇게 해서 갑자기 형세가 싹 바뀌었다. 우세에 있던 이라크 반군 + 이제 막 열세를 극복한 시리아 반군 + 주변의 수니파 극단주의자가 합체하더니, ISIL이고 ISIS고 하는 이름 대신 쌈박하게 IS를 내세워버린다. Islamic State의 등장이다. 국가명에 지역 이름이 빠지면서 이들은 자신들이 떠드는 신생국가 노래가 더 이상 농담이 아님을 선포해버렸다. 이게 6월 29일의 일이다.

 

그러나 아직 이들의 간은 배를 온전히 탈출하지 않았다.

 

이런 건 상대도 되지 않는 스케일의 서스펜스를 경험해보자.

 

 

 

 

 

[IT]상품 가치 전쟁 4편 (2004년 Facebook과 2006년 Twitter)

 

기사 - [IT]상품 가치 전쟁 4편 (2004년 Facebook과 2006년 Twitter)

2014. 10. 02. 목요일 trexx 지난 기사 [1편 - 90년대 MS Windows와 1984년 Apple Macintosh System Software ] [2편 - 1979년 Sony Walkman과 2001년 Apple iPod] [3편(上) - 1977년 Apple II와 1981년 IBM PC] [3편(下) - 1977년 Apple II

www.ddanzi.com

2014. 10. 02. 목요일

trexx

 

"국가는 국민의 안위를 위하여 휴대전화 메시지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 코미 FBI국장

 

 

 

1.소통

 

인간(人間)은 서로 소통하는 동물이다.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는 것이 소통의 기본 뜻이라고 하나 서로의 의사 전달이 항상 대등한 입장에서 하는 것은 아니다. 힘있는 자의 말은 일방적으로 힘없는 자에게 전달되었으며 그것이 오용될 때는 프로파간다로 변질 되기도 했었다. 또한 대등한 인간들간의 서로 소통함에 있어서 힘있는 누군가가 개입하게되면 대등한 인간들간의 소통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해 지기도 한다. 서로 통하여 이해할 수 없는 사회라면 사회 구성원과 소통의 주체로써 인간이랄 수 있을까?

 

IT 기술의 변천과정은 집단에서 가정으로 가정에서 개인으로 옮겨 왔다. 극장(광장)에서 TV로, TV에서 개인용 컴퓨터 그리고 손안의 휴대전화. 이제 한 개인이 휴대전화 하나로 전세계 네트워크와 연결된 것이다.

 

우린 누군가에게 자신의 얼굴을 알리고 즉각적인 짧은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전혀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 누구나 자신의 얼굴과 생각을 자유롭게 보여주고 알려주는 것이 이제는 (힘있는) 특정인이 아니라 대중이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성공적인 서비스 상품이 있다. 바로 페이스북과 트위터다.

 

 

 

2. 페이스북 = 주커버그

 

영화 카피 하난 걸작이다. 'You don't get to 500 million friends without making a few enemies.' 

(소수의 적을 만들지않고 5억 친구를 얻을 수 없어.)

 

페이스북하면 거의 동시에 떠오르는 인물이 마크 주커버그이다. 1984년생으로 이제 갓 30살인 유대인 주커버그는 20대 최연소 억만장자 기록(23세에 $10억달러, 역대 2번째)을 가지고 있다.(어린나이에 성공해서 좋겠다.) 보통 IT 인물들에 대한 영화가 나오면 재밌기 어려운데 각본가 아론 소킨의 능력에 기인한 면이 있겠지만 2010년 개봉된 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공전의 히트를 했다. (가장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스티브잡스도 이루지 못한 성과다.) 그 만큼 마크 주커버그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로 마크 주커버그의 두개의 주요 소송이 주 배경이다. 페이스북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주장하는 하버드 동창 윙클보스 쌍둥이와의 소송과 공동창업자 이자 CFO 역을 주장하는 친구 에드와도 새버린과의 소송내용을 다루고 있다.

 

페이스북이 훌륭한 서비스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배경에는 상품에 그것을 만든 사람의 철학이 고스란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페이스북은 주커버그 자신의 의지가 시스템 전반에 걸쳐 담겨져 있다.

 

페이스북은 다른 사람이 알고 싶어하는(알려주고 싶은) 개인의 상태를 공개적으로 알려주는 서비스로 시작하였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시작한 서비스로 출신대학이 어디고 전공이 무엇이고 취미는 무엇이고 어느 지역이 고향인지 등 개인의 과거와 현재의 상태를 관계가 설정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초창기의 주 기능이었다.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을 선보인 시기는 하버드대학생 시절이었다. 페이스북을 처음에는 하버드에 국한시켜 서비스하다 차츰 타학교로 확대하였고 인기가 높아지자 결국 일반인에게 서비스를 확대하게 된 것이다.

 

주커버그가 처음부터 일반에게 공개하기 꺼렸던 이유는 2002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프랜드스터(friendster.com) 선례 때문이었다. 프랜드스터는 한때 사용자수 1.1억명 월 방문자 수가 6천만명에 다다랐지만 사용자 늘리는데 급급한 나머지 서버 과부하로 접속이 어려워졌다. 사용자들은 불만이 거세졌고 결국 외면받게 되었다. 프랜드스터는 경쟁력에서 밀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접고 소셜게임사이트로 변경하게 된다.(2011년)

 

일개 대학생이었던 주커버그는 서비스 규모 및 기능확장에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이 진정성 있는 사이트로 발전하길 바랬다. 서비스 가입 시 실명을 입력하는 등 정확한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많은 비난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의 다소 까다로운 실명 요구는 사용자간 소통에 있어서 어느정도 도움이 되었다. 또한 사이트 디자인을 사용자 맘대로 변경이 가능했던 'Myspace'와 달리 디자인 등 UI 변경 기능을 제한했다. 주커버그의 이런 통제에 대한 집착은 '갓 콤플렉스'(God Complex)라고 비난 받기도 하였지만 결국 그 집착은 주커버그와 페이스북의 경쟁력이 된다.

 

 

 

 

 

[동물]사파리매거진2580 - 개

 

기사 - [동물]사파리매거진2580 - 개

2014. 10. 02. 목요일 견인차 지난 기사 <시즌1> [1. 상어 편] [2. 돌고래 편] [3. 점박이 하이에나 편] [4. 까마귀 편] [5. 방울뱀 편] [6. 견공 편] [7. 박쥐 편] [8. 수리부엉이 편] [9. 바다악어 편] [10.

www.ddanzi.com

2014. 10. 02. 목요일

견인차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21세기는 정보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사람들의 삶은 편해졌고 빨라졌으며 다채로워 졌습니다. 특히 정보통신, 인터넷의 발달은 오늘도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어떨 때는 중동의 봄과 같은 사회 시스템 자체의 변화를 일으킬 정도로 큰 파동의 주역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지구 반대편의 귀여운 고양이 사진을 보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보편적 리포트의 서론) 또한 덕분에 제 과제도 늘었죠.

 

주말에도 인터넷으로 제출하면 되니까 주중에도 주말에도

과제 & 퀴즈라니 교수양반들 이게 무슨 소리요.

 

내, 내가 과제에 찌든 대학생이라니! 인터넷 엑세스라니...

 

요즘 예고도 없이 엄청난 연재 빵꾸를 내고 있어 고개를 들 수 없는 견인차 입니다. 제 본업이 글 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에는 글빨이 너무 딸림으로 취소. 그냥 여유롭게 글 쓰고 학교 다니고 알바까지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실상은 학교만으로도 코 밑까지 물이 찬 기분입니다. 본업인 학업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에 딴지일보 연재를 주 1(이라고 쓰고 무한 빵꾸라고 읽습니다)에서 월 1회로 불가피하게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글 쓸 거리도 더 많이 생기고 좋지 않겠습니꽈... 죄송합니다.

 

정보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많은 것이 변화 했지만(과제라던가, 혹은 과제라던가), 변하지 않는 많은 것들 중에 하나는 인간의 곁을 수 만 년동안이나 지켜오고 있는 개가 있죠.

 

최근 거주하고 있는 집주인 아저씨의 간곡한 부탁으로 열 살 먹고도 기운이 넘쳐 흐르는 개 한 마리를 일주일 정도 보살펴 줬는데요. 거의 하루 종일 붙어있고 학교에서도 개 혼자 있을까봐 집으로 튀어가다 보니, 오랫동안 키우다가 무지개 다리 건너간 저희 집 막내 코코라는 코카스파니엘이 엄청나게 많이 생각났습니다. 작년에도 추석 전후해서 '삼대 지랄견에 대한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던 것 같네요. 고로 올해도 (내 멋대로) 가을특집 개의 대해 한번 알아볼까요. 왜 복날도 없는 가을에 개에 대한 특집이냐고 물으신다면, 해답은 당신의 마음속에 묻어 놨습니다

 

찡긋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개들은 반전매력을 찾아보기에는 이미 너무 잘 알려져 있죠. 무리생활을 좋아하고 늑대와 동일 조상이 있지만, 인간에게 친화적인 개체만 인간에게 다가와 살기 시작했고 유순하고 인간을 좋아하는 개체들의 유전형질이 이어져 지금의 개가 되었다 - 라는 유력한 진화 이론을 가지고 있는 동물 입니다. 사람이 선택진화 시켰다고 봐야될지, 사람을 진화시켰다고 봐야할지 애매한 동물들 중에 하나입니다. 고양이도 마찬가지죠. 사람이 진화시킨 것일까 스스로 진화한 것일까 아니면 서로 진화시킨 것일까? 저는 서로 진화시켰다는데 한표 :) 뭐 물론 그 후에 다채로운 사이즈와 생김새로 진화된 것은 인간의 선택진화였지만...

 

 

이번 편은 서론이 특히 길어지고 있네요. 더 할 말은 많은데 너무 길어지면 너무 길어서 안 읽었네요. 3줄 요약좀 하실까봐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렇게 자꾸 길어지는 이유는 개가 제가 개인적으로 매우 편애하는 동물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가볼까요

 

 

 

 

 

[정치]<파토의 쿡찍어 푸욱> - 20. 소유나 존재냐

 

기사 - [정치]<파토의 쿡찍어 푸욱> - 20. 소유나 존재냐

2014. 10. 02. 목요일 파토 <파토의 쿡찍어 푸욱>은 시급한 현안에서부터 해묵은 숙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 사회 관련 문제를 다루는 코너임다. 과학 잡설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와 교대하면

www.ddanzi.com

2014. 10. 02. 목요일

파토

 

 

 



<파토의 쿡찍어 푸욱>은 

시급한 현안에서부터 해묵은 숙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 사회 관련 문제를 다루는 코너임다.

과학 잡설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와 교대하면서 격주로 연재되니

많은 사랑 주시던가.



지난 기사

<파토의 쿡찍어 푸욱> 1. 공포의 마스터플랜
<파토의 쿡찍어 푸욱> 2. 그들은 왜 변절했을까
<파토의 쿡찍어 푸욱> 3. 지금 우리에게 놓인 투쟁의 현실
<파토의 쿡찍어 푸욱> 4. 시대와 진보에 대한 단상
<파토의 쿡찍어 푸욱> 5. 사회의 품격(1)
<파토의 쿡찍어 푸욱> 6. 박정희, 이승만, 일제 그리고 개드립
<파토의 쿡찍어 푸욱> 7. 사회의 품격(2)
<파토의 쿡찍어 푸욱> 8. 하는 김에 하는 교통 이야기
<파토의 쿡찍어 푸욱> 9. 우리는 그들에게 대한민국인가
<파토의 쿡찍어 푸욱> 10. 비극으로 모자라서 이렇듯 철저하게 패배할 겁니까
<파토의 쿡찍어 푸욱> 11. 내가 수퍼맨이라면
<파토의 쿡찍어 푸욱> 12. 위선이라도 떨어라
<파토의 쿡찍어 푸욱> 13. 혁명의 상상
<파토의 쿡찍어 푸욱> 14. 줏대이야기
<파토의 쿡찍어 푸욱> 15.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바
<파토의 쿡찍어 푸욱> 16. 양식냉장고
<파토의 쿡찍어 푸욱> 17. 길, 그리고 사람
<파토의 쿡찍어 푸욱> 18. 권력이라는 손바닥
<파토의 쿡찍어 푸욱> 19. 신삼국 시대의 빵빠레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

 

 

요즘 국립과천과학관의 국제SF영상축제인 <SF2014>에서 '우주 저 너머'와 '시네마토크'를 하고 있다. 허리 수술 후 겨우 한달 남짓 지난터라 몸도 정신도 부대낀다. 그래서 오늘은 좀 가볍게 갈려고 하는데 머 그렇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주제는 제목처럼 저런 내용이다.

 

소유, 그리고 존재와 관련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

 

 

 

1. 집이 없다구? 그럼 어디서 자?

 

굳이 에리히 프롬을 끌고 오지 않더라도, 그보다 훨씬 단순한 차원에서 소유와 존재에 대한 답은 내게는 항상 명확했다. 소유가 주는 쾌감이 일차원적이고 단기적이라는 사실은 어릴 때부터 다들 경험한게 아니냐. 물론 질 좋고 유용한 물건을 갖는 것은 삶의 소소한 즐거움이고 때로 유용함도 제공해 주는 건 맞다. 예를 들어 지금 타이핑 하고 있는 맥북 같은 게 대표적이다. 머 이런 수준의 소유마저 버린, 말 그대로 무소유의 삶을 살라면 우원은 '노땡스' 하겠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소유의 욕망과 가치에 스스로 잠식돼 버리는 경우다. 이건 그냥 바보같은 삶일 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그렇게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아니다. 세상의 물건이라는 건 대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다. 그런 시시한 것들을 좀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나를 증명할 수 있을 정도라면, 나란 인간은 대체 얼마나 시시한 거냐.

 

굳이 대단한 욕망이나 집착에 빠져 있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일상에서도 은연중에 소유의 개념에 잔뜩 젖어 살고 있다. 어릴 때 누가 우리는 집이 없어라고 하면 그렇게 이상한 말이 없었다. 아니 분명히 지금 집에 살고 있으면서, 길거리에 나앉거나 다리 밑에 거적깔고 있지 않은데 왜 집이 없다는 걸까. 그러다가 고등학교때쯤 되서야 그 말이 소유한 집이 없다는 뜻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세집에 이사갈 때 마다 농구대를 설치한다는 박모씨.

이쯤 되면 집 없다는 말이 무색할 뿐.

 

그런데 우원은 그 말이 아직까지도 잘 와 닿지 않는다. 내 이름으로 등기가 돼 있든 아니든, 내가 생활하고 잠자고 희로애락을 느끼는 곳이 내 집 아니냐. 물론 남의 소유니까 마음대로 손대기 어렵고 월세나 전세금을 올리는 등 불편한 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사는 곳이 일단 내 집인 거다.

 

이래서 우리 집이라는 말은 소유와 존재의 두 양식 속에 혼란을 초래한다. 멀쩡히 우리 집에서 잘 존재하던 내가 어느 순간에는 집을 소유하지 않은 뭔가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상태로 전락하고 만다. 습관적인 단어 하나의 사용 때문에, 존재 중심의 삶이 소유 중심의 삶으로 뒤바뀐다. 그래서인지 그런 의미로 우리 집이라는 말을 할 때 사람들은 대개 슬프거나 자조적인 표정을 짓는다.

 

 

 

 

 

[취재]법조타운 vs 교도소 <1> 의문의 제보자

 

기사 - [취재]법조타운 vs 교도소 <1> 의문의 제보자

2014. 10. 02. 목요일보리삼촌살랑살랑하다. 부는 바람도, 나의 기분도 살랑살랑하다. 거창, 막연히 알고는 있는 동네였으나, 막상 발길을 옮기려 하니, 마냥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을 뿐더러, 교통

www.ddanzi.com

2014. 10. 02. 목요일

보리삼촌

 

 

 

살랑살랑하다. 부는 바람도, 나의 기분도 살랑살랑하다. 거창, 막연히 알고는 있는 동네였으나, 막상 발길을 옮기려 하니, 마냥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을 뿐더러, 교통편이 좋지 않았다.

 

차를 끌었다. 소요 시간을 가늠할 수 없어, 대략 오후 네 시 전후로 도착한다는 연락을 남겼었다. 제보자는 시간 상관없이 언제든 거창 창남초등학교 앞 카페로 오라 했었다.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차에서 내려 카페로 향하는데, 밖에 서 계시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딴지에서 오셨습니까?"

 

"네."

 

"아이고, 아까부터 기다렸습니다."

 

"네? 언제부터요?"

 

"두 시 쯤부터요, 안 오시나 해서 이제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네? 두 시요? 연락 주신 분은 누구시죠? 저랑 연락하신 분요."

 

"누군데요? 저희도 모르겠는데."

 

"xxxx-xxxx 이 번호요. 이 분과 계속 연락했고, 오늘도 말씀 드렸는데. 그럼 그 쪽은 어떻게 되세요? 학부모 대표신가요?"

 

"네 맞습니다. 근데 그 번호는 모르겠는데요."

 

"제보하신 분 모르신다고요? 이 분과 연락하면서 지금 온 건데... 누군지 모르신다고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르겠는데. 누구지?"

 

"일단 들어가시죠."

 

"네. 알겠습니다. 잠시, 화장실 좀 갔다가 갈 게요."

 

 

'뭐지? 왜 제보자를 모르는 거지?'

 

 

어느 날, 딴지 사무실로 한 남성 분이 찾아왔다. 스스로를 목수라 소개한 그 남자는, 지금 거창에선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언급했다. 그리하여, 이 곳 거창까지 오게 되었는데, 막상 와 보니, 당사자(?)들은 제보자의 인적사항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자료가 집에 있는데 괜찮으시면, 집으로 가시죠?"

 

'음, 까페로 가면 된다고 했는데.. 갑자기 집?' "네? 네. 그러죠."

 

'부부 같은데, 왜 차를 각각 타지? 차도 좋은데?' 괜히 예민해졌다. 아주 살짝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 마음은 대문에 다다르자, 이내 사라졌다.

 

가정집의 대문에 붙여진 포스터

 

 

 

 

 

[천기누설]딴지일보 필진 되는 법 (부제 : 20대의 소리를 찾아서)

 

기사 - [천기누설]딴지일보 필진 되는 법 (부제 : 20대의 소리를 찾아서)

2014. 10. 02. 목요일 요제프K 편집부 주 아래 글은 금년 초, 독투불패에 <유학생 시리즈>를 연재하다 장렬하게 본지 노예로 산화, 아니, 필진으로 납치된 요제프K가 300에 던진 글이다. 본지는 그에

www.ddanzi.com

2014. 10. 02. 목요일

요제프K

 

 

 



편집부 주

아래 글은 금년 초, 독투불패에 <유학생 시리즈>를 연재하다
장렬하게 본지 노예로 산화, 아니, 필진으로 납치된 요제프K가 
300에 던진 글이다. 

본지는 그에게 '미스터 딴지스 캐나다 진'이라는, 
누가봐도 있어보이는 감투까지 주었으나 
16년 불친절 전통의 역사를 가진 성스러운 본지에서 
본인 기사에 친절히 댓글을 달며 전통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이번엔 그룹 기밀까지 누설하려는 죄가 매우 중차대하여 
이에 신입 갈구는 재미로 사는 퍼그맨 기자가 
파란색 글자로 막 그냥 훼방을 놓는 것으로 
처벌을 대신하는 바이다.   


 

 

 

며칠 전 굉장히 흥미로운 전공을 가진 한 아리따운 여성과 그녀의 전공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 이야기들은 혼자 듣기엔 너무 아까워 딴지에 글을 쓰는 것은 어떻겠냐며 각종 드립을 섞어가며 꼬득이려 했었다. 나의 이런 낚시성 드립을 듣던 그녀가

 

"지금 니가 하는 이걸 글로 써보는 건 어때? 딴지 필진 되는 법. 뭐 이런거."

 

 

그래. 요즘 안 그래도 쓸 기사도 없는데 이런 글이라도 끄적여 보자. 

 

 

 

- 좋은 점 -

 

민족 정론지 대 딴지일보 필진이 되면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다. 생각나는대로 한번 나열해 보겠다. 

 

 

 1. 돈

 

돈. 준. 다.

 

 

까놓고 이야기 하자.

 

요즘 세상에 글 써서 돈 버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인기 유튜브 영상 가지고 기사를 쓰곤 하는 모 인터넷 언론에서도 고료를 안 준다 하고, 인터넷 언론들 사정이 다들 좋지 않아 기고해도 고료는 굉장히 짜다. 모 인터넷 언론사처럼 편집부 의지에 의한 반강제적 봉사차원으로 공짜 소비될 가능성도 크다.

 

그렇다고 방씨 일가에 글을 바치기엔 그들이 명문대를 밝히고, 또 꼼꼼한 사상검증을 해댄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알겠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력과 선동능력으론 위대한 방씨네 신문 주필/논설위원들의 한자어 잔뜩 섞인 선동문/정권찬양문을 뛰어 넘을 수 없겠다. 결국 이러한 언론지형을 고려해 보건바 글써서 돈 타기 가장 좋은 방법은 딴지일보 기고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할 수 있겠다.

 

좋은 사례) 최근 본 필자의 3연속 마빡 (속칭 요제프의 3연벙) 기록을 간단히 깨트려 버린 딴지일보의 '기사머신'이라 불리는 벨테브레라는 필진이 화제다. 혹자는 '세상을 보는 눈'이라 칭송하기도 하고, 혹자는'사라져 가는 딴지일보의 풍자 전통을 되살릴 구세주'라 칭하기도 한다. 그의 기사작성 능력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추측 되는데, 딴지에서 시간 남아돌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도 깔끔하게 'gg'를 치고 항복선언을 했다.

 

엄청난 기사 작성 능력과 그에 따른 잦은 마빡 진출로 인한 벨테브레의 고료 수입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아니나 다를까 몇 달 전 그는 넘쳐흐르는 딴지발 자본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프로필 사진을 잉여자본의 아이콘 만수르로 바꾸기 까지 했다.

 

 

진지하게 말해보겠다. 딴지일보 고료는 절대 짜지 않다. 얼만지 궁금하면... 필진을 하면 되시겠다.

 

원래 머슴 밥을 더 잘 먹여야 되는 법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수많은 소송을 겪으며 버팅김 하나 만큼은 누구보다 잘 해야함을 절감한 딴지그룹이기에 그간 글을 투고해온 수십만 필진이 단결하여 소송하면 좋게 되는 수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본인 입장에서는 애석하다만 기자 봉급을 못 주는 상황이 되어도 필진 고료는 나갈 가능성이 높아져 있는 것이 딴지그룹의 깊수칸 속 사정이라 하겠다.

 

다만 롤러코스터와 같은 본 그룹의 운명상 언제 공중분해 위험에 쳐해질지 알 수 없으니 고료의 운명도 언제 산화될지 알 수 없다 하겠다. 먼 훗날, 딴지그룹이라는 이름이 통장에 찍혀있는 것 자체가 레어템이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으니 꼬박꼬박 고료 나오는 지금을 즐겨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액수는 본 그룹의 볼드모트적 일급기밀이나 그 금액에 현대사회에서 잊혀져가는 소박한 멋이 살아있다, 마, 이렇게 자부하고 있다.

 

 

2. 평생 타이틀

 

가끔 마빡에 3번 당첨되어 필진이 된 뉴비의 기사 말미에 붙는 '평생 노예'라는 말은 바꿔 말하면 '글 안써도 평생 필진'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나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모 필진은 IMF시절 이후 글을 거의 쓰지 않고 있다는 증언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딴지 필진이다. 물론 딴지일보라는 매체에 거부감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한 몇 달 써먹어 본 결과 영 쓸모가 없는 타이틀은 아니라는 것이 본 필자의 평가다.

 

딴지그룹과 관계될 경우, 왕정 국가로의 이행을 준비 중이신 특정 분들 및 그 추종자에게는 밉보일 수 있으나 대쉬지수라는 게 상승한다. 물론 이것은 본 기레기의 예로, 살아오면서 이토록 많은 여성의 대쉬를 동시에 받은 적이 없다. 

 

누군가 '높으신 분들의 사랑과 여성들의 사랑 중 어느 것을 받으려나' 묻는다면 나는 다시 태어나도 후자를 택하리라. 물론 걍 나의 매력이 치명적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다.

 

 

3. 피드백

 

만약 여러분이 파워블로거(지)라면 해당 되지 않겠지만 본 필자처럼 평소 취미삼아 이런 저런 글을 쓰던 사람이라면 꽤 끌리는 점이 바로 빠른 피드백이다. 수 만 단위를 찍는 엄청난 조회수와 많은 악플 사이에서 한송이 꽃처럼 피어나는 선플을 바라보노라면 나의 이러한 잉여짓과 그 결과물인 마빡 기사를 많은 사람들이 읽고 각자 나름의 피드백을 준다는 사실이 꽤 뿌듯하다. 나의 노력에 대한 결과를 누구에게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그 이상의 뿌듯함은 왠만해선 찾기 힘드리라 생각한다.

 

바로 잡아야 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수년간, 디도스 공격에 인터넷 도박광고 도배라는,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재해를 겪은 후, 본지 기사에 댓글을 한번 달려면 로그인, 암호입력, 120초 룰 등, 매우 엄청난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하여 SNS를 통한 개인적 피드백 외에 댓글 수는 현저히 줄었다. 이 점은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며 조만간 시스템 개편이 있을 예정이다.  

 

다만 무조건적인 '장외, 반목 정치'로 글쓴이를 힘들게 하는 댓글이 아닌, 통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영양가 있는 댓글을 달아보려 노력하는 독자들이 골고루 포진되어 있다는 점이 딴지일보 피드백의 장점이라 하겠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