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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마빡 이야기/2014

딴지일보 마빡 2014. 10. 14

by 꾸물 2021.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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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10월 26일, '사랑의 7시간'이 펼쳐진다

 

기사 - [예언]10월 26일, '사랑의 7시간'이 펼쳐진다

2014. 10. 14. 화요일 편집부 홀짝 1. 홍보의 시작 딴지 계정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이런 거도 올려봤다. 그러고는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준비한 애덜마냥 두근두근 하면서 기다렸지. 이걸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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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4. 화요일

편집부 홀짝

 

 

 

1. 홍보의 시작

 

딴지 계정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이런 거도 올려봤다.

 

 

그러고는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준비한 애덜마냥 두근두근 하면서 기다렸지. 이걸 본 열분덜의 반응이 어떨까 상상하믄서 말이다. 눈치 빠른 몇몇은 바로,

 

 

우리가 위에 있는 요걸 패러디한 걸 깨달음과 동시에 '딴지가 뭔가를 꾸미려하고 있다!', '뭘 하려는 거지? 궁금해!'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주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한 것도 사실이었지.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세상은 녹록하지 않아. 사실, 아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아니고...

 

뭐, 이런 반응도 있기는 했드랬다. 난 ㅂㄱㅎ가 누구를 뜻하는지 검찰조사가 들어와도 말 못해.

 

 

 

 

 

[비화]안티 가스통 할배의 월남참전기 <2>

 

기사 - [비화]안티 가스통 할배의 월남참전기 <2>

2014. 10. 14. 화요일 sydney 편집부 주 어느 날, 회사 대표메일로 날아든 한 통의 메일, 오랫동안 망설이고 고민하다 메일을 보낸다는, 딴지일보 창간부터 독자이며 연식 좀 나간다는 사람이라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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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4. 화요일

sydney

 

 

 



편집부 주

어느 날, 회사 대표메일로 날아든 한 통의 메일,
오랫동안 망설이고 고민하다 메일을 보낸다는,
딴지일보 창간부터 독자이며 연식 좀 나간다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한 편의 글과 함께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이런 류의 글을 발표할 수 있는 곳은 딴지 밖에 없을 것 같아서 보냅니다.
젊은 세대들이 알아야 할 월남전의 진실, 이제까지 아무 곳에서도 알져지지 않았던
월남전의 실상들을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흥미위주로 썼습니다."

보내 온 글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긴 어렵지만, 꿀잼 허니잼이니
함 읽어보시고 의견들 주시면 좋고.

 

 

 

 

살아서 돌아 올 수 있을까?

 

미군 수송선의 선실은 마치 영화 <빠비용>에 나오는 죄수 호송선 같았다누에가 고치를 치기 위해 시렁 위에 누운 것처럼 병사들은 3층짜리 철제 침대 위에 올라가서 잠을 잤다코를 찌르는 바다냄새병사들의 땀 냄새가 뒤죽박죽이었지만 전쟁터로 가는 길이었기에 불평스런 마음이 전혀 없었다.

 

수송선에서의 하루는 눈을 뜨자마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니 때마다 식당 앞에서부터 배의 좁은 복도를 따라 줄줄이 늘어서야 했다. 1,000명이 좁다란 선내 식당에서 식사를 하려니까 밥 한 끼를 먹으려면 두 시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새벽의 서울역 대합실처럼 썰렁한 분위기를 풍기는 통로에 줄지어 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해 밥을 타 먹느라고 하루에 여섯 시간을 보냈다. 아침 먹고 조금 있다가 줄 서서 점심을 먹고, 조금 있다가 또 줄을 서서 저녁을 먹으면 배 안에서의 하루 일과가 끝났다. 줄을 서는 것이 귀찮아서 한 끼쯤 밥 먹는 일을 거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다른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노는 셈치고 줄을 서서 노닥거리는 것이다

 

줄을 서는 것은 식사 때만이 아니다. 아침이면 화장실 앞에도 병사들이 길게 늘어서서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밥 먹는 줄인 줄 알고 무턱대고 서서 한참을 기다리다 보면 화장실 가는 줄이기도 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곳곳에서 사천만의 오락인 화투판이 벌어졌다. 배 안에서는 한국 돈은 쓸모가 없고 달러는 아직 받지 않았기에 배급받은 양담배를 걸고 화투를 쳤다. 나는 화투를 할 줄 모르고 담배도 피우지 않아서 심심풀이로 밑천이 필요한 병사들을 대상삼아 내가 받은 담배를 이용해 이자놀이를 했다. 사흘이 지나자 내 더블백에 다 들어가지가 않을 정도로 담배가 많아졌다. 담배를 벌어들이다보니 사채시장의 돈놀이꾼들이 돈 버는 재미가 이런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나중에 하선 하자마자 정신없이 배치를 받아 가는 판에 큰 더블백을 짊어지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닥치는 대로 주변 전우들에게 나누어 주고 말았다.

 

1969년 월남에서 돌아온 한 병사의 귀국 기념품  

 

닷새 동안의 불안한 항해가 끝나고 곧 퀴논에 상륙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모두들 마음이 뒤숭숭해서인지 갑판에 나와 하루 종일 서성거렸지만 어두워질 때까지 육지는 보이지 않았다.

 

부산항을 떠난 지 엿새 되는 아침, 남보다 먼저 잠자리에서 일어나 선실의 문을 여는 순간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 바람이 -’ 하고 콧 속으로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놀라서 어디서 불이 났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배는 이미 밤새 퀴논 항에 도착하여 부두에 닿아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뜨거운 열기 속에서 호흡을 다시 한 번 가다듬었다. 아직 새벽이어서인지 그런지 쥐죽은 듯한 부두의 모습이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 월남 땅을 처음 본 순간 이제까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내가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스치고 지나갔다.

 

날이 완전히 밝았졌다. 부두에 내린 우리들을 환영하는 공식 행사는 없었다. 그 대신에 야전잠바를 입은 부관부 준위가 어깨에 힘을 주고 버티고 서서 우리를 기다렸다. 찌는 듯 한 더운 날씨에 더욱이 대낮에 준위가 왜 야전잠바를 입고 왔을까 하는 의문은 곧 밝혀졌다. 현장에서 금반지로 된 짜웅 '뇌물' 을 받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소문에 의하면 병력이 도착할 때마다 야전잠바 주머니가 축 늘어질 정도로 금반지를 걷어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준위의 야전잠바는 그 후에 내가 목격한 주월 한국군의 엄청난 부패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나는 병사들이 하도 잘 죽는다고 해서 '병력을 보내나 마나' 라는 소문이 붙었다는 일명 도깨비부대로 떨어졌다. 우리들은 닌호아에 있는 사단 사령부로 가는 병력과는 달리 도깨비 부대가 있는 투이호아로 가기 위해서 사단 부관부의 준위가 부르는 대로 대열을 이루었다미군이 대부분 철수한 퀴논 비행장은 그야말로 황량하기 그지없었다더블백을 어깨에 메고 뜨거운 바람을 일으키며 기다리고 있는 쌍발 프로펠러 수송기의 활짝 열려 있는 뱃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원래 화물을 나르던 수송기는 안에서 밖이 훤히 내다보여서 '이 비행기가 날 수는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펜더 회고록]글이 돈이 되는 기적 <11>

 

기사 - [펜더 회고록]글이 돈이 되는 기적 <11>

2014. 10. 14. 화요일 펜더 지난 기사 글이 돈이 되는 기적 <프롤로그> 글이 돈이 되는 기적 <1> 글이 돈이 되는 기적 <2> 글이 돈이 되는 기적 <3> 글이 돈이 되는 기적 <4> 글이 돈이 되는 기적 <5>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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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4. 화요일

펜더

 

 

 

 

 

 

경기景氣와 작가

 

향후 5년간 긴긴 겨울이 이어질 것이다이 겨울을 버티기 위한 준비를 잘 해야 한다.”

 

모 경제연구소 연구원의 발언이다. 뒤를 잇는 주류와 재야 경제학자들의 말들이 이어진다. (곁다리로 사회학자들도 한마디씩 거든다) 주변 작가들이 (문학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분야의) 시큰둥했다.

 

그래서?”

 

정말 그래서. 언제 예술가들이 경기가 좋았던 적이 있을까? 1990년대 초 반짝 불꽃이 타올랐던 순정만화 르네상스에 대해서 김진 작가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때 돌아온 대답이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뒤돌아보니 그때가 르네상스였다는 걸 알겠어요그 당시엔 지금이 활황인지 불황인지 가늠도 안됐어요.”

 

맞는 말이다. 이 바닥에서 진리로 통하는 말이 하나 있다.

 

이쪽이 언제 경기 좋았던 적 있니?”

 

...그래 이 바닥에 언제 경기가 좋았던 적이 있었던가?

 

 

 

 

 

 

[산하칼럼]무구정광다라니경 빛 보다

 

기사 - [산하칼럼]무구정광다라니경 빛 보다

2014. 10. 14. 화요일 산하 신라의 걸출한 문화재는 상당 부분 백제 예술가의 힘을 빌린다. 한반도 동남방에 고립돼 있던 신라는 문화적 후진국이었다. 이를테면 선덕여왕 대에 완공된 황룡사 9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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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4. 화요일

산하 

 

 

 

신라의 걸출한 문화재는 상당 부분 백제 예술가의 힘을 빌린다. 한반도 동남방에 고립돼 있던 신라는 문화적 후진국이었다. 이를테면 선덕여왕 대에 완공된 황룡사 9층 목탑은 백제 장인 아비지가 만들었다. 한창 발전 도상에 있던 신라는 층마다 인근 나라 이름을 적어 넣고자 했는데 그렇게 하면 그 나라 모두가 신라에 조공하게 되리라는 야심 찬(이라고 쓰고 맹랑한 이라고 읽는다) 포부를 드러냈다. 그런데 공사가 진행되질 않았다. 이유를 알아본즉슨 백제 장인 아비지가 태업을 한 것이다. 그 층 하나에 백제의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 그래서 백제의 이름을 빼고 응유국이라는 이름을 넣어 아비지를 달랬다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불국사 석가탑을 지을 때에도 신라에는 쓸만한 석공이 드물었던 모양이다. 이미 백제가 멸망한 지 오래였지만 석가탑을 지을 인물로 옛 백제 땅에 살던 아사달이 불려 와야 했다. 아사달에게는 갓 결혼한 아내가 있었다. 아사달이 3년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자 아사녀는 불원천리 서라벌로 찾아오지만, 국가지대사인 석가탑 공사에 들어간 아사달을 만날 길이 없었다. 완성되면 저 연못에 탑 그림자가 비치리라는 문지기의 말에 연못 앞에서 목이 빠지던 아사녀는 신라의 귀한 가문 처녀와 아사달이 결혼한다는 소문에 연못에 몸을 던지고 만다. 이를 알게 된 아사달 역시 그 연못에 몸을 던지고 만다는 슬픈 전설. 그래서 석가탑은 그림자가 없는 탑, 무영탑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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