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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마빡 이야기/2014

딴지일보 마빡 2014. 10. 20

by 꾸물 2022.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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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알고나 까자 - 원전 호러 쌩쑈 <3>

 

기사 - [국제]알고나 까자 - 원전 호러 쌩쑈 <3>

2014. 10. 20. 월요일 타데우스 지난 기사 [알고나 까자 - 아부나이 대마초] [알고나 까자 - 네오나찌] [알고나 까자 - 나찌 수용소(上)] [알고나 까자 - 나찌 수용소(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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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0.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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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나 까자 - 원전 호러 쌩쑈]
[알고나 까자 - 원전 호러 쌩쑈 <2>]


 

 

 

1. 프리뷔어슬리 온 <알고나 까자>

 

지난 글에서 1980년 이전까지 독일의 원전 반대 움직임에 대해서 살펴봤다. 물론 대부분이 안 읽었거나 까묵었음을 감안하여 간단히 추려보겠다.

 

원전 반대 운동은 당시까지 아주 쪼끄만 성공과 대부분의 실패를 반복했다. 이미 원자력 발전은 값싸고 경제적이며 이러한 기술을 토대로 세계시장에서 기술 강국으로 물뚝... 아니 우뚝 설 수 있다는 환상은 소수 시위대가 내는 목소리를 다 뒤덮고도 남을 만한 것이었다. 

 

계속되는 패배 속에서 시위대는 좌절해 갔고, 그들 역시 '원자력이 정말 인류의 미래를 위한 대안인가?'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원전 반대 시위는 원전 찬성론자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 안에 갇혀 갈 길을 잃고 말았다. 어느새 시위는 점점 더 줄어들었고 서방 강대국들은 원자력 발전소를 경쟁적으로 짓고 있었다. 

 

원자력에 대한 환상...

 

 

2.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내다.

 

2-1. 학계

 

1979년 3월 말 독일 하노버에서 국제 고를레벤 심포지엄(das internationale Gorleben-Symposium)이 열렸다. 이 학술대회는 시기상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헤리스버그시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직후였다. 우리에겐 일명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잘 알려진 사건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미국 원자력 산업의 가장 큰 사고로 기록되어 있다. 사고를 계기로 바다 건너 미쿡 행님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반핵'을 외치자 독일에서도 이 사안에 관련하여 '워메~ 이게 뭔 난리여?' 라며 관심을 두게 된다. 그리고 (적어도 독일에서는) 이 심포지엄을 계기로 원자력 마피아와 원전 반대 시위대 간의 대결은 새로운 양상으로 접어들게 된다. 

 

그 내용을 잠깐 살펴보자. 

 

당시 이 학술대회에 가장 중요한 인물은 칼 프리드리히 본 바이츠잭커(Carl Friedrich von Weizsäcker)라는 인물이었다. 핵물리학자이자 그 분야에서 나름 존경을 받던 이 사람이 일선에 섰다. 원전 반대 회의를 주최하고 제일 앞에서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칼 프리드리히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며 당시 원전 기술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져 물었고, 무엇보다 테러에 대한 위험성을 강조하고 경고했다. 그때까지 원전에 대한 반대는 그닥 큰 (과학적) 이유를 갖지 못한, 단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시위 좋아하는 놈들만 우글우글대는 것처럼 보였으나, 칼 프리드리히는 원자력 발전소가 가지고 있는 폭발과 사고의 위험성을 큰 소리로 주장했고 스리마일 섬의 사고를 지켜본 이들의 마음속에 이러한 공포가 작용하기 시작했다.

 

핵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동시에 철학자로 그리고 평화 운동가로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래서 문꽈와 이꽈 둘다 공부해야 한다능...… 읭?)

 

무튼 이런 말빨 좋고 실력 좋은 선생님이 앞에 나서서 상대편 토론자로 나온 원전 찬성론자들을 깨알같이 밀어 붙이자 어느새 이를 보던 사람들의 분위기도 스물스물 바뀌기 시작한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원전 옹호론자 (aka 원자력 마피아)들은 슬슬 이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는 학계의 여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에 감명 받은 니더작센주의 시장은 고를레벤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획을 '정치적으로 무작정 밀어부칠 순 없다!'며 포기를 선언하고,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는 '독일 원자력 산업의 뼈아픈 패배'라는 이 한마디 남겨놓고 산속으로 머리 깎고 완전하게 떠나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조급해진 원자력 업계는 경제론을 들고 나온다. 

 

여러분 원론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지금 반대론자들에 가로막혀 역사상 가장 큰 투자실패를 경험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는 산업 전반을 위축시키고 서민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 (이하 중략)

잠깐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 듯한 느낌적 느낌이….

 

 

 

 

 

[일기]잉여일기 #17 김장해 다들!

 

기사 - [일기]잉여일기 #17 김장해 다들!

2014. 10. 20. 월요일 햄촤 지난 기사 [잉여일기 #1 - 10번 타자] [잉여일기 #2 - 아이돌 이야기] [잉여일기 #3 - 그녀들과 나와의 함수관계] [잉여일기 #4 - 덕후맨] [잉여일기 #5 - 제목을 디벼보자]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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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0.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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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가 돌아왔다. 그가 무려 5년 만에 내놓는 9집 앨범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따지면 데뷔 후 어언 2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21년 동안 총 아홉 장의 정규앨범이라, 생각해보면 서태지의 이름값에 비해 그간 내놓은 앨범이 비교적 많아 보이진 않는다.

 

데뷔 이후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며 항상 화제와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서태지. 그렇기에 팬이 많은 만큼 안티도 참 많다. 요즘엔 특히나 이혼과 결혼 등 구설수 덕분에 그를 향한 대중의 시선이 여느 때보다 따가운 느낌이다. 근데 다른 건 몰라도 매번 그가 음반을 내놓을 때마다 돈 벌려고 돌아왔냐는 악플이 달릴 때에는 조금 당황스럽다. 가수가 노래로 돈을 벌지 그럼 뭘 어떻게 벌라는 거냐...? 아이돌 그룹은 공백기가 1년만 돼도 팬들이 얼굴 좀 보자고 아우성인데, 4~5년에 한 번씩 월드컵 하듯 앨범을 내놓는 사람한테 그런 비난은 악플이라기엔 좀 많이 우스운 소리 아닌가. 뭐 어쨌거나.

 

아이유 버전과 서태지 버전을 각각 공개한 노래 <소격동>에 이어, 서태지는 지난 16일 자정 9집 앨범의 타이틀곡인 <크리스말로윈>을 뮤직비디오와 함께 공개했다. 자 그럼 유행에 민감한 우리 딴지 독자들께서도 노래를 한 번 함께 들어보자. 싫다구...? 그럼 말고.

 

 

전문가도 아닌 본인이 음악에 대해 왈가왈부 할 게제는 아니지만, 처음에 노래를 딱 들으면 솔직히 이게 뭐지 싶다. 사운드는 난해하고, 가사는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예전부터 많은 이들이 지적해온 서태지 음악의 논쟁점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서태지가 의도적으로 보컬조차도 마치 하나의 악기처럼 다른 반주에 섞이게끔 곡을 만든다는 의견도 있다. 애초에 서태지가 보컬리스트로서 뛰어난 가수는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고, 서태지 본인도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는 스타일을 개발하지 않았겠느냐는 얘기인데, 어느 정도 설득력은 있다고 본다.

 

뭐 일개 잉여가 의견을 내놓는다고 주관 강한 딴지러들이 쉽게 설득 당할 것 같지도 않으니 판단은 각자 알아서들 하시라. 본인은 그래도 대여섯 번 정도 노래를 듣고 난 뒤부터는 가사도 들리고 멜로디도 익숙해져서 꽤 흥겹게 듣고 있다.

 

<소격동>의 가사를 놓고 군사정부 시대를 비판하는 은유적 가사라는 해석이 나오는 등 다양한 의견이 많았던 것처럼, 이번 <크리스말로윈>의 가사 역시 많은 사람들이 숨은 의미를 찾으며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아직도 서태지라면 뭔가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분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본인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창 가요계를 휩쓸던 시대의 문화를 향유하며 자란 세대이기도 하고, 그의 음악을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현재 그의 행보를 이해하는 데에 대중들로 하여금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본 잉여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사운드나 음악적인 부분에 대한 품평이야 수많은 전문가들과 그 외 자칭 전문가들이 입 털어주시리라 믿고 있으니 그분들에게 맡기도록 하고, 잉여인 본인은 그냥 평소대로 잉여스럽게 가사나 디벼보도록 하겠다. 일단 가사 전문부터 한 번 읽어봅시다.

 

긴장해 다들

그리곤 better not cry
널 위한 기적이 어여 오길 이 마을에

넌 이제 모두 조심해보는 게 좋아
(Just like a butterfly to check and verify)
왜냐하면 산타가 곧 오거든
내가 값진 걸 베풀지 너희에게
(오늘 딱 하루의 꿈 Like a TV Show)
아님 말지 뭐...싹 다 뺏겨

애꿎은 마녀를 포획한 새빨간 크리스마스 와인
Too Legit but in a Tricky way
울지 마 아이야 애초부터 네 몫은 없었어 아직 산타를 믿니?
! Trick or Treat!

나 역시 몸만 커진 채 산타가 되었어
이것 봐 이젠 내 뱃살도 기름지지
이젠 내가 너의 편이 되어 줄게 (꿈 깨)
(오늘 딱 하루의 꿈 Like a TV Show)
잔말들 말고 그냥 처 웃어

밤새 고민한 새롭게 만든 정책 어때
겁도 주고 선물도 줄게
온정을 원한 세상에

요람부터 무덤까지 From the Cradle to Grave
난 안락함의 Slave But 달콤한 케이크
난 불순한 스펙이래 리스트에서 제외
He's Checking it double
You Better not cry

 

이게 가사 되시겠다. 아따, 대체 뭔 가사가 이렇게 중구난방인가 싶다. 괜히 쓸데없이 들어간 듯한 영어 가사도 많다. 캐롤도 아닌데 산타도 나오고... 이게 뭔 소리래?

 

 

 

 

 

 

[역사]잊혀진 승리의 역사, 아이티 혁명 (上) - 콜럼버스에서 프랑스 혁명까지

 

기사 - [역사]잊혀진 승리의 역사, 아이티 혁명 (上) - 콜럼버스에서 프랑스 혁명까지

2014. 10. 20. 월요일 요제프K 최근 새누리당이 법정 근로시간을 52시간에서 60시간으로 늘리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과연 우리의 여당의원님들께서는 서민들이 퇴근 후 한가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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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0. 월요일

요제프K

 

 

 

최근 새누리당이 법정 근로시간을 52시간에서 60시간으로 늘리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과연 우리의 여당의원님들께서는 서민들이 퇴근 후 한가롭게 딴지기사를 읽거나 트위터를 하며 시간 떼우는 것을 영 못마땅해 하는 모양이다. 

 

 

왠지 모르게 "바쁜 벌꿀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라는 각하의 주옥같은 명언이 떠오르고, 이제 세월호 참사는 그만 잊고 바삐 일이나 하라는 뜻으로 해석 되는 것은 기분 탓 일거다.

 

이러한 작금의 노동 환경의 후퇴를 바라보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바로 인류 역사상 최악의 노동 강도로 악명 높았던 캐리비안해 섬 (이하 서인도 제도)들의 설탕 플렌테이션이었다. 이번엔 거기서 흑인 노예들이 당한 착취와 또 그들의 혁명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다. 바로 아이티(Haiti 영어론 해이티라 읽힌다.) 혁명이다.

 

우리에게 아이티는 낯선 나라다. 아마 몇 년전 지진이 강타하여 국토 전체가 초토화 되었다는 정도가 알려진 이야기의 전부일 것이다. 비록 지금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 이지만 사실 이들도 영광스러운 역사가 있다.

 

 

 

콜럼버스와 설탕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 그런데 어린 시절 우리가 그림이 잔뜩 들어가 있는 위인전을 보면서 배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실제 일어난 일은 조금 다른 점이 있다. 

 

그때도 지구는 둥글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러 떠날 때 모두가 말린 이유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그 항로로 인도에 도달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콜럼버스가 여정을 시작할 당시의 모든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신대륙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유럽에서 인도까지 가려면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항해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당시의 항해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었다.

 

그러면 콜럼버스는 어떻게 주위의 만류를 무시하고 여정에 나서게 되었을까?

 

그가 멍청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유럽보다 과학기술의 수준이 높았던 아랍의 학자들이 계산한 지구 크기를 콜럼버스가 퍼오는 과정에서 단위를 혼동하였고, 원래 계산된 값보다 훨씬 지구가 작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그가 도착한 서인도 제도 정도의 거리에 인도가 있다고 믿었다.

 

 

 

아무것도 없잖아

 

어찌 되었든 저찌 되었든 에스파냐의 이사벨라 여왕의 지원을 받아 서쪽으로 인도를 찾아 떠난 콜럼버스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 득템이었다. 그런데 웬 걸, 어렵사리 도착한 서쪽 '인도'에 도달하여

 

"두 유 노 후추?"

 

라 물었지만 안타깝게도 (말도 안 통했지만) 그곳에 후추는 없었다. 당시 어렵사리 얻은 황금이 약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향신료가 없다는 점에 콜럼버스는 크게 실망하였다. (인도에 후추가 없다니!)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어진 2차 여정 때 그는 마법의 작물을 가져가게 된다. 

 

 

바로 설탕의 원료가 되는 '사탕수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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