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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마빡 이야기/2014

딴지일보 마빡 2014. 10. 21

by 꾸물 2022.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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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화]안티 가스통 할배의 월남참전기 <3>

 

기사 - [비화]안티 가스통 할배의 월남참전기 <3>

2014. 10. 21. 화요일 sydney 편집부 주 어느 날, 회사 대표메일로 날아든 한 통의 메일, 오랫동안 망설이고 고민하다 메일을 보낸다는, 딴지일보 창간부터 독자이며 연식 좀 나간다는 사람이라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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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1. 화요일

sydney

 

 

 



편집부 주

어느 날, 회사 대표메일로 날아든 한 통의 메일,
오랫동안 망설이고 고민하다 메일을 보낸다는,
딴지일보 창간부터 독자이며 연식 좀 나간다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한 편의 글과 함께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이런 류의 글을 발표할 수 있는 곳은 딴지 밖에 없을 것 같아서 보냅니다.
젊은 세대들이 알아야 할 월남전의 진실, 이제까지 아무 곳에서도 알져지지 않았던
월남전의 실상들을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흥미위주로 썼습니다."

보내 온 글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긴 어렵지만, 꿀잼 허니잼이니
함 읽어보시고 의견들 주시면 좋고.


 

 

 

 

기다림의 전쟁

 

보름간의 현지 훈련을 마치고 드디어 중대에 배치되었다

 

미군이 연대나 대대 급으로 주둔하는 것에 비해서, 한국군은 중대단위로 작전지역을 나누어 공군력이 없는 베트콩이 접근할 수 없는 고지대에 3, 4 중 철조망을 치고 진지를 지어 주둔했다. 그 때까지 '뭉쳐야 산다는 고전적인 전술을 고집하고 있었던 미군은 한국군이 이렇게 '흩어져야 산다'는 전술을 펴자 처음에는 위험한 전술지역에 소규모의 부대가 고립해서 주둔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 없다며 매우 회의적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두더지가 굴을 파고 들어가 앉아 있는 것처럼 스스로 고립되어 벽을 쌓고 사는 것 같지만 명령이 내려지면 가까운 거리의 기지에서 나와서 작전과 매복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비교적 사상자가 적은 것으로 나타나자 나중에는 미군도 따라 해보다가 실패했다고 한다.

 

나로서는 그 이유가 다름이 아니고 편의시설과 오락시설까지 갖춰야 하는 미군들이 최소 생존 조건만 갖춘 한국군 같은 생활을 장기간 동안 할 수 없었던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당시 미국과 한국의 생활 수준 차이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두 나라의 생활 수준은 마치 오늘날 이것저것 다 갖추고 사는 남한과 밥만 먹으면 되는 북한의 생활 수준 만큼 차이가 났기 때문에 한국군에게는 가능한 열악한 기지 생활이 미군에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시 내가 가본 미군 중대 단위 막사는 개인용 침실에 냉장고는 물론이고 당구대까지 갖추고 있었다.

 

미군의 경우 월남전에서 3,000여 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이에 비해 한국군의 실종자 수는 놀랍게도 달랑 6명이다. 이 숫자도 월북으로 간주된 2명 중 가족들의 기나긴 싸움 끝에 나중에 납북으로 판명된 안학수 하사까지 포함된 것이다. 안 하사도 붕타우에서 사이공으로 출장을 갔다가 납치가 되었다고 하니 부대 밖을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로운 보직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전방도 없고 후방도 없는 게릴라전이 펼쳐지는 곳에서 감히 외출이나 개인행동은 생각할 수도 없고 그 결과는 죽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가끔 월남전을 다룬 소설에서 사병들이 외출도 자유롭게 즐기고 월남아가씨들과 로맨스를 벌이기도 하는데 그럴 수 있었던 사람들은 소수의 특수한 보직을 가진 사람들일 뿐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당시 참전 지휘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군과 달리 우리는 소규모의 방어적 전투를 주로 치뤘기 때문에 미군처럼 대규모 포로가 발생할 소지는 없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면서 '미군 실종자 수와 우리 실종자 수의 지나친 차이를 거론하는 것은 월남전의 특성을 모르고 하는 소리인 것 같다' 고 설명했지만 나는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미군에 비해서 한국군은 완벽하게 통제된 생활을 하는 것도 중요한 원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군의 철수로 전황이 급격히 변해 전혀 예상치 못하게 베트콩이 아닌 월남 정규군이 남침하여 극소수 피해를 입은 일은 있었지만 대부분의 한국군 중대 단위 전술기지는 베트콩이 접근 할 수 없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박격포 공격을 당하는 경우는 하늘에서 번개 맞을 확률일 정도로 안전했었다.

 

1970년 Phouc Binh에 있던 미군 막사 내부, TV와 선풍기가 보인다

 

1970년 미군의 Tan Nhut Airbase. 크리스마스를 맞아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대부분의 병사들에게 월남 생활은 거의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작전지에 투입되려면 헬리콥터를 기다려야 했고, 매복을 하면 쥐 죽은 듯이 숨어서 베트콩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중대 기지와 가까운 거리는 도보로 수색 정찰을 할 수 있지만 조금 먼 거리로 이동하려면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헬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서 참전군인들 가운데는 1년간 월남에서 복무했지만 월남 마을이나 월남 사람을 본 일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에서 수송선을 타고 월남에 도착하여 하선 하자마자 트럭과 헬기를 타고 중대로 가서 기지 생활을 했던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0 만 파월 장병 중 절대 다수인 소총수들은 월남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끔 미군의 월남전 참전 영화를 볼 때가 있는데 한국군이 그 영화에 나오는 미군 병사들처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면 아마 월남에 말뚝 박고 싶었을 사람도 많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사실을 말하자면 정찰, 수색 외에 대부분의 한국군의 생활은 한국에서와 똑같이 부대 밖으로 나가볼 수조차 없었다.

 

수색 정찰을 나가 베트콩을 발견하면 앞에 가는 첨병은 그대로 보내버리고 그 뒤에 오는 본대를 노렸다. 하지만 베트콩은 전술적인 승리보다 심리전, 선전전 차원에서 전투를 하기 때문에 우리의 첨병을 노렸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공격을 당하는 이는 맨 앞에 가는 첨병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첨병은 가장 경험이 많은 병사로 세우되 한 사람에게 3 개월 이상 시키지 않았다. 때문에 첨병생활을 끝내면 월남생활의 3분의 2는 무사히 넘겼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1971년 호지명 루트 케산(Khe Sanh) 작전 중 수색 정찰에 나섰던 해병대원의 사진

 

 

 

 

 

[의학]Penis Captivus (하다 안 빠지는 현상)

 

기사 - [의학]Penis Captivus (하다 안 빠지는 현상)

2014. 10. 21. 화요일 raksumi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민망한 글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문제의 site 차라리 안 보면 더 좋았을걸... 이런 기사를 본 이상 우리 딴지스가 사건의 사실 여부에 대해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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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1. 화요일

raksumi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민망한 글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문제의 site 

 

차라리 안 보면 더 좋았을걸... 이런 기사를 본 이상 우리 딴지스가 사건의 사실 여부에 대해 궁금함에 몸 부릴 칠 것이라는 사실은 명약관화 한 일. 이런 일은 '내가 아니면 누가 밝혀 줄까'하는 책임감이 엄습하여 하루 동안 잠이 안 오길래, 게으름을 분연히 떨쳐내고 이 글의 진위에 대해 똥꼬 깊수키 함 파헤치기로 했습니다.

 

일단 구글링을 해서 실제로 사건이 일어났는지, 해석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사이트가 바로...

 

요 사이트

 

내용 자체는 우리나라와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대로 해석해서 기사를 내보낸 것 같았습니다. International Business Times 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신문인 지도 검색해봤습니다. Alexa라는 인터넷 회사에 따르면 business newspaper 중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이 방문하는 사이트라고 하니 듣보잡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은 댓글이나 트위터로 멘션 좀)

 

아무튼 각설하고 우리 딴지스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사항, 바로 'penis captivus'가 과연 사실일까 하는 점일 겁니다.

 

penis의 뜻은 다 아실테고 captivus 란 영어로 capture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라틴어로 포로(prisoner of war)정도의 의미니 대충 '거시기 포로' 비스무리하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성관계 중 남자의 거시기가 갑작스러운 질의 수축 때문에 빠지지 않는 그런 상황입니다. 아마 소설이나 만화 등에서 이런 내용을 한 번쯤은 다 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독투불패]나의 호화 요트 체험기

 

기사 - [독투불패]나의 호화 요트 체험기

2014. 10. 21. 화요일 정체불명 잘모르는숲 편집부 주 이 글은 정체불명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나야 조또모르는숲. 저번에 경찰서 끌려간 놈(관련기사 참조). 그래 그 모지란 놈 맞아. 근데 어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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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1. 화요일

정체불명 잘모르는숲

 

 

 



편집부 주

이 글은 체불명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나야 조또모르는숲. 저번에 경찰서 끌려간 놈(관련기사 참조). 그래 그 모지란 놈 맞아. 근데 어울리지 않게 나... 호화요트 타본 적 있어. 사람들은 요트를 탄다고 하면 '와 돈 많네', '재벌이네' 하지만 만만에 콩떡이야. 요트는 돈이 많아야 탈 수 있다고 하는 건 절반의 진실이야. 지금부터 내가 그 나머지 절반에 숨겨진 호화요트의 참혹한 진실을 이야기 해줄게.

 

오래전에 먹고 살려고 부산으로 내려왔어, 내려와서 보니 저 푸른 바닷가에 칙칙한 어선이나 화물선 말고, 머 좀 뽀대 나는 하얀 돛단배들이 떠 다니데. 그걸 보고 있자니 그 왜 비키니 쫙쫙 빼입은 이쁜 언니들과 선상에서 와인 쳐묵하는 무릉도원이랄까. 그런 훌륭한 생각이 내 맑은 뇌 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더라고.

 

앗! 그래. 바로 저거그덩...

 

그래서 나는 당장 요트교실로 달려가서 강습을 받았어. 개고생 좀 했지, 여름 땡볕에 강습이 힘들었거덩. 그래도 비키니 언니들과 와인이 있는 무릉도원을 생각하며 꿋꿋이 견뎌냈어. 강습을 다 받고 보니 알겠더만. 복잡하게 설명하면 한없이 복잡하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이 알고 있으면 돼. 정말 간단해. 토 달지마.

 

요트: 바람을 동력으로 돛을 달고 가는 배

 

보트: 모터를 동력으로 가는 배

 

노통의 호화요트?: 자동차로 치면 중고 티코라고 생각하믄 편할 거야...

실제로 초보들 배울 땐 저런 싸구려? 일인용이나 이인용(딩기라고 하데) 요트로 배워.

 

간단하지? 그리고 요트에도 모터는 달려 있는데 그건 주 동력원이 아니야, 바다에 바람이 노상 부는 것은 아니라서 비상시에 사용하려고 달려 있는 거야. 그래서 요트는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바다에 잘 안 나가. 달리질 못하니까. 모양은 비슷하게 생겼어도 배 중간에 돛(세일)을 올릴 수 있는 커다란 기둥 같은 게 박혀있지 않으면 그건 보트더라고. 그리고 내가 영화에서 봤던 비키니 언니들과 와인을 먹던 배는 요트가 아니라 대부분 호화 보트였어. 그니까 쉽게 말하자면 나는 첨부터 보트를 요트로 착각했던 거야. 출발부터 심하게 어긋났던 거지.

 

무튼, 이제 생각도 잘 안 나는데 어찌어찌해서 '몸부림 요트클럽'이라는 곳을 가입을 해서 요트를 타기 시작했어. 비키니 언니덜이랑 와인은 있었냐고?  몰라 난중에 이야기 해줄게.

 

그리고 알고 보니 호화보트와 달리, 요트는 돈이 많아도 혼자 타고 다닐 수 없는 구조더라고. 요트가 크면 클수록 여러 사람이 협업하고 무게 중심을 잘 잡아줘야 달릴 수 있는 물건이라 선장이 인심을 읽으면 사람이 안 모이고 사람이 안 모이면 걍 주차장에 쳐 박혀 있는 고급리무진이라고 생각해도 돼. 보트는 아무리 커도 혼자서 몰 수 있지만 요트는 그게 안되거든.

 

아무튼, 그래서 타기 시작한 내 요트 생활이야. 들어봐.

 

요트는 이렇게 가. 낭만? 그렁거 음서... 머구리배 저리 가라야...

 

 

 

 

 

[범우시선]글값, 목숨값, 담배값, 품값

 

기사 - [범우시선]글값, 목숨값, 담배값, 품값

2014. 10. 21. 화요일 범우 1. 글값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도 못한 말들을 글로 풀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의 파편들과 별로 자랑스럽지 않은 경험을 버무렸다. 답답한 숨을 풀어내는 것 같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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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1. 화요일

범우

 

 

 

1. 글값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도 못한 말들을 글로 풀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의 파편들과 별로 자랑스럽지 않은 경험을 버무렸다. 답답한 숨을 풀어내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용케 제법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삶이 대견하기도 했다. 부족한 글들이 몇 번 기사로 편집이 되었지만 스스로도 재주와 능력이 부족함을 안다.

 

어렵게 쓰지 말라고 세종임금이 만들어주신 한글인데 글쓰기가 새삼 어렵다. 글값을 받고 나서부터 조금씩 더 부담을 느꼈다. 이제 글을 보는 눈이 조금 생겨서 다른 글쓴이들의 생각이 조금은 보인다고 느껴진다. 새들이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것처럼 글에서 풍기는 저마다의 독특한 향이 느껴진다. 이제야 사람과 글을 보는 눈이 떠진 것 같다. 하루일당 조금 부족하거나 넘는 글값이 무겁고, 투박한 글이 부끄러웠다. 내 울음을 듣고 이름을 지어서 내 이름을 불러 달라고 우는 새가 된 것만 같았다.

 

  

한참 전에 딴지일보에서 연락처와 계좌 번호를 물어 올 때는 인정받은 느낌이 좋았다. 온두라스 김지수님 이야기와 홍석동님 납치실종사건 취재처럼 집요해야할 때 집요한 언론의 자세를 유지하는 딴지일보에게 인정받은 느낌은 딱히 자랑할 곳은 없지만 뿌듯했다. 그리고 한동안 별일이 없어 잊어버렸다.

 

세월호 이야기 부터인지 300으로 글을 옮기고 부터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얼마간의 돈이 입금 되었다. 수없이 들어왔던 딴지일보의 재정적 어려움이 생각이 났다. 집사람에게 이야기를 했다. 쟤네도 어렵다는데 돈을 보내왔다는 내말에 입금액을 확인한 집사람은 뚱한 표정으로 티비를 보러간다.

 

반응이 좀 그랬지만 돈의 용처가 고민 되었다. 온라인 구매를 해본적도 없고 딴지마켓에서 파는 물건들은 내 생활과 거리가 좀 있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의 집회에서 모금함에 얼마를 넣고, 홍석동씨 납치살해 사건을 취재했던 김창규 기자님 앞으로 장인어른이 보내온 양파즙 한 상자를 보냈다.

 

투박하고 좀 모자라는 글을 편집해주시던 분들에게도 마음은 따로 보내드리고 싶었지만 마땅히 나누어 드셨을 거라 생각한다. 딴지기사 중 글을 팔아 돈을 만들던 이야기와 독투의 글 값에 절실하던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고 글값이 더 무거워졌다. 북극에 사는 물범이 얼음사이 숨구멍에 숨을 토해내듯 거칠게 토해 내던 글들이 조심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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