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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마빡 이야기/2014

딴지일보 마빡 2014. 10. 28

by 꾸물 2022.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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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불멸을 꿈꾸며

 

기사 - [추모]불멸을 꿈꾸며

2014. 10. 28. 화요일 파토 형, 그냥 옛날 이야기 좀 할게. 처음 만난 게 아마 1994년이었지?. 그때 나는 컴퓨터 통신 하이텔의 ‘언더그라운드 뮤직 동호회’라는, 나름 회원 2천명을 거느린 록 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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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8. 화요일

파토

 

 

 

형, 그냥 옛날 이야기 좀 할게.

 

처음 만난 게 아마 1994년이었지?. 그때 나는 컴퓨터 통신 하이텔의 ‘언더그라운드 뮤직 동호회’라는, 나름 회원 2천명을 거느린 록 동호회 회장이었고 형은 넥스트의 1집 앨범 <Home>을 성공시키고 2집을 준비하고 있었던 때였어.

 

기억하겠지만 그 만남은 그리 우호적인 동기로 마련된 건 아니었우. 내가 왜, 넥스트 1집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글을 우리 동호회 게시판에 썼었잖아. 그런데 당시 하이텔 활동을 꽤 하던 형이 내 글을 읽고 나를 녹음 스튜디오로 초대하더라고. 뭐 만나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좀 긴장도 됐지만 못 갈 이유야 없었고 나 역시 이래저래 궁금하기도 했고.

 

당시 형이 작업하던 스튜디오는 대방동의 한 건물 지하였다우. 형은 특유의 털털한 분위기로 나를 맞았고, 의외로 내가 쓴 비판적인 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더군. 그리고는 마치 오래 된 친구인양 2집 녹음이 진행되고 있는 스튜디오에서 모든 작업 광경을 보여줬지. 잠시 견학시킨 게 아니라 그냥 종일 죽치고 있게 하고서 ㅎㅎ

 

그래서 그날 나중에 내 노래방 레파토리 중 하나가 된 <날아라 병아리>의 코러스와 기타가 녹음되는 광경을 지켜봤고, 또 앞으로 녹음 작업에 들어갈 데모테잎 전체를 리스닝 룸에서 함께 앉아서 감상하며 형의 자세한 설명까지 듣게 됐었지? 2집에 수록될 곡 한곡 한곡에 가지고 있는 형의 열정과 자부심은 참 인상적이었우. 특히 <껍질의 파괴>와 <The Ocean>에 대해 설명하던 모습이 기억에 선하네 그려. 

 

이 앨범을 녹음하던 때 말야.

 

그 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 자기에게 비판적인 사람에게 욕을 하거나 싸움을 걸거나 구구절절 해명을 하는 대신 음악을 들려주고 작업 광경을 보여주는 게 신해철이라는 사람의 방식이구나. 사실 난 첨엔 형이 나랑 현피 뜰려고 오라는 줄 알았거든ㅋㅋ 그래서 그 언저리에서 호형호제 하게 됐지. 성격상 지금까지도 그런 거 잘 안 하는데, 이래저래 이 양반은 형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이구나 싶었어.

 

하지만 정작 내가 놀란 것은 그 다음이었지. 녹음 끝나고 밥 먹고 꽤 시간이 늦었서 대충 집에 가야지 하던 중에, 형이 나를 집으로 초대한 건 정말 뜻밖이거든. 그래서  졸지에 형 벤츠를 같이 타고 밴드 멤버들과 같이 살던 대림동 아파트로 가서  맥주와 양주를 마시며 새벽까지 주다스 프리스트의 비디오를 보지 않았겠어. 그리고 형의 넓지 않은 침대에 함께 누워 수다를 떨다가 잠들었으니 말이우. 남자 중에 형이랑 그런 경험 한 사람도 그리 흔하진 않을 것 같으이.

 

이제서야 이야기지만 내가 그 침실에서 형한테 살짝 감동한 장면이 하나 있어. 형 왜 그 시절에 책꽂이에 만 원짜리 다발을 몇백 장씩 쌓아두고 있었잖아. 당시만 해도 신용카드가 지금처럼 일반적일 때가 아니니 본인과 밴드의 비용으로 현금이 많이 필요했겠지. 하지만 누군지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그 방에 함께 누워 자는데도 거기에 전혀 신경을 안 쓰더라. 막말로 내가 맘만 먹는다면 형 화장실 갔을 때 몇십 장 집어갈 수도 있는 거였잖아?

 

그래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 

 

...음악이고 뭐고 다 떠나서 멋진 남자였어, 형은. 

 

그때 형이 대략 이런 모습이었을거야.

정말 젊었다...

 

그런 다음에도 몇몇 록 페스티벌에 같이 참여했고 연세대에서 함께 특강을 한 적도 있고 이래저래 만나고 또 마주쳤지. 의견이 대립한 적도 있었고. 2천 년대 초에 딴지일보 지면으로 촉발된 MP3 논쟁 기억나우? 내가 먼저 형 주장을 기사로 씹고 형이 라디오에서 우리 기사를 씹었던가 그랬을 거야ㅎㅎ 사실 형도 주관이 원체 강한 사람이고 나도 그래서 쉽게 양보하고 융화되고 머 그런 타입들은 아니지.

 

하지만 그건 일이고, 우리는 여하튼 형 아우 사이 아니었우? 그래서 그 MP3 논쟁 이후에 사적으로 연락해서 소주나 한잔하자 하려고 벼르다가 외국 나가게 되고 어쩌고 하면서 기회를 놓쳤어. 그리고는 또 세월이 한참 흘러 버렸고.

 

...그리고는 결국 이렇게 됐네.

 

 

 

 

 

[추모]영원한 중2병 환자가 우리 곁을 떠나다

 

기사 - [추모]영원한 중2병 환자가 우리 곁을 떠나다

2014. 10. 28 물뚝심송 사실 우리 모두는 중2병의 소질이 있다. 남들보다 좀 더 멋져 보이고 싶은 마음, 나는 뭔가 다르다는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들이 나를 좀 더 존중하고 사랑해 줬으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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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8

물뚝심송

 

 

 

사실 우리 모두는 중2병의 소질이 있다.

 

남들보다 좀 더 멋져 보이고 싶은 마음, 나는 뭔가 다르다는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들이 나를 좀 더 존중하고 사랑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그걸 허세에 가득 찬 말과 행동으로 표출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비록 그게 현실과는 상관없는 허세이며, 실제로 우리 모두는 남들과 거의 한치도 어긋남이 없는 똑 같은 군상들이며 남들보다 뭔가 더 훌륭해 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다 안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게 얼마나 오글거리는 일인지를 깨닫는 순간, 남들의 눈을 의식하는 마음으로 그런 허세를 포기하고 만다. 하지만 마음 깊은 구석 어딘가에는 그런 허세가 남아있고, 그 중2병의 소양은 평생, 늙어 죽을 때까지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탑골 공원에서 소일하는 어르신들의 귀여운 허세를 보시라. 나름대로 곱게 늙으신 할머니 한 분이 등장하는 순간 삽시간에 그 주변은 중2병 중증 할아버지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벌어지기도 한다.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 인간의 본성을 숨기고 감추려고 애쓰는 대신,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던 남자가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자 '고스' (고스는 한 때 SBS에서 방송되던 고스트 스테이션이기도 하고, 나중에 MBC로 옮긴 뒤에는 고스트 네이션이기도 했다.)를 주름잡는 마왕, 신해철이었다.

 

 

나는 그와 개인적인 친분은 전혀 없다. 그럴뿐더러 사실 그의 음악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의 정치관이 얼마나 훌륭한 것이었는지도 잘 모른다. 특히 그의 음악에 대해서는 평가할 소양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평가하는 것 자체가 자신이 없다. 다만 그의 음악은 나의 청년기 이후의 삶에서 나와 떨어지지 않고 있었으며, 그의 족적은 기묘하게도 나와 일치하고 있다는 점만 말해 두기로 하자.

 

1968 5월생으로 알려진 그는 내가 태어난 지 겨우 3개월만에 이 세상에 태어났다. 물론 세상은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 해도 태어났을 때부터 축하하지는 않기 마련이므로 그와 내가 태어난 사실을 세상은 알아주지도 않았었다.

 

그가 대학가요제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순간, 모름지기 대학가요제라는 것은 통기타 들고 나와 얌전하게 또 품위 있게 하는 노래의 경연장이라는 세간의 인식을 뒤엎으며 강렬한 사운드로 무대를 뒤집어 엎어 버리던 시절, 그와 나는 80년대 중반을 가로 지르는 거의 동년배의 대학생들이었다.

 

 

 

 

 

 

[추모]잉여일기 #18. 먼 훗날 언젠가 그대에게

 

기사 - [추모]잉여일기 #18. 먼 훗날 언젠가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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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8. 화요일

햄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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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일기 #17 - 김장해 다들!]

 

 

 

선물가게의 포장지처럼 예쁘게 꾸민 미소만으로 모두 반할 거라 생각해도 그건 단지 착각일 뿐이야

신해철 1, <안녕>

 

내가 처음 들은 신해철의 노래였다. 1990, 나는 국민학생이었다. 7:3 가르마에 안경을 쓴 날카로운 눈을 숨긴 미청년. 그는 내게 잘생긴 대학생 형의 이미지였다.

 

지금은 촌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그땐 존나 멋있었어...

 

<안녕>은 당시 꽤나 인기였던 곡이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몇 주간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특히 간주 부분에 들어가는 영어 랩이 무척이나 신기했고 멋있었다. 그건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를 부르기도 전의 일이었다.

 

그때 나는 부모님을 졸라서 신해철의 1집을 샀다. 생애 첫 카세트테이프였다. 고등학생이던 사촌형에게는 <안녕>의 영어 랩 가사를 적어달라고 졸랐다. 형은 친절하게도 영어가사와 함께 우리말 독음까지 적어주었고, 나는 그걸 붙들고 달달 외우며 하루 종일 읊고 다니다시피 했다.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신화의 전진이 오디션에서 불렀다는 바로 그 랩이다.

 

 

수록된 모든 노래를 흥얼댈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노래를 좋아했지만, 이듬해 발매된 그의 2집부터는 왠지 그와 거리감을 느꼈다. 국민학생의 신분으로 이해하기에 그의 음악세계는 너무 빠르고 멀리 움직이고 있었던 것일까.

 

<재즈 카페> <50년 후의 내 모습>같은 노래들은 지금 생각해봐도 국민학생이 공감하며 흥얼거리기엔 꽤나 큰 거리감이 있는 가사였다.

 

빨간 립스틱 하얀 담배연기 테이블 위엔 보석 색깔 칵테일
촛불 사이로 울리는 내 피아노 밤이 깊어도 많은 사람들
토론하는 남자 술에 취한 여자
모두가 깊이 숨겨둔 마음을 못 본 체하며 목소리만 높여서 얘기 하네

신해철 2, <재즈 카페>

 

성인이 된 지금에야 카페도 술집도 다녀보았기에 저 가사에 담긴 분위기와 의미를 파악할 수 있지만, 애초에 카페가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재즈는 더욱 모르는 꼬맹이의 머리로는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TV의 가요프로그램에 나와 1위를 하거나, 통기타를 메고 고개를 까딱이며 CF를 찍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어서 낯설고 멀어진 느낌이 들었던 게 가장 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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