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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마빡 이야기/2014

딴지일보 마빡 2014. 11. 04

by 꾸물 2022.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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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원의 적정관람료]인터스텔라

 

기사 - [한동원의 적정관람료]인터스텔라

2014. 11. 04. 화요일 한동원 개봉일 11월 6일 <2001 :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탄생한 지 어언 46년. 지금까지 등장했던 그 어떤 우주영화도 이 거대한 영화의 중력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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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04. 화요일

한동원

 

 

 

개봉일 11월 6일

 

 

<2001 :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탄생한 지 어언 46. 지금까지 등장했던 그 어떤 우주영화도 이 거대한 영화의 중력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인터스텔라>. 우주영화는 <2001...>의 중력장을 벗어나 마침내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한다.

 

그렇게 영화 우주는 다시 한 번 팽창한다.

 

 


<인터스텔라> 적정 관람료
(8000원 기준)


인상
+11900원



뭐, 구구절절 읊고 들을 필요 없이 관람해 마땅할 영화이나, 굳이 짚어본다면,

[우주]
우주탐험 영화사상 가장 먼 곳까지 도달한 영화 : 700원

심지어는 누구도 근처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 곳까지 상상해 낸 영화 : 500원

그러면서도 거의 완전한 수습을 하고 있는 영화 : 400원

모든 것이 허구이고, 모든 것이 현실이다 : 500원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사이언스 ‘픽션’ 아닌 사이언스 ‘팩트’ 정신, 즉, 굳이 대단히 과학 알지 않더라도, 모든 것이 실제 과학에 입각해 구축된 것이라는 느낌을 확실하게 받을 수 있다 : 300원

그렇게 구현된 우주 또는 외계가 주는 경이 : 400원

그리고 긴박감 : 300원

영화 관람료를 내고 그 정도 우주여행을 하는 것만으로도, 꽤 수지 맞는 투자 : 500원

탐사선, 착륙선, 등 각종 우주탐험 장비들의 참신함 및 설득력 : 250원

그 중에서도 특히, 이제까지 전혀 없던 새로운 디자인의 냉장고형 로봇 ‘타스’와 ‘케이스’의 매력 : 150원


[지구]
지구가 맞닥뜨릴 머지않은 미래에 대한 수긍 가능한 묘사 : 150원 

그 종말적 재앙의 디테일 : 180원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현실적 모습 : 150원

그것이 일깨우는 현재에 대한 유의미한 경고 : 100원

전혀 우주할 것 같지 않은 환경과 대조되어, 매력과 사실성을 더하는 우주 및 과학 : 200원


[인간]
그리고 그런 환경 때문에 매력과 사실성을 더하는 인간들 : 300원

그 인간들의 감정 및 그 교감 : 300원

체념적 절망과 절박한 희망 사이의 균형 : 250원

그것을 극복하고 실현해내는 구체적 방법의 설득력 : 250원

인간의 지극히 감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요소와, 극단적인 과학과의 극적인 막판 융합 : 400원

그 설득력 및 폭발력 : 500원

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설득해 낸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 500원

그 중, 단연, 매튜 매커너히 : 500원

앤 해서웨이, 마이클 케인, 제시카 채스테인 등 조연들의 연기와 매력 : 400원

개인적으론, 제시카 채스테인의 어린시절 역인 맥켄지 포이가, 사실 당사자보다 매력적이었다만 : 200원

‘타스’와 ‘케이스’ 역을 맡았던 배우들의 연기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맞다.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연기를 했다. 놀랍게도) : 200원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 미래에 대한, 어찌보면 섬뜩한, 그럼에도 아무튼 의미 있는 검토 : 300원

크리스 놀란 영화의 가장 큰 취약점이었던, 감성적 및 정서적인 측면에 대한 완전한 보강 : 400원

하여, 영화 보는 내내 울컥울컥 : 250원

하지만 손쉽고 값싼 신파는 없다 : 200원


[영화]
최대한 CG와 그린스크린을 배제하는 정책으로 빚어낸 사실성과 몰입감 : 400원

그렇다고 해서 CG가 구렸다는 건 전혀 아니고 : 400원

특히 실제 물리학 이론에 따른 알고리즘에 의해 재현된 웜홀과 블랙홀의 비주얼 : 350원

겉멋 거의 없는, 하지만 종종 시적인 대사들 : 120원

미래스러움과 현실스러움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미술 및 의상 : 100원

쓸데없는 군더더기 따위는 한 큐에 워프해버리는, 과감한 이야기 진행 : 150원

이번 역시 성공적인 한스 짐머의 음악 : 200원


인하
-130원



2시간 40분짜리 <2001 ...>보다 9분 더 긴 이 영화에, <2001 ...>에는 있었던 인터미션이 없다는 것만이 유일하게 <2001 ...>에 비해 빠지는 점이라면 빠지는 점 : -80원

하여, 관람 전 수분 및 이뇨성분 포함된 음료섭취를 극도로 자제하실 것 : -50원


적정관람료 : 8000원 + 11900원 130원 = 19770원
※가능하면 IMAX로 관람하시길 권장

 

ⓒ copyright Han Dong-Won, 2014. All rights reserved.

본 저작물의 제목, 형식 등을 포함한 모든 내용은
대한민국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편집부 주
 
딴지일보 개편 이전
<한동원의 적정관람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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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모두 볼 수 있습니다.

 

 

 

한동원

트위터 : @HahnDongWon

 

편집 : 홀짝

 

 

 

 

 

[이슈]MC몽과 멸공의 횃불

 

기사 - [이슈]MC몽과 멸공의 횃불

2014. 11. 04. 화요일 춘심애비 시작하자마자 대뜸 말해보자면 이 사건은 2014년 현대 한국 사회, 특히 연예계와 인터넷/모바일 문화를 드러내는 상징성에 있어서, 후대에 긴 시간동안 연구 소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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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04. 화요일

춘심애비

 

 

 

 

시작하자마자 대뜸 말해보자면 이 사건은 2014년 현대 한국 사회, 특히 연예계와 인터넷/모바일 문화를 드러내는 상징성에 있어서, 후대에 긴 시간동안 연구 소재가 될 사건이 되리라 확신해본다.

 

사건 자체를 모르는 분덜을 위해 초압축 한문장으로 표현하자면, 'MC몽이 5년만에 컴백해서 음원차트를 싹쓸이 하는 걸 보고 분개한 다수 네티즌들이 합심하여, 군가인 ‘멸공의 횃불'을 음원차트에 올리면서 MC몽의 컴백을 보이콧하고 있다'다. 왜 하필 ‘멸공의 횃불'인지, 이러한 형태의 보이콧을 누가 어디에서 처음 제안했는지는, 필자가 졸라게 찾아봤지만 명확하게 결론을 낼 수 있을만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단 졸라 미안하다만, 기사를 빨리 쓰지 않으면 짜장면을 안사줄 것 같은 너클볼러님의 포스에 밀려, 일단 이부분은 아는 분덜의 제보를 부탁드리겄다. 일단은 아주 확실치는 않지만, 필자가 조사한 내용을 전제로 기사를 쓴다.)

 

암튼 이러한 형태의 보이콧은 2009년도 영국에서, 가수 오디션프로그램인 X팩터 참가자들의 크리스마스차트 1위 독주가 2005년부터 계속되자 느닷없이 RATM(Rage Against The Machine)의 ‘Killing in the name’을 크리스마스차트에 올리자는 운동이 일어났던 것을 그 기원으로 한다. 뭐 그 전에 또 비슷한게 있었겠지만, 암튼 수 백년 후의 역사학자들은 분명히 이 사건을 기원으로 생각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놀라운 사건이었다. 이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씨엔블루의 와이낫 표절 의혹을 기반으로하여, 와이낫의 ‘파랑새'를 차트 1위에 올리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운동에는 국내유일 민족정론지답게 딴지가 큰 축을 담당한 바 있다.

 

 

영국의 X팩터 보이콧이 2009년 12월이고, 씨엔블루 보이콧이 2010년 2월. 중간에 몇 가지 유사 사건이 있었으나, 이들은 대부분 명분은 상대적으로 약하고, 잉여력은 상대적으로 컸던 사건들이라 하겠다. 거의 5년 만에 등장한 ‘다른 음원 1위 만들어, 타겟 밀어내리기'형태의 보이콧. 5년 전에 비해 스마트폰 보급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게 이뤄졌고, 결국 그 어느때보다 빠른 속도로 그 보이콧을 성공시켜낸다.

 

이 과정 자체를 네티즌들이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 사이에서의 반응은 매우 복잡하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매우 복잡한 지형구조를 보인다.

 

 

 

 

 

[비화]안티 가스통 할배의 월남참전기 <5>

 

기사 - [비화]안티 가스통 할배의 월남참전기 <5>

2014. 11. 04. 화요일 sydney 편집부 주 어느 날, 회사 대표메일로 날아든 한 통의 메일, 오랫동안 망설이고 고민하다 메일을 보낸다는, 딴지일보 창간부터 독자이며 연식 좀 나간다는 사람이라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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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04. 화요일

sydney 

 

 

 



편집부 주

어느 날, 회사 대표메일로 날아든 한 통의 메일,
오랫동안 망설이고 고민하다 메일을 보낸다는,
딴지일보 창간부터 독자이며 연식 좀 나간다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한 편의 글과 함께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이런 류의 글을 발표할 수 있는 곳은 딴지 밖에 없을 것 같아서 보냅니다.
젊은 세대들이 알아야 할 월남전의 진실, 이제까지 아무 곳에서도 알져지지 않았던
월남전의 실상들을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흥미위주로 썼습니다."

보내 온 글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긴 어렵지만, 꿀잼 허니잼이니
함 읽어보시고 의견들 주시면 좋고.


 

 

 

 

4화까지는 월남전에서의 내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했다. 5화부터는 월남전의 일반적인 비전투상황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월남전 전투는 장교 교육과정 내 전술학 교과서에 수록할만한 가치가 있겠지만 역사적으로는 부끄러운 전쟁, 더욱이 지고 온 전쟁에 대하여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전투에 참가한 개인들의 삶에는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지만.

 

 

 

베트콩도 양민이다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이미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대세를 이루었다. 1971 613일 뉴욕타임스가 '펜타곤 페이퍼'란 기밀서류를 입수해 기사화함으로써 미국내에서 조차 '잘못된 전쟁'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이 서류에는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의 구실이었던 '통킹만 사건'이 북베트남의 도발이 아니라 미국의 조작이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1964 8월 북베트남 어뢰정이 공해상에서 미국 구축함 매독스호를 선제공격해 미군이 베트남전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이는 '데소토'라는 정보수집 함정이었으며, 북베트남 어뢰정이 미군 함정을 공격했다는 증거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히피 머리에 나팔바지를 입은 청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반전' 데모를 벌였다. 불행히도 당시 한국안에서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철저한 언론 통제 탓에 그런 정보를 접할 수 없어 알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월남전 다큐를 만들기 위해서 초대 사령관인 채명신 장군 생전에 오랜 시간 인터뷰를 했었고 2 대 사령관인 이세호 장군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비서실장이었던 H 장군 (당시 대령)과도 오랫 동안 이야기를 했었다. 그들을 통해서 일개 병사가 접할 수없는 고급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월남전이 이길 수없는 전쟁인줄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롬멜 장군이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쟁을 수행했듯이 비극적이지만 지는 전쟁도 수행해야만 하는 것이 군인의 역할인 것이다. 더 치사한 것은 이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철수를 하면서도 지휘관의 공명심 때문에 애꿎게 부하 장병들이 수 없이 죽어나갔던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맹호부대는 철수를 앞 둔 1972 4 월 안캐 패스 작전 때 지휘관들의 공명심 때문에 단 3일 동안 75명이 전사했고, 104명이 부상을 당했다. 전쟁터에서 말단 사병은 자기의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언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오직 주어진 명령에 따르기 때문이다. 훈련에서부터 실전까지 그저 서라면 서고 앉으라면 앉을 뿐이다.

 

지금은 춘천에서 터널이 뚫려 단숨에 통과 할 수 있지만 당시 파월 교육대를 가려면 새카맣게 내려다보이는 낭떠러지가 아찔한 배후령 고개의 꼬불꼬불한 비포장도로를 아슬아슬하게 넘어서 오음리로 들어가야했다. 교육대에서부터 나는 전혀 모르는 길을 가야했다. 월남에 도착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주변에는 둥근 철조망이 5중으로 설치돼 있고, 밖에서 기어 들어올지도 모를 베트콩을 감시하기 위해 밤새도록 전등불이 촘촘히 밝힌 기지로 갔다. 작전을 나가서 잔뜩 긴장한채 1미터 앞도 알 수없는 정글 속을 한 발 한 발 옮겨야 했던 길도 내가 모르는 길이었다.

 

나무 뒤에, 바위틈에, 숲 속에, 나무 위에, 베트콩이 숨어 있다가 따다닥 쏘지나 않을까? 보이지 않는 부비트랩 선이 나무 사이에 연결돼 있지는 않을까? 그 무섭다는 독창이 바늘처럼 솟아있는 함정이 위장돼 있지나 않을까? 몰라서 불안한 것뿐이었다. 어디를 가는지도 알지 못하고 헬리콥터를 타고 작전지에 가서는 지루하게 기다리다가 찰나 같은 순간 동안 총질을 하고서 헬기를 기다리다 다시 올라타서 기지로 돌아왔다. 월남전은 전선도 없고, 누가 적인지 우리 편인지도 알 수 없고, 진군도 없고 승리도 없는 전쟁이었다.

 

 

'한국군의 월남 참전 민간인 학살'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와서 참전 군인들의 심사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나라 안의 군 의문사 사건' 조차도 진실을 밝히기 어려운데 50년 가까운 세월 전에 타국에서 벌어진 전쟁통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진실을 한국군 측에서 인정하고 사실을 밝히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부대와 작전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한국인 작전 지역에 민간인이 들어가 살 수도 없거니와 영농지역이 있으면 주간에 농사일을 하기 위해서 한국군의 검문 검색을 받는다. 물론 그런 지역 민간인들 대부분이 항상 베트콩과 연관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많다. 비록 그렇더라도 한국군과 전혀 관계가 없는 지역이 아니라 한국군에 의하여 통제되고 있는 전술 지역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민간인 학살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지만 한국군 편에서 보면 양민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 한국군은 양민학살을 했다는 오해를 받는 것은 베트콩과과 양민을 구별할 수 없었던 전쟁의 성격 때문이다.

 

대단히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예가 요즘 벌어지고 있다. 대다수의 선량한 월남참전 할배들 가운데 가끔 시도 때도 없이 여기 저기 출몰하는 개스통 할배들이 있다. 일반국민들의 눈으로는 선량한 할배들 가운데 섞여 있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일부 고엽제 피해자 난동꾼들을 구분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월남참전 할배 하면 무조건 개스통 할배라는 오해를 받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40 여 년전 월남의 현실은 어떠했던가?

 

 

 

 

 

[범우시선]국밥

 

기사 - [범우시선]국밥

2014. 11. 04. 화요일 범우 기사 출처 - 한겨레 자신의 시신을 처리할 사람들에게 국밥 값을 남기고 죽음을 택한 분의 기사를 읽었다. 사연을 읽어가면서 그냥 담담했다. 사는 게 힘들어서 죽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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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04. 화요일

범우

 

 

 

기사 출처 - 한겨레

 

자신의 시신을 처리할 사람들에게 국밥 값을 남기고 죽음을 택한 분의 기사를 읽었다. 사연을 읽어가면서 그냥 담담했다. 사는 게 힘들어서 죽는 사람들의 사연이 더 이상 통증 같은 아픔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무뎌지고 냉정해져서 사람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국밥 값을 남기고 죽은 68세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라는 글을 보았다. 기억에 묻혀있던, 타인에게 신세를 지기 싫어 택했던 죽음 이야기와 감정들이 기억 난다. 우울한 주제로 우울한 이야기를 쓰다보면 우울해져서 힘들기도 한다.

 

십 여년 전에 지하방에서 살며 병든 아내를 간병하던 노인분이 아내가 죽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며 남겼던 유서를 기억한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삶을 이어가기 힘들고, 인간이하로 내려가 짐승이 되어간다고 느껴져서 사람으로 죽음을 택하신다고 했던 것 같다. 시간이 기억을 조금씩 왜곡하겠지만 아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병수발을 들어주느라 어쩔 수없이 살았지만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준 의무와 책임을 마치고는 더는 구차 하게 살기 싫어 죽겠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가엾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땐 뭔가 그냥 먹먹했었다. 스스로도 가치를 두는 품성인 책임감과 자존심이 느껴지고, 어쩌면 나의 마지막도 저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남일 같지 않았다. 그리고 사느라 잊었다.

 

이명박씨가 대통령하던 시절 암에 걸린 한 늙은 아버지가 치료비와 남은 가족들 걱정을 하다가 산에 올라갔다. 구덩이를 파고, 구덩이 주변 풀을 깎고,  나뭇잎을 치우고  구덩이 안에 들어가서 몸에 불을 질렀다. 유서는 구덩이 근처 소나무에 묶여져 있었다.

 

장례비마저 부담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던 노인의 유서에는 그냥 타서 재가 된 유해에 흙만 덮어 달라는 말과 자살 장소로 택한 곳에서 혹시 타인에 대한 피해를 끼쳣을까봐 미안해하는 말이 적혀있었다. 불탄 시신을 발견한 발견자에게 놀람, 당혹감을 주는 것 혹은 남의 땅을 무단으로 이용한 것 같은 것들에 대한 사과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들에게 가난함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을 미안해하며 정규직 취업이 되길 소망하는 글을 남겼다.

 

미련할 정도로 우직한 사람이었겠구나 하는 마음과 함께 욕이 튀어 나왔었다. 씨발 정규직 그러니까 동네 농공단지 공장 말고 대기업 정규직 같은 거겠지.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정규직 말이다. 어차피 답도 없고 그냥 곱게 죽어주면서 선처를 바라는 마음이 법원에서 손해 배상을 뚜두려 맞고 곱게 목을 메다는 노동자들 죽음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떠올랐었다. 이제 그만 곱게 죽어 드릴 테니까 남은 가족들은 그냥 살게 해 주십시오 하는 읍소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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