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작이 3월 말이었으니, 벌써 7개월도 넘은 게다. 물론, 아톰의 소식은 그간 심야식당(아톰의 필진블로그300 타이틀)을 통해서 꾸준히 접할 수 있었다. 아마도 많은 딴지스들이 가슴 졸이고, 또 응원하며 읽고 있을 거다. 나 역시 그러했다. 비단 딴지스 뿐일까. 근래 들어, 구글uk를 통한 접속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것을 보면, 글로발적으로 인기 있는 시리즈가 아닐 수 없다 하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매일 이어지는 글이라 마빡에 쉽사리 올리질 못하고 있으니, 방안을 강구하다 그냥 아톰을 만나러 가는 걸로 결정했다.(사실은 놀러 가고 싶었음)
"형 어디에요?"
"여기, 진안이에요."
"갈게요."
"그럼 전주로 와요. 마중 나갈게요."
"주소만 보내주세요. 제가 찾아갈게요."
"대불리 마을, 대불사로 찾아오면 돼요"
날이 차가워지기 전에 집짓기를 마무리하고, 이사를 해야하는데, 마중으로 인해 그의 시간을 허비하게 할 순 없는 일이다.
가는 길을 보니, 머 버스 여러 번 타면 되겠단 결론에 도달했다. 처음엔 침낭을 살 생각이었는데, 필요치 않아 했다. 과일 종류나, 다른 생필품들을 살까 하다가, 그냥 가서 일만 돕고 오잔 생각으로 결론을 냈다. 아, 돼지고기 앞다리 1Kg랑 막걸리 두 개는 구입.
전주터미널에서 진안을 찍고, 주천면 터미널에 내린 게 12시 50분, 여기서 대불사까지는 대략 10Km이니, 걷는다면 약 2시간 반이 걸린다.
일단 허기진 데다, 가서 조금이라도 일을 도우려면 먹어야겠단 생각에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4시 20분, 버스에 몸을 실으며,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두기로 했다. 주천면에서 대불리로 가는 풍경을 보고 있으니, 가을이라는 계절이 실감이 났다. 청도 남산을 붉게 물들였을 감나무와 단풍이, 적천사의 800년 된 은행나무가 떠올랐다.
계절과 자연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은 행복한 경험이다. 벚꽃이 피었는지 말았는지 알 수 없이 지나간 2014년 봄은, 내겐 봄이 아녔다. 밖으로만 나가면 한껏 가득했던 벚꽃의 향연을, 올 봄엔 전혀 느끼지 못했음을 인지했을 때, 문득 내가 서울에 있음을 실감했었다. "도련님, 여기는 사람수 대비 벚꽃나무가 정말 정말 많아요. 벚꽃나무가 귀하지 않아." 몇 년 전, 진해 경화역에 들렀던 형수님 얘기다.
버스, 안녕~
대불사가 보인다. 이제부터 어떻게 찾아가야 하냐고? 걱정할 일이 없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니까. 이런 시골 마을엔 주위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다 관심사라, 아톰의 행적을 모를 리가 없다.
"여기 혹시, 집 짓는 사람 한 명 어딨는지 아세요?"
"그 총각? 저~ 가면 있지. 뭐 구들을 완성했다는 것 같드만. 저~기 저수지 보이지? 저 길로 쭉 가면 있어."
역시나다. 위치 파악은 물론이거니와, 구체적인 작업 과정까지 알고 계셨다.
길을 따라 걷다가, 벙어리(아톰의 예전 차 애칭)를 보내고, 두 곳의 매매상에 들러 구입했다는 그 차를 먼저 발견!저수지를 끼고 앉아 있는 그는, 아톰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뒤로 난 길을 따라 걸으니, 300에서 봤던 풍경이 보였다. 하늘과 산, 저수지와 단풍. 이 어찌 콧노래가 나오질 않을소냐.
이 저수지가 바로,
월든 호수?
드디어, 야만인의 거처 발견!
아톰을 만나다
아톰은 내가 초면일 테지만 작년 필진 모임 때, 나는 그를 스치듯이 본 기억이 있다. 이후 개인적으로 힘이 들 때, 아톰에게 전화를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땐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잘 모르는 사이인데도 무턱대고 전화를 했고, 당시의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냥 그가 편했다. 물론 아톰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줬고, 잘 받아줬다.
이미 3시가 넘은 시각이라 많은 일을 도울 순 없겠지만,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작업모드로 바꿨다. 처음 할 일은, 땔감을 모으는 것. 톱과 낫 비스무리한 도구를 들고, 죽은 나무를 베어냈다.(사실, 죽은 나무와 산 나무를 완벽히 구별하는 법을 처음 알았다.) 아톰은 이내, 하던 일을 마치고, 땔감 모으기에 합류했는데, 머 역시 야만인은, 작업속도가 달랐다. 난 그저 옮기기만 할 뿐. 한 것도 없는데, 하루의 작업은 벌써 끝이다.
나 역시 도전했다. 그런데, 들어갔다 나온 후로도 발이 계속 아려왔다. 호들갑 떨고 싶지 않았지만, 아픈 걸 어떻게 해.(추위를 넘어서면, 깨질 것 같은 느낌이다. 아프다.) 이후, 따뜻한 보이차 한 잔을 마시고, 아톰의 먹을거리 들을 살펴보았다.
횽의 밥은 평소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었었는데. 고추장으로 무친 더덕과 마늘, 제피가 들어간 깻잎, 각종 김치와, 멸치 전부 "@^%^%#$^@!! 뜨아" 그리고 메인이었던 청국장!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이런 날엔 아래와 같은 공식이 성립된다.
좋은 사람 + 캠핑 느낌(톰 횽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 이야기가 있는 음식 + 분위기 + 막걸리
= 과식
어둠은 곧 깔렸다. 식사와 함께 담소를 나누다, 어느새 닥친 짙은 어둠에 놀라, 시계를 보니, 고작 6시 23분 쯤. 자연은 내게 하루를 마무리 하라 말하는데, 사실, 우리의 생체리듬에 따르면 한참 활동할 시간 아닌가.
중1때 친구를 따라, 할머니 댁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9시가 채 되기도 전에, 불을 끄자며 자자고 했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아니, 아직 <거미>할 시간도 안 됐는데.'
톰 횽의 생활은, 철저히 자연의 이치에 따른 리듬이다. 빛이 들면 깨어 움직이고, 빛이 지면, 활동을 접는... 그 기준은 해의 빛이었다. 톰 횽은 야만인 생활 이후, 그녀에게서 얼굴이 좋아지고, 눈빛이 선해졌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아톰 횽의 배려심을 여러 차례(잘 때, 일어났을 때, 전화 통화, 기타 등등) 느꼈는데, 일기를 써야할지 망설이는 순간도 그 중 하나였다. 배려도 고집하면 배려가 아닌 것인데, 다행히 횽과 나는 그런 섬세함의 정도가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내 기준이니까, 횽의 기준에선 내가 좀 부족했을지도 모르겠다. 고수가 하수에게 맞춰주는 법이니)
첨엔 폰을 만지다가, 뭔가 기다리는 느낌을 준다면, 아톰이 조급함을 느낄지도 몰라, 그냥 잤다. 일기를 다 쓴 아톰이 깨웠을 때, 그냥 차에서 계속 자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로 푹 잤었다. 자리를 옮겨 텐트에 누웠을 때가 약 22시 무렵이었다.
"이 곳에 같이 자는 건 제가 처음인가요?"
"그녀 외엔 처음이죠."
조금은 의외였다. 아톰이 쓰고, 보리삼촌이 연출한 영화 <그녀를 위한 식탁>에 출연 중인 그녀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그냥 글 읽으며 내가 만든 이미지 속에서)
「어김없이 신호를 보내는 배꼽시계가 야속할 만큼 할 일이 많겠지만, 한 끼 정도는 건강하고 든든한 밥을 먹었으면 합니다. 흙 한 줌에 깃든 우주와 씨름하느라 소원했을 밥 한 톨에 깃든 우주도 만나시구요^^」
그녀의 이 표현을 삼백에서 읽고는, 사실 그녀도 이 연재를 의식하는 건 아닐까 하여 물어봤는데, 원래 글을 잘 쓴다고 했다. 미지의 인물이기에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녀 얘기는, 다음 얘기를 듣곤 더 물어볼 수 없었다. "첫째 누나도, 연재를 봐요. 언젠가 그녀를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절대 볼 생각 하지 말라고 했어요." 가족이 들어오면, 횽과 그녀만이 온전히 마주하는 게 아닌 것이고, 그런 관계를 원치 않는다고.
남자친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보편적이지 않은 그의 일상에 같이 들어와 지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얘기, 저 얘기(별 얘기 없지만, 오프더레코드)를 주고 받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23시 경의 몸부림을 마지막으로 아톰 횽은 잠이 들었다.
어느새, 23시 30분. 문명 속 리듬은 자연 이치로의 여행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잊고 살았던 양을 찾았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두두두두둑. 두두두두둑. 비가 오는 소리에 슬쩍 슬쩍 깨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낭만인데, 당시엔 자느라 그저 바닥이 젖지 않기만을 바랐다.
자는데, 갑자기 예닐곱 정도 되는 사람이 내 주위에 있었고, 아톰은 없었다. 그 사람들은 사람이지만,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느꼈다. 나는 그들 손에 이끌려, 절을 했다. 내 앞엔 큰 상과, 사람 수와 비슷하게 밥그릇 예닐곱 개가 놓여 있었다. 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사주가 들어섰네. 사주가 들어섰어."
이 때, 텐트를 여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순간 꿈이 끝나버렸다. '계속 이어졌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강하게 지배했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지만 이어지지 않아, 눈을 떴다.
내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3인칭 시점으로 꿨던 이상한 꿈으로 시작한 아톰 횽과의 둘째 날 아침, 눈을 뜬 뒤지만, 8시가 좀 넘은 시각을 확인 후 계속 누워 있었다.
"잘 자네요."
자는 나를 위해, 본인이 일찍 일어났음에도, 계속 같이 누워 있었단 걸 순간 느꼈다. 물어 보니, 횽은 대개 6시 반쯤에 하루를 시작한다고.
텐트에서
텐트 밖으로 오니,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무얼 할 수 있을까?' 꿈도 그렇고, 저수지를 앞에 두고 위치한 산 속에서 맞는 흐린 날씨의 아침. 뭔가 음기 가득하다. 추위가 오기 전에 집 짓는 일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자 복장도 챙겨 왔건만, 날씨가 돕지 않았다. 실은 톰 횽도 일을 많이 시킬 거라고 말만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비 내리는 학선저수지
칡차와 함께 아침 끼니로 야만인죽을 먹고, 첫 날 자세히 보지 못했던, 돌집의 내외부를 자세히 둘러봤다. 그러나 실내 사진은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아 대부분 편집했다. 나중에 집이 완성이 되면, 조명을 갖추고 아톰이 찍은 후, 300에 올릴 것이다.(아톰의 심야식당)
벽난로에 불을 피우면
연기가 솔솔
가을 정취와 어울린다
아톰은 겨울을 나기 위해 돌집을 짓고 있고, 그 이야기 또한 삼백에 고스란히 담는 중이다. 그 글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느낀 부분을 횽에게 꺼냈다.
"가끔은 형 블로그의 댓글들이 관심과 응원을 넘어, 지나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건 제3자의 입장에선 모를 수 있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선 느낄 수 있는 그 정도? 기분이 살짝 좋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관심과 참견, 그것은 사실 종이 한 장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3자인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댓글이라면(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 한 건 있지만), 당사자는 충분히 그렇게 느끼고도 남을 것 같아 건네본 말이었다.
흙과 부직포로 실내의 틈을 메우는 작업을 한 후(톰 횽의 거의 다 함), 어제 사왔던 돼지고기 앞다리를 벽난로에서 구워먹기로 했다. 인증샷 몇 개 간다. 군침 흘리시라고.
먼저 고기를 썰고
소금도 뿌리고~
후추통도 쉐이킷~
일단 올려놓고,
불에 익힌 후,
칼질을 하고 보니,
우와싸~
"재워줄 공간은 없지만 마당에서 고기 꿔먹겐 해주께 놀러 오고 싶은 사람은 돼지 앞다리 하나씩 들고 오라고"
고기와 김치, 감자 등 먹어도 먹어도 배부름을 모르는 내 배가 이 날만큼은 고마웠다. 먹으면서 완성되어져 가는 집을 둘러보았다. 그래도 횽이 겨울 추위는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아궁이에 물이 찬 것을 발견하였다.
멘붕
일단 물을 빼내고, 비가 그치면, 해결하기로 했다.(만 아톰은 이후 헤어질 때까지, 이 문제를 해결 할 생각에 빠지곤 했다.)어쨌든 오늘 작업은 끝! 다음 작업을 위한 재료 준비를 위한 것도 있다지만, 아톰은 나와 함께 전주에 나가기로 했다.
근데 이대로 떠나는 게 아쉬워 20년 전에 들어와 그로부터 10년 간 무속인 부부가 살았다는 집에 가 보았다.(10월 3일 일기, 당신의 선택은?) 마을 사람들이 그 부부를 위해 직접 지어줬다는 그 집은 커다란 바위 아래 위치했으며, 앞에는 시원한 계곡이 흐르고 있었다. 옆의 동굴엔 작은 불상과 점집에서 볼 수 있는 할아버지상도 있었다. 아궁이로 흐르는 물 때문에, 아톰은 여차하면 그 곳에서 지낼 생각도 하기 시작했다. 조금 치워야 하겠지만, 겨울을 나기엔 괜찮아 보였다.
떠나며 뒤돌아 본 저수지 풍경
전주로 가는 길에, 떨어져 있던 은행잎이 가을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었다. 입동이 지나면, 본격 추위가 찾아올 것인데, 아톰이 겨울을 무사히 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건강하길.
어릴 때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어 봤을 거다.아니 머,열분들이 직접 들어보진 않았어도 주변에서 서로 저런 소리들을 했을 것임에는 분명하다.주로 이마가 튀어나오고, 눈이 움푹 들어가고, 기골이 우락부락한 타입들이 이런 놀림의 대상이었다. (사진은 푸틴의 경호실장이자 아마추어 레슬링의 신이자 진정한 세계 최강자로 일컬어지는 알렉산더 카렐린 형님이시라 이 논의와는 무관하시다).
남의 외모를 갖고 이런 소리를 하는 건 절라 무례한 짓이지만,여하튼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진화 덜 된'존재는 대개 수만년 전 멸종된 네안데르탈인을 뜻하는 듯 하다.따라서 이 말의 배경에는 우리,즉 현생 인류인 크로마뇽인이 네안데르탈인보다 한 차원 더 진화된 종족이라는 관념이 깔려 있다.
머 말이사 맞는 말 아니냐고?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진화에 대한 오해가 시작된다.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
오른 쪽 사진에서 연상되는 친구들 한 둘은 있을거다.
진화에 대한 일반의 관점은 대략 아래의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
아메바가 프랑크톤이 되고, 프랑크톤이 벌레가 되고, 벌레가 물고기가 되고, 물고기가 개구리가 되고, 개구리가 도마뱀이 되고, 도마뱀이 쥐가 되고, 그리고 원숭이와유인원이 등장해서 마침내 인간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하등동물들이 점점 복잡하고 진보된 종족으로 변해 가면서 수십억년 후에는 컴퓨터를 만들고 자신들의 진화에 대한 글까지 쓰고 앉은 우리 인간으로 발전되었다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진화에 대한 생각이다.
그래서 이걸 그림으로 그리면 대충 이렇게 된다.
영어는 몰라도 된다.
위에 예로 든 문장하고대략 같은 소리임.
머 그럴싸해 보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메바를 포함해 인간보다 '하등한'단계에 있던 많은 생물들도 지금 현재 멀쩡히 잘 살고 있지 않냐? 그럼 그 수십억년 동안 얘들은 대체 진화 안하고 뭘 한 걸까. 나비는, 상어는, 도마뱀은, 코끼리는, 그리고 침팬지는 왜 위 그림처럼 사람을 목표로 변해가지 않고 계속 저러고들 사냔 말이다.
그럼 진화란 건 한 종이 다른 종으로 변화/발전/진보하는 게 아니라, 남을 애들은 남고 한편으로 과거에 없었던 종이 새로 생겨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진화를 저런 식의 목표 지점을 가진 움직임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지고, 실제로 아메바는 플랑크톤이 되지 않고 침팬지는 절대 인간이 되지 않는다.
이걸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다윈의 '자연선택'이다. 이게 좀 복잡하니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아래의 이야기는 실제 진화상에서 일어난 팩트라기 보다 우원이 대충 지어낸 거지만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될 거다.
옛날에 영희라는 다람쥐가 있었다.
얘는 우연한 돌연변이로 앞다리 밑 겨드랑이의 피부가 넓게 처져 있어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로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주변에 뭔가 변화가 생겨 영희가 사는 숲에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 사나운 짐승들이 늘어나게 됐다. 그래서 다람쥐들은 가급적 땅으로 다니지 않고 나무 사이로 뛰어다니게 됐는데, 처진 살이 날개 비슷한 역할을 해서 영희는 다른 다람쥐들보다 좀 더 멀리 뛸 수 있었다.
그 결과 영희를 왕따시키던 일진들은 대부분 떨어져 잡아먹히고, 살아남은 영희의 자손들이 점점 번창하게 됐다. 겨드랑이 막이 넓은 다람쥐일수록 생존 확률이 더 높았기 때문에 오랜 세대가 지나면서 막은 점점 더 넓어졌다.
그렇게 날다람쥐라는 새로운 종이 생겨났다.
날아라 다람쥐
뭐야, 변한 거 맞네.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다. 차근차근 함 보시자.
영희에게 막이 있던 것은 어떤 목적도 없던 우연한 돌연변이의 결과다.
돌연변이는 모든 생물에서 일어나는 유전자나 염색체 상에서의 '에러'로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갑자기 영희의 생존에 유리한 쪽으로 자연 조건이 변화한다.
덕택에 일진들이 죽는 동안 영희는 살았고왕성하게 번식했다.
당연히, 그런 영희의 자손들 중에도 막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다. 돌연변이는 유전되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 중에서도 가급적 큰 막을 가진 애들이 비행시간이 길어 생존 확률이 높았다.
그 큰 막을 가진 아이들이 교미해서 자손을 낳고, 이런 상황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같은 이유로 후손들의 막은 조금씩 더 커지게 된다. 이런 상황이 수천, 수만 세대를 지나면서 지금의 날다람쥐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보다시피 몸의 모양이 환경에 적응해 주체적으로 변한게 아니다. 단지 어쩌다 돌연변이로 막이 있던 개체들이 상황에 맞아 살아남았고, 그 형질이 유전되어 그 후손들도 막이 있었을 뿐이다. 이것이 반복되면서 점점 넓은 막을 가진 애들이 더 많이 살아 남으면서 주류를 이루고 결국 날다람쥐라는 새 종이 생겨나는 거다. 요 상황을 끌어낸, 즉 땅바닥에 다람쥐의 포식자들이 늘어난 일을 유식한 말로 '선택압'이 작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종이 생겨날 때까지는 대개 수천 년 이상에 달하는 긴 세월이 필요하다.
그래서 비록 저 숲에서는 날다람쥐가 생겨났지만 포식자 들짐승이 늘어나지 않은, 즉 겨드랑이 막과 관련된 선택압이 작용하지 않은 다른 숲의 영희 사촌 명자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다람쥐는 그냥 다람쥐로 남아 있게 된다.
요게 바로 아메바는 왜 지금도 아메바고 상어는 왜 상어인지의 답이다.
걔네들은 이미 자신들의 환경에 맞게 충분히 진화하고 적응해 있기 때문에 거기서 굳이 변해갈 이유가 없다. 즉, 지금 지구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물들은 이미 현재 관점에서 진화적으로 최대한 업데이트 된 상태인 거다.
그래서 진화는 앞에서 본 사다리나 계단이 아니라 아래의 나무 형태로 표현하는 게 옳다는 말씀.
이 그림도 정확한 건 아니지만, 대략 굵은 세개의 나무가지가 위로 뻗어나가는 것을 시간의 흐름으로 보면 된다. 그 흐름 속에서 일렬로 하등동물 -> 고등동물의 방향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의 과정 속에서 옆으로 가지를 치며 새로운 종이 생겨난다. 그랬다가 공룡처럼 멸종하기도 하고, 잠자리처럼 인간과 같은 시간 대까지 살아남아 있기도 하는 거다. (따라서 이 그림이 정확해지려면 인간이 저렇게 맨 위에 혼자 있는 게 아니라 현재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종이 윗줄에 똑같이 위치하는게 바람직할듯 하다)
한편, 아래 그림은 우리 인간 주변의 상황을 나타낸다.
오른쪽 'Not Evolution' 파트가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진화의 모습인데 저런 일은 안 일어난다. 지금 존재하는 모든 유인원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가장 진화한 상태고, 인간으로의 진화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수백만년이 지나도 그들은 결코 '우리'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후손 중 지능이 발달한 다른 종족이 생겨날 수는 있지만 그게 인간은 아님)
반면 왼쪽의 그림은 제대로 된 진화의 형태다. 맨 아래 붉은 사각형은 고릴라와 인간(왼쪽에서 두번째의 다윈), 침팬지, 보노보 등이 수천만년 전 같은 조상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고릴라와 나머지의 조상이 갈라졌고, 시간이 지나 다시 인간과 침팬지/보노보의 조상이 갈라졌다. 가장 늦게 갈라진 것이 침팬지와 보노보인데 이들은 실제로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흡사하다.
자, 이렇게 보면 친구들 중 누가 누구보다 더 진화햅네 아닙네 말하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린지 알 수 있다. 우리가 네안데르탈인보다 더 진화한 게 아니라 같은 조상에서 갈라진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두 종족 중 전자가 멸종되고 후자가 살아남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현생 인류는 네안데르탈인의 후손이 아니라 명이 더 긴 친척일 뿐이다.
침팬지나 보노보 등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진화 방향이 이런저런 이유로 문명과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이었던 것일 뿐 우리가 그들보다 진화가 '더 된'게 아니다.
안다 알아. '그 과학기술을 통해 강한 힘을 갖고 지구를 지배하게 됐으니 역시 인류야말로 가장 진화된 종족이다'라고 말하고들 싶은 거. 인류가 뇌를 기준으로 봤을 때 가장 '복잡하게'진화한 건 맞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생물에 비해 발전되거나 진보된 것도 사실일 거다. 하지만 과연 지구를 '지배'하고 있을까?
천만의 말씀. 생물학적 관점에서 지구를 지배하는 존재는 35억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박테리아다. 다른 모든 생물을 다 합쳐서 제곱해도 비교도 되지 않는 압도적인 개체수와 짧은 수명을 통한 엄청난 환경 적응력(개체가 많고 수명이 짧은 종일 수록 선택압에 적응하기 쉽다)을 통해 이들은 지구에서 일어난 여러 번의 대파국과 멸종에서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분명하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인류는 기나긴 지구 역사 속에서 잠깐 잘난척하다 사라질 그림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의 포인트는 이거다.
생물학적 진화, 즉 다윈의 진화는 진보나 발전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니 어쩌니 해도 진화라는 관점에만 따지면 다른 현존하는 생물들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거. 머 여기에도 학자들 사이에 세세한 의견차이는 있다만, 그건 열분들이 앞으로 리처드 도킨스나 스티븐 제이 굴드 같은 사람들의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서 직접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77명의 남자' 시리즈는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한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인지라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술술 풀리기 마련이지만, 글을 쓰고 나면 그 시절 나의 찌질함이 또다시 나를 찾아와 꽤 오랜 시간동안 괴롭다. 그래서인지 (물론 변명이지만) 한 편을 쓰고 그 다음 편을 생산해 내기까지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며, 따라서 글이 나오는 텀이 상당히 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기 있게 나의 변변찮은 글을 기다려 주는 딴지일보 편집부에 감사드리는 바이다.
내 과거에 대한 일련의 글들을 써 가면서 새삼 깨닫는 점이 있다면, 내가 타인에게 저지른 만행은 마치 업보와 같아 언제든 어떤 형태로든 결국은 내게 다시 되돌아 온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유부남과의 연애 스토리. 뻔한 듯 뻔하지 않은 이 스토리는 또 어떤 형태로 내게 비수가 되어 되돌아올지 모르겠다. 여하튼. 욕 먹을 각오하고 나의 이야기를 또 한 번 풀어 본다.
0. 로리타 콤플렉스 1. 안전지대와 멜빵 2. 오봉 배달부 3. 음성사서함과 러브레터, 그리고 스토커 4. 첫눈에 반한다는 것 5. 김짱과 노짱 6. 그에게 가는 막차 7. 첫 담배 8. 애기야 9. 감기 10. 벽 11. 수컷들 12.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13. 쓰리썸과 그리스 14. 고목나무의 다람쥐 15. 일본남자는 별로 16. 첫사랑이 돌아오다 17. 이탈리아 남자란 18. 영혼이 닮았다 19. 11살 20. 놓치고 보니 아까운 남자 21. 여행지의 불길 22. 와우폐인 23. 하늘에 별이 보여? 24. 손호영 닮은꼴 25. 청산리 벽계수 26. 자살금지 27. 그의 친구 28. 첫 프로포즈 29. 12년의 우정 30. 꽃돌이 31. 섹스도 사랑이라면 32. 에이즈의 기억 (편집부 주 - 구글이 본지에 라이벌 의식을 느낀 탓인지 본 기사를 에로틱, 선정성 분야로 선정하여 당분간은 볼 수 엄따. 본지는 졸라 이해할 수 없으나 양해바란다.) 33. 상상인연 34. 부잣집 외동아들 35. 줘도 못 먹는 남자 36. 애 딸린 남자 39. 친구라며? 38. 진심이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닌가 봐 39. 현재진행형? 40. 흑형
바람이 차가워졌음을 새삼 피부로 느끼게 되는 어느 가을날이었다. 낯선 거리를 헤매던 나는 한 까페 테라스로 기어 들어가 잠시 지친 몸을 달래고 있었다. 이윽고 한 남자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맥주를 시켰던 것도 같다. 목을 감싸던 스카프를 가지런히 개어 옆의 의자에 정리해 둔 그의 시선이 내가 읽던 책에 와 닿았다. 마크 페로의 『역사와 영화』.
영화란 단지 '이미지의 제국'으로서의 예술만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의 매체'로 역사의 증언임을 골자로 하는 이 책을, 그 역시 인상 깊게 읽었던 듯 했다.
"책 재미있어요?"
이 한 마디로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처음 본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시작하여 서로의 간단한 일상에 이르기까지 물 흐르듯 이어졌고, 내가 집을 구한다는 이야기에 자신이 도와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남자는 명함을 내밀었다. 어느덧 그는 약속시간이 되어 까페를 떠났다. 느낌이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그 날과 비슷한 느낌의 바람이 뺨을 스치자 그 남자가 생각이 났다. 지갑 속에 아무렇게나 넣어둔 남자의 명함을 꺼내어 문자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고, 우리는 함께 식사나 한 끼 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불고기 정식을 먹었던 것 같다. 이윽고 계산할 때가 되자, 내 카드를 내밀었으나 밥값은 이미 지불된 상태였다. 다음번에는 레바논 식당에 함께 가기로 했으므로 그 때는 내가 계산을 하겠노라고 다짐을 받고선 헤어졌다. 하지만 그 다음번에도 그는 특유(?)의 신사정신을 발휘하여 한발 앞서 계산을 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커피값이라도 내가 내게 해 달라며 빌다시피 하여 함께 간 까페에서, 그는 내게 고백을 했다.
"사실은 나 결혼했어."
"그런데?
사실 그는 참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괜찮은 '남자'라고까지 느껴지지는 않았기에, 당시 내게 그가 유부남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그런 마음을 전달하고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하는 친구 사이로 지내기로 한 이후, 우리의 만남은 점차 잦아졌다. 나보다 7살이 더 많은 그는 자기보다 5살이 많은 아내를 18살 때 만나,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한, 두 아이를 두고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는 결혼은 완벽하기 이를데 없어 보였다. 교사인 아내는 가정적이었고, 그는 은행 브로커로 연봉이 몇 억을 쉽게 넘겼다. 정원이 있고 넓은 손님방까지 갖춘 전원주택이 있었고, 그는 우리가 만난 도시에 아파트 한 채를 빌려 비지니스를 위해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를 머물곤 했다. 부부는 두 아이와 함께 바캉스 때면 해외여행을 다녔다. 이들은 크리스마스 때는 모두가 모여 트리를 만들고 즐거워 했고, 할로윈 저녁에는 모두 변장을 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댄스파티를 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그는 결혼을 하고 직업적으로 자리를 잡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하나의 개인이 아니라 가족의 일원으로서만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버거워하는 듯 했다. 그는 내 앞에서 웬만하면 아내의 이야기를 꺼내려 하지 않았지만, 자신보다 5살이 많은 그녀는 이미 해 볼 수 있는 방황 혹은 일탈을 자신을 만나기 전에 다 해 보았다며, 자신의 삶을 아내의 그것과 비교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저 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 주었을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만나서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고, 대화의 주제는 역사, 사회에서부터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언제나 넘쳐났다. 때로는 길 위의 껌딱지까지 도마 위에 올랐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말이 참 잘 통하는 사람이었던 듯 하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내게 함께 여행을 가자고 제안해 왔다. 그러자고 했다. 이미 내게도 그는 그저 단순한 친구 이상의 존재였다. 동시에 내가 사랑에 빠질 대상이 아님 역시 확실했기에 그에게 나의 마음을 명확하게 전했다. 골자는, 나는 너와 진지한 관계를 목표로 두고 사랑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애인은 할 수 있다. 동시에, 너의 섹스파트너가 될 생각도 없다.
나는 영원한 사랑은 믿지 않는다. 아버지는 내가 대학생이던 때, 몇 번의 바람을 피웠고 그 중 한 번은 내게 현장을 들키기도 했다. 그 때 나는 아버지께"당신의 새로운 사랑 역시 존중한다. 하지만 어머니와 정말로 갈라설 게 아니라면 알아서 정리하시라"고 말씀드렸다. 내게 있어 오래된 커플에게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기 마련이고, 다만 그 자극은 서로의 합의 하에 공개된 상태에서 누려야 하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나는 아직도 싱글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 생각을 전달했고, 그는 안도하는 듯 했다. 그는 내게"그런 사람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야. 너는 결혼은 못 하겠구나"라고 말했다. 이전에도 '바람'을 핀 전적이 다수 있었던 그는 그에게 집착하던 한 여성 덕분에 한바탕 실컷 고생을 했다고 한다. 나는 전제를 붙였다. 그의 아내가 알게 되어 그 가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그것은 그의 책임이라고. 나는 너에게 애인 이상의 어떤 것도 바라지 않겠으니 너 역시도 나의 개인사에 관여하지 말라고. 며칠 후 함께 여행을 떠난 둘은 애인이 되었다.
그는 가정생활에도 충실했고, 나 역시도 다른 남자들과의 데이트를 계속 했다. 그는 나의 애인일 뿐, 내 '사랑'이 아니었으므로. 그가 가족여행을 떠났을 때, 마음에서 질투가 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괜찮았다. 처음부터 그 경계를 정해놓은 관계는 그 한계가 확실했으므로 그 이상의 기대는 불가능했고, 내 이성은 그런 질투 정도는 다스릴 수 있을만큼 나이를 먹어 있었다. 그도 역시 나의 다른 남자들을 경계했지만, 우리의 만남은 오히려 더 격정적이었고 달콤했으며, 그와의 대화는 여전히 막힘 없이 훌륭했다.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지 않았기에 싸울 일도 없었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 해 봐야 일주일에 하루 정도였기에 사소한 다툼 역시 자제할 수 있었다. 우리의 관계는 무겁지 않았지만 깃털만큼 가볍지도 않았기에 그와의 관계는 서로에게 활력소였다. 내게 그는 타지에서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존재였고, 그에게 나는 젊었던 시절의 자신을 되찾게 해 주는 존재였다.
그렇게 10개월 가량이 흐른 어느날,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친 목소리의 그는 이제 우리의 만남을 그만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남긴채 전화를 끊었다. 상황 설명도 없었지만 나는 그냥 납득을 해 버렸다. 그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안타까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유부남이라는 그의 위치를 인지하고 시작한 관계여서인지 나는 갑작스러운 마지막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그렇게 그의 존재를 마음에서 지워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달 여쯤 지났을까, 그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만나자고 했다. 만났다. 그는 한눈에도 초췌해진 얼굴로 나타나 그간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다고 한다. 나와의 관계를 알게 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저, 그의 전적들이 아내로 하여금 그를 믿지 못하게 하였고, 그 신뢰의 부재를 채워준 다른 누군가가 나타난 듯 했다. 그를 위로해 주었다. 우리는 이전처럼 함께 식사를 했고, 커피를, 술을 마셨다. 하지만 내 몸은 더이상 그를 원하지 않았다. 내 이성은 한 달의 기간동안 그를 애인의 지위에서 완전히 내려 놓았고, 따라서 나의 육체 역시 그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스킨십에 실패한 그는 점차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나와 진지한 관계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도 했고, 이제는 여자들을 못 믿겠다며 남녀관계 전체를 비난하며 혼자 지내겠다고도 했다. 이혼을 받아들이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했다가 얼마 못 가 이혼은 못 하겠다며 마음 아파 하기도 했다. 흔들리는 그의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이제 내게 있어 그는 '남자'가 아니라 그저 상처입은 한 마리의 동물과 같은 존재에 불과했다.
만날 때마다 스킨십을 시도하고, 거절당하기를 몇 차례. 결국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그는 내게 이제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선언해 왔다. 아련하면서도 미안하고,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그는 몇 주 후 또다시 연락해 와 사과를 했고, 나는 그제서야 더 이상 그를 남자로 보지 않는 내 마음을 확실히 전달했다. 그는 유부남과의 연애가 더 스릴있는 것이냐며 나를 비난했다. 그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에게 나의 마음을 설명하는 것은 이제 더이상은 무의미해 보였다.
그 이후로 나는 그를 몇 번 더 만나 보았는데, 그 때마다 만나는 여자들이 바뀌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상처를 여자들과의 가벼운 만남을 통해 타인에게 전가하고 싶어 했다."너를 만나는 여자들은 무슨 죄냐"고 가벼운 비난을 했더니,"네가 할 소리는 아니"라며 일축했다. 이혼을 하고 대부분의 재산을 아내에게 넘겨 준 지금도 그는 충실하게 다정한 아버지 역할만은 잘 해내고 있다. 그에게 있어 어릴적 겪은 부모의 이혼으로부터 받은 것과 같은 상처를 자신의 아이들에게만큼은 주고 싶지 않다는 의지는 그 모든 불행보다 강한 듯 했다.
그의 사례는 조금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결혼이라는 제도가 공고한 현대사회의 부부 내에서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란 스스로 하자없음을 타인에게 내보이는 증명이기도 하며, '결혼이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이니 하는 것이 낫다'는 말로 종용되는 하나의 숙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단 결혼을 하고 나면 '경제공동체'로 거듭나는 오늘날의 결혼에서 '사랑'이라는 흔한 말로 당연한 듯 포장되는 부부의 관계는 불안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그는 '부부'라는 관계를 벗어나 자기 자신을 찾기를 원했고, 결국 결혼생활은 그를 버렸지만, 그는 여전히 자기 자신을 찾지 못했다. 그가 바란 작은 일탈은 아내와의 합의 위에 성사된 것이 아니기에.
아마 나는 결혼을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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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점수를 한 번 내 보자.
유부남의 점수는 100점 만점에 91점. 내 주관적인 기준에 따르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남자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의 점수 내기도 사실상 별로 의미가 없다. 경계와 한계를 명확히 그어놓고 시작한 관계였으므로.
처음에는 걱정도 있었다. 열정이란 결국은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갈망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매력적인 그에게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우려가 컸다. 주변의 지인들도 너의 결정은 존중하지만 걱정스럽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우려와 달리, 나이를 먹어버린 내 이성은 그 경계를 비교적 완벽히 인식해 냈고, 적어도 내게 있어 그와의 관계에서 결핍은 제거되었다. 관계를 물잔에 비유한다면, 그리고 잔의 비워진 부분을 채우고자 하는 갈망이 열정으로 표출된다고 한다면, 우리의 관계는 이미 가득 찬 물잔이었던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글에 나오는 인물과 장소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니물어보지 마시길 바랍니다.
개 팔자 상팔자라고 하지만 돼지 팔자는? 개 같은 팔자라 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재 세상에 단 한 명도 살아계시지 않기에 여러분이 아무리 검증을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묻지 마! 관광"처럼 이야기만 즐겨 주셨으면 합니다.
1. 어린 영혼, 죽음을 마주하며
짜릿한 몽정을 치렀던 중학교 1학년 때이었습니다. 여름이 다 가고 가을이 올락 말락 하던, 해가 지면 차가운 바람이 살며시 뺨에 뽀뽀하며 '우리 자러 가자'속삭이던 그런 밤이었습니다. 6시에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잠깐 자고 일어나서 숙제하려고 하던 것이 자정이 되어서야 일어났습니다. 완전히 잠을 깨려고 옥상에 올라갔죠. 별들이 참 맑게 빛나는 밤이었습니다. 동네는 조용했습니다. 제 방과 옆집만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옆집에는 고3 누나가 있었죠. '고3 모양 내시는 구나'하면서 옥상을 내려가려던 순간, 앞에서 뭔가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공간 속의 공간, 멈춤의 시간, 어둠의 어둠, 차가움의 차가움 같은 그런 느낌이었고 그 앞에서 숨도 멈추고 눈꺼풀도 멈춰버렸습니다. 숨을 쉬기 위해 콧속에 있던 바람을 내 뿜으려 해도 그럴 수 없었고 몸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눈앞에서 서서히 움직이더니 저의 몸을 통과해 지나쳐 갔습니다. 그 순간 옆집 사람들의 곡소리가 들렸습니다. 참았던 숨이 트이자 방으로 달렸습니다. 숙제고 뭐고 이불에 들어가 한참을 떨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시작이었습니다.
2. 보인다. 무서웠다.
지나가는 차량도, 사람도 없는 한밤의 적막한 도로였습니다. 아직도 기름 냄새가 가시지 않은 최근에 놓인 도로였습니다. 집에 가려면 먼 길인데 왜 그곳에 있는지 모르겠더군요.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발길을 움직였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습니다. 같은 방향이기에 태워 달라고 하기 위해, 도로 가운데로 가서는 손을 흔들었습니다. 오토바이는 저를 못 봤는지 속력을 줄이지 않고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더 힘차게 손을 흔들고 소리를 쳤지만, 오토바이는 멈추지 않고 저와 부딪혔습니다. 오토바이는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오토바이 운전자는 두 동강이 나면서 상체는 전봇대로 날아가 전봇대 쇠막대에 걸렸고 하체는 도로를 뒹굴다가 도로 밖으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전봇대에 걸려있던 상체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비명을 질렀습니다. 꿈이었습니다. 옆집 아주머니의 죽음 이후로 어둠이 무서워서 스탠드를 머리맡에 항상 켜고 잠을 잡니다. 몸에 땀이 많이 났습니다.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는 소변을 본 후에 부엌에 가서 물을 한잔 마시고 다시 잠을 잤습니다.
날이 밝고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저를 깨우기 위해 어머니는 제 방에 들어오셔서 일어나 밥 먹고 학교 가라 소리치십니다. 작은 밥상에 밥을 차려 오셨습니다.
"아버지는요?"
"아침에 사고가 나서 아침 일찍 출근하셨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근무하셨습니다. 의사는 아닙니다. 하시는 일이 워낙 다양해서 특정 부서에 한정돼서 일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맡으신 일 중 하나는사망자가 나오면 의사와 경찰, 그리고 아버지가 참석해 사망자의 신원과 사망자의 사고 경위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부검의가 따로 있지 않았던 때입니다. 경찰은 사망자의 신원과 사고사인지 자연사인지 파악하고, 의사는 정확한 사인과 사망자의 상처 부위나 병명을 체크하고, 아버지는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의료사고 인지를 파악해 병원장에게 직접 보고를 하셨습니다.
사망자 가족에게 그의 죽음이 알려지기 전에 아버지는 사망자의 가족관계, 재산상태, 인적관계 등을 모두 파악해 병원장에게 보고하셨습니다. 의료사고였을 경우 법적 대처 방안을 변호사들과 상의하시거나 유가족들과 보상 관련 협상도 누구와 협상해야 빠르게 협상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지 계획하고 실행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동네 사람들은 가족 중에 원인을 알 수 없이 죽으면 제일 먼저 저희 집에 찾아와 아버지에게 사망자가 어떤 경위로 죽었는지 파악해 달라는 부탁을 많이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다시 집에 오셨습니다. 새벽에 병원에 가셨다가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 하시면 다시 집에 오셔서는 오전에 더 주무시고 병원에 다시 가십니다. 들어 오시면서 어머니에게
"지튀가 죽었어."
지튀(가명)는 저보다 네 살 많은 동네 형이었습니다.
"어쩌다가요?"
"오토바이 타고 가다 트럭하고 부딪혔는데 몸통이 두 동강 났어. 하나는 전봇대에 걸려있었다네. 지튀 아버지 만나고 온 다음에 밥 먹을게."
브르스 윌리스와 할리 조엘 오스몬드가 출연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식스센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공포 스릴러 영화로 보셨겠지요. 저는 할리 조엘 오스몬드가 브르스 윌리스에게 "그것들이 보여요!" 하던 순간부터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그런 것들이 보였습니다. 귀신은 아닙니다. 저에게 보인 것들은 꿈속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대개 저와 가까운 인척 관계의 사람들과 동네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또래 아이들보다는 형들과 어울렸습니다. 또래 아이들 노는 것이 재미도 없고, 유치하고, 또 형들과 놀면 저에게 많은 것들을 잡아다가 줬습니다. 먹을 걸 많이 주기도 하구요. 그랬던 형들 중 한명인 지튀 형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더 큰 충격은 꿈속의 사고 장면과 실제 사고 상황이 비슷했다는 겁니다. 그냥 우연이겠지 하면서 식사를 마치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저녁에 지튀 형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학교와 학원을 마치니 저녁 8시가 좀 넘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서서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동전이 없었습니다.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좀 더 빨리 가기 위해 지름길로 가기로 했습니다. 지름길은 당시 새로 조성된 공단입니다. 해가 지면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입니다. 좀 무섭기는 했지만, 별일이야 있겠냐 싶었고 발인 전날이라 지튀 형에게 마지막 인사는 꼭 하고 싶었기에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걸어가다 보니 뒤에서 빵빵대는 차가 쌍라이트를 켜고는 제가 걸어가는 쪽으로 달려왔습니다. 좀 더 가까워져 보니 녹색 봉고차였습니다. 전봇대 뒤에 피하기로 했습니다. 차는 제가 서 있는 쪽으로 계속 달려오더니 제가 몸을 피한 전봇대에 부딪쳤습니다. 차가 찌그러져 갑니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세차게 전봇대에 몸을 부딪치며 일그러져 갑니다. 깨진 차 유리와 함께 피도 함께 튀어나옵니다.
또 다른 꿈이었습니다. 지튀 형이 죽은 다음 해. 이번에는 다섯 살 많은 동네 형이었습니다. 장소는 비슷했지만 전봇대가 아니라 가로수를 들이받았습니다. 시체는 조각났다고 합니다. 술을 마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 꿈들을 몇 개 더 꿨고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께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할머닌 무척 똑똑한 분이십니다. 영어와 일본어를 3개월 만에 터득하신 분입니다. 제가 멍청하다고 혼꾸녕도 많이 맞았습니다. 좀 사는 집에 남자로 태어났다면 좋았겠다 싶은 분입니다. 장관, 총장을 지낸 조카분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현명하신 분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동네 아주머니가 저희 할머니를 면전에서 비난했습니다. 할머니는 가볍게 웃으시며 집에 가자셨습니다. 집에 오는 도중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 착하게 살아야 하는 건 평판이라는 걸 얻기 위해서여! 평판이라는 것을 어떻게 쓰는지 보여 주께."
며칠 후, 할머니를 간간이 비난하던 동네 아주머니 두 분이 머리 붙잡고 동네 떠들썩하게 싸웠습니다. 할머니는 그 두 할머니를 자신의 손을 쓰지 않고 서로 싸우게 만드신 겁니다. 멀리서 저와 함께 지켜보시던 할머니는 가볍게 입에 미소를 지으며 집에 가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봤냐? 평판이라는 것은 손 안 쓰고 코 풀게 혀! 착하게 살라는 게 아녀. 착하다는 평판을 얻으란 말여!"
할머니만큼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을 지금껏 보지 못했습니다. 할머니께서 저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으로 믿은 것은 당연합니다. 평소에는 어떤 문제를 이야기하면 "그래?"라며 바로 행동에 옮기시는 분이지만, 그 문제는 좀 심각하다 생각하셨나 봅니다.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아무 말 없으셨습니다.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 시작 즈음에 말씀드렸지만, 방학이 끝나고 중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개나리가 지고, 벚꽃이 필 무렵 해결책을 찾으셨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이런저런 음식을 준비하십니다.
"내일 일요일인 게 학교 안 가지? 낼 같이 가자!"
그렇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역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셨습니다. 그거슨 바로
3. 퇴마, 굿, 엑소시스트
지금부터 할머니 손잡고 다니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 퇴마사
퇴마사 김영기 법사
기차를 타고 오산인가하는 곳에 갔습니다. 기차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한적한 시골 동네에 내렸습니다. 할머니께서 장만하신 이런저런 음식들을 들고, 이상할 것 없는 평범한 동네로, 논두렁을 가로지르며 걸었습니다. 할머니는 돈 대신 음식으로 '퉁'칠 요량이었던 같습니다.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누군가의 이름을 말씀하시며 어디 사는지 물었습니다. 모른다는 동네 몇 분을 지나 다행히 아시는 분이 집을 가리킵니다. 가리킨 집은 멀리서 봐도 그냥 평범한 시골집이었습니다. 저는 보자기에 단단히 싼 음식들을 들고 할머니 뒤에 따라갔습니다.
그 집 앞에는 작은 텃밭에서 평범한 시골 노인분이 봄 채소를 뽑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멀리서 오는 저와 할머니가 말이 들리는 거리쯤 다가가자 "잠시만 기다리세요."하면서 뽑아낸 채소를 들고 일어서면서 "어이! 가져가. 그리고 방에 불 지폈나?"잠시 후에 분홍색으로 칠해진 양철 대문을 밀치면서 할머니 한 분이 다리를 약간 저시며 나오십니다. 할아버지와 눈빛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자는 말에 이상할 것 없는 평범한 할아버지를 따라 방에 들어갔습니다. 손에 들고 있던 음식들을 그 집 할머니에게 건넵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갔습니다. 방안에는 산신령 그림이 걸려있습니다. 바로 밑이 아랫목인지 그 위에 이불이 깔렸습니다. 이불 앞에는 작은 밥상 비슷한 것이 놓여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은 할아버지를 따라 그 탁자를 마주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저는 할머니 조금 뒤편에 앉았습니다.
할머닌 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그 노인에게 들려줍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눈을 감으며 나이와 생일, 이름을 묻습니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눈을 뜨지 않던 노인은 눈을 뜨자 저에게 자신에게 다가오라고 합니다. 배운 버르장머리 어디 가겠습니까? 조금의 이동이라도 공손히 일어나 한걸음 걷고는 앉습니다. 앉으니 눈을 감으라 합니다. 그게 말인지 노랜지 모를 소리를 내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다가도 살짝 움켜쥐는 겁니다. 한 십 여분 그렇게 하는 겁니다.
"이제 됐다. 잘 살 거야!"
제 머리를 쓰다듬기를 마치자 저는 노인 곁에서 물러나 다시 할머니 뒤 편에 앉았습니다. 엉? 이게 다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후에 제가 가져간 음식들이 차려진 밥상을 들고 그 집 할머니가 들어옵니다.
"여기 오시느라 점심 못 드셨지요? 드시고 집에 가세요! 걱정하지 마시고. 잘 살 겁니다."
그렇게 그냥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에게 벌어진 이상한 현상들이 사라졌으면 좋았을 것을, 한 달즈음 뒤에 또 그런 일이 생기는 겁니다. 큰 사고광경을 목격한 것은 아니고 아버지 친구분들이 집에 찾아오셔서 술을 사서는 집으로 오는 도중에, 그 어둠의 어둠, 차가움의 차가움이 획 하니 제 앞을 지나치더니 동네 00집에 들어가는 겁니다. 다음 날 그 집에서 심장마비로 동네 아저씨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쓴웃음을 지으십니다.
2) 절
공주의 어느 사찰이었습니다. 여름 문턱인지라 낮에는 햇빛이 따가웠습니다. 산행은 숨 고르기를 반복 학습 시키는 선생님 같습니다. 숨이 잔잔해지면 오르다가 거칠어지면 쉬고를 반복하기를 여러 번, 절이 보입니다. 이번에도 준비해간 음식을 제가 들고 갔습니다. 손바닥은 보자기 집에서부터 들고오느라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손에 들고 있던 보자기를 30대 후반 되어 보이는 스님에게 넘겨드렸습니다.
할머니는 보자기를 넘겨받은 스님의 안내에 큰 불상에 가셔서는 배를 올리십니다. 나오시자 다시 젊은 스님이 다른 곳으로 안내합니다. 할머니는 안으로 들어가시고 저는 밖에서 기다립니다. 작은 불상이 있는 방안에서 할머니는 좀 나이 들어 뵈는 스님과 이야기를 하십니다. 할머니께 차를 따라 줍니다. 무슨 차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안 줬습니다. 좀 전에 보자기 건네받은 스님이 방에서 나옵니다. 지금 기억으로는 대략 50대 초반으로 생각됩니다. 그 스님이 저보고 들어오라 그럽니다. 들어가 그 스님과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습니다. 잠시 후에 젊은 스님이 웬 자루를 들고 옵니다.
불경을 암송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루에서 콩인지 팥인지를 제 얼굴에 마구 뿌려댑니다. 고개를 숙였습니다. '설마 저 자루에 담긴 전부를 뿌리는 것은 아니겠지?'란 생각만 들었습니다. 젊은 스님은 나이 드신 스님이 콩을 뿌리는 동안 옆에서 목탁을 치시며 불경을 암송하시는 겁니다. 다이 다이, 아니 일대일로 한 명씩 돌아가면서 뿌려 댑니다. 스님들이 그러는 동안 할머니는 두 손을 곱게 합장하시고는 불상을 향해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하십니다. 전부 다 뿌렸습니다. 따가웠습니다. 모두 다 뿌리고는 방안에 흩어진 콩들을 주워 다시 담습니다. 전 그냥 나와서 울었습니다. 이게 먼 짓인지 라는 생각과 함께 절밥은 맛이 없었습니다.
3) 교회
태양이 등짝에 흠뻑 땀을 뿌려주던 여름에 전주의 한 교회를 갔습니다. 교회 안은 예배 전이라 그런지 냉방이 잘되어 있어서 시원했습니다. 예배 전에 목사님과 할머니께서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목사님은 사람들과의 예배가 끝나면 시작하신다고 합니다. 사람들 참 많았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성경 구절과 찬송가를 입안에서 그냥 굴렸습니다. 그곳을 소개해준 아주머니 옆에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목사님 설교도 좋았습니다. 참으로 밝은 광명을 얻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정말 주님 앞에 간청했습니다. 이런 황당한 일이 더 제게 일어나지 말기를 "할렐루야!"할머니는 눈을 감으시고 손은 깍지를 끼신 채로 제 옆에 앉아 어린 손자 잘되기를 기도드리고 계십니다. 처음엔 한기마저 들던 교회는 제 몸이 성령에 감응했는지 몸이 뜨거워졌습니다. '드디어 나는 고통에서 해방되는구나'생각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이 교회 안을 떠납니다. 오늘 설교는 훌륭했다고 사람들이 목사님께 손을 붙잡고 인사하기 바쁘십니다. 사람들과 일일이 이야기와 손을 붙잡아 주시고는 모두 다 떠나보내시고는 저와 할머니를 부르십니다. 드디어 마침표를 찍는 그 날이 왔도다라고생각했습니다.
잠시 후에 어느 떡대 좋은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오십니다. 정말 천사같이 하얀 옷을 입으시고 들어오십니다. 떡대가 좀 유별나게 크다는 것 말고는 말입니다. 특별히 저를 위해 서울에서 오셨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할머니도 돈을 좀 내셨습니다. 서울까지 차비 정도만이 아니었습니다. 목사님이 저에 대한 이야기를 그 떡대,아니 품격 있으신 여자분에게 이야기합니다.
시작은 조용했습니다. 저를 위한 목사님의 기도로 시작하십니다. 목사님의 기도가 끝나자 여자 분이 다소 거친 목소리로 기도하십니다. 저는 그냥 그분 앞에 무릎 꿇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에게 명하노니 썩 물러나라!"
그리고는 그리고는 저의 귀싸대기를 치시는 겁니다. 번쩍 눈이 떠졌습니다. 엉? 이거슨 무슨 시츄에이션? 눈을 떠 그 여자 분을 바라봅니다. 눈이 마주쳤습니다. 여자 분은 더 소리 높여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의 몸뚱이를 사정없이 내리치시는 겁니다. 여자래도 떡대는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묵직했습니다. 아팠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대체 왜! 주여,제게 왜 이런 아픔을 주시나이까? 이런 젠장 할! 많이 맞았습니다. 얼굴이며 몸이 화끈거렸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눈물 많이 흘렸습니다.
4) good? 굿
오곡이 익어가는 가을이었습니다. 벌초하러 가는 줄 알았습니다. 무당 할매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무당 할매는 저희 조상님들이 계시는 바로 밑에 살고 계십니다. 조상님들 묘 근처에 무당 할매가 기도를 올리는 곳이 있습니다. 무당 할매 기도드리는 장소도, 무당할매 사는 집도 원래는 조상님들 땅이어서 함부로 출입하거나 집을 지을 수 없지만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허락하셨다 했습니다. 벌초는 저희가 하지만 평소에는 무당 할매가 저희 조상님들 무덤에서 자라는 잡풀도 제거해 주시고, 조상님들 묘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해 주십니다. 저희 집에도 가끔 놀러 오셨습니다. 저를 무척 이뻐라 하셨습니다. 무당 할매 아들은 외교관으로 꽤 높은 자리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오시면 항상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저희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애가 원체 멍청해서 원"하십니다. 인정합니다.
오실 때는 항상 제상에 올려졌던 먹을 것을 가져오십니다. 마음이 비단결 같습니다. 무당 할매의 고운 한복 차림새 때문에 가끔은 제 할머니였으면 싶기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 한 미모 하셨을 겁니다.
이번에도 할머니께서 준비한 음식들을 들고 찾아갔습니다. 이번에는 돼지 머리도 가지고 갔습니다. 무당 할매는 쎄팅차림을 다 하셨습니다. 들고 간 돼지 머리를 젯상에 올렸습니다. 산신령님이 이쁘다고 째려보십니다. 무당 할매는 시작 전에 성수를 받으시러 가십니다. 근처에 물이 조금씩 솟아나는 곳이 있습니다. 약수터가 되기에는 턱없이 적은 양이어선지 사람들의 관심은 못 받아도 무당 할매의 관심은 받을 만합니다. 무당 할매가 왔습니다. 적은 양인줄 알았는데 꽤 큰 사기그릇에 가득 담아 오셨습니다.
옆에서 징, 장구, 등을 쳐줄 할매들이 자리를 잡습니다. 무당 할매는 옷을 다 차려입으시고 시작하십니다. 덩 덩 덩더 쿵 덩덩덩더 쿵 그 딸랑 방울이 풍물소리와 묘하게 어울리는 소리를 냅니다. 무당 할매 통 통 귀엽게 뛰십니다. 그렇게 한참을 한 것 같았습니다. 저를 제상 앞에 앉으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징과 장구, 꽹가리 소리에 맞춰 춤을 추십니다. 이파리 많이 붙은 대나무를 들고는 길어 오신 물에 푹 담그십니다. 그리고는 물에 적신 대나무로 저를 내리치시는 겁니다. "앗 차거"이건 또, 하~아진짜. 무당 할매 믿었건만. 한참을 물에 적셨다가 이파리에 물기가 떨어지면 다시 적셔서는 저를 때리시는 겁니다. 그리고 묵묵히 지켜보던 다른 무당 할매가 제 손에 부엌칼을 손에 쥐여 주시는 겁니다. 부엌칼을 돼지 머리 정수리에 꽂으라는 겁니다. 참이게 또 무슨 짓인지.
돼지머리에 칼을 정수리에 찍었습니다. 살점 때문에 쉽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손을 놓으니 중심을 잃은 채 넘어집니다. 다른 무당 할매가 계속 하라 그럽니다. 세워질 때까지 하라는 겁니다. 계속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아닙니다. 무당 할매입니다. 제가 칼을 높이 들고 탁하니 돼지머리 정수리에 찍으면 아파리 물에 적신 대나무로 제 팔뚝을 계속 때리는 겁니다. '아씨 그렇게 때리믄 세워져? 무당 할매 그만!'속으로 부탁드렸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하다가 나중에는 무당 할매가 등짝만 때리는 타이밍을 찾았습니다.
서..서...ㅇ... 성..공....성공.......드뎌...칼이 돼지 머리 정수리에 떡하니 꽂혔습니다.
일순간 모든 소리와 할매의 춤도 끝나고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무당 할매 얼굴을 바라보니 땀이 많이 났습니다. 깊은 숨을 내쉬고는 인자한 미소로 저를 바라보십니다. 제상을 다른 무당 할매들이 치우고 점심을 같이 먹었습니다.
5) 프로이트
머제 나름대로 이 문제를 해결 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중1겨울 방학 때 시내에 있는 서점에 찾아가 이런 저런 책을 살펴보다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입문>을 손에 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중학교3학년 여름 방학 때 까지 틈나는 대로 읽었습니다. 뭔 소린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진 상황이 제 심리적 요인이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첫 몽정기의 사춘기 현상이라는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사춘기 시절 남자애들은 이런 일 다 겪겠지 싶었습니다.
중 3 겨울 방학 무렵부터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더이상 어둠의 어둠, 차가움의 차가움은 나타나지 않았고 잠을 잘 때 간혹 가위에 눌리는 정도? 가위 눌리는 것 정도야 애교로 생각되었습니다. 이렇게 긴 1년여 동안의 퇴마경험 이었습니다. 어떤 것 때문에 그런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저 그런 현상이 사라진 것이 다행이다 싶다는 생각 뿐입니다.
그런데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고 제 삶의 결정적인 한 가지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눈'이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5분 정도 읽다 보면 글자들이 책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입니다. 10분 정도 되면 글자들이 서로 뒤엉켜 정겹게 춤을 춥니다. 어지럽고 피곤해집니다. 1시간 잠을 자야 그나마 또 10분을 볼 수 있는 이게 뭔 고흐가 이랬다던가? 뭐 그런 생각에 그럼 그림을 그릴까? 젠장. 그림에는 소질도 없는데 그래 한번 해보자 결심하고 물감들을 빠레트에 찍어 놓자마자, 이런 컬러에는 더 빨리 그렇게 되더군요.
그래도잠은 잘 수 있게 되었다는뭐믿거나 말거나 이야깁니다.
이거시 돼지, 아 아니 밑에 플픽 사진을 사용하게 된 사연이었습니다.
서른 즈음 다른 이유로 눈 수술을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글자를 보지 못하는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지금 저는 조금이라도 시간이 생기면 보고 싶은 책을 원 없이 보고 있습니다. 책 읽기 좋은 날씨입니다. 다들 독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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