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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마빡 이야기/2014

딴지일보 마빡 2014. 11. 13

by 꾸물 2022.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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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파토의 쿡찍어 푸욱> - 22. 반기문의 환상

 

기사 - [정치]<파토의 쿡찍어 푸욱> - 22. 반기문의 환상

2014. 11. 13. 목요일 파토 <파토의 쿡찍어 푸욱>은 시급한 현안에서부터 해묵은 숙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 사회 관련 문제를 다루는 코너임다. 과학 잡설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와 교대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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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3. 목요일

파토

 

 

 



<파토의 쿡찍어 푸욱>은 

시급한 현안에서부터 해묵은 숙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 사회 관련 문제를 다루는 코너임다.

과학 잡설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와 교대하면서 격주로 연재되니

 많은 사랑 주시던가.


지난 기사

<파토의 쿡찍어 푸욱> 1. 공포의 마스터플랜
<파토의 쿡찍어 푸욱> 2. 그들은 왜 변절했을까
<파토의 쿡찍어 푸욱> 3. 지금 우리에게 놓인 투쟁의 현실
<파토의 쿡찍어 푸욱> 4. 시대와 진보에 대한 단상
<파토의 쿡찍어 푸욱> 5. 사회의 품격(1)
<파토의 쿡찍어 푸욱> 6. 박정희, 이승만, 일제 그리고 개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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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의 쿡찍어 푸욱> 13. 혁명의 상상
<파토의 쿡찍어 푸욱> 14. 줏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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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의 쿡찍어 푸욱> 16. 양식냉장고
<파토의 쿡찍어 푸욱> 17. 길, 그리고 사람
<파토의 쿡찍어 푸욱> 18. 권력이라는 손바닥
<파토의 쿡찍어 푸욱> 19. 신삼국 시대의 빵빠레
<파토의 쿡찍어 푸욱> 20. 소유냐 존재냐
<파토의 쿡찍어 푸욱> 21. 철이의 마운드

 

 

 

반기문.

 

그가 요즘 대통령 후보로 세간에 오르내린다. 그것도 여당과 야당이 동시에 물망에 올리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된 직후부터 그런 이야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제는 꽤나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려는 모습들이 보이는 것 같다. 진보 성향의 사람들도 '맞아. 반기문이라면' 하며 반색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글쎄다.

 

 

지금은 유엔 사무총장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날리는 지위에 있지만, 10여년 전에는 노무현 정부의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다. 우원이 간접적으로나마 그와 연관된 것은 영국에서의 '이경운 사건' 때문이었다. 물론 대화를 하거나 만난 적은 없고 이경운 사건이 본지 지면을 통해 공론화되자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대해 답변하는 모습을 본 정도다.

 

우원에게 그의 이미지가 그리 좋게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그 자신의 문제라기 보다는 당시 외교부, 그리고 주영대사관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는 참신하게 시작한 노무현 정부 때였고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변화의 기대가 있던 시기였다. 그리고 우원이 들은 바, 일부 정부 부처나 공무원들은 실제로 태도가 열정적이고 개방적으로 변하기도 했었단다.

 

그런데 외교부는 아니었다. 그야말로 복지부동에 무슨 작은 문제라도 생겨서 시끄러워지거나 경력에 누가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그들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인 자국민의 안전 보호에는 도무지 성의가 없었다. 머 오래 전부터 그래왔다고는 하지만, 기관장의 성향에 크게 영향을 받는 공무원 조직의 속성을 고려해 보면 장관인 반기문이라는 이가 변화를 향한 이상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생각해 보면 그가 그런 것을 가질 이유는 별로 없다. 전형적인 시골 우등생 출신인 그는 1962년 고 3, 우리나라가 지지리도 못살던 그 시절에 운 좋게도 한국 대표로 선발되어 백악관에 가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백악관은 고사하고 미국에 가 본 사람도 거의 없던 그 시대니 만큼 이 일이 소년 반기문에게 얼마나 강한 인상으로 남았을지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동그라미 안이 반 총장.

얼핏봐도 키가 작지 않은데, 실제로 당시 한국인으로는

꺽다리에 가까운 178cm. 어쩌면 그런 점이

백악관 행에 선발된 이유 중 하나 아니었을까.

 

이때 케네디가 그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봤고 그는 외교관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시절 우리나라 고등학생이 외교관의 역할이 뭔지 정확히 알았을 것 같진 않고, 행운의 미국행과 평소 좋아하던 영어, 그리고 삐까뻔쩍한 미국의 문물과 케네디와의 만남의 자극 등이 그에게 외교관이라는 목표를 자연스럽게 끌어 냈을 것이다.

 

이런 전후 상황을 보면 그가 원했던 것은 그저 외교관이라는 직업이었다. 못사는 대한민국을 떠나 외국에서 세련되게 생활할 기회를 준다는 면에서 당시 외교관은 지금보다 훨씬 선호되는 직종이었다. 소년 반기문은 국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열망이나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려는 진지한 뜻이 있었다기 보다는 외국 문물을 접하기 좋은 우아한 직업으로서 외교관을 선망하고 목표했을 거다.

 

머 후진국 시골 우등생이 미국가서 대통령 만나고 외교관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을 탓할 이유야 없고, 여하튼 그 목표를 달성했을 뿐 아니라 이런저런 행운과 국제적 이해관계가 겹쳐 외교관의 최고봉이라고 할 유엔 사무총장까지 됐으니 대단하기도 한 건 사실이다.

 

암튼 그렇게 서울대 외교학과를 거쳐 외무고시에 합격한 이후 그의 행보는 경력에 오점을 남기지 않으면서 출세길을 밟은 공무원의 모습이다. 어학 능력이 뛰어나고 기본적으로 부지런한 그는 외교부 조직 내에서 출세 가도를 달린다. 1972 20대의 나이로 인도대사관 부영사가 됐고 85년 총리 의전비서관, 87년 주미대사관 총영사, 92년 워싱턴 주미대사관 공사, 98년 주 오스트리아대사 및 국제기구대표부 대사, 2000년 외교부 차관을 거쳤고 2001년에는 한승수 당시 외무장관이 유엔총회 의장으로 선출되자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이후 외교부 장관을 거쳐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된 건 다들 아는 바와 같다.

 

그는 분명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이고, 본인의 노력과 실력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 점들을 폄하하거나 무시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그런 그가 과연 지금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어울리는지, 정권과 기득권 세력의 주도하에 민주주의와 인권이 뒷걸음질치고 합리성이 실종하고 있는 이 사회에서 건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인물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인물]독재자들 <1> 안토니우 드 올베이라 살라자르

 

기사 - [인물]독재자들 <1> 안토니우 드 올베이라 살라자르

2014. 11. 13. 목요일 돼끼 마지막 독재자, 안토니우 드 올베이라 살라자르 1. 포르투갈의 혼란 1800년대까지 포르투갈은 왕정을 지속했다. 1891년 공화주의자들은 음지에서 튀어나와 포르투라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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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3. 목요일

돼끼

 

 

 

마지막 독재자, 안토니우 드 올베이라 살라자르

 

 

 

1. 포르투갈의 혼란

 

1800년대까지 포르투갈은 왕정을 지속했다. 1891년 공화주의자들은 음지에서 튀어나와 포르투라는 도시에서 폭동을 일으키며 무력 활동을 시작했고, 1908년 리스본 시내에서 돈 카를로스 왕과 돈 루이스 필리프 왕세자를 암살하기에 이른다. 암살 당한 돈 카를로스를 이은 마누엘 왕은 공화주의자들을 탄압함과 동시에 개혁 정치를 펼쳤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개혁정치로 인하여 국민들의 원성은 높아져 갔고, 결국 1910년 10월 4일에 일어난 군사혁명으로 포르투갈 왕정은 막을 내린다.

 

혁명이 끝난 후 공화주의자는 아폰수 코스타를 수반으로 정부를 구축했으나, 각 계파 간의 싸움과 정치인들의 암살, 독재정치, 그리고 왕정복고 주의자들의 반란으로 사회는 난장판이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제 1차 세계대전으로 포르투갈 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게 된다. 결국 공화정부는 사회적 혼란을 해결하지 못하고 고메스 다 코스타 장군을 주축으로 한 군부정권의 쿠데타 아래 종말을 맞는다.

 

고메스 다 코스타 장군

 

 

 

2. 군부정권, 살라자르의 등장

 

군부정권이 들어섰으나 사회는 여전히 혼란했고 평생 군대에서 지내느라 짱구가 짱돌이 된 군인들이 이 혼란을 헤쳐나가기는 무리였다. 결국 코임브라의 경제학 교수 안토니우 드 올베이라 살라자르가 1928년 재무장관으로 임명되면서 포르투갈은 기나긴 독재정치의 그늘 아래에 놓이게 된다.

 

군인들이 주축이 된 정부에서 먹물 좀 먹은 살라자르가 어떻게 최고의 권력자 자리에 올랐는지 궁금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살라자르가 자신이 발탁된 이유를 충실하게 달성했기 때문이었다. 살라자르는 취임 후 4년 동안 디플레이션 정책을 통해서 포르투갈 경제를 재건했다. 당시 살라자르는 자신감 넘치는 말을 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며, 또 내가 가야할 곳이 어딘지도 잘 압니다.”

 

이런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 성공적인 재정 확충으로 살라자르는 군부의 신임을 받으면서 코스타 장군의 뒤를 이은 카르모나 대통령에게 총리로 임명되게 되는데, 여기서 군부 정권은 끝장나게 된다. 군부 정권에는 살라자르만큼 영리한 인물이 없었기에 거의 모든 결제와 정책은 살라자르의 윤허 아래에서만 시행되었고, 살라자르는 막강한 실세로 성장한다.

 

살라자르는 1930년에 헌법을 개정하려는 의도를 내비쳤다. 그의 행동은 1932년 각료 회의 의장으로 선출된 이후 시작되었는데 정부에 의하여 개정된 헌법안을 국민 투표를 통해 통과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 헌법의 일부를 보자면,

 

1. 국가의 원수는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되며, 7년의 임기를 가지고, 원수의 직능과 임기는 어떠한 국회의 투표에서도 제한을 받지 않는다.

2. 공장의 폐쇄나 파업에 의한 경제 활동은 용인되지 않는다.

3. 국가의 주요한 기능에 모든 사회 활동을 조정하고, 장려하고 관리하는 기능을 포함시킨다.

 

쉽게 말해서 자기가 왕 되겠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어이없는 법안 내용에도 불구하고 긴 정쟁으로 정치적 염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포르투갈인들은 결국 1933년에 시행된 국민 투표에서 찬성 580.379표, 반대 5005표, 기권 427,686표를 던졌다. 그리고 기권표는 찬성표로 간주되어 개정된 헌법이 시행됐다. 바야흐로 1933년부터 1974년에 이르는 기나긴 독재정권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독투불패]아스트로엔, 그곳에 내 꼬꼬마 시절을 빚졌다

 

기사 - [독투불패]아스트로엔, 그곳에 내 꼬꼬마 시절을 빚졌다

2014. 11. 13. 목요일 문화불패 cocoa 편집부 주 이 글은 문화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cocoa 님의 글은 2번 더 납치될 시, 삼진 아웃의 원칙에 따라 딴지 필진으로 임명되어 강제 노역에 동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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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3. 목요일

문화불패 cocoa

 

 

 



편집부 주

이 글은 화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cocoa 님의 글은 2번 더 납치될 시, 
삼진 아웃의 원칙에 따라 
딴지 필진으로 임명되어 강제 노역에 동원됩니다.


 

 

 

1. 내 어린 날의 기억

 

얼마 전 하릴없이 인터넷을 떠돌다 이런 글을 봤다. 삼국지 10 모든 능력치가 1인 장수로 전국통일하기. 아 한 번이라도 삼국지를 해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무모한 짓거리인지 잘 알고 있을 거시다. 필시 예사 놈이 아닐 것이다 싶은 생각에 조금 더 읽어보기로 하였다.

 

짠하다

 

마치 플레이어를 그대로 옮겨 가방만 메어놓은 듯한 외모에, 리얼한 연령, 안습 능력치, 열전 하나하나가 다 살아있는 것이, 마치 내 주변 놈들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니고 내 주변 놈들. 특기라고는 '주호'밖에 없는 그런 넘들. 짠하다. 짠하다 못해 이거시 내 이야기인가? 싶은 착각마저 들고 감정이입이 될 뻔 하였다. 진정하고 다시 글을 읽어나가던 찰나에, 나으 예리한 직감이 살아났다.

 

"혹 이거슨 대선후보까지 올라서지 못한 유시민을 디스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 아닐까?!"

 

실로 경천동지할 예리함이 아닌가. 소시민에서 유시민을 생각하다니. 스스로 감탄을 하며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글을 천천히, 꼼꼼히 읽어 보았다. 그러나 어떤 계략에 빠졌는지 유시민은커녕 소시민의 처량한 삶에 감정이입이 되어 짠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한참을 읽어 내려갔다.

 

소지금을 몰수당한 소시민

 

그렇게 소시민의 플레이를 한참을 보다 문득 이 사람이 참 부러워졌다. (소시민 말고, 이거 플레이했던 그 플레이어. 나 그 정도는 아니다.) 이렇게 재밌게 게임을 할 수 있구나. 재밌겠다.

 

"아...그러고 보니 나도 이렇게 재밌게 게임을 즐기던 때가 있었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시다. 그렇다. 나도 밤을 새워가며 진정으로 게임을 즐기면서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생각이 새록새록 올라오기 시작하여 유시민 디스를 찾는 나의 원대한 계획은 잠시 미뤄두고, 내가 참 좋아했던 게임 소식을 찾아보았다. 그래서 그때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오래 묵은 기억을 풀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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