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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마빡 이야기/2014

딴지일보 마빡 2014. 11. 19

by 꾸물 2022.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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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망명자 <1>

 

기사 - [사회]망명자 <1>

2014. 11. 19. 수요일 P작가 편집부 주 아래 연재물은 딴지일보 편집부로 전화를 걸어온 한 필자와 오랜 시간 상담 끝에 본지 마빡에 올리기로 결정한 기고문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북한에서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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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9. 수요일

P작가

 

 

 



편집부 주

아래 연재물은 딴지일보 편집부로 전화를 걸어온 한 필자와 
오랜 시간 상담 끝에 본지 마빡에 올리기로 결정한 기고문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북한에서 스파이로 길러졌다 활동 도중 
숙청된 남자로 
필자는 그 남자와의 만남을 
본지를 통해 풀어낼 예정입니다. 
 
편집부 확인 결과, 
필자는 오랜 시간 취재를 직업으로 삼아왔고
그의 본명으로 된 다양한 기사 및 취재물을 
여러 통로를 거쳐 직접 확인하였기에 
아래 글을 마빡에 올립니다. 

연재물 도중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이 있을 수 있기에
필자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올린 점, 
독자제위의 양해바랍니다. 


 

 

 

반신반의했다.

 

한국에 있을 때 만났던 '탈북자'들은 국적이 대한민국이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아니, ‘미수복지역에 있던 이들이 주민등록증을 회복하고 대한민국 사람이 된 것이다. 국정원의 관리 하에 있었지만, 형식상으로는 대한민국 사람들이었다.

 

형식이라는 껍질의 무게는 그들의 두 어깨를 짓눌렀고, 내부는 '난 대한민국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차지하고 있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모습 이랄까?

 

2001~2002년 사이에 만났던 탈북작가가 내 생에 처음 본 북한 사람이었다. 북한에서 10년 넘게 작가 생활을 했던 사람이었지만, 나름 지식인이었기에 남한 사회 적응을 위해, 아니 살아남기 위해 그는 자신의 본성을 버려야 했다. 아니, 속여야 했다. 그의 거짓말은 유치원생이 부모에게 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느낌은 달랐다. 마치 쓴웃음 같았다.

 

 

멍했다흔들리는 트램 (유럽에서 많이 운행하는, 도로에 깔린 레일 위를 달리는 전차_편집자 주) 안에서 나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했다.

 

그의 국적은 뭘까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대한민국프랑스시작부터 모호했다.

 

그의 출신을 듣자 내 가슴에 맷돌 하나를 얹어 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그 맷돌이 돌면, 갈리는 건 내 심장일 것이다. 내 안에서 그를 만나지 말란 말이 들렸다. 이성을 앞세우니 그와의 만남이 부담스러웠지만 감정을 앞세우니... 호기심이 날 부추겼다일생에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였다.

 

내가 느낀 긴장감의 강도는 십 여년 전 이맘때 마포의 허름한 족발집에서 홍세화 선생을 기다릴 때 보다 몇배나 더 강했다. 망명이라는 선택을 한 이의 얼굴은 어떠할까? 그는 정말 글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인물일까를 고민하던 그 찰나의 복잡함그 복잡함의 몇 배 무게가 내 심장을 옥죄였다.

 

그는 내가 만나 본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공산이 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출신 정치적 망명자였다.

 

 

 

 

 

 

[문화]한국 음원산업의 미션-'다양하라'

 

기사 - [문화]한국 음원산업의 미션-'다양하라'

2014. 11. 19. 수요일 춘심애비 [음원산업에 대한 깊은 빡침] 지난 기사 ['바보 같은 이들을 위한 시대착오적인 음원 서비스를 원한다' By 곰사장] 1. 복기 복기용 지난 기사 [2011.11.08 들을만 한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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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9. 수요일

춘심애비

 

 

 

 

 

 

1. 복기

 

복기용 지난 기사

 

[2011.11.08 들을만 한 음악 실종사건의 전말]

[2014.04.16 언제적 멜론이 아직도 깡패인 이유]

 

 

필자가 과거에 썼던 2개의 기사다. 두 기사의 주제를 한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2000년대 음악시장의 위기는 단순히 ‘불법 다운로드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음원당 객단가가 낮아진 새로운 시장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의 시행착오에 가깝다.

 

- 나름대로 회생하고 있는 해외 음악시장에 비해, 한국 음악시장이 계속 좆같은 이유는 정부관련부처- 저작권협회- 멜론류 서비스들의 카르텔 때문이다.

 

종합하면, 2000년대 냅스터의 등장과 mp3라는 파일매체의 보급이 가져온 급격한 환경변화로 인해 세계 각국은 각각 다양한 방식으로 적응을 해나가야 했고, 그 중 한국은 통신사가 음원시장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시장을 아작냈다는 얘기겠다. ‘한국 음악시장을 왜 아작났다고 하냐. 케이팝 열풍도 모르냐.’고 할 사람도 있겠다. 그런 분덜은 공연과 굿즈(말하자면, 아이돌들의 로고나 사진 등이 인쇄된 캐릭터 상품 등)와 같은 수입원을 제외하면, 음악시장 호황기인 90년대 김건모, 신승훈, 조성모보다 소녀시대, 빅뱅, 엑소의 수익이 더 적다는 사실을 염두해주길 바란다.

 

 

 

 

 

[회고록]나는 왕따다 <3>

 

기사 - [회고록]나는 왕따다 <3>

2014. 11. 19. 수요일 그냥불패 타락한아기사슴 편집부 주 이 글은 그냥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관련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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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9. 수요일

그냥불패 타락한아기사슴

 

 

 



편집부 주

이 글은 그냥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관련 기사

나는 왕따다 <1>
나는 왕따다 <2>


 

 

 

글 쓰는 속도가 굼뱅이라기 보다, 군대에서 컴퓨터 할 시간이 적은 게 연재가 뜸해지는 가장 큰 이유겠다. 아니 컴퓨터하는 시간은 있는데, 수기를 옮겨 적는 시간이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눈 떠보니 8월도 꺼지고 있었다. [편집자 주: 이 글은 8월에 투고되었습니다만 11월 중순이 된 지금에야 올려드립니다. 몬난 편집자를 둔 사슴님에게 정말, 미안하다!]

 

 

 

한 여름밤의 술

 

0. intro (짝, 사랑이야기)

 

7월 중순 여름날 술 자리, 입대 1주년을 맞아 그리고 필자의 첫 짝사랑 K양의 생일 기념을 맞아 통칭 구인회 중 여덞 명이 모였다. (나머지 한 명은 전방에서 근무 중이다.) 나는 이제 휴가 나와도 나왔다 말을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날 몰래 가서 모두를 놀래키고 착석한 거였다. 

 

사씀: 오늘 누구 땜에 모인거지?

 

K양: 야! 나 생일이라고!

 

사씀: 어, 그래 축하한다.

 

서로 툴툴대며 자리를 시작했다. 

 

벌써 2번째 생일을 챙겨주다니, 처음 봤을때 K양은 그리 예쁜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안경을 벗은 모습을 보고나니 얼마나 예쁘던지...  드라마에 종종 나오는 그런 장면처럼 빛이 났는데 지금은 별로 그런 느낌이 안 든다.

 

이제 고개를 들면...

 

대학 새내기 때, 둘이 밥도 먹고, 그녀 따라 교양도 바꾸고, 집 가는 방향이 같아서 우연인 척 몰래 기다리고 했었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미쳤냐고 버럭 화낼 거 같다. 물론, 이렇게 써놓고 막상 상황이 되면 또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러다 경쟁자가 나타났다. 한살 많았던 남자 놈, 그 놈은 정말 놈이다. 나쁜 놈... 아니 뭐, 나 보다 잘 생기고 키 큰 어쨌든, '놈'이라 칭하자.  

 

어영부영 때는 학교축제에 이르게 된다. 그 '놈'을 재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은 했던가. 축제가수들의 무대를 그녀와 단 둘이 보고난 후 학교 편의점에서 메로나 두 개를 사서 벤치에서 까먹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근래 메로나컵이 '와' 대신 나오는데 나는 '와'가 더 좋다. 메로나컵이 달콤하지만 여름과 같이 끈적거린다면 '와'는 말 그대로 아이스 샤베트 같다. 특히 PX에서 구할 수 있는 군대 짬밥 아이스류 중에서는 거의 최강자라 생각하는 바이다. 입에 넣으면 그저 단 한 마디 밖에 나오지 않는다. '와~'

 

K양: 나 있잖아, 그 사람(놈)한테 고백 받았어.

 

사씀: ...

 

그 당시를 돌이켜 보면 두려웠고 싫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에 여자가 되는 것도 내가 고백해서 거절당해 친구로도 지낼 수 없는 상황에 말이다. 겁쟁이였다. 그래서

 

"잘해 보든가." 

 

퉁명스레 내 뱉었다. 여러 날이 지나서 그녀는 그 놈의 여자친구가 되었고,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으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스무살의 나는 딱 그 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이었던 거 같다. 지금이라면 "내가 더 널 좋아하는데, 나는 어떠니?"라든가. '입술박치기'라도 해서 빰이라도 맞든가 할 텐데. 

 

현재 K양은 그 놈과도 헤어지고 26살 군필자와 사귀고 있다고 한다. 하기사 한참 군필자가 좋을 때인 거다.

 

 

 

1. 24, 26, 30 (그래? ... 그렇구나.)

 

한참 무르익었던 자리의 분위기가 시들어 갈 즈음에 Y양의 발언이다. 

 

"여자나이 스물넷에 졸업하고 여섯 쯤에 공무원되어서 서른 쯤에 결혼하면 최상이야!"

 

 

속으로 '거참 재밌는 말이네'하며 한마디 툭 내 뱉었다. 

 

"그으래?" 

 

실제로 그럴까? 군 생활하며 취미 활동 등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학과와 꿈 그리고 목표를 물어본다. 물론 이 자리의 8명의 친구들에게도 물어봤었다. 한 명도 정해진 꿈이 없댄다. 고작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취업과 졸업을 대비해, 토익과 전공공부를 하는 사람, 거기 좀 더 나은 녀석은 동아리 활동이라든가, 각자의 연애사업을 충실히 해나가고 있는 정도였다. 물론 위에 열거한 것들 중 하나도 안 한, 혹은 못 한 나 같은 군인도 있지만 말이다. 어쩌겠는가. 이렇게 갈리는 것도 내 나이 때의 남과 여라고 생각한다.

 

글쎄. 말이다. 공무원... 밥그릇은 정해져 있는데 남녀노소 어중이 떠중이 다 덤벼들면, 정해진 수 만큼, 정원만큼 지 밥그릇 찾고 나머지는 굶어 죽으라는 게 아닌가? 물론 본인 선택에 올곧이 책임을 지고 사는 게 어른이라고도 말하지만,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갑한 현실 속에서 공무원이 꿈도 희망도 없는 이들에게 어느새 '갑'이 되어있는 건 아닌지. 내 주위 여자들 중에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며 카랑카랑하게 말할 여자는 없어도, '나, 스물넷 졸업. 여섯 취직. 서른 결혼한 여자야!'라고 말할 여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를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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