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거실에는 8BIT 애플 컴퓨터가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놈은 그냥 부팅하면 베이직이 실행됐다. 그 베이직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면서, 나는 언젠가부터 생각했던 것 같다. 게임을 만들어야겠다고.
인생이 그렇게 흘러갔다. 친구와 게임을 만들고,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하고, 게임 회사에 입사하고... 10년 전, 면접에서 저 베이직 얘기를 할 때만 해도, 나는 게임 만들기가 정말 재밌을 거라 생각했다. 내 인생의 꿈으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10년 후, 나는 게임을 만들고 있었다. 회식 자리에서 후배들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그때 내가 그 애플만 없었어도 의대를 갔을 텐데 말야. 역시 부모님 말 들어서 나쁠 것 하나 없다니까."
3.
내 첫 게임 제작팀은 6명 정도의 소규모 팀이었다. 우리의 모토는 단순했다. 기존의 게임 리소스를 가지고, 소규모의 인원으로 빠르게 카피캣을 뽑아내자. (놀랍게도 당시 우리가 벤치마킹, 아니 베끼려 한 게임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돈을 잘 벌어들이고 있다. 카피캣의 목표 자체만은 정말 잘 설정했다.)
당시 나는 기획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놀랍게도 메인 기획과 프로그래밍을 겸하는 롤을 맡았다. 팀의 리드 개발자에 준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역량은 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일정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었다.결국 팀의 인원이 부족하다는 판단 아래, 프로젝트가 접힌 다른 팀과 합치게 되었다. 6명이었던 우리 팀은, 20명 가까운 제법 규모 있는 팀이 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대규모의 팀이 된 이 시점에서 우리의 목표는 나가리였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돌이켜보면, 기존의 리소스를 가지고 빠르게 게임을 뽑아내자는 생각 자체도 좀 거시기한 것 같다. 만들다 보면 결국 다 만들게 되더라구...)
어쨌든 새로 합류한 팀의 시니어 기획자분과 같이 일하기 시작하면서, 불협화음까지 발생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흔히 말해, 개념이 없었다. 운동할 때의 트레이닝복과 슬리퍼를 회사에 입고 다녔다. 게다가 근태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주위 분들이 보기에 좋아 보일 리가 없었다. 그리고는 시니어 프로그래머 분이 복장에 대해 지적하자"일만 잘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라고 대꾸했다. 퇴사하면 군대에 가야 하는 병특 신분의 주니어 사원이 저런 말을 하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아무튼 이런 마인드로 다른 팀원들과 화합이 잘 될 리가 없었다. 나는 새로 합류한 시니어 기획자분과 정말 지긋지긋하게 싸웠다. 프로젝트 기획의 메인이 일단은 나였지만, 시니어분이 보기엔 어림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일종의 기선 제압의 의미도 있고 하여 서로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그 기획자분도 정말 갑갑하셨을 거다. 기획 경험이라고는 없는 풋내기가, 근거라고는 없는 내용을 들고 와서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러다 보니 의견 충돌을 넘어서 감정 충돌까지 이어졌고, 거의 주먹다짐이 오가기 직전까지의 상황이 매일 연출되었다.
결국,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기획을 그만두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 짤린 게 용하다. 그리고 나는 (그나마) 잘하는 프로그래밍에만 전념하다가, 병특 종료와 함께 복학하며 자연스럽게 회사를 그만두었다.
4.
그때 나는 기획이라는 일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때 생각하던 기획은 이렇다.
'남을 설득할 일이 없는 PD'의 롤.
실제로 게임을 만들면서 기획이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팔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규모 MMORPG를 만든다는 가정 하에, 어떻게 보면 가장 힘들고 재미없고 고생하는 파트가 기획이다. 남을 설득하는 것, 내가 잘하기 어려운 많은 것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만약 기획을 했다면, 과연 내가 그나마 밥값은 하는 개발자가 될 수 있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행운아였다.
첫 번째 행운은 기획으로 지원한 회사에서 채용 계획이 없어지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프로그래머의 길을 가게 된 것.
두 번째 행운은 내가 들어갔던 개발팀이 너무나 좋은 분들로 이루어진 너무나 좋은 팀이었다는 것.
내가 7년간 몸담았던 프로그래밍 팀은 지금 돌이켜봐도 정말 이상적인 팀이었다. 내 평생 그런 팀에서 다시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로를 부단히 비판하되 비난하지 않는 시니어들. 확실한 성과를 내며 비전이 보이는 프로젝트.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실수를 하지 않을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팀의 정책. 윗선에서 내려오는 비난과 억지를 막아주는 우산 역할을,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너무나도 열심히 해주셨던 팀장님들. 그런데 어느새 우산은 다 사라지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우산이 되어 있었다.
5.
개인적으로, 매니저는 정말 재미없는 일인 것 같다. 특히나 좋은 팀에서 코딩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 즐거운 일인지를 감안한다면, 그 좋은 팀이 유지될 수 있게끔 노력하는 매니저 역할을 맡는 것은 롤러코스터에서 올라가다 추락하는 것과 진배없다.
코딩과 매니징은 야구 선수와 은행원이 하는 일만큼이나 다르다. 코딩을 하다 보면 결국 언젠가는 매니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은, 참으로 시발스러운 일이다. 뭐라 적당히 표현할 말이 없군.
매니저가 적성에 맞는 분들도 물론 있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매니저가 정말 맞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았다. 잘 하지도 못하고, 별로 재미도 없고.
앞서"일만 잘 하면 되는 거 아니오"같은 충격적인 발언만 봐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사회성이 썩 좋진 않은 편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사람을 대하는 일이 내 강점이 되어본 적은 별로 없다.
사실 개발자들이 대부분 그렇긴 하다. 그냥 코딩하는 것이 재미있지, 사람을 설득하고 달래는 것을 좋아하는 개발자는 별로 없다. 매니저 역할을 1년 정도 하다 보니, 그제서야 내 위의 우산들이 다 사라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팀장님들이 우산 역할을 하면서 참 재미는 없었겠구나, 싶었다.
나는 그렇게 계속 게임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게임 만드는 게 재미있는 걸까? 그냥 이 좋은 팀에서 코딩하는 게 재미있었던 걸까?
6.
이때가 대략 2011년 정도였다. 회식 자리에서 쓸데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의대 얘기를 하던 시절. 이 무렵, 나는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이유는, 두 가지 정도였다.
① 이 정도면 아직 혼자 만들어볼 만 할 것 같아서. ② 일이 재미없는데, 그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다시 ②번에 대해 이유를 달자면, 간단하다. 내가 혼자 게임을 만들면, 나는 '설득이 필요 없는 PD의 롤'을 할 수 있다! 이거야말로 내가 꿈꿔온 '재미있는' 개발의 길이 아닌가. 하지만 당시 하지 못한 이유도 두 가지 정도 있었다.
① 당장 회사를 그만둘 용기는 안 나서. ② 어머니의 병원비 부담을 회사에서 덜어주고 있었기에.
당시 어머니는 췌장암으로 치료를 받고 계셨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시며 상태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셨기에, 만만치 않은 병원비가 발생했다. 이 중 꽤 많은 금액을 회사의 복지 정책 덕에 돌려받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회사에 너무나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정말 잘 된 복지는 직원을 잡아두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아픈 어머니에게 부담을 드리면서 회사를 나갈 수는 없었다. 창업은 고사하고,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조차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만약 이직의 조건으로 연봉을 저 병원비 두 배만큼 인상해 준다고 치자. 당신께서 아들이 생돈을 들여 병원비를 보탠다고 하면? 이건 기분 문제다. 안 그래도 우울해하시는 어머니께, 저런 마음의 짐까지 지워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 스스로 그만큼 결심이 확고하지 못하기도 했다. 당장 안정적으로 월급이 나오는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서 창업할 만한 용기까지는 안 났던 것이다. 딱히 같이 하자고 해볼 만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인생에 만약은 없지만, 생각은 해볼 수 있겠지. 만약 당시 어머니가 아프시지 않았다면 어떨까? 글쎄, 창업했을 가능성은 반반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그때 시작했더라도, 게임을 끝까지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 같다.
이유는 아래와 같다.
7.
나는 어릴 적 게임을 만들고자 했을 때부터, 막연하게 꿈꾸던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림 잘 그리는 여자분과 결혼하는 것.
나는 아트에 전혀 소질이 없다. 달걀을 못 낳아도 달걀이 썩었는지 안 썩었는지만 알면 좋겠지만, 나는 이게 달걀인지 타조알인지 구분을 못 할 정도다. 그래서 게임을 만들고자 할 때,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은 언제나 아트였다. 아무리 작은 게임이라도,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머드가 아닌 이상 아트는 반드시 필요하다. 어디 필요하다뿐이겠나, 최초 진입 유저의 숫자를 결정하는 것이 아트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기획과 프로그래밍보다도 더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임의 핵심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게임 제작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기획도 내가 하고, 프로그래밍도 내가 한다 쳐도, 아트를 내가 그릴 수는 없다. 만약 저 무렵에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더라도 완성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최소한 달걀과 타조알 정도는 구분해야 외주를 주더라도 줄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그림에 조예가 깊은 아내와 결혼하게 된 것은 정말 내 인생의 큰 행운이었다.
8.
아내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블로그였다. 그리고 우리가 친해진 계기는 놀랍게도 디아블로였다.
아내는 게임을 굉장히 좋아하는 하드코어 게이머다. MMORPG를 할 때는 서버에서 손꼽히는 공격대에서 힐러로 활약했을 정도로 게임을 잘 하고, 좋아한다. 디아블로2 역시 굉장히 열심히 즐겨서, 당시 여대에서는 흔치 않은 학사 경고를 맞고 무려 학장과 면담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8회 연속 학사 경고를 맞았지만 전화 한 통 오지 않았지... 1년만 늦게 입학했어도 학교에서 제적됐을 테니, 아무리 생각해도 여러모로 운 좋은 인생인 것 같다.)
아무튼 아내는 디아블로3 역시 나오자마자 입술이 다 찢어지고 부르틀 정도로 밤을 새가며 플레이를 했고, 게임에 미치면 세상을 잊어버리는 나 역시 회사와 집을 오가며 다른 팀에 엄청난 폐를 끼치면서 게임을 열심히 했다. 그렇게 같이 게임을 하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사실 결정적으로 우리가 만나게 된 이유는 디아블로 3가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서였다. 게임에 약간 시들해졌을 무렵, 오프라인에서 만난 우리는 반해버렸고, 2개월도 되지 않아 결혼 날짜를 잡게 되었다. 아내는 지금도 자신이 그림을 그릴 줄 아니까 부려먹으려고 결혼한 것 아니냐고 따져 묻지만, 물론 절대 그렇진 않다. 정말 운 좋게도 마침 사랑하게 된 사람이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었던 것뿐이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일들은 행운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1개월도 되지 않아 임신을 했다.
9.
어머니는 이 무렵 많이 쇠약해져 계셨다.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시는 것이 눈에 보였다. 우리는 일단 임신 사실을, 안정기인 16주 정도가 지날 때까지는 숨기기로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병원에서 어머니가 질문을 던지셨다.
"내가 어제 꿈을 꿨는데... 하얀 거북이가 나한테 와서 안기더라고. 혹시 좋은 소식 있는 거 아니니?"
너무 당황해서 대충 얼버무렸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참고로 아내가 이 무렵 꾼 꿈들은 대부분 개꿈이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꿈은 도마뱀을 돌로 쳐서 죽이니까 도마뱀이 무한정 증식하는 꿈이었다고 한다. 이 꿈을 태몽으로 인정할 수는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어머니가 대신 꾸신 하얀 거북이 꿈이 아들의 태몽이 되었다. 아들을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크게 기뻐하시지는 않으셨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나기 2달 전,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10.
나는 어릴 적 몸이 참 약했다. 감기라도 한번 걸리면 천식 때문에 쌕쌕거리며 호흡이 곤란해지곤 했다. 그 감기를 365일 중 200일 정도 달고 살았다. 학업이 힘들 정도였던 나를, 어머니는 말 그대로 업어서 키우셨다. 저 200일 중 100일 정도는 어머니 등에 업혀 등교했다. 20kg이 넘는 8살짜리를 매일같이 500미터씩 업어서 데려다 주시곤 했다.
결혼식 때 이미 많이 마르시고 쇠약해지셔서 가지 못할까봐 걱정하시던 모습, 의사가 하루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고 했을 때 기뻐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소화도 제대로 못 하시면서 결혼식에서 식사를 얼마나 즐겁게 하시던지...
그래도 가장 예뻐하던 막내아들 결혼식에 오실 수 있었던 것을 축복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더라. 이왕이면 두 달만 더 사셔서 그렇게 예뻐하던 막내아들을 꼭 닮은 손자 한번 안아보고 가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두 달 뒤, 아들이 태어났다.
11.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이 흔한 말이 그처럼 절실하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2013년, 나에겐 정말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다. 배우자를 맞이했고, 어머니를 떠나보냈고, 아들을 안았다.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다. 한번 해보고 싶었던 걸 진짜 이제는 꼭 해봐야겠다고. 혼자서 게임을 만들 수 있을 때, 만들어보자.
12.
사실 때가 좋진 않았다. 요즘은 유명한 말이 된, 아는 형님이 늘 하던 말이 있다."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거라고."
2013년 중순에 모바일 게임을 혼자서 만들어보겠다고 하는 건 진짜 늦은 거였다. 이미 당시 모바일 시장에 슬슬 미들 코어급의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시장의 경쟁도 점점 과열되는 추세였다. 자본도 별로 없는 개인이 게임을 만들겠다고 하는 건 그냥 정말 '나 한 번 게임이 만들어보고 싶었소'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힘들었다. 35살의 나이에 롤 프로게이머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보다 썩 나을 게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적기라고 생각했다. 왜냐고?
지금 내가 이걸 하고 싶으니까.
단순한 이유지만 사실 그게 무엇보다 중요한 거다. 내가 이걸 정말 미치도록 하고 싶은가. 미치도록 하고 싶다면, 하게 되는 거다. 예전에도 돌이켜보면 마찬가지였다. 결국 내가 이걸 해보겠다는 간절함이, 했을 때의 리스크에 비해 더 약했던 것뿐이다.
하지만 때가 좋지 않은 건 시장 상황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출산을 앞둔 아내와 막 결혼한 가장이었으니까.
13.
게임을 만들기 전, 많은 사람들의 여러 가지 조언이 있었다.
"지금 모바일 시장은 완전 레드 오션이야. 진짜 안 좋은 생각 같은데?"
"뭐, 한번 해보는 것도 괜찮겠지. 너무 크게 목표를 잡지 말고 해봐."
"혼자 하면 나태해져서 도저히 일정 맞출 수가 없을 걸."
하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다음과 같다.
"넌 진짜 니 아내에게 감사해라. 여자가 가장 보수적인 스탠스가 될 때가, 임신하고 출산을 앞두고 있을 때인데, 흔쾌히 한번 만들어보라고 하다니. 진짜 대한민국 1%의 아내다."
솔직히 그렇다. 아내는 딱히 별로 놀라지도, 반대하지도 않고, 해보고 싶으면 해보라고 했다. 해보고 싶은 건 해봐야 한다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시작하게 되면 얼마나 지출이 더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아내는 정말 대한민국에 별로 없을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지금까지도 감사하고 있고, 와이프는 이런 와이프가 어딨냐며 자신에게 더 감사하라고 하고 있다.
아무튼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해보면서, 나는 선택지를 얻을 수 있었다. 원래는 회사를 그만두고, 1년 정도 본격적으로 작업한 후 게임을 런칭할 할 생각이었다. 비슷한 길을 가고 있던, 다른 선배의 반응은 이랬다.
"너 혼자 하면 좀 힘들 거야. 팀이라면 몰라도, 혼자 한다면 말리려고 온 거야."
"와이프랑 할 건데, 애기가 이제 태어나요."
"그러면 진짜 안 될 것 같은데?"
지난 1년간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분명히 그렇다. 갓난아기를 돌보면서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정말 안 될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건 정말 아기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이나 선택할 만한 무모한 일이었다.
하지만 딱 하나 유리한 점이 있었다.
"그런데 그러면 회사를 그만둘 필요 없이, 육아휴직을 하면 되잖아?"
"육아휴직이요? 남자가?"
"왜, 남자도 할 수 있어. 회사를 그만둘 각오가 되었다면 육아휴직을 못 할 건 뭐야? 만약 실패하면 회사로 돌아가면 되니까, 더 안전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그렇다. 어차피 1년을 작업할 거면, 육아휴직은 퇴직보다 불리한 점이 단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아들이 태어나고 2주가 지난 후,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놀란 가문의 야심작 <인터스텔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때아닌 물리학 열풍에 허덕이고 있다. 영화 개봉 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에 대한 칼럼들이 웹을 장악했다.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쁘고, 학창시절 수학과 물리를 제일 싫어했던 사람들이 '시발 내가 이딴 걸 이해 못할 리가 없어!'라는 마음으로 남몰래 블랙홀, 웜홀, 특수상대성이론, 일반상대성이론 등등의 키워드로 장식된 텍스트를 읽어댄다. 그 와중에 보다 보면 이게 지금 알고 쓴 건 맞는지 심히 의심되는 칼럼들도 있고, 어차피 대부분은 이해가 안되기 때문에 그런 병맛 칼럼들이 섞이면서 상대성이론은 마치 토르(Thor)가 사는 아스가르드처럼 아득히 멀어져만 간다.
이를 긍휼히 여긴(그리고 자신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춘심애비는, 왜 이게 이토록 이해가 안가는지, 혹은 어떤 칼럼을 병맛 칼럼으로 보면 되는지를 널리 알리고, 얄팍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야매로 이해한 방식을 설파함으로써 먹고 사는 문제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려 한다.
몇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첫째, 이 글은 상대성이론을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글이 아니다. 나름 재밌게 읽으려면 상대성이론을 설명하는 칼럼이나 위키백과, 또는 리그베다위크를 읽고 나서 이 글을 읽기를 추천한다. 이미 상대성이론에 대한 상식이 있다면 상관 없음. 둘째, 필자는 그냥 무지랭이 ㅂㅅ이다. 물리학의 ㅁ도 모르는 인간이 그냥 막 던지는 글이므로 틀린 얘기일 확률이 100%에 수렴한다. 어디서 이거 읽고 아는척 하면 나랑 같이 ㅂㅅ취급 당하는거다. 그냥, 재미로만 보자, 재미로만. 그런 의미에서 전문가들의 각종 태클 대 환영. 이건 본격 물리학 어그로다.
암튼 시작해보자.
0. 서론
상대성이론에서 말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빛의 속도 등은 다덜 알다시피 물리학이라는 학문에서 사용하는 개념이다. 물리학은 기본적으로 물질, 그것이 만들어내는 운동, 그리고 그 운동을 만들어내는 힘을 연구한다. 국어사전에서는 물리(物理)를 '모든 사물의 이치'로 정의한다. 즉, 물리학은 '인간 세계'가 아니라 그냥 '이 모든 것의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인 셈이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부분은, 그 연구를 '사람'이 한다는 것이다. 즉, '이 모든 것의 원리'가 목적어고, 주어는 '사람'이다. 주체인 '사람'과 객체인 '이 모든 것의 원리' 중에 객체에만 집중한 나머지 주체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그 문제가 어떤 문제냐고? 세 살배기 꼬마애한테 '꽃에 밥주자'라고 할 때 그 꼬마가 쌀로 지은 밥을 꽃에게 들이민다면 꽃이 수저들고 그걸 처묵처묵 할 리가 없잖은가. 처묵처묵이라는 행동을 할 주체는 꽃이므로 꽃에게 어울리는 밥을 줘야 꽃이 그걸 먹는다. 꽃이라는 주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의 밥을 줘야 처먹는다는 말.
그러면 많은 분덜이 놓치고 있는 인간의 특성은 무엇일까. 흔히 인간의 감각은 5가지로 구성된다고들 한다. 청각, 후각, 촉각, 미각, 그리고 시각. 여기서 가장 지배적인 감각은 뭐니뭐니해도 시각이다. 최소한 지금 얘기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그렇다. 상대성이론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간과 공간일텐데, 시간이라는건 어차피 오감으로 인지하는 대상이 아니고, 공간은 누가 뭐래도 시각을 통해 인지되니까.
그렇다면 시각의 특성 혹은 한계를 생각해보자.
다덜 알다시피 시각이라는건 기본적으로 망막에 맺힌 상이 시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되면서 지각된다. 여기서 중요한건 망막이다. 망막이라는 일종의 필름에 어떤 이미지가 맺히는가를 통해 인간은 시각적인 지각을 한다. 그리고 이 망막은 일종의 구부러진 '면'이다.
이 기사를 클릭할 독자덜이라면 '면'이 2차원 개념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터. 결국 인간의 시각은 2차원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다. 2차원은 2개의 축으로 구성되는 거고, 그러므로 인간은 '상하','좌우'라는 2개의 축 개념을 쉽게 인식한다. 여기서 보편적으로 인간의 눈이 2개라는 점, 그리고 수정체를 통해 촛점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 이 2가지 특징을 기반으로 인간은 앞과 뒤라는 1개의 축을 추가로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의 눈은 3개의 축, 즉 3차원 지각이 가능하다.
이렇게 상하, 좌우, 전후 3개의 축으로 구성된 존재는 우리가 따로 생각이란 걸 할 필요 없이 바로 인지할 수 있다. 생판 처음보는 모양의 뭔가가 내 앞으로 돌진해오면 우린 아무 생각 없이 일단 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3개의 축으로 구성되지 않은 존재나 힘은 우리가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없다. 그 중에 냄새, 감촉, 소리, 맛으로 표현이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추상적인 존재나 힘은 아예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가 없다. 그런 경우 우리는 '사고력'을 활용한다.
추상적인 것을 처리할 수 있는 대뇌피질 덕분에 우리는 시간이라는 걸 확실히 존재한다고 여기고, 심지어 그 시간의 흐름을 인지한다. 시간은 분명 오감 중 한가지로 처리되는 게 아니지만, 우리는 시간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결국 3차원을 초월하는 고차원의 존재나 힘을 인지하고 그에 대해 생각하려면 전적으로 우리의 사고력에만 기반해야 한다.
하지만 이 사고력이라는 건 기본적인 역량 차이라는 것도 있거니와, 숙련도 및 경험의 양에 따라 매우 달라지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이지가 않다. 보편적이 되려면 그 사고력을 통해 알게 된 어떤 진리를 오감 중 하나로 특히 시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3D 영상의 정확한 원리를 잘 모르고 컴퓨터와 인터넷, 네트워크의 이론적 기반을 잘 모르지만 그것들의 존재를 보편적으로 공유하고 있는건, 어쨌든 시각으로 또는 다른 감각을 통한 경험으로 그 원리와 이론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성 이론이 쉽게 이해가 안되는 거다. 상대성 이론은 기본적으로 공간과 시간이 마구 변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둘을 처리할 수 있는 감각이 없으니까. 감각도 없는데 지구에서는 그 이론을 보편적 경험으로 만들어낼 수 없으니까.
그러므로 상대성 이론에서의 소위 '공간의 휨'을 이해하려할 때, 머리속으로 눈앞의 공간이 휘는 모습을 상상해봤자 별로 의미가 없다. 애초에 4차원 이상의 고차원은 그렇게 시각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인지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각을 가장 중요한 인지도구로 사용하는데 상대성 이론은 그런 시각적 경험으로 이해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서, 그래서 이해가 잘 안되는거다.
앞서 말한 인간의 시각적 특징 이외에 또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건, 인간이 '언어'라는걸 기반으로 사고한다는 점이다. 안그래도 헷갈리는데 이거 땜에 졸라게 더 헷갈리는 문제가 좀 있다. 게다가 그 언어란 것도 문화권별로 다 다르다보니, 어느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더 불리한 점이 있기도 하다.
1. 우주와 Space
보통 '우주'하면 이런 그림을 떠올린다. 검은 바탕에 반짝이는 별들이 무수히 떠있고, 가끔은 푸르딩딩 불그스름한 구름 같은게 막 있고, 응? 그래서 막 그게 말 대가리 처럼 생기면 말머리 성운이고 막, 응?
한국어를 기준으로 하면 우주라는 건 마치 '지구 밖' 같은 의미를 담는다. 실제로 우주라는 단어는 철학, 수학, 물리, 천문학 모두에서 다루는 개념인데, 이 중 눈에 보이는 건 천문학적 우주인 '별이 떠 있는 검은 하늘' 뿐이라서 아무래도 우주라는 말을 할 때 우리는 지구 밖의 검은 하늘로 가득한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 수학, 물리학적인 개념에서의 우주보다 천문학적인 우주를 더 쉽게 받아들인다.
근데 다덜 알다시피 영어로는 이게 Space다. 우리 말로 '공간'이라는 말과 같은 단어를 쓴다. 즉, 우리가 '우주'라는 말을 쓸 때, 사실은 그게 개념상으로 '지구 밖'이 아니라, 그냥 끝을 알 수 없는 공간의 어딘가를 말하는거다.
그러므로 일단 이런 언어적 특징에서 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주'라는 말은 '우리가 사는 지구를 제외한 나머지'가 아니라, 그냥 '이 모든 것'이다. 앞으로 이 글에서도 '우주'라는 말이 나오겠지만, 그 말을 볼 때 이 고정관념을 깨고 봐야한다. 그래도 고정관념을 깨기 어려운 분덜을 위해, 되도록 '우주'라는 말 보다는 '이 모든 것'이라는 말을 쓰겠다.
2. 3차원 세계, 4차원 세계
이 것도 앞서 말한 '우주'에 대한 고정관념과 결이 비슷하다. 딱히 누군가 콕 찝어 그런 말을 한 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이 지구는 3차원이고 우주 어딘가에 가면 4차원 세계가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곤 한다. 한술 더 떠서, 우리가 그 4차원 세계에 가면 시간을 맘대로 오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그런 식의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쓰인 칼럼도 있다.
이건 전형적인 언어적 문제다. 물리학이나 수학인 개념에서의 '세계'는 말하자면 '계(系)'라는 한자를 일상어로 풀어 쓴 것일 뿐, 영어로는 Frame 또는 System으로 번역된다. World와는 다르다, World와는. 그러니까 지구 밖 어딘가에 문어처럼 생긴 4차원 외계인이 사는 세계가 있는게 아니다. 애초에, 지구 밖 어딘가라는 발상 자체가 3차원계에 머문 발상이다.
N차원이라는 개념은,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어떤 판타지 세계가 아니라, 그냥 인식의 방식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지도는 높낮이가 없이 동서, 남북으로만 구성된 2차원 지도이고, 우리는 3차원을 인식하는 인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2차원 지도만으로도 꽤나 불편함 없이 잘 산다. 우리는, 최소한 지리학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2차원적으로 인식한다. 우회전 해서 2키로 더 가서 좌회전, 또는 북위 43도 동경 12도 이런 식으로.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2차원 인간이고, 바다 건너 어디에는 고도계를 꼭 쓰는 3차원 인간이 사는, 그런게 아니지 않은가.
최근 물리학에서는 우주 시공간이 10차원 또는 11차원이라고 예상하고 있는데, 이 얘기는 '우주라는 존나 큰 뭔가가 있고 그 안에는 1차원 부터 11차원까지 쭉 있는'게 아니라, 그냥 이 모든게 11차원이라는 얘기다. 단지 우리 인간이 가장 신뢰하는 감각인 '시각'이 3차원밖에 인지를 못하기 때문에, 근대까지의 물리학이 3차원계에서의 이론을 주로 연구했을 뿐인거다.
다시 말해, 인간이 3차원까지를 쉽게 인식하므로, 그냥 이 모든 걸 3차원으로 인지하고 알콩달콩 살아온거지, '지구 =3차원 세계'라는게 아니다.
보통 우리가 사는 세계를 3차원 세계라고들 하는데, 마침 우리가 사는 세계가 3차원이고 우리의 눈이 그에 딱 맞게 만들어진게 아닌거다. 우리의 눈이 3개의 축을 인지할 수 있으므로, 이 세계를 3차원이라고 할 뿐이다. 애초에'이 모든 것'은 누군가가 '우리 이거 몇 차원으로 할까?’ 하면서 '우리 3차원으로 하자. 땅땅땅.' 하고 숫자를 정한 게 아니다.
이 모든 건 그냥, 존재할 뿐이다. 그걸 이해하기 위해 인간들이 '차원'이라는 개념을 만든거다.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에 매몰되지 말자.
3. 시간과 공간
보편적인 상식으로, 우리는 어떤 공간에서 살아가고 그 공간을 통틀어 일정한 시간이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덜 알다시피 상대성이론은 그 시간과 공간이 늘 일정한 것이 아니라는 내용을 포함하는 이론이다. 많은 물리학자들이 시간을 다차원의 한 축으로 생각하곤 한다. 이 부분이 좀 골때리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걸 이해하려면, 오히려 저런 상식을 그냥 다 잊어버리길 추천한다.
우선 확실히 해둘 부분은 '공간'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3차원적인 발상의 개념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공간'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 앞뒤와 좌우, 상하가 모두 있는 좌표계를 떠올린다. 마치 내 방이나 옆집, 한반도, 바닷속 처럼 앞뒤, 좌우, 상하 3개 축이 모두 적용되는 것을 공간이라는 단어로 치환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왜? 인간의 시각은 그렇게 3개 축 밖에 인지를 못하니까. 즉, 공간이라는 건 3차원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개념의 산물이지, 어떤 진리가 아니다.
게다가 흔히들 좌우를 X축, 상하를 Y축, 앞뒤를 Z축으로 놓곤 하는데, 사실 이건 신이 정해준 원칙이 아니라 그냥 인간의 습관일 뿐이다. 0점을 기준으로 45도 각도의 선이 A축, 앞뒤가 B축, 둘 모두에 수직한 선이 C축이라고 쓴다고, 뭔가 물리학의 원리를 거역하는 게 아니다. 그냥 남들이 좀 헷갈리겠지. 상하와 좌우, 앞뒤는 모두 서로 바꿔 생각할 수 있는, 완전히 같은 개념이다. 단적으로, 지금 나에게 앞뒤라는 Z축은 내가 바닥에 눕는 순간 상하라는 Y축과 같고, 이 둘을 서로 바꿔도 근대 물리학 좌표계를 이해하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므로 만약 좌우, 상하, 앞뒤, 그리고 시간을 각각 축으로 놓고 총 4차원계를 생각한다면 어떤 축이 어떻게 바뀌든 상관 없어야 한다. 좌우축과 상하축이 서로 바뀌어도 별 문제 없듯, 시간축과 앞뒤축이 서로 바뀌어도 아무 상관이 없어야 되는거다. 혹시라도 '이 멍충아, 시간은 일정하게 흐르고 앞뒤라는건 내가 한걸음만 가도 맘대로 바꿀 수 있는건데 그게 어떻게 같아' 라고 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렇게 생각해서는 죽었다 깨도 상대성이론을 이해 못한다고 일갈해주련다.
그냥 우리는 시간이 일정하게 흐른다고 인지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앞뒤상하좌우를 쉽게 인지할 수 있게 태어난 존재일 뿐인거다. 개가 색맹이라고 빨간색이 없는 게 아니듯, 우리가 인지를 못한다고 해서 시간축과 앞뒤축이 서로 완전히 다른게 아닌거다.
그런 의미에서 '시공간 연속체'라는 말은 졸라게 좋은 떡밥이다. 만약 이 말을 보고 ‘우와, 우주선 타고 졸라 날아가면 시간이랑 공간이 서로 막 섞이는 그런 세계가 나오나봐' 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냥, 시간과 공간은 인간이 환경적 특성과 생물학적 한계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다. 애초에 시간과 공간은 서로 다른 개념이 아닌거고, 그 사실을 우린 불과 몇십년 전에 처음 깨달은 거다.
4. 빛의 속도
(필자주 : 속도는 몰라도 기량으로는 내가 한때 갑이었지. 이젠 아님. 훗.)
이거 졸라게 중요 뽀인트다. 상대성이론을 처음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멘붕을 겪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빛의 속도는 절대적이다'라는 부분.
빛의 속력은 진공상태에서 299,792,458m/s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존나게 빠른 우주선을 만들어서 초속 299,792,458m로 날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빛이 날아가는걸 창문 밖으로 볼 수가 없다. 그 우주선 안에서 보더라도 빛은 299,792,458m/s의 속도로 움직인다. 이상하지? 우리가 가만히 서 있는 상태로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를 보면 쌩하고 안보이지만, 100km/h로 가는 차에 탄 채로 같은 속도의 차를 보면 그냥 나란히 달리는 걸로 보인다. 근데 빛이란 건 그렇지가 않단다. 우리가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빛은 늘 299,792,458m/s의 속력을 갖는댄다.
이게 졸라게 이상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다들 알다시피 물리학에서 속도, 혹은 속력이라는 건 이동거리를 소요시간으로 나눈 개념이다. 거리라는 건 공간의 하위 개념이다. 결국 속력은 공간을 시간으로 나눈거다. 그러므로 속력이라는 개념은 공간과 시간이 일정하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그런데 상대성이론의 요점이 뭐야? 공간과 시간이 일정치 않고 이 둘이 서로 다른 개념이 아니라는거다. 일정치도 않고, 서로 다르지도 않은 2개의 변수를 서로 나눴으니, 시간과 공간이 일정치 않게 패키지로 막 휘고 바뀌고 이 지랄 나면, 속력이란 것도 당연히 막 바뀌고 지랄 날 수 밖에.
그러므로 '빛의 속도'라는 말을 생각할 때, 빛이라는 알갱이가 있고 그게 존나 빨리 막 움직이는걸 생각하면 안된다. 그냥 '빛'이란 게 있는거다. 그리고 그 빛을 인간의 3차원적 발상의 산물로 측정할 때 저런 속도라는 걸 관측할 수 있었을 뿐이다.
시간과 공간이 한 패키지의 같은 개념인 4차원 이상의 차원을 생각할 때에는 '속력'이라는 말 자체가 존나게 의미가 없다. 그냥 이 모든 것 중에 '빛'이란게 있는거고, 걔는 절대적인 애인 거다.
말을 바꾸면 이렇게 된다.
이 모든 것 중에 절대적인 게 있고, 그걸 인간들은 '빛'이라고 부른다.
5.중력과 블랙홀
자 일단 이거 하나 외우자.
만유인력 = 중력 = 가속력
완전히 같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암튼 그냥 저렇게 생각하자. 다덜 물리학 꿈나무 될 거 아니잖음?
만유인력이 모다? 뉴턴이 사과 떨궈지는거 보고 생각한, 질량을 지니는 물질이 서로 당기는 힘이다. 이건 결국 중력과 같은 뜻이다. 인간과 지구는 둘 다 질량을 지니므로 분명 서로 당긴다. 하지만 질량 차이가 너무 큰 바람에 인간이 지구를 이동시키는 영향력은 가볍게 캔슬되면서, 우리는 그냥 인간이 지구로 당겨지는 영향력만 고려하면 되는 셈이다.
중력은 모다? 만유인력이랑 같대니까? 질량을 가진 물질이 다른 물질을 당기는 힘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질량, 그리고 힘이다.
풀어서 말하면 질량, 그러니까 무게라는 걸 지니는 건 필연적으로 다른 걸 당기는 힘을 지닌다. 그러므로 존나게 무거운 뭔가는 그냥 존재만으로도 힘을 지닌다.
이 중력이란 건 호기심 천국인 인간에게 '블랙홀'이라는 떡밥을 던진다. 근데 시발 이게 하필 '홀(hole)'이라는 단어를 품는 바람에 불필요한 오해를 낳는다. 어설프게 이해하다 보면 '종이에 빵꾸를 뚫으면 그게 2차원적인 블랙홀이고, 3차원에서의 블랙홀은 공간에 뚫린 빵꾸다'라는 식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말이다. 졸라 아니다. 블랙홀은 빵꾸와는 다르다, 빵꾸와는.
블랙홀에 대한 일반적인 서술은 이렇다. 존나게 무거운 뭔가가 있으면 그건 질량이 졸라게 크므로 당연히 중력도 존나게 크고, 그 큰 중력이 주변에 있는 모든걸 죄다 빨아들여서 심지어 빛까지도 빨아들인다.
이번에도 역시 말을 뒤집어보자. 절대적인 존재인 '빛'은 인간 입장에서 속력이라는 걸 지니는데 어떤 다른 존재의 중력이 그 빛의 속력이 가져야 할 힘보다 세면, 그게 검게 보인다. 그 존나게 무거운 '어떤 다른 존재'를 우린 '블랙홀'이라고 부르는거다. 빛이 움직이지 못해서 색깔이란 게 없이 그냥 검으니까 '블랙'이라고 부를 뿐이다. 즉, 그건 아무 것도 없는 빵꾸(hole)이 아니라, 존나게 무거운 뭔가가 분명히 있는거다.
6. 결론
자, 쓰는 나도 대가리 뽀개질 듯 하니 이쯤하고, 그럼 정리해보자.
상대성 이론이라는,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 사는데 별 상관 없는 이론을 굳이 이해하려면, 일단 기존에 갖고 있던 '우주', '차원'이라는 개념을 죄다 리셋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걸로 만들어놓고 시작하자. 그 가운데 절대적인 존재(이거 괜히 또 종교적으로 받아들이면 혼난다)는 '빛' 하나다. 얘는 차원이고 나발이고 간에 일정하다. 그리고 이 빛이란 걸 염두할 때에는 머리속에서 '시간'과 '공간'이라는 걸 그냥 한 덩어리라고 생각해야한다.
또 한 가지 포인트는 물질의 '질량'이다. 질량은 그 자체로 당기는 힘이다. 그 질량이 너무 커서 빛의 일정한 힘까지 캔슬시키면 그걸 우리는 블랙홀이라고 부른다.
이 둘을 제외하고는 다 엿가락처럼 늘었다, 줄었다, 휘었다, 펴졌다 하는거다. 단지 지구라는 행성의 질량과 태양이라는 별의 질량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수많은 축 중에 한 축이 일정하게 가고 있다고 알게 되는거고(시간), 우리가 동그랗게 생긴 2개의 감각기관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3개의 축을 인지할 수 있는거다.(공간) 그런 절묘한 환경 덕에 우리는 애초에 엿가락 같은 걸 마치 무쇠 같이 굳고 곧다고 오해하고 있었을 뿐이다.
경험이 아닌 사고를 통해 그 오해를 깨달은 게 아인슈타인인 거고, 다행히도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실험을 했더니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사례들이 수십년간 꾸준히 발견돼 온 거다. 그러한 경험들이 쌓이면서 보다 많은 인간들이 '이 모든 것의 원리'를 보다 정확히 이해해 가는 중이고, 그 결과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까지 도움을 받고 있다. GPS 위성의 시간 오차 보정 기능이 그 예.
이쯤에서 '에라이 시발' 하고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거나, 저 '에라이 시발' 을 쓰기 위해 댓글쓰기 버튼을 누르는 분덜도 많으시겠지만, 일부는 '뭔가 아리까리 알 것도 같은데 모르는 것도 같다'는 느낌으로 가득 차 있을거다. 일단 필자는 그런 상태다.
하지만 이에 대해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겠다. 누차 말하지만 상대성이론은 애초에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 경험하기 어려운 얘기다. 아무 경험 없이도 이런 사실을 깨달은 아인슈타인에게 괜한 시기심을 느낄 필요도 없다. 어차피 아인슈타인은, 된장찌개를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지는 모르고 산 사람 아닌가. 시공간이 서로 다른게 아니라는 사실이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는거 보다 딱히 중요한 건 아니다.
다만 아리까리하게라도 이해를 했다면 '늙기 싫으면 우주에 가라' 거나, '5차원에 외계인이 있다면' 이라는 제목을 거는 센스를 가볍게 비웃어주는 정도의 유희를 즐기시면 되겠다.
시작하기에 앞서, 이 상품을 시음하면서 오비맥주로부터 경제적 대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쪼끔은 해봤습니다! 왜 그러냐면 얼마 전에 오비맥주가 블로거(지)들에게 돈을 주고 광고성 포스팅을 이끌어 냈다가 걸려서 1억에 가까운 과징금을 쳐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축하해요. 오비맥주.
사실은 돈 받으면서 맥주 시음하는 블로거들이 부러웠어요. 시부엉. (이건 마치 꿈의 직장이 아닌가 시프요) 뭐..바이럴 마케팅에 관해 쓸건 아니니까 대충하고, 그래도 과징금 축하해요. 오비맥주~
11월 11일, 오비맥주에서 '더 프리미어 OB'(the premier OB)라는 신제품을 출시했습니다. '더 프리미어 OB'라는 검색어로 기사들을 찾아보니 천편일률적인 내용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게 홍보팀이 내어준 기사의 골조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알 수 있겠더군요. 음음, 뇌 속 어딘가에서 필터링을 거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아 기쁩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특이점. 신제품의 출시라는 것은 말 그대로 '새 제품'의 등장에 관한 것인데 '더 프리미어 OB'의 경우는 기존 오비맥주의 올몰트비어(all malt beer)인 '오비골든라거'의 뒤를 잊는 개념의 상품이라는 점이 특이합니다. '오비골든라거'의 생산을 중단하고 해당 상품의 포지션을 '더 프리미어 OB'로 이어받겠다는 전략인듯싶은데 같은 상품을 리브랜딩 혹은 페이스 리프팅 해서 새 상품인 양 팔아먹겠다는 개수작이 아닌가 여기는 소비자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이에 더해 런칭기간과 광고 전략이 갑작스러워 보이는 기분이 더해져 뭔가 오비가 똥줄이 탔던 게 아닌가 싶어져 의아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대기업 걱정은 연예인 걱정만큼이나 쓰잘때기 없는 것이라 하니 접어두기로 합니다.
-제품명
'the premier OB'-'더 프리미어 OB'가 제품의 공식명칭인듯싶습니다. 이런 식으로 상품명을 정하는 사람들의 뇌에는 뭐가 들어있는지 한번 열어보고 싶습니다. '더 프리미어'같은 문구는 대체 왜 가져다 붙인 것인가. 맥스도 프리미엄이고 클라우드도 프리미엄이고 뭔 시발 올몰트면 다 프리미엄이냐? I-IPA나 I-STOUT쯤 되면 울트라 캡숑 킹왕짱 프리미엄이겠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소주 상품들인 '처음처럼'이나 '참이슬','아홉 시 반(이라 쓰고 '아오씨발'이라 읽는다)'처럼 한글명을 바라는 건 접어두고서라도 'OB필스너'정도면 충분했을 것 같은데 프리미어는 시발 프리미어 같은 소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레스톤 에일스톤처럼 보는 사람 어이없게 만드는 제품명은 아니니 다음부턴 이러지 말라고 어깨 토닥이고 격려하는 정도로 마무리 지어야 하는가도 싶습니다.
-디자인
평이합니다. 한국 맥주 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어로 도배된 라벨에 금색 딱지. 그래도 퀸즈에일이나 에일스톤에 비해서 OB라는 기업명이 크게 들어간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봐도 그렇지만 프리미엄 올 몰트 비어(premium all malt beer)라는 문구는 손가락이 오그라들게 합니다. '맥아 100%쯤 되어야 프리미엄 소리를 듣는 기야'라고 생각을 하는건지 아니면 자랑질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봐도 오비 측의 자기 위안용 문구라 생각될 뿐입니다. 클라우드처럼 '오리지널 그래비티'같은 소리는 하고 있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일는지도 모르겠지만.
집더하기에서 이 제품을 구매할 당시 아직 매장에는 '오비골든라거'도 존재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더 프리미어 OB'와의 가격차이는 zero였습니다. 1리터 페트병 2400원 즈음, 355ml캔 식스팩 7200원 즈음. 하지만 '오비골든라거'와 비교하여 더 좋은 재료와 효모를 쓰고 장기 숙성(골든라거 24일, 더 프리미어 OB 3달)을 거치면서도 가격은 골든라거와 동일하다?!?!?! 뭐지 이 그네누님의 입에서 창조경제라는 단어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도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호주, 캐나다, 영국산 맥아를 사용하고 독일의 노블홉(아마도 할러타우 홉을 쓴 듯)-을 사용했으며 무려 '독일 황실의 효모'시발 대체 독일 황실의 효모는 뭔 소린지 모르겠다 ㅋㅋㅋㅋ 웃기려고 쓴 건가 ㅋㅋㅋㅋ-를 썼고 기존 골드라거에 비해 3배 가까운 장기숙성을 거쳤는데 가격은 그대로다!!" 믿어선 안 되는 게 홍보용 찌라시라지만 이쯤 되면 맥주 생산에 마더 김혜자 선생께서 참여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오비골든라거에 들어간 재료들이 출고가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었던가요. '기존보다 좋은 재료를 썼으니 돈 더 내놔'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었겠지만 꼴데맥주의 클라우드를 의식한 탓이었는지 골든라거와 같은 가격을 고수하셨는데 일견 의아하긴 하지만 소비자로서 어쨌든 저렴한 건 좋은 것입니다.
-스타일
무려 필스너 맥주입니다. 기억이 맞는다면 국내 병입맥주중에 필스너임을 병기한 것은 2번째입니다. 사실 '저먼 필스너(german pilsner)'로 불리는 맥주들이 가장 대중적인 형태라 볼 수 있는 '페일 라거' 맥주들과의 차이점을 확실히 뽑아낼 수 없다는 점을 본다면 '필스너'라는 문구는 자기 위안용에 가까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저먼 필스너'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스너다운 홉 캐릭터를 무시하고도 '필스너'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딱히 문제점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필스너'라는 이름에 매몰될 이유는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필스너 우르켈' 짱짱맥. 그냥 보통의 라거라고 생각하는 게 맘 편할 것 같습니다.
-맛
오늘도 변함없이 필스너 우르켈잔을 능욕해보자
외형: 흔히 생각하는 금빛 라거, 흰색 헤드(거품) 상당히 성기고 소멸속도가 빠른 편이다. 엔젤링 따위는 마케팅의 일환일 뿐이다고 여기기에 거품에 큰 비중을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향기: 홉 아로마를 기대하긴 힘들고 곡물 발효에서 느낄 수 있는 달큰한 향이 살포시 느껴집니다.
맛: 쓴맛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호피(hoppy)함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전체적으로 홉보다는 몰트의 특성이 두드러지며 단조롭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생각외로 그리 나쁜 편은 아닙니다. 독일산 노블홉을 썼다고 자랑자랑질을 하기에 트름을 통해 홉의 느낌을 찾아보려 했지만 딱히 느껴지는 점은 없었습니다. (트름했다고 더럽다 생각하지는 마세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니까)
느낌: 라이트 바디감, '오비맥주'치고는 과하지 않은 탄산감에 추가점을 부여합니다.
도수: 한국의 라거맥주들이 보통 4.5%~5.0%에 들어가는데 5.2%라고 합니다. 같은 주종이면 저도수를 선호하는(선호한다고 생각하는) 소비취향을 생각하면 왜 5.2%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노린 건 아닌것 같은데. 개인적으론 살짝 높은 도수가 좋은지라 딴지걸지는 않기로 합니다.
총평: 지난번 오비맥주의 신작이었던 에일스톤에 내상을 크게 입는 일이 있었던 관계로 오비맥주에 딱히 기대는 안 했는데 생각보다는 마실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존의 비교상품이라 할 수 있는 '오비골든라거'를 마셔본 지 너무 오래된 관계로 비교하는 것은 힘들고 본 상품 자체만을 판단한다면 그럭저럭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필스너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왔음에도 홉 캐릭터가 살아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겠지만, 맛에 있어서 적어도 뒤로 가지는 않은 듯싶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맥스보단 조금 앞서고 클라우드와는 비슷한 포지션(가격 경쟁력을 감안해서)에서 경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론은 마실만합니다. 국산 라거의 선두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꼴데의 클라우드와 비교한다면 홉 캐릭터는 떨어지지만, 중반 이후의 맛 유지력은 조금 앞선다는 생각입니다. 참고로 저는 국내 맥주 업계 3사 중에 OB를 가장 덜 좋아합니다. 이유는 카스의 지랄 맞은 탄산감 때문.
* 맛 자체와는 상관없을 수 있지만 꼴데 클라우드가 필요 이상의 광고질을 일삼음으로 인해서 피로감을 가중시켰다는 점 때문인지 갑작스럽고도 조용했던 '더 프리미어 OB'의 출시에 가산점을 부여한 것도 있습니다.
"어느 책이건 쉽게 만들어지는 게 있겠냐만, 이 책은 마음이 너무 힘들다. 다음 주에 나올 좌린의 사진집, <멈춰버린 세월: 사라진 사람들과 살아남은 사람들> 울면서 사진을 정리했다는 좌린에게 사진을 받아서 다시 사진을 고르며 울었고, 글을 보태며 울고, 교정을 보며 울다가, 추천사를 읽으며 또 울었다. 오타가 있다면 그건 눈물 때문이겠거니 한다."
낮술로 벤치에 앉아 꼬박꼬박 졸고 있는데 꼼마씨가 메일로 최종 책 표지 시안을 보냈다.
* * *
지난주는 출간 마무리하느라 정신없었다.
교정도 보고
사진도 보고
그렇게 본문 인쇄에 들어갔다.
별색 색상이 마치 비에 젖어 곧 떨어질 단풍잎 같다.
아스팔드 바닥 위에서 김밥을 삼키던 아버님께 사진 사용 허락을 받은 이후로
여러 사람들에게 추천사를 받으러 다녔다.
세월호 참사라는 거대한 절망 앞에서 우리는 그래도 같이 아파하고, 울고, 서로를 걱정해주는 공감의 능력을 완전히 잃지 않았음을 확인한 것은 다행이었다. 지나간 1년을 담은 사진집은 우리의 공감의 기억이 내일의 희망을 여는 힘이 될 것임을 믿게 해주는 저장고다. 잊을 수 없는 일들은 더욱 단단하게 기억해야 한다.
- 박래군(인권중심 사람 소장,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
좌린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십수 년 전이다. 2014년 11월 나는 좌린과 재회했다. 그의 사진들 속에서 인간과 인간이 함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우는 현장들을, 참담하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사건들을 발견한다. 우리는 오랜만에 다시 만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희미한 연대의 끈으로 이미 연결돼 있었던 것이다. 좌린의 사진들은 말한다. 인간과 인간은, 그들이 인간인 한, 가까스로 연결돼 있으며 자신들의 비참을 끝내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만난 그가 반갑고, 그의 사진 속 얼굴들은 더욱 반갑다.
- 심보선(시인)
“가만히 있으라”, 304명의 생명을 꺼트렸던 그 한마디는 세월호 참사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 순간 주어지는 명령임을 깨달아가는 한 해였다. 이제는 나조차도 흐릿해지는 거리에서의 기억들을, 누군지도 모를 시민들과 함께 걸었던 그 시간들을, 사진을 통해 다시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함께 길을 걷으며 외쳤던 “잊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이 지켜지길 바란다.
- 용혜인(경희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제안자)
예은이를 떠나보낸 후, 사진은 공감이자 기억임을 알았다. 공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기억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공감을 오래 기억할수록 우리는 서로 존귀해진다. 공감과 기억을 선물해주신 좌린 작가께 감사드린다.
- 유경근(단원고 2학년 3반 24번 유예은 아빠, 세월호가족대책위 대변인)
이 책은 어떤 전조에 대한 기록이다. 매듭짓지 못한 사건의 민낯들이 특정 시간과 장소에 붙박여 우리에게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그의 기록들은 세상의 고통이 가볍게 휘발되는 많은 이들에게 묵직한 외침의 기사였고 마음에 노크한 손편지였다. 공회전한 오늘은 내일에 가 닿지 못하고 있고 결국 우리 눈 앞에 황무지가 펼쳐지고 있다. 그의 기록들 앞에서 돌아본다. 우리가 선 자리는 지금 어떠한가.
- 이창근(쌍용자동차 해고자)
좌린은 찰나를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는 찰나를 보며 찰나의 이전과 이후를 함께 볼 수밖에 없다. 좌린은 태동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담은 게 아니라 이미 함께 경험한 우리의 현실을 담았기 때문이다. 고로 이 책은 비극으로 시작해 희극으로 끝난다.
- 딴지편집장 너부리
찰나의 중첩과
그 파편들이
곧 내가 살아가는 시간이다.
계속 걸었다.
본격 북악산 코스에서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패찰을 달아야 다닐 수 있다.
등산 잠바를 입은 군인들이 빤히 지켜보고 있어서 마음이 불편했다.
숙정문
군인이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언제의 나를 살고 있는 것인지 점점 알 수 없어진다.
창의문
인왕산은 다음에 언젠가 오르기로 하고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을 지나 집으로 왔다.
1. 11월 25일(화) 저녁 7시, 사진전 오픈 전야 번개 "함께 걸어요"가 대학로 벙커1에서 열립니다.
'함께 걸어요'라는 행사명에서 혹시 쌔빠지는 못질 테이프질에 동원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다면 기우구요. 단순히 전시 준비 노역에 동원되는 것 뿐 아니라 다량의 서적과 다양한 음료의 강매 압박이 풍성하게 준비되어 있습..
아무튼 이 번개가 성공적으로 치뤄진다는 가정 하에
2. 좌린 사진전 "멈춰버린 세월"은 11월 26일(수) 부터 12월 11일(목)까지 같은 장소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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