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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마빡 이야기/2014

딴지일보 마빡 2014. 11. 25

by 꾸물 2022.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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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화]안티 가스통 할배의 월남참전기 (마지막회)

 

기사 - [비화]안티 가스통 할배의 월남참전기 (마지막회)

2014. 11. 25. 화요일 sydney 편집부 주 어느 날, 회사 대표메일로 날아든 한 통의 메일, 오랫동안 망설이고 고민하다 메일을 보낸다는, 딴지일보 창간부터 독자이며 연식 좀 나간다는 사람이라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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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5. 화요일

sydney

 

 

 



편집부 주

어느 날, 회사 대표메일로 날아든 한 통의 메일,
오랫동안 망설이고 고민하다 메일을 보낸다는,
딴지일보 창간부터 독자이며 연식 좀 나간다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한 편의 글과 함께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이런 류의 글을 발표할 수 있는 곳은 딴지 밖에 없을 것 같아서 보냅니다.
젊은 세대들이 알아야 할 월남전의 진실, 이제까지 아무 곳에서도 알져지지 않았던
월남전의 실상들을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흥미위주로 썼습니다."

보내 온 글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긴 어렵지만, 꿀잼 허니잼이니
함 읽어보시고 의견들 주시면 좋고.


 

 

 

 

죽으면 어떻게 되나?

 

군대에서는 병사 '자원'으로 관리된다. 여기서 병사 '계급 구분 없이 모든 군인'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사 문서에는 인원을 '파견' 또는 '충원한다고 하지 않고 '보충' 한다고 적는다. 군대란 어느 나라나 다 그런 거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공군에서는 전사(戰死) 대신 전출(轉出)이라는 말을 썼다는 기록도 있다. 이는 유머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갔다'는 종교적 의미였다고 한다.

 

월남전 당시 '영현(英顯) 중대' 라는 부대가 있었다. 전사자를 처리(?)해서 전사자의 유해가 고국으로 안치되기까지 봉안 업무를 맡은 부대이다. 영현중대는 나짱에 있는 주월 한국군의 군수부대인 십자성부대 구석에 위치해 있었다. 십자성부대에서 근무하던 전우들에 의하면 맨살 드러낸 황토 흙바닥에 음침한 건물이 서 있었고 높이 솟은 굴뚝에서는 가끔씩 검은 연기가 뿜어 나오곤 했다고 한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에도, 우기철이 되어 살갗이 아프도록 내리꽂는 빗줄기 속에서도 주검을 한 줌의 재로 만들기 위해 헬기들이 분주히 오르내렸다고 한다

 

미군 유해보관소의 냉동/냉장 시설은 지금의 종합병원 시설보다 더 훌륭했다. 미군들은 전사자의 시신을 깨끗이 원상복구해서 (심지어 이발까지 시켜) 방부처리하여 알루미늄관에 넣고 성조기로 관을 덮은 후 본국 알링톤 국군묘지로 보냈다. 그러나 한국군은 영현중대에서 화장해서 유골함에 넣어 십자성부대 불광사에 얼마간 안치하였다가 사이공(현 호치민시) 탄소누트공항에서 본국으로 향하는 휴가자 비행기에 실어서 오산비행장을 거쳐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하였다. 영현을 고국으로 봉송하는 일은 전공이 뛰어난 장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예우이며 보상이었다.

 

전사자들의 유골을 안치하였던 불광사

지금은 사라지고, 월맹군 묘지와 기념탑이 들어섰다고 한다.(편집자 주)

 

아래는 해병대 사령관 출신 전도봉 장군의 회고록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영현중대에서 화장을 하는 것이 상례였지만 본국으로 주검 자체를 봉송하는 일도 있었다. 이때는 미군들처럼 영현 위에 태극기를 덮고 정중하게 장병들이 도열하여 거수경례로 그들을 환송했다. 그런데 김포공항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국립묘지에서 환영 나온 장교들의 안내를 받아 곧장 비행기의 화물 하역장으로 갔다호송할 헌병들과 영현을 봉송할 차량들이 줄을 서 있었다. 경건하고 정중하게 영현들이 옮겨졌다. 그런데 태극기를 덮은 영현들은 내가 처음 퀴논비행장에서 인계 받은 것 보다 훨씬 많아 보였다. 이상하다. 자꾸만 태극기를 덮은 영혼들이 줄을 이어 옮겨졌다. 나는 묵묵히 지켜봤다. 그리고 동작동 국립묘지 영현안치소로 향했다. 차량들이 헌병의 호송을 받으며 불을 번쩍이며 줄지어 이동해 갔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동작동에 도착한 차량대열은 두 갈래로 나누어져 들어갔다. 태극기를 덮은 것이 모두 영현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안내장교에게 저 쪽 차량에 실은 영현들은 왜 이 곳에 함께 오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느냐고 다그쳐 물었다. 몹시 당황해 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다른 짐이라고만 짧게 말하고 자리를 피했다. 나는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게 되었다.

 

전우들의 고귀한 죽음을 이용해서 부정한 돈벌이를 하는 일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일들이 사병들이나 영관장교의 힘으로 가능하겠는가? 군 수뇌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이해하자! 전쟁통이 아닌가?

 

신체 처리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파월 당시 전쟁터에서 죽어서라도 효도하는 길로 여겨졌던 보상 문제는 어떻게 되었던가? 전사자에게는 36 개월치 봉급이 지급되었다. 그러나 전장에서는 정상적인 전투가 아니라 사고나 사건에 의한 억울한 죽음이나 불필요한 희생도 발생하는 법이다. 그럴 경우 민간인과 일반 공무원은 보상금도 받고 국가에 대해 손해배상도 따로 청구할 수 있었으나 죽을 가능성이 더 많은 군인, 군무원과 경찰은 할 수 없었다. 바로 '이중보상금지' 제도 때문이다.

 

'이중배상금지'란 군인, 군무원과 경찰공무원이 직무 중 죽거나 다쳐도 국가에 손해배상을 할 수 없고 법정보상금만 받는 제도이다. 이 제도가 생겨난 원인이 바로 베트남 전쟁이다. 이 제도는 2004년 군인연금법, 경찰연금법 개정 이전까지 존속되었다.

 

 

 

 

 

[IT]아이폰6 MemoryGate

 

기사 - [IT]아이폰6 MemoryGate

2014. 11. 25. 화요일 trexx 출처: 파이낸셜뉴스 1. 전구와 스위치, 아날로그와 디지털 디지털 신호 또한 노이즈로 왜곡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날로그와 마찬가지다. 단, 노이즈 제거(복구)가 아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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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5. 화요일

trexx

 

 

 

출처: 파이낸셜뉴스

 

 

 

1. 전구와 스위치, 아날로그와 디지털

 

디지털 신호 또한 노이즈로 왜곡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날로그와 마찬가지다. 

, 노이즈 제거(복구)가 아날로그보다 쉽다.

 

 

"컴퓨터에 들어가는 칩들은 아날로그야."

 

연구소의 어느 박사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들었을 당시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논리적 비약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었다. 진공관으로 연산하는 에니악 시대도 아니고 말이다. 물론 전자의 세계도 물질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기에 그 박사님 말씀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0 1로만 연산하는 컴퓨터를 가리켜 아날로그라고 하면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에니악은 2진수가 아닌 10진수로 연산한다. 그래도 근본적으로 진공관 역할이 스위치이므로 이진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애플 iPhone 6 TLC, MLC 사안에서 몇 년 전 그 박사님과의 대화가 생각났다. "컴퓨터는 아날로그다."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첫째, 현대 컴퓨터는 '전구와 스위치'로 구성된 에니악 때와 별반 다른 것이 없다. 같은 규격의 전구라도 어느 것은 밝고 어느 것은 오래간다. 둘째, 에니악 때 실제 버그가 '수명'과 '오류'에 영향을 주듯 지금 컴퓨터 버그 또한 그렇다. 버그는 디지털에 존재하는 아날로그 노이즈다. 가장 중요한 셋째, 과연 컴퓨터에서 처리하는 0이 온전히 0이고 1이 온전히 1일까? 물론 셋째는 첫째와 둘째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0 0이 아니고 1 1이 아니게 될 때 디지털은 더이상 디지털일 수 없다iPhone 6에 들어있는 NAND Flash Memory 이야기 하면서 웬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하겠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TLC MLC의 근본적인 차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메모리의 아날로그적인 특성을 '전구와 스위치' 예시로 설명하고자 한다. 세상 물질처럼 메모리도 '수명'이란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가격'과 직결된다.

 

에니악에는 17,468개 진공관이 들어갔다.

 

컴퓨터의 조상쯤 되는 것이 에니악이다. 1944년 에니악으로 당시 0 1을 연산하기 위해서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전구와 비슷한 진공관을 사용했다. 켜짐이 1, 꺼짐이 0 이런 식이었다. (진공관은 전구하고 다르다이 글에서는 이해의 편의를 위해 진공관을 스위치가 달린 전구라고 생각하고 0, 1 개념으로 설명한다) 켜고 끄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 스위치가 있었다. 지금의 컴퓨터가 알아듣는 건 0 1뿐이다. 그러니 '전구와 스위치'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에니악에서 전구를 사용하다 보니 덩치도 커지고 먼지도 쌓이고 벌레(버그)도 돌아다니고, 무엇보다 무지막지하게 전기도 많이 쓰고 하니 이를 쇼클리라는 정신이 오락가락한 천재 양반이 등장하여 트랜지스터를 개발하여 195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된다.

 

트랜지스터: 포레스트 진공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1947년, 벨 연구소의 세 명의 물리학자,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 존 바딘(John Bardeen), 월터 브래튼(Walter Brattain)가 공동 발명하였다. 트랜지스터는 진공관의 기능이었던 증폭작용과 스위치 역할을 하는 반도체 소자로 아날로그, 디지털 회로에서 증폭기, 스위치, 논리회로, RAM 등을 구성하는 데 이용된다. 컴퓨터 등에서 사용되는 디지털 신호의 경우, 트랜지스터는 0과 1을 전환하는 스위치의 역할을 하여, 2진법의 정보를 처리한다. 집적회로(IC)는 수많은 트랜지스터의 집합으로 IC의 집합체가 컴퓨터에서 CPU, 스마트 폰에서 AP이다.

 

그 이후 컴퓨터 세계는 그야말로 '전자'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었다. 주 기억 장치 RAM, ROM CPU의 조상은 트랜지스터이고 보조 기억 장치인 플로피디스크, 하드디스크의 조상은 마그네틱 테이프(자기 기록 매체, 장치). 반도체 트랜지스터는 집적회로(IC)에서 추후에 휘발성, 비휘발성 메모리로 발전하였고 결국 오늘의 주인공인 NAND Flash Memory까지 발전하게 된다. 보조 기억 장치의 몇십 년 주인공인 마그네틱테이프 후계자 HDD의 자리를 위협하게 되었다. 드디어 실리콘 천하가 된 것이다.

 

트랜지스터 이야기한 이유는 컴퓨터 발전과 더불어 빠지지 않는 '가격'때문이다. 전구와 트랜지스터의 차이는 크기, 신뢰성뿐 아니라 무엇보다 가격에서 차이가 난다. 전자의 세계에서는 소재와 크기 차이로 가격이 비약적으로 하락한다1955년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로 옮기자 같은 성능에 크기는 1/300, 전력은 1/1,500으로 줄일 수 있었다. 결국, 전자의 세계로 들어오자 진공관 크기를 작게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작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1 6개월마다 2배 때려 박을 수 있다는 인텔 '무어의 법칙'이니 따라쟁이 삼성이 말한 1년마다 저장공간이 2배로 커진다는 '황의 법칙'이니 다 같은 공간에 얼마나 많은 전구를 넣느냐에 해당한다오늘의 주인공 플래시 메모리 MLC TLC의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 '가격'이다.

 

 

 

 

 

[한동원의 적정관람료]퓨리(Fury)

 

기사 - [한동원의 적정관람료]퓨리(Fury)

2014. 11. 25. 화요일 한동원 개봉일 11월 20일 이 영화의 감독 데이비드 에이어가 일찍이 각본을 썼던 또 다른 2차 대전 무비인 <U-571>의 가장 핵심적인 대사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다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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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5. 화요일

한동원

 

 

 

개봉일 11월 20일

 

 

이 영화의 감독 데이비드 에이어가 일찍이 각본을 썼던 또 다른 2차 대전 무비인 <U-571>의 가장 핵심적인 대사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다름 아닌, 독일잠수함 유-보트를 탈취한 미국 상사(하비 키이틀)가 폭뢰 공격 및 한계 심도를 견뎌내는 유-보트에 대해 흘린 단말마의 신음 한마디, "독일놈들이 배 하나는 잘 만들었..."였다 생각되는 가운데, 이번에는 아예 또 다른 전설적 독일 무기인 티거 전차의 압도적 성능을 처음부터 못 박고 들어간 데다가, 그 성능 직접 보여주기까지 하는 당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그런 무기 수두룩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던 나치 독일은 아마도 최신과 최첨단과 최고사양만을 절대적 가치로 추구하고 있는 작금의 세태에 본의 아닌 경종을 울리지 않는가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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