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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마빡 이야기/2014

딴지일보 마빡 2014. 11. 26

by 꾸물 2022.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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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준비하는 죽음

 

기사 - [사회]준비하는 죽음

2014. 11. 26. 수요일 딴지팀장 꾸물 1 몇 년전 <다큐멘터리 3일>이라는 프로에서 폐광을 앞두고 있는 탄광을 취재하는 걸 봤다. 40년 넘게 일하신 한 아버님의 인터뷰가 아직도 머릿속에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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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6. 수요일

딴지팀장 꾸물

 

 

 

1

몇 년전 <다큐멘터리 3일>이라는 프로에서 폐광을 앞두고 있는 탄광을 취재하는 걸 봤다. 40년 넘게 일하신 한 아버님의 인터뷰가 아직도 머릿속에 그려진다.

 

“아버님, 그동안 일하시느라 힘드셨겠어요.”

 

“말로 다 못하지 말로...”

 

사는 게 참 힘들다. 말로 다 못할 만큼.

 

힘들다. 피곤하고, 아프고, 생각하고, 욕도 먹고, 상처받고, 돈도 필요하고, 필요하니 벌어야 하고. 가끔은 정말 살아가기 위해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드니까.

 

 

 

0.5

지난 달 29일 독거노인 한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자신의 시신을 수습할 사람들에게 봉투 하나를 남겼다. 봉투엔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 개의치 마시고”라는 글과 함께 국밥값 10만원, 장례비 100여만 원, 전기/수도요금 고지서와 이에 해당하는 금액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어느 시나리오 작가(故최고은 씨)는 생활고로 요절 하였고, 똑같이 생활고에 못 이겨 몸이 불편한 세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0

사람은 죽는다.

 

죽음 이후엔 어찌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국밥 할아버지도, 젊은 시나리오 작가도, 세 모녀도, 우리 할아버지도. 남은 사람들은 슬퍼하고, 죽은 사람을 기억하며 추억한다.

 

 

 

 

 

[문화]어그로- 케이팝스타 S4E1 비판론에 대한 비판론

 

기사 - [문화]어그로- 케이팝스타 S4E1 비판론에 대한 비판론

2014. 11. 26. 수요일 춘심애비 자. 어쩌다보니 이번에도 어그로다. 2014년 11월 23일(일) SBS <K팝스타> 시즌 4의 첫편이 방영됐다. 지난 3개 시즌에서 <K팝스타>는 다른 음악관련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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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6. 수요일

춘심애비

 

 

 

자. 어쩌다보니 이번에도 어그로다.

 

 

2014년 11월 23일(일) SBS <K팝스타> 시즌 4의 첫편이 방영됐다. 지난 3개 시즌에서 <K팝스타>는 다른 음악관련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을 슬며시 딛고 올라서는 양상을 보였던 바 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슈퍼스타K>를 <K팝스타>가 이기고 있다고 생각한 것. 나머지는 이슈메이킹에서나, 시청률로나, 참가자의 유명세로나 이 둘을 따라잡긴 힘들었다.

 

<K팝스타>가 우세를 보이게 된 이유로 공중파와 케이블의 차이를 들어볼까 했지만 MBC의 <위대한 탄생>이 망해버리는 바람에 패스. PD의 역량을 원인으로 꼽기엔 <슈스케> PD들의 역량을 대체로 낮게 평가하기 힘들다. 가장 유력한 이유로 '3대 대형기획사의 캐스팅'을 꼽을 수 있었지만 지난 시즌 3에서 SM이 나가고 안테나뮤직이 들어오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그 영향인지 어쨌는지 실제로 시즌 3에서는 버나드 박, 샘 킴, 권진아와 같이 아이돌이 아닌 뮤지션 색체가 강한 참가자들이 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결국 그냥 잘나갈만 하니까 잘나간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올해, 간만에 <슈스케>도 곽진언과 김필 같은 뮤지션적 참가자들이 강세를 보이고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낸 바로 직후에 <K팝스타> 시즌 4가 시작했다. 여러 맥락에서 시청자들의 기대를 모으기 충분한 환경이 조성돼 있었던 셈. 

 

실제로 첫방은 꽤나 화제를 끌고 있다. 양현석과 박진영의 혹평 속에 비주류 감성을 이해한 유희열, 지난 시즌 참가자의 동생, 국적 문제로 3년 전 입국할 수 없었던 실력파 참가자, 6살의 역대 최연소 춤꾼, 그리고 놀라운 음악성으로 극찬을 받은 인디뮤지션. 그러는 한편 트위터와 페이스북, 그리고 많은 언론에서 <K팝스타>시즌 4 첫방을 존나게 까대는 분위기 또한 형성되었다.

 

출처-엔터미디어

 

 

 출처-텐아시아

 

출처 -텐아시아

 

물론 대세는 호평에 가깝고, 실제 방송에서 극찬을 받은 이진아는 음원차트 상위권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소수의 비판여론은 공고해져만 간다. 아니, 비판여론이라는 말 보다는 '불편여론'이라는 말이 더 맞겠다. 딱히 뭘 잘못했다는게 아니라, 뭔가 참으로 별로인걸 봤을 때의 반응에 가깝다. 찝찝함, 씁쓸함 등등. 

 

그런 불편여론을 보다보니 이번엔 내가 불편해졌다. 뭔 소리냐고? 그 얘기를 해보련다. 

 

 

 

 

 

[독투불패]허.생.전 ('허'니버터칩 '생'산자 '전')

 

기사 - [독투불패]허.생.전 ('허'니버터칩 '생'산자 '전')

2014. 11. 26. 수요일 정체불명 cocoa 편집부 주 이 글은 정체불명에서 납치되었습니다. 관련 기사 허니버터칩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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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6. 수요일

정체불명 cocoa

 

 

 



편집부 주

이 글은 정체불명에서 납치되었습니다.
 

 



관련 기사

허니버터칩 음모론
 

 

 

 

  

허생은 먹자골목에 살았다. 곧장 남산(南山) 밑에 닿으면, 우물 위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서 있고, 은행나무를 향하여 사립문이 열렸는데, 두어 칸 초가는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허생은 연구하기만 좋아하고, 그의 처가 남의 바느질 품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처가 몹시 감자칩(甘藷㙷, 편집부 주: 감자를 쌓을 칩자가 더해진 것으로 보아 납작하게 만드는 요리법으로 추정됨)이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출시를 하지 않으니, 연구는 해서 무엇 합니까?"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제과점 일이라도 못 하시나요?"

 

"제과점 일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 걸 어떻게 하겠소?"

 

"그럼 감자칩 장사는 못 하시나요?"

 

"장사는 감자가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처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글을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장인바치 일도 못 한다. 감자칩 장사도 못 한다면, 도둑질이라도 못 하시나요?"

 

허생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제품 연구로 2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1년 9개월인 걸……."

 

하고 획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허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운종가(雲從街)로 나가서 시중의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서울 성중에서 제일의 감자 부자요?"

 

해씨(氏)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허생이 곧 해씨의 집을 찾아갔다. 

 

 

허생은 해씨를 대하여 길게 읍(揖)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감자 일만 개를 뀌어 주시기 바랍니다."

 

해씨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감자 일만 개를 내주었다.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해씨 집의 자제와 손들이 허생을 보니 거지였다. 실띠의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갖신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쭈구러진 갓에 허름한 도포를 걸치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허생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 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감자 만 개를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해씨가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감자가 없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모르되, 이왕 감자를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을 하겠느냐?"

 

허생은 감자 일만 개를 입수하자,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불란서(佛蘭西)로 내려갔다. 불란서는 서반아, 스위스 사람들이 마주치는 곳이요, 대서양(大西洋) 길목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고매바타(高賣婆墮, 편집자주: 높은 가격에 팔리는 바타, 바타는 암컷의 피부에서 떨어진다는 의미로 보아 젖을 가공한 것으로 해석됨)를 모조리 두 배의 값으로 사들였다. 허생이 바타를 몽땅 쓸었기 때문에 온 나라가 오징어(烏賊漁) 바타를 못 먹을 형편에 이르렀다.

 

 

 

 

 

[사회]국군 기무부대 - 보안대라 불러다오

 

기사 - [사회]국군 기무부대 - 보안대라 불러다오

2014. 11. 26. 수요일 메이비 24년 전 기억인데다 사람이란 동물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억해버리는, 자동수정기능을 갖춘 오류투성이 저장개체이므로 이 글은 공신력이나 신뢰 따위를 가지고 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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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6. 수요일

메이비

 

 

 

24년 전 기억인 데다 사람이란 동물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억해버리는, 자동수정기능을 갖춘 오류투성이 저장개체이므로 이 글은 공신력이나 신뢰 따위를 가지고 읽을 글이 아니야. 딴지를 보며 이상한 상상을 하는 애들은 없으리라 믿고 쓰니까 감안하길.

 

난 군대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는 놈이야. 왜냐면 제대로 된 현역도 아니었고, 힘들긴 커녕 기무사 내에서도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분견대 출신이며, 마침 민주화 운동이 한풀 꺽여 짝퉁들의 시대가 유지되던 1990년대 초반에 근무를 하는 바람에 노동강도도 훨씬 약했거든. 게다가 그 당시는 모든게 무능해지며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 했던 물태우시대니깐 말이야.

 

전두환 정부 아래 화려했던 8년을 보내고, 물빠져가던 제6공화국 3년차의 1990년대 초 기무사는 힘이 굉장했던 과거의 여력은 남아있었지만 견제를 받기 시작했지.

 

내가 거기서 근무하게 된 이야기를 털어야겠군.

 

 

 

 

1. 보안대

 

국군보안사령부라는 이름을 달고 있던 때가 이 부대가 가장 힘쓰던 시대였어. 모든 지방 치안조직을 예하에 두고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제5공화국 시절이 보안대가 제일 화려하고 막강한 추억을 자랑했던 황금기였지. 난 위관급 하나가 난장친(?) 이후에 이름을 기무사령부로 바꾼 1991년도, 그러니까 황금기가 끝장났던 때에 들어갔어. 아직은 대부분 부대에서 보안대라 부르고, 공식적인 관등성명을 대거나 문서작업을 할 땐 기무사령부를 써야했던 묘한 호칭적 과도기에 근무했지.

 

내부 인원 모두가 사랑했던 이름 '보안대'. 모두가 어색하고 웃기다며 불렀던 '기무사'. 미군부대 출입시에는 약칭 'DSC'(Defense Security Command).

 

이런 시대의 보안대에 내가 들어가게 된 과정은 이래.

 

아주 쉽고 심플하게 설명하자면

 

1. 난 잘 태어났고
2. 아버지는 사회생활을 잘 하셨고
3. 아버지 후배들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각자 일을 잘 하던 분들이였고
4. 그 중 보안대 최고참 특무상사가 계셨으며
5. 내가 하필 공군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시작된 프로세스거든

 

 

지방 소도시에서 저런 조건을 갖고 태어나는 건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니야. 알고 보면 그냥 집 위치만 좋아도 저런 인적 네트워크 달성이 가능하기도 하지. 옆집 할배 아들 중 하나가 장교면 패가 풀리는게 당시의 군대였으니깐.

 

여튼 그런 별거 아닌, 어쨌건 남들에겐 없던 유리함으로 육군을 갔다면 동사무소 방위 쯤을 갔거나 헌병대 파견대에 사무직 쯤 했을텐데 내 고향은 해안선 방어 취약 지역으로 공군부대도 있고 방공포대도 있는, 쉽게 말해 부대들은 많은데 인력은 딸리는 지역이었어. 그래서 방위병으로 필요인력 대부분을 돌리던 후방 예비사단 예하 경비 부대 성격이 많았지.

 

현역 대 방위 비율이 1:2에서 1:3에 가깝다 보니 해안선 철책을 지키거나 비행장 외광방어 경비를 하는 일은 방위가 대부분 2교대로 하고, 사무행정이나 주요 정비유지병력 및 내부 타격대나 스왓팀은 현역이 했어.

 

지금의 공익과 비견되긴 해도 방위는 실 병력이니깐 공익과는 하는 일의 성격이 다르지. 대포도 쏘고 총도 쏘고 데모 진압도 나가고 뭐 이거저거 다하는 종합 노가다 병사랄까. 물론 비정규직이지.

 

그래서 필요한 수요가 많았던 만큼 방위도 공군과 육군으로 나눠 뽑던 지역이야. 공군으로 간다면 거의 철책경비를 서거나 삽질하거나 레이더기지의 따까리를 하는 일을 하게 되고, 아주 일부에 불과한 귀하디 귀한 대학생은 내부 행정사무를 하게 되고.

 

대부분 육군은 과격 상황시 의경이나 전경으로 힘들 때 투입될 예정이던 데모대 진압 기동대를 하거나 주요 방어거점의 경비, 시설의 방어전력으로 쓰여. 그래서 해안지역 쪽 방위들은 주/야간 2교대를 해. 6시라고 다 퇴근하는 건 아니지. 출근하는 애들도 있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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