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선이라는 사람이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유학한 후 미국 UCLA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풀러 신학대학교에서 선교문화 석사를 받았다(고 얼마 전까지 주장했다). 저서로는 <나의 천국과 지옥의 여정> 1,2편과 <빨간 신호등>, <까불지마 사탄아> 등이 있다.
그런데 그녀는 지난 여름 포항 모 교회의 부흥회에 참석, 천국과 지옥을 여러 번 봤고 하나님과의 직통 계시를 한다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을 꺼내 놓았다.
홍씨에 따르면,
- 2014년 12월에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
- 한국에 땅굴이 15개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종로, 다른 하나는 일산에 있다.
- ET형상의 외계인이 존재한다. (뜬금없이 웬...)
- 신사도운동가 밥 존스는 천국에 있다.
일단 마지막의 밥 존스라는 사람은 기독교 관련 인물이라는 것 외에는 잘 모르고 사후의 안위도 별로 걱정되지 않으니 넘어가자. ET 형상의 외계인 존재 여부는 우원의 직접적인 관심사이긴 하나 오늘의 주제와는 너무 동떨어져 유보한다. 또 우원이 거주하는 일산에 땅굴이 있다면 그것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지만 다음 기회에 따져 보자.
그럼 이제 남은 건, 바로 며칠 남지도 않은 다음 달에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주장이다. 뭐, 이 말이 옳고 그르고를 우원이 나서 따질 이유도 방법도 없다. 교계 일각에서처럼 성경적 근거를 내놓으라고 할 일도 아니고 –신자가 아닌 내게는 성경하고 일치하고 아니고는 아무 의미도 없으니- 이런저런 국제 정세를 근거로 굳이 가능성을 논하기도 우습다.
우원이 말 할 수 있는 건 걍 이런 정도다.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60년 동안 한반도에 전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안 일어났다. 그래서 다음 달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런데 안 일어날 것 같다.
홍혜선의 최신작 <까불지마 사탄아!>의 위용.
e북 only
그런데 이 대단한 분이 실은 학력 위조자임이 밝혀져 또 한번 논란이 일었다. 석사학위를 받았다던 풀러 신학교에 그런 졸업생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페이스북 학력 난은 풀러신학교 졸업 -> 중퇴로 바꼈다가 이제는 그나마 아예 삭제됐다.
천국과 지옥을 다녀오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전한다는 분이 시시하게 학력 갖고 거짓말을 하다가 들통났다는 사실이 의아하지만, 신학교를 졸업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도사라는 명칭을 써서도 안되지만, 소위 영능력이나 직위는 심성 및 인격과 아무 상관도 없다는 점도 나름 다양한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는 바 그냥 그런가보다 하자.
그런데 우원은 오늘 굳이 이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2.
어릴 때 교회를 다니다보니 그 언저리에서 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자랐다. 별의 별 재미있는, 재미없는, 그럴 듯한, 이상한 이야기들이 난무했지만 그 중 기억에 남는 넘으로 유태인들의 뛰어난 자질을 증거하는 한 일화가 있었다.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서 10번은 들은 것 같고 아마 아직도 회자되지 싶다.
내용인 즉슨,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사이에 중동전이 발발하자 미국에 유학 가 있는 유태인 학생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귀국했지만 아랍 학생들은 징병 통지서를 피해 꽁꽁 숨어 버렸다는 거다. 그런 애국애족의 정신이 있었기에 작은 나라 이스라엘이 크고 힘센 아랍을 전쟁에서 제압할 수 있었고, 이어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유지하며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자지구 폭격을 감상하기 위한 이스라엘 ‘스데롯 극장’의 관람석.
이교도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것은 신이 선택한 민족만의 특권이다.
저 일화가 사실인지 아닌지 우원은 모른다. 다만 유태인이라고 다 저랬겠으며 아랍인이라고 다 그랬을까 싶은 의심은 있다. 아랍인도 유태인 만큼이나 자부심과 민족주의가 강하다고 알고 있으니.
허나 중요한 건 저 이야기의 객관적 사실 여부가 아니라, 적어도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오래 전부터 저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삶의 태도와 관련해서 일종의 지표로 삼았다는 점이다. 사실 저 모습은 예수교 장로회를 중심으로 하는 우리나라 기독교 주류 일각의 보수적 애국주의와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유태인들이 보여준 모습과 그 교훈처럼, 울나라의 기독교인들도 앞으로 일어날지 모를 전쟁을 대비하며 더욱 용맹정진으로 기도하고 또 공산당의 침략에 맞서 싸우기 위한 전의를 가다듬고 있을 것이다.
이제 12월 까지는 채 1주일도 남지 않았으니, 미국과 유럽 등지에 나가 있는 우리 신학생들도 유태인들이 그랬듯 비행기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의 귀국 러시를 이미 시작했으리라. 이제 신앙과 애국심으로 무장한 그들이 떼지어 돌아와주기만 한다면 중동전 때의 이스라엘처럼 우리도 초전박살의 기운으로 북괴의 야욕을 단숨에 분쇄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멋지다.
그런데.
3.
한국판 노아의 방주가 준비된단다.
먼 소린가 했더니 이 방주는 거대한 배가 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주택이었다. 한국에서 곧 일어날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가는 기독교인 수십 명이 이 곳에서 3개월간 체류하고 이후 다른 곳에서 공동체 생활을 할 계획이고 그래서 노아의 방주 플랜이란다.
이 방주는 바로 문제의 홍혜선씨 페북을 통해 알려졌다.
이 방주에 머물다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에서 난민 자격이 부여되니 영주권을 얻을 수 있을 거고, 이후 전쟁이 끝나면 돌아와서 국가 재건 사업에 참여하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게 이들의 마스터 플랜이다. 그래서 얼마전 모 교회에 지원자들이 모여 최종 '탑승자'를 선정했는데, 그 교회 목사가 한 명씩 불러내어 '신의 뜻'을 직접 물어 탑승 여부를 결정 통보했다고 한다. 지금쯤이면 이 선택받은 이들은 대략 방주에 도착했지 싶다.
홍혜선의 예언에 따라 전쟁을 피해 해외로 도피하려는 기독교인들은 이들만이 아니다. 수십 명의 교인과 함께 이미 캄보디아로 떠난 목사도 있고, 12월이 다가오자 출국에 대한 고민과 문의는 점점 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갑자기 생업을 팽개치고 가족들까지 데리고 외국으로 가는 건 쉽지 않고, 비행기값 체류비 등등 돈도 많이 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만약 예언과 달리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일부 사람들의 질문이 당연히 제기된다. 여기에 이 방주의 설계자들은 '만약 우리의 기도로 전쟁을 막을 수만 있다면 이단이라는 비난도 감수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는 거다.
이 경지에 이르면 예전에 읽었던 어떤 이야기가 생각난다. 미국의 한 종교단체가 매일 아침 기도를 통해 3차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있으며, 3차대전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사실을 자신들의 기도가 통하는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는 거다.
4.
방주는 원래 거기 탄 사람들만 살겠다는 의지의 표상이다. 못 탄 사람은 다 죽고 원래 살던 터전도 모두 잃는 걸 전제로 하는 게 방주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날 지도 모르기 때문에, 신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짝퉁 전도사가 하나님에게서 직접 들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렇게 가겠단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죽든 말든 그들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런데 그 멋진 유태인의 정신은 대체 저 방주 어디에 숨은 걸까. 보수파 기독교인들이 그토록 강조해 온 애국심, 그리고 북괴와 종북 세력에 대한 분노는 어느 구석에 처박힌 걸까. 이승만과 박정희의 정신, 반공과 호국, 멸공의 신념은 다 어디로 도망간거냐.
1인 시위를 벌이는 홍씨.
ㅂㄱㄴ를 사랑하고 종북좌파를 척결해야 한다며 자유민주주의 애국시민을 자처하는 그녀는 지금 외국으로 도망갈 궁리 중이다.
하지만 저들 애국 세력이 망상에 빠져 세상을 어지럽히는 소리를 퍼트리고 나아가 혼자 살겠다고 도망가는 와중에도, 우리 시민들은 하루하루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 정말 전쟁이 일어난다면 나라 소중한 줄 모르는 불만 혼란 세력이라며, 종북이라며 욕먹던 그 사람들이 바로 이 땅에 남아 버틸 거다.
저들은 자신들이 문제의 아랍인들보다 한술 더 뜨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얼이 빠져 있다. 결국 저들이 말하는 애국이라는 것의 대상은 역사도 흙도 공동체도 사람도 아닌, 자신들의 천박한 생존본능과 초라한 존재양식을 의탁할 기득권 권력과 그 이데올로기 뿐이라는 점을 이 순간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거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바로 이런 사람들 때문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두려움을 전파시키며, 한편으로는 비겁하게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가짜 보수들. 북한과 대화라도 한 마디 할라치면 도매금으로 종북으로 몰아가는 아메바적 두뇌 용량의 소유자들. 한 쪽이 처절하게 괴멸되지 않으면 평화도 통일도 올 수 없다는 저들의 무지와 착각이 결국은 저런 정신병적 망상으로 되돌아 온다. 누가 전체주의 북한 정권이 좋아서, 그곳의 왕 김정은이 예뻐서 대화하려는 거냐.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훨씬 위험하기 때문에 하려는 거다.
홍혜선씨는 나아가 전쟁 불감증에 걸린 한국시민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단다. 마, 걱정해 줘서 고맙지만 우리는 괜찮다. 당신들처럼 툭하면 거창하게 애국을 이야기하고 건국 대통령이라는 이 모씨나 이순신보다 위대한 경제발전의 영웅 박 모씨를 추앙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당신들처럼 두려움에 떨 생각이 전혀 없다. 유태인들에게 지혜를 배워서도 아니요, ㅂㄱㄴ와 그 정권을 사랑해서도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도 아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그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을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어느 정도나마 알 수 있겠지요.문제를 인식하는 관점,문제에 대응하는 방법,사후처리 과정 등에 그 사람의 생각이나 성격,사고방식이나 행동 등이 묻어 있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밭을 꾸려나가다 어떤 문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똑같은 주인의 땅인데도 어떤 부분은 보다 더 비옥하여 작물이 잘 자라는데,어떤 부분은 너무도 척박하여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문제를, 그 농부는 해결해야 할 상황에 직면한 것이지요.
농부에게 주어진 당면과제는 일단 척박한 땅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텃밭 생태계의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겠지요. 최종적으로는 척박했던 곳의 땅심이 살아나고 비옥해져 모든 땅이 기름지게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위의 세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농부는 풍년가를 부르며 한 숨 돌리게 되겠지요.
1단계:척박한 땅을 살리자.
우선 척박한 땅에 적극적인 투입을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지속적으로 땅심을 키우는 데 좋다고 알려진 우분-돈분-계분 거름이나 퇴비 등을 넣어 밭을 갈아주어도 좋겠고,야산이나 개울가의 풀들을 베어다 헐벗은 땅에 두텁게 덮어주어 땅의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기초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때 발생하는 비용(거름값,퇴비나 비료값,기계 운영비 등의 농자재비)과 노동(농부의 일손)은 우선 농부의 몫일 것입니다.당장 거둔 적 없고 앞으로도 거둘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척박한 땅을 살리기로 결정한 농부가 그 모든 투입을 책임지는 것이지요.분명히 손익계산이 필요하고 파산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 필요한 일이지만,어떻게든 나름의 방법을 찾아 반드시 진행해야하는 일이기도 합니다.땅을 버리는 농부는 없으니까 말이지요.
2단계:텃밭 생태계의 균형을 맞춰가자!
균형 있는 땅심이 텃밭 전체에 고르게 펼쳐 유지되는 밭과 그렇지 못하고 띄엄띄엄 들쑥날쑥 제각각인 텃밭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다릅니다.텃밭을 효율적으로 유지하는 데에도 작물 작부체계를 계획하고 유지하는 데에도 텃밭 전체가 비슷한 환경을 유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지요.균형을 맞춘다는 건,지속 가능한 삶을 조율한다는 것과 같습니다.텃밭이나 사람이나 말이지요.
아무튼.척박한 땅의 땅심이 살아나는 데까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동안 비옥한 땅은 그만큼의 생산을 분담해주어야 합니다.농부의 식탁을 꾸려줄 먹거리,장에 내다 팔아 생계비를 마련할 작물들을 잘 키워내야하는 중요한 곳이지요.이곳의 비옥함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작물을 키워내는 데 농부는 온 정성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이 비옥한 땅에서 작물이 잘 자라는 것이 그 자체로 텃밭 전체의 균형을 조율하는 데 큰 역할을 기여하는 것입니다.우선 농부의 투입여건을 개선해줄 것이고,잉여 생산물이나 수확 후 부산물들이 척박한 땅을 살려줄 퇴비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요.
하지만 간과하면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땅심을 착취하는 농사를 지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이듬해,그 다음해를 생각지 않고 땅심을 착취하기만 하는 농사를 지으면 농부는 그저 온통 다 척박해진 텃밭의 주인이 될 뿐이겠지요.하향평준도‘균형은 균형’이라면 할 말 없지만. 그것은 균형이 아닌 파괴가 맞는 말일 것입니다.
균형이란 모든 것을 지속가능하게 해주는 힘이며,농부가 꿈꾸는 건 모든 텃밭이 비옥해지는 것,상향평준화로 균형을 유지하는 기름진 땅을 얻는 것이니까요.
3단계: ‘지속 가능하게’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비옥한 전답
더러는 힘들고 더딘 그 과정에 지치고 힘들 때도 오겠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뚝심 있는 농부가 정직하고 끊기 있게 텃밭에서 땀방울을 흘리다보면 머지않아 농부는 저 남쪽부터 북동서로 어느 한 곳 빠지지 않는 기름지고 비옥한 토지를 얻게 될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끝은 아닙니다.이 상향평준화된 비옥한 토지를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지금껏 이어온 시간들을 잊지 말고 늘 방일하지 않은 정성으로 밭을 가꿔나가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 시간은 즐거울 것입니다.이미 비옥해진 토지의 수확물을 늘어날 것이고,이미 기름져진 토지의 먹거리는 맛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이것이 지속 가능하게 이어질 수 있다면,농부의 삶은 그야말로 풍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와 같은 농부가 있다면 저는 농부의 그와 같은 문제해결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농부에 대해 이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참으로 현명하고 건강한 농부로군.’그렇게 우리는 문제에 대처하는 모습을 통해 누군가의 일면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으로 인한)기업 부담 줄이려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 검토”중이라는 정부의 입장을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었습니다.간단하게 말해 비정규직 문제가 점점 심화되어 기업들이 더 이상 비정규직 문제를 손 놓을 수 없으니까 그에 필요한 비용을 정규직 정리해고를 통해 충당할 수 있게 정부가 도와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이상도 이하도 없는 말입니다.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지요.저 위에 씌여 있는 기사의 제목 그대로입니다. ‘기업부담을 줄이려’,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를 검토’한다는 저 말에 그 어떤 형이상학적인 숨은 뜻을 부여할 수 있겠습니까.
정규직,정규직이란 이름이 부여받은 보장과 권리를 위해 많은 아픔과 시간이 쓰여졌습니다.그렇게 누군가의 절규로,누군가의 희생으로,누군가의 투쟁과 누군가의 실천으로 이제 겨우 그 당연한 이름과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에 이르렀는데. 이 정부와 경제계는 정규직 유지를 위한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비정규직’이라는 기형적 일자리를 만들어 내었지요.그리고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수많은 비정규직들의 목소리가 울부짖으니 한참이 지난 이후에서야 묘안이랍시고 한다는 말이 저와 같은 것입니다.
‘비정규직 처우개선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규직을...’
그러니까개 줄 것 밖에 없어 고양이 굶으랬다가 고양이 우는 소리 시끄러우니 밥그릇을 고양이 앞으로 밀어 놓은 것과 같은 생각을 이 정부가 해결책이랍시고 검토중이라는 것입니다.개 짖으면 금방 개 앞으로 던져질 그놈의 밥그릇.그래가지고서야 해가 바뀌도록 개와 고양이 어느 하나 밥 먹을 수 있겠습니까.
농부의 예와 비추어 생각해보았습니다.
1단계:척박한 땅을 살리자(비정규직의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자)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더 이상 미룰 일은 아닌 것 같으니 그리 해보아야하겠는데,그러자면 내 돈 내 땀이 필요하니 농사짓기 싫은 게으른 농부는 선뜻 쇠스랑 들고 밭으로 나가지를 못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렇게 차일피일 시간만 미루다 묘안을 생각해내게 됩니다.
2단계:텃밭 생태계의 균형을 맞춰가자! (사회구성원의 균형 있는 발전과 공생을 도모하자)
그렇게 다들 한결 같이 입을 모아 텃밭의 땅심은 구석구석 빠짐없이 고른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외쳐대니,땅심이 형편없는 척박한 땅을 살리는 희생보다 그나마 괜찮은 토지의 땅심을 저하시키는 것이 훨씬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꼴인 것 같습니다.필요한 균형은‘획일화와 동일화’가 아닌 고르게 발전하여 비슷한 속도의 걸음으로 함께 걸어가자는 것인데,이 어리석은 농부는 균형이란 그저 같거나 비슷하기만 하면 이뤄지는 가치로 여기는 듯합니다.
3단계: ‘지속 가능하게’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비옥한 전답(모두가 살기 좋은 대한민국)
더이상 적을 가치가 없는 듯하여 생략.
이와 같은 과정을 지켜보며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참으로 어리석고 부패한 정부로구나.'이번 일을 접하며 저는 매우 강력하고 선명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전 분명 얼마 전 이와 같이 얼토당토 않은 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국회 청소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대한 문제에 대해
"이 사람들 무기계약직 되면 노동3권이 보장된다.툭 하면 파업할 건데 어떻게 관리하려고 그러냐.또 그렇게 되면 산별노조,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하고 협상해야 되지 않나.이런 복잡한 부분이 있는데30년 넘게 큰 문제 없이 진행되어 온 부분을 왜 바꾸려 그러느냐“
라고 말한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결론적으로 청소용역근로자의 직접고용 시기를 조정하거나 서울시 사례를 보고 충분히 검토한 후 도입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한 것”이라며
“또 시행을 하더라도 시설관리용역근로자들과 같이 하거나 아니면 같이 안 하는 방향으로 가야 제일 중요한 형평의 원칙이 유지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라고 이야기한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지요.
누군가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한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으니 아예 누구에게도 권리를 보장하지 않아야할 수도 있다는 그의 생각과 이번 사안은 너무도 닮아 있는 듯 느껴집니다.이러한 것들 까지도 넓은 의미의 평등과 균형이라 이해해야 하는 걸까요?
보장된 권리를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지 말아야 형평성의 원칙이 유지된다는 생각이나, 어떤 이는 비싸게 구입하고 어떤 이는 싸게 구입하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비싸게 사야한다는 결론에 다다르는 단통법이나, 정규직의 해고로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생각이나 모두...
모두 모두 균형 잡힌 사고방식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야말로 어리석음이 아닐까 하는 그런 비통한 생각이 듭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 모두가 조금씩 고통을 분담하여 함께 걸어가자는 말이 기다려집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방관하고 암암리에 장려해온 정부와 자신들의 이익에만 급급한 기업들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자신의 의무에 책임을 느끼는 실천이 그리워집니다.
우직하지만 현명하고,느리지만 꾸준하고 성실한 농부와도 같은 정부. 그런 농부의 밭이 온통 검붉은 빛의 비옥한 토지로 변해가는 과정처럼,우리 사는 이곳이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비옥해져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임신 중 생선 섭취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왜 하필 전 국민의 1%밖에 안 되는 임신부를 위한 글이냐고 물어보신다면, 이들이 의학적으로 가장 약하기 때문입니다. 임신부는 의학적으로 약하고 병에 걸리기가 쉬우므로 가장 건강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들이 안전하다면 임신 안 한 다른 사람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장애인이 살기 좋은 사회는 비장애인은 더 살기 좋고, 비정규직이 대우받는 회사에서 정규직은 더 좋을 것입니다. 아무튼, 진도 나갑니다.(참고로 아랫글은 미국의 가이드 라인을 많이 참조하여 생선 이름이 우리나라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가급적 해석을 하였으나 혹시 몰라서 원어도 그대로 실었습니다)
임신부에게 생선이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은 꽤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FDA에서는 임신부의 생선 섭취 가이드가 있습니다. 생선이 임신부에게 해로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수은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수은 중 메틸수은(methylmercurly) 때문인데, 이 메틸수은은 성장 장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특히 태아의 대뇌 조직에 가장 민감해 신경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태아의 머리가 나빠질 수 있습니다. 참고로 수은은 유기수은(organic mercury)과 무기수은(inorganic mercury)으로 나뉘는데, 유기수은이 몸에 해롭습니다. 메틸수은은 유기수은에 해당합니다.반면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무기수은(보통 금속수은)은 이름만 봐서는 더 무시무시할 것 같지만, 치료 영역에서도 쓰입니다. 치과 치료제인 아말감에 쓰이고, 과거에는 장중첩증이 있는 아기에게 먹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먹더라도 위장관으로 흡수되지 않지만 태우거나 바이러스에 의해 유기수은으로 변하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터미네이터2의 수은.
이 자체로는 괜찮으나 수은이 증기로 발화하면 위험할 수도.
모든 어패류는 이런 수은 물질을 함유하며, 먹이사슬에서 위로 올라갈수록–배출되지 않으므로-수은 함량이 증가합니다. 큰 물고기의 수은 함량이 가장 높게 됩니다. 큰 포식자 물고기를 임신부가 먹을 경우 수은을 많이 섭취하는 셈이 되고 결국 한참 자라나는 태아의 두뇌 발달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물고기에는 메틸수은 말고도 폴리염화바이페닐, 다이옥신 등 다른 오염 물질도 많습니다. 메틸수은은 우리 몸의 모든 세포를 통과할 수 있고, 안타깝게도 수은은물고기의 온 체내에 꽉 붙어 어떤 식으로 요리해도 분리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따라서 물고기 수은에 관한 문제는 태아뿐 아니라 한참 자라고 있는 어린이에게도 해당할 수 있습니다.
2004년 미국의 FDA에서는 임신부의 수은 노출을 염려하여 임신부는 일주일에 340g 이하의 수산물(fish가 아닌 seafood)을 섭취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임신이 가능한 여성과 모유 수유 산모도 포함되었습니다. 이런 권고안 때문인지 미국에서 실제로 임신부의 해산물 섭취량은 감소하고 있습니다.최근 보고에 따르면 21%의 산모가 임신 중 생선을 전혀 먹지 않았다고 했고, 75%는 한 주에 4온스(약 120g) 미만으로 생선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영양 문제입니다.
생선은 포화 지방이 적고 단백질 함량이 높은 건강식품입니다.우리가 매일 광고에서 그렇게 중요하다고 보는 오메가 3 지방산의 주요 공급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오메가 3라고 부르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omega-3 fatty acid, 그러니까 오메가 3 지방산이 정확한 표기입니다. 오메가 3에는 3가지 종류의 중요한 영양분이 있는데 하나는 linolenic acid이고(리놀레산, 식물성 기름에 많이 함유)나머지 2개가 바로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docosahexaenoic acid(DHA)와 eicosapentaenoic acid(EPA)입니다. DHA와 EPA는 물고기에 풍부합니다. 특히 DHA는 소아과 의사들에게 초기 대뇌 발달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DHA는 대뇌 신경계 그리고 눈의 중요한 구성 물질인데, 임신 전 혹은 분만 후 생선 섭취는 자녀의 대뇌 성장 발달과 인지 능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생선 혹은 생선 기름(fish oil)의 섭취는 조기 진통을 막아 줄 수 있기 때문에 신생아 출생 시 가장 문제가 되는 신생아의 저체중 출생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산과적으로도-아직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DHA와 EPA 모두 임신성 당뇨나 임신성 고혈압 혹은 신생아의 아토피를 감소시킬 수도 있다고 합니다. 임신부가 생선 섭취를 안 하면 태아의 수은 농도 감소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으나 태아의 성장과 발달에 필요한 중요한 영양분 섭취를 놓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 중요한 연구가 있습니다. 2007년 Lancet에 발표된 'Maternal seafood consumption in pregnancy and neurodevelopmental outcomes in childhood'라는 연구인데 놀랍게도 11,000명 이상을 그것도 전향적으로 연구하였습니다. 이 대규모 연구를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산모가 수산물을 많이 섭취할수록 자녀의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임신 중 FDA 권고안대로 주당 340g 이하로 수산물을 먹은 산모의 자녀의 경우 verabl IQ(언어영역 IQ)가 낮았다고 합니다. 생선을 통해 오메가-3를 많이 섭취한 산모에서 verbal IQ가 더 좋았습니다.
조금 논점을 벗어나는데 옛날에 논문을 쓰느라고 나라별 사람들의 수은 농도를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물고기를 많이 먹는 섬나라 사람들의 수은 농도가 확실히 높았습니다. 이렇게 수은 농도가 높은 경우 과연 아이들의 IQ가 낮은가? 하는 것이 논의 대상이었습니다. 한 섬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타 지역 어린이와 IQ test 결과를 비교하였는데, 사실 이런 문제는 참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평소 생선을 많이 먹는 락수미의 IQ 검사를 했는데 김창규 기자보다 낮았다고 합시다. 그럼 이런 결과가 원래 김창규 기자의 유전자가 좋은 것인지 아니면 김 기자의 가정이 유복하여 어려서 많은 교육을 받아서인지 혹은 어떤 계기에 의해 죽돌이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어 결과가 좋게 나온 것인지 아니면 진짜 락수미가 생선을 많이 먹어 그렇게 나온 것인지 구분하기가 힘들 겁니다. 물론 어렸을 때 검사를 하고 또 N 수가 많아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으나 그렇게 어렵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연구마다 생선 섭취와 IQ의 관계가 '있다 없다.' 참 다양하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2014년 FDA에서는 새로운 권고안을 내놓았습니다. 일주일에 340g 이하를 먹으라고 했었던 권고안은 없어지고 이제 임신부는 옥돔(tile fish from gulf of Mexico), 상어(shark), 황새치(swordfish), 왕고등어(king mackerel) 같은 수은 함유량이 높은 생선만 피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여기서는 또 일주일에 참치의 일종인 날개다랑어(white albacore)도 6온스 미만으로 제한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2014년의 새로운 FDA 권고사항.
한 주에 8-12온스의 다양한 생선을 먹을 것을 권고하되 수은 함유량이 높은 생선은 피할 것.
사실 이러한 사실은 조금 혼란스러운데 왜냐하면 12온스는 340g입니다. 모호하게 적어 놓기는 했지만, 아무튼 중요한 점은 생선을 제한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섭취하라는 점입니다.
여기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임신 중 혹은 수유 중 오메가 3가 포함된 약의 복용–DHA/fish oil supplements 생선을 직접 먹는 것이 아니라-이 얼마나 태아에 도움이 될까? 하는 연구를 분석한 논문(British Journal of Nutrition, 2012, 27개의 논문을 분석함)이 있습니다. 어떤 연구에서는 임신 중 혹은 모유 수유 시 이런 약이 태아의 시력이나 신경발달에 도움이 되었다고 보고 했지만, 그 결과는 상당히 제한적이었고 대부분 연구에서 압도적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합니다.(사실 이런 논문 중 흔히 있는 맹점이 제약 회사로부터 스폰을 받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적어도 오메가3의 경우에는 약의 복용보다는 음식-생선-이 좋은 것 같습니다. (가격도 약이 훨씬 더 비싸지요)
참고로 DHA가 높고 수은 함유량이 낮은 수산물로는 아틀란틱 청어, 아틀란틱 고등어, mussels(홍합), oysters(굴), farmed and wild salmon(양식 혹은 자연산 연어), sardines(정어리), snapper(도미), trout(송어) 등이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수은 농도가 낮으면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생선으로는 새우, 연어, 대구(Pollock), 틸라피아(tilapia), cod(대구, pollock 과의 차이점은?), 메기(catfish) 등이 있습니다. 이 생선만으로 FDA 가이드 라인대로 일주일에 12온스를 먹는다면 사실 적정량의 DHA가 공급될 수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어떤 사람들은 임신 중 생선을 더 먹을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참치를 많이 먹는 데 특히 참치통조림을 많이 먹습니다. 참치통조림의 경우 2가지가 있는데
1. White tuna - 얘는 albacore(날개다랑어)로 만듭니다. 위의 표에 3번에 해당합니다. 좋지 않습니다.
2. Light tuna - 얘는 skipjack(가다랑어)로 만드는 데 white tuna 보다 덜 해롭다고 합니다.
참치를 먹고 싶다면 2번을 드시고 이왕이면 연어 통조림을 먹는 게 좋다고 합니다. 물고기 크기도 albacore가 더 크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시판되는 동원 참치의 경우 제가 살펴 보았는데 그냥 다랑어라고만 나와 있지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혹시 아시는 분 있으면 알려 주세요)참치 회의 경우 통조림에 쓰이는 참치보다 일반적으로 더 큰 것을 쓰기 때문에 수은 함량이 더 높다고 합니다.
참치는 먹이사슬 상위에 있기 때문에 수은함량이 높은 편.
주 1회 100g 이하로 섭취할 것을 권고.
결론적으로 임신 시 수은 함유량이 높은 물고기인 상어, 옥돔, 왕고등어, 황새치 등은 피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메가-3 지방산은 태아의 두뇌 성장 발달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생선 섭취를 해야만 합니다. 막연한 두려움에 생선 섭취를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옳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DHA가 들은 약의 복용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생선 섭취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둡시다.
1941년 6월25일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통령 행정명령 8802호’에 서명했어. '정부 기관과 연방 사업자들은 국가 방위사업에서 인종, 종교, 국적에 따른 고용 차별을 할 수 없다.'는 게 요지였지. 일단 공식적 문호는 열린 셈이고 그 해 12월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뛰어들자 흑인들에게도 그들의 '나라'를 위해 싸울 권리가 주어지게 되지.
미 육해공군 해병대 가운데 흑인에게 가장 늦게 문호를 개방한 건 해병대야. 월남전 때 한국 해병대 청룡부대와 미군 육군이 쌈박질을 벌이면 미국 해병대는 '웬 땅개가 해병대한테 개겨?' 하면서 한국 해병대 편을 들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만큼 쓸데없는(?) 긍지가 높았던 탓이야. 루즈벨트의 고용 차별 금지 선언 때 해병대 사령관 토머스 홀컴의 말을 빌려 볼까.
“만일 백인 해병 5000명과 검둥이 해병 25만명 가운데 어느 쪽을 지휘할 거냐고 누가 물으면
나는 단연코 백인 부대를 택하겠다.”
빌어먹을 흰둥이 자식 같으니.
흑인들의 입대가 허용됐지만 흑백 차별은 극심했어. 미국을 위해 싸우겠노라 기세 등등해서 입대하고 나면 기다리는 건 백인 교관들의 살인적인 괴롭힘, 시민들의 외면, 동료 군인들의 멸시였지. 병과도 전투병과는 거의 허용되지 않았어. 취사병이나 공병, 보급병 등 허드렛일만 도맡았지. 2차대전을 그린 영화에서 흑인 용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이유야. 하지만 태평양 전쟁 개전 후 최초로 훈장을 받은 사람은 흑인이었어. 도리스 밀러(Doris Miller). 웨스트 버지니아라는 전함의 요리사였어.
훈장을 받은 도리스 밀러
역대급으로 지루하다가 막판 전투신에서만 번쩍 눈이 뜨이던 영화 <진주만>(벤 에플렉 나온)에서도 도리스 밀러가 등장해. 쿠바 구딩 주니어가 맡았지.
도리스 밀러는 일요일 아침 수병들의 식사를 챙겨 주고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천둥같은 소리와 함께 일본군의 공습이 시작돼. 12월 되면 이 진주만 얘기도 해 주겠지만 미국은 '도저히 당할 수 없는 기습'을 당해. 그만큼 징후도 많았고 예상된 공격이었고 심지어 레이더에 일본군 비행기 떼가 잡혔는데도 무심하게 그냥 넘어가 버린 뒤 받은 공격이었으니까. 저공비행으로 함대 위를 지나는 일본군 비행기를 보고 "야 저거 너무 낮게 난다. 어느 놈이야?"라고 불평을 토하는 병사가 있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겠지?
삽시간에 미국 태평양 함대는 반신불수에 빠져. 천만다행인 건(음모론에 따르면 계획된 거지만)항공모함 3척이 모두 진주만에 없었다는 것이지만 한동안 태평양에서의 제해권을 일본에게 내 줄 정도의 크나큰 피해였지. 도리스 밀러가 타고 있던 웨스트 버지니아도 일본 항공대의 직격을 받아 함장이 치명상을 입어. 밀러는 함장을 안전한 곳으로 옮긴 뒤 기관총좌를 잡고 일본 비행기들을 향해 필사적인 사격을 시작해. 이 분노한 요리사의 기관총탄은 전쟁을 선포한 일본에 대해 미국이 펼친 반격의 시작이었어. 자신은 확실히 1대는 떨어뜨린 것 같다고 겸손해 했지만 주위 사람들은 여섯 대까지 떨어뜨리는 걸 봤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어.
그는 최후의 퇴함령이 내려질 때까지 배에 남아 있었고 물과 불과 기름구덩이를 피해 수많은 사람들을 피신시켰어.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함대에 대한 공격에서 임무에의 특별한 헌신, 놀라운 용기, 그리고 개인의 안전을 개의치 않았다. 브릿지의 함장 곁에 있으면서, 밀러는 적의 사격과 폭격에도 불구하고, 중포화에 직면해서도, 치명상을 당한 함장을 안전한 곳으로 부축하곤, 브릿지를 떠나라는 명령이 내려지기까지 기관총을 잡았다.”
니미츠 제독의 치사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지.
도리스 밀러는 진주만의 참혹함 속에서 우뚝 빛나는 영웅이었지만 다른 미군의 영웅들 같은 대접은 받지 못해. 그 활약을 다룬 영화가 만들어진다던가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전시 국채 구매를 팔러 다닌다던가 하는 건 다른 백인 영웅들의 몫이었고 그는 식당 요리에서 급사로 승진한 게 다였지. 왜? 흑인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는 웨스트 버지니아가 아닌 다른 배에 타고 임무를 계속하게 돼. 1943년 11월 그는 호위항모 리스컴 베이에 타고 있었어.
미드웨이와 과달카날에서 이미 일본군의 예봉을 꺾은 미군은 일본 본토로 진격하기 전 태평양에 뿌려진 많은 섬들에서 방어 태세를 굳히고 있는 일본군들을 격파해야 한다고 봤고 타라와(Tarawa)는 그 이후 태평양 전쟁에서 숱하게 벌어지는 '사전 폭격과 상륙 작전, 죽을 고생 끝에 일본군 소탕'이라는 도식의 첫 번째 무대가 돼.
편집자 주
타라와(tarawa)는 오세아니아에 있는 섬나라 키리바시(Kiribati) 공화국의 수도이다. 키리바티 공화국은 30여개의 산호초 섬들로 이루어져있으며 인구는 약 10만명이다. 1788년 영국 해군 길버트가 상륙해 점령한 뒤 1892년부터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가 1979년 독립하였다. 이러한 역사로 인해 현재도 영연방에 속한다. 우리나라와는 1980년에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수몰위기에 처해있으며 이미 섬 2개는 사라졌다.
키리바시의 위치
타라와 위치
타라와 환초
언젠가 얘기한 적 있는데 전쟁이란 누가 누가 잘하나가 아니라 누가 누가 삽질을 적게 하나의 문제로 승패가 결정될 때가 많지. 초기 미군은 엄청난 삽질을 했어. 상륙작전 하는데 조수 간만과 수심의 문제를 명확히 하지 않았던 건 그야말로 최악이었지. 일본군은 환초에 걸려 오도가도 못하게 된 미군들을 아주 손쉽게 처치했지. 미군은 1943년 11월 20일부터 23일까지 단 나흘간 벌어진 전투에서 1,696명의 전사자를 낸다. 이건 해병대 최악의 악전고투라는 6.25 당시 장진 전투에서 중국군에게 당한 것보다 더한 수치야. 이후 이 참혹함에 대해 언론과 의회가 시끄러웠고 니미츠 제독은 '내 아들을 돌려다오'라는 분노의 편지 수백 통을 받아야 했지.
해병대는 그나마 제 몫을 해 냈지만 함께 투입된 육군 27사단은 일본군이 좀 드세게 나오면 이내 엎드려서 움직이지 않았고 제대로 된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어. 자연히 상륙 지원부대가 제 시간에 현장을 떠나지 못했고 호위 항모 리스컴 베이는 필요 이상 근해에 떠 있었지. 이걸 일본군 잠수함이 놓치지 않았고 리스컴 베이는 일본군의 어뢰의 밥이 되고 말았어. 어뢰가 무기고를 직격해서 대폭발을 일으켰고 30분도 안돼 바다로 곤두박질쳐 들어간 거야. 그리고 도리스 밀러는 그 배에서 나오지 못했어. 전쟁 영웅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칭송과 명예를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다지 얻지 못했던 도리스 밀러는 남태평양 바다 속에 잠들었지.
그 이후 전개된 여러 상륙작전에는 1942년 6월 창설됐던 흑인 해병대원들도 참전했지만 그들은 가장 빛을 보지 못하면서 가장 위험하면서 가장 귀찮은 임무에 주로 투입됐고, 그들은 일본군 만큼이나 싫은 동료 백인 병사들의 눈길과 입놀림과 때로는 주먹질에 시달려야 했지. 2012년 미국 해병대 사령관 제임스 아모스 대장은 이들 흑인 해병대의 기억을 되살리고 생존자들에게 의회 금메달을 수여했어. 70년만에 그들의 공적을 공식 인정한 거지.경향신문 기사(클릭하면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를 보면 이때 금메달을 수여받은 조지프 스미스의 기묘하지만 절절한 수상 소감이 나와.“마침내... 빌어먹을 해병이 됐군.”통렬한 반어법 속에 담긴 한과 기쁨의 조화랄까.
해병대에 자원한 흑인들은 기차에 실려 '몽포드'라는 지역에 도착했는데 말이 훈련소지 그곳에는 일체의 건물이 없었대. 흑인들은 '훈련하면서 건설하는' 악전고투를 치러야 했다지. 그렇게 2만 명의 흑인 해병이 배출됐지만 그들은 전쟁 후 즉시 제대했어. 그들도 원치 않았을 테지만 아마 미군 당국도 그랬겠지.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잊혀졌고 70년 뒤에야 이 몽포드 마린(해병대)의 역사가 인정을 받은 거였지.
그런데 이 타라와 전투, 도리스 밀러가 전사하고 미군 해병대가 곤욕을 치른 이 전투는 우리도 기억해야 할 전투야. 일본군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토치카와 요새에서 집요하게 저항했고 미국 해병대는 해변에 야자수로 만들어진 방어벽을 기어 오르느라 죽을 힘을 다 해야 했는데 그 섬의 요새화를 진행한 건 바로 2,200여 명의 조선인들이었거든. 듣도 보도 못한 남양의 섬까지 끌려와 죽을 고생을 다한 조선인들 가운데 살아남은 건 단 126명이었어, 나머지는 영문도 모르는 싸움에서 폭격을 맞아, 또는 일본군의 반자이 돌격 때 총알받이가 돼서 '반자이' 대신 '어머니'를 울부짖으며 달리다가 총을 맞아, 동료를 잃은 미군의 핏발선 총검에 맞아 죽어갔지.
도리스 밀러는 지금도 미 해군 함정 이름으로 남아 있고 흑인 해병대, 몽포드 마린도 미국 최고의 영예인 의회 금메달에 빛나지만 우리는 타라와에서 죽어간 조선인들의 이름도 몰라. 그들의 혼령은 수천 킬로 북쪽 고향으로 날아들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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