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잉여잉여스레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접하게 된 하나의 짤일 뿐이다. 그런데 읽다 보니 뱃속에서 꾸물꾸물하며 그닥 찰지지 못한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내가 원래 좀 차케서 욕을 잘 몬한다)얼추 비슷한 시기였던 것 같다. 수많은'유가족의 세월호 진상규명 시위에 대한 반대 시위'가 온/오프라인에서 갑자기 우후죽순 쏟아져 나왔다. 그간 '일베' 등지에서 유가족을 비난하는 정도가 아닌 소위 말하는 저쪽 편에서 '방귀 좀 뀐다'하는 놈들이 나서는 모양새다. 이 무슨 단체로 지령이라도 받으셨능가?
웬 대학생들의 '폭식시위',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치킨과 짜장면을 곁들인 단식시위' 등 오프라인에서는 시위를 멈추라는 시위가 벌어지고 온라인에선 조선, 일베를 필두로 한 언론들의 그 짓거리까지. 뭐 이거 얼핏 보면 '세월호 유가족 대(VS) 여타 다른 선량한(?) 시민단체'의 구도처럼 보이겠다. 근데 저러면 안 되는 거잖아. 시위는 너덜이 하면 안 되는 거라고!!
지난 주 딴지 마빡에 벨테브레 횽아의 세월호 특별법 괴담을 후비고 디비 본 글(링크 참조)이 있었고, 저 멀리 캐나다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트잉여 요제프K 횽아의 단톡방에 대한 무시무시한 음모론으로 상황을 분석한 글(링크참조)도 있었다.
그런 판국에 내가 쓰는 글이 뭐 별거 있겠냐 싶다가도 저들의 꼴이 우스워 한 마디 하고 넘어가련다. 본디 너덜의 완소 아이템(아님 말고)[국제 늬우스]나 하나 쓰려 했건만 쟈들이 하는 짓이 하도 얼척이 없어서 오늘은 시위에 대해서 디비볼란다.
그래 한국은 독점이 부족하고, 대기업 총수는 졸라 힘이 없으며...
이 모든 것은 박원순 때문이다.참 명쾌해서 조타~
집회나 시위가 민주주의에서 얼마나 중요하냐? 이런 얘기는 저리 치우자. 그거 모르고 이 글을 읽고 있을 횽아들은 없다고 본다.물론 저런 심오한 정치적 이야기를 못 써서 그런 거 절대 아니다. 그냥 대강 넘어가자.
다만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다수결의 원칙이 모두 옳다고 할 수도 없으며, 그것을 통해 권력을 잡은 이들이 소수의 의견을 극단적으로 억압할 경우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는 나치의 역사를 통해 모두가 배웠다.
'그런 시위를 그만두라며 또 다른 시위를 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해 보일지도 모른다'는 개뿔. 너무 악의적이다. 왜 그런지 하나하나 디벼보자. 일단 위에 걸어놓은 김정호라는 교수의 글을 보면 유가족들이 시위를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가 전혀 없다. 굳이 꼽아보자면 '꼴보기 싫다'는 거다. 그가 외치는 '당신들이 이 나라를 전세냈냐, 특별법이든 뭐든 국회가서 해결하라'는 말은 풀어쓰자면 '꼴보기 싫다'의 문어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이 나올 수도 있다. 소위 '선량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논리 말이다. 시위 때문에 차가 막히고 공공물이 훼손되는 등 선량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거다.
그에 대한 반론은 이 사진으로 대신한다.
집시법에 나와 있는 '누구든 평화적인 집회와 시위를 방해하여서는 안 된다'는 헌법의 규정을
공권력이 해석하는 방식은 '체증은 하지만 방해는 안할 게, 가만히 있으라!'이다.
물론 차벽은 위헌 판결까지 받았다지만 그게 뭐 중요하겠냐.
무튼 꼴보기 싫은(?) 시위를 멈추기 위해 김정호 교수는 글에서 '깨진 창문 이론'을 들이밀었다.깨진 창문(Broken window) 이론은 1960년대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인 필립 짐바르도의 연구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는 두 대의 자동차를 각기 다른 지역에 본네뜨를 열고 주차해 두었다. 다만 한 대는 유리창을 깬 상태로 놓고 다른 한 대는 유리가 멀쩡한 상태로 두었다. 1주일 후 유리가 깨진 차는 다 부서지고 개판이 되어있는 반면 유리가 안 깨져 있던 차는 별 차이가 없이 그대로 있었다. 즉 깨진 창문 이론이란 같은 조건이라도 작은 일탈 행위가 큰 파괴적 행위를 불러온다는 추론에 근거한다. 그래서 공권력 강화와 불관용 정책을 통해 미리부터 조금의 일탈도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눈치를 봐야하니 그만 하란다. 쩝!
깨진 창문 이론을 졸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면 공권력이 무지막지하게 강해지고 작은 일탈에 대한 처벌도 과하게 된다. 물론 시위는 일탈도 아니지만, 공권력은 일탈이 일어날까봐 미리부터 무지막지하게 병력을 동원해서 막아대는 '떡도 주기 전에 김칫국을 항아리째 퍼드시는' 오바를 하는 상황이 온다.
깨진 창문 이론은 찬성만큼 반대도 있는 그런 사안이지만 위 교수의 글에서는 그냥 시위대는 싸움꾼이고 봉변을 당한단다. 그들은 이성도 뭐도 없는 시위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무조건 자신이 약자란다. 언제부터 권력을 가진 정부 여당과 청와대의 의중이 약자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신들이 약자란다. 그의 말대로라면 시위하는 유족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나 보다. 지배는 하고 있는데 세월호 진상규명을 못 하고 있는 거다.뭐 이런 ㅂㅅ같은 논리가 다 있어!!
이 윈도우가 아닌가?
전 세계 시위에 대한 통계를 보면 시위는 빈도수 별로 <행진 - 반대시위 - 점거농성 - 시민 항명(불복종) - 파업 >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시위의 뜻(의도)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일정 부분 불편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들이 하는 것은 단식이다. 스스로 건강에 피해를 줄지언정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시위 방식이다. 남들에겐 아무런 불편함을 주지 않고 스스로 모든 피해를 감내하는 시위 방식인 단식인데 그마저도 안된단다.(단식이 얼마나 힘든지 수많은 시위방법 중 무려 14위다)
참 못됐다. 아니 드럽게 못났다.
좀 더 나가보자. 쟈들이 하는 얘기 중 주된 것은 '왜 정부에게 뭐라고 하느냐?'이다. 유병언은 죽었고(반신반의하지만), 해경은 해체되었고(그래 봐야 다른 부서로 옮겨질 테지만), 해운조합은 수사를 받고 있고(제대로 될지...)다 제대로 돌아가는데 도대체 왜 정부에게 뭐라고 하느냐는 거다. 정말 정부를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갸륵해서 아침이슬 틀어놓고 북악산에 올라가 눙물을 흘리고 싶은 심정이다.
국정원이 댓글을 달다 걸리고, 선거 때 얘기했던 공약은 뒤돌자마자 다 까먹고, 아빠가 독재하던 시절 법을 만들던 희대의 노인이 다시 살아 돌아오고, 책임지고 물러난 총리를 다시 멱살 잡고 끌고 와도, 그 외에 어떠한 놀라운 일이 벌어져도 정부를 지지하는 그 맘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현재의 세월호 관련 문제는 전부 민주당, 진보세력, 종북, 좌빨, 유가족 때문이다. 왜 걔들한테 뭐라 안하고 정부한테 뭘 어쩌라는 거냐?'고 말하고 있다.
민주주의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우리 공주님 건들지 마라이즘. <Princessprotectism>
그런데 말이다. 시위란 원래 정부를 향해 하는 것이다. 굳이 길게 설명하지 말고 통계로 보자.
오우씨 영어...
아무튼 온 세상 시위의 80%는 정부를 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시위는 원래 정부를 향해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문제가 생기면 그걸 풀라고 정부가 있는 거고, 세금으로 월급도 주니까. 정부는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 거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위는 기본적으로 정부를 향해 하는 거다.
따라서 '왜 유병언한테 시위하지 않냐?'는 단세포 생물스러운 반문이 나올 수 있지만, 상대가 초등학생이 아닌 이상 대답할 가치는 없다.
거기에 말이다. 시위하는 유가족에게, 즉 사회의 가장 약자인 그들에게 맞서 시위를 하는 너덜의 창조성에 미래창조과학부는 '좋아요'를 눌러줄 것만 같다. 위의 도표를 보자. 정부를 제외해도 약자를 향한 시위는 없다. 약자를 향해서는 굳이 시위를 하지 않는다. 권력과 정권의 편에 찰싹 붙어서 약자를 조롱하고 비난하고 그들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는 그잔대가리잔다르크 같은 마음에 내가 다 감동을 먹을 지경이다.
사법과 행정을 장악하고 있는 진영에서 (것도 조직적으로) 약자들에게 하는 시위는 다른 말로 하면 탄압이다. 시위는 전적으로 약자들의 무기 아니냐. 너덜은 대신에 권력이 있잖냐. 단식투쟁하는 유가족을 감시도 하고 사찰도 하고 뭔가 꼬투리 잡을 꺼 없을까 싶어 언론을 통해 선동도 해보고 말이다.
물론 한국 사회에 시위에 대한 회의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맨날 시위해봐야 바뀌는 것도 없어 보인다. 아니, 아주 찔끔찔끔 바뀔지는 몰라도 너무나도 미미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사실은 통계를 보면 잘 나타나 있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전 세계 84개국(인구수로는 전 세계 인구의 90%, 물론 한국도 포함되어 있다)의 주요 시위 843건을 분석한 글에 따르면 모든 시위의 대략 1/3 (37%)이 시위대의 요구를 어느 정도는 이루었다고 한다. 37%란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시위 중 1/3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일지 상상만 해도 손녀딸을 안고 팔짝팔짝 뛸 것 같다. 경찰차 벽 너머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어서 사그러들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시위가 생각나지 않냐?
하지만 시위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현재 한국이 너무 살기 좋으며 청와대에 앉아있는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미치겠는 분덜에겐 한국에 시위가 너무 많다고 불평을 터뜨릴 수도 있다. '세상이 좋아져서 허구헌 날 시위여! 젊은 것들이 말야! 나 젊을 땐 말야...'라고 시작되는 레파토리가 귓구녕을 간지럽히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시위가 늘어나는 것은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종북 좌빨이 넘치는 남한 사회의 특성 때문에 그런 게 절대로 아니라고!!!
*2013년은 6월까지의 조사분 (즉 대략 두 배로 늘어날 거란 의미)
위 도표를 보면 전 세계의 시위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즉 '우리 젊었을 땐 말이야'로 시작되는 그 말에는 '우린 불의에 맞서 반항도 못해봤어'라는 부끄러움이 묻어나는 고해성사나 다름없다.
쟈들의 주장 중에 최근 튀어나온 재미있다 못해 창조적인 논리가 또 있다. 세월호 특별법 때문에 민생정책이 시행되지 못하고 있단다. 어떤 좆선신문은 '한국경제 골든타임이 지나간다'며 협박성 멘트를 날려주신다. 자 이 얼마나 얼척이 없는지 살펴보자.
일단 세월호 특별법보다 중요하다고 부르르짖고 있는 그 경제정책을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이름을 따서 초이노믹스라 부른다고 한다.(꼭 따라 해도 일본을 따라 하는 아스트랄 하심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그 핵심은 여지없이줄푸새(반대하는 넘들줄이고, 우리 편은 많이풀어주고, 빚내서새집사라!!)지만 사실 재미있는 것은 저 말속에 있다.
우리나라는 IMF 이후로 모든 사람 입에 먹고 살기 힘들다는 푸념이 쉰 적이 없다. 즉 계속 어려웠다. 지금 정책 하나 내놓는다고 힘든 서민 경제가 한 번에 좋아질 리는 때려 죽어도 없다.물론 MB처럼 폭삭 말아먹기는 쉽지만 말이다. 어딨냐? 안보이니까 은근 심심하다.그거 누구나 다 안다.
그럼에도 시위 그만하고 새집 사라! 새집 사라! 외친다.그리고 정론을 자처하는 여러 보수지에서 마치 시위 때문에, 세월호 특별법 때문에 경제가 안 좋아지고 있다고 외치고 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이는 일일이 판단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또 눈을 넓혀 전 세계적으로 보자. 과연 시위가 많이 일어나는 나라는 못 살고 경기가 안 좋은가?
통계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다.
으하하 나의완벽한포토샵 실력은 맘껏 비웃어라!!
전반적으로 부유한 국가에서 더 다양한 사안에 대한 더 많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들은 시위 횟수도 적을 뿐더러 그 내용도 다채롭지 못하다. 물론 시위의 수와 그 나라의 부를 연관 짓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일지도 모른다. 시위가 많다고 꼭 잘산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반대로 시위가 우리 사회의 경제를 침체에 빠뜨린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된다. 다양한 사회의 현안에 대해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그에 대한 해법을 찾아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말쌈이 되겠다.
자, 세상 어디고 함 뒤져봐라. 더럽게 부패한 나라가,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나라가, 시민운동이 없는 나라가. 그런 나라가 무쟈게 잘 사는 경우가 있는지. 그리고 한국의 부패지수는 OECD 하위권이다.
지금까지 시위의 장점을 따져봤다. 뭐 굳이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인류의 역사는 시위를 통해서 발전해 왔다. 시민의 자유를 가져온 프랑스 대혁명도 그렇고 여성이 참정권을 획득한 것도 수없이 많은 시위를 통해 가능했으며 우리에겐 '4.19 혁명'이라는, 시민이 직접 가져온 민주주의도 있다. 그걸 다시 빼앗아 간 분의 따님을 모시고 살게 되어 영광이긴 하다만...
그럼 건강하게, 그리고 활발하게 시민들이 더 많은 시위를 통해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사실 쉽지 않은 문제다. 하루 이틀에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결국은 천천히 라도 꾸준히 해결해야 할 일이다.
여기서 필자는 BPB(분데스쩬트랄레 퓨어 폴리티쉐 빌둥의 약자.: 연방시민정치교육센터)라는 기관이 떠오른다. 독일은 2차대전 이후 대국민 정치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내무부 산하에 '정치적으로 독립된'(이것을 굉장히 중요히 여긴다)기구를 만들었다. 이후 꾸준히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알리고 교육하는 일을 해왔다. 자료를 올리고 토론의 장을 만들고 독일 내의 문제뿐 아니라 세계적인 이슈에 대해서 알리고 정보를 제공한다. 물론 한국엔 민족 정론 <딴지일보>가 있긴 하지만 구독자가 졸라게 많지는 않은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에도 이념의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네오나치는 그 영역을 넓히기 위해 인터넷으로 '채식 주의자들을 위한 요리쑈'도 만드는 등 나름 눙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인종차별도 극우도 극좌도뒤엉켜 살아가고 있다.
네오나찌 요리교실 회원모집
분위기는 묘하지만 요리를 가르쳐준다. ㅡ.ㅡ
그럼에도 독일의 극우 세력이 최소한으로 유지되는 것은 지난 역사에 대한, 그리고 현재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대와 이념 간의 갈등이 많다고 외치지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조차 하지 않고 의지도 없는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선거에서 이기는 게 정치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상황에서, 사회 속 약한 자의 목소리는 그 작은 목소리마저 '꼴보기 싫다'고 그만하라는 사람들에 의해 점점 더 힘을 잃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시위가 꼴보기 싫은 분덜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자.
시위가 싫고 약자들의 목소리가 너무 듣기 싫다면 살포시 집을 나와서 나침반을 켜세요. 그리고 N이라고 써 있는 방향으로 침을 맞추고 앞으로 계속 가세요. 그러면 결국 철조망이 나와요. 괜찮아요. 걱정 말고 넘어가세요. 그렇게 계속 올라가다 보면 또 한 번의 철조망을 넘어야 하지만 모두가 반겨줄 거예요. 참, 발 밑은 조심하시구요. 무사히 도착한다면 당신은 이제 시위도 없고 권력자에게 온 마음을 다해 충성할 수 있는 나라에 있을 겁니다. 거기서 행복하게 살면 돼요. 그 나라도 이름에 민주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으니 민주주의는 맞을 수도 있잖아요. 물론 아닐 가능성도 크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여. 어차피 여기서도 민주주의의 가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는데...
논문대필은 국립대학의 경우에는 형법 136조에 따라 공무집행방해죄가 구성된다. 그럼 사립대는? 형법 314조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
법적으로 판결이 나왔고, 수사에 의해 공정거래가(?)도 나왔다.
2010년 사건을 재구성해 보면,
'박사논문은 300만 원, 석사논문은 200만 원'
이라는 가격대가 형성됐다. (이 가격은 더 내려가고 있다. 배울 만큼 배웠지만, 직장을 잡지 못한 수많은 '먹물'들이 대학가 근처를 맴돌면서 가격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지방대학교 근처의 공정거래가(?)를 보면, 심한 경우에는 30만 원짜리도 발견할 수 있으나, 대부분 석사 기준으로 200만 원 이쪽저쪽을 생각하면 된다.(빡치긴 한다. 수백 억 수천 억 해먹고, 석박사 딴 짱짱한 애들이 자신의 학위를 사는데 쓰는 돈이 고작 기백 만원 수준이라니.)
1. K 군 이야기
K 군은 이 바닥에서 소위 '무관의 제왕'이다. 자기 이름으로 낸 책은 한 권도 없지만, 대필로 낸 책이 몇 권이나 되고, 기업체 관련 아르바이트, 경제 관련 프로그램의 기획이나 자료조사 알바를 하고 있다. 물론, 직장도 다니고 있으며, 몇 개의 프로젝트를 통해 '글이 돈이 되는 기적'을 만들기 위해 발버둥쳤다.(에디터라기보다는 프로듀서 쪽이 더 적성에 맞는 듯 하다.)
그런 K가 작년 연말부터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분야가 '논문'이다.
K는 논문대필을 시작했다. 벌써 3~4편 이상의 석사논문을 납품했다.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집에서 빈둥거리느니 알바나 뛰자는 생각으로 뛰어들었어요. 근데 하다 보니 가성비는 이게 정말 최고예요. 2주 만에 2~3백은 땡기니까. 본업은 본업대로 가고, 알바 개념으로 한두 편씩 쓰고 있죠."
"(피식) 돈독이 올라가지고..."
K가 논문대필에 뛰어든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잡문을 쓰는 것보다 벌이가 훨씬 짭짤하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은 문서대행 사이트에서 시작한 알바 구인에서 시작했다가, 본격적으로 이 길에 뛰어든 것이다. 일반인의 생각으론, 논문을 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지만, 프로란 남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일을 쉽게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솔직히 말하겠다. 석사 논문 정도는 우습다. 만약 의뢰인의 전공이 경영, 경제, 국제정치, 정치, 행정 등등과 같이 '대중적인' 전공이라면(사회복지 같은 것도 얼추 이 범주에 넣을 만하다.)말 그대로 땅 집고 헤엄치기다. 게다가 K 정도의 연차 정도 되면 '연구계획서' 발표 정도는 서비스로 해준다.(기분 좋으면 PPT도 만들어준다. 이 바닥에서 보면, 연구계획서도 제대로 만들지 못해서 제출용과 발표용을 따로 만들어서 발표 연습까지 시켜줘야 하는 막장도 많다.)
다들 아실 것이다. 이 논문 연구계획서, 이 칸을 채워 나가서 발표를 해줘야 한다는 자료를. 내게도 이 연구계획서와 논문 작성법에 관한 자료들이 있다.
대충의 틀 거리에 끼워 맞추면 된다. 연구계획서부터 의뢰하는 사람도 있지만, 연구계획서는 서비스로 해주고 논문을 맞춰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려울 거 같지만, 쉽다. 의뢰인의 전공과 논문 주제를 확인하고 나면, 논문 검색시스템을 돌리면 된다. 돌려서 나오는 것들과 각 학회의 학술지와 회보, 국공립 도서관의 검색시스템을 돌리면 된다. 어지간한 마이너 학과가 아닌 이상 논문 검색시스템 한 번 돌리면 논문은 나온다. 아주 질리도록 말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한국의 학술정보 시스템과 뛰어난 IT 기술의 접목, 거기다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많은 학자들 덕분에(학자들 중 많은 이들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고, 그 블로그에 자신의 논문이나 저작물들을 올린다.)논문대필은 아주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어지간한 초짜 아니면, 논문 짜 맞추는데 1~2주면 뒤집어써요."
인정한다. 정말 쉽다. 한해에 쏟아지는 그 수많은 논문들을 보라. 어디서 어떤 게 나오는지 알지도 못한다. 괜찮은 논문 1편을 메인으로 잡고(연구주제를 이걸로 잡아챈다.)이와 유사한 논문들 몇 편을 짜깁기해서 러프하게 논문을 완성한다. 틀이 완성되면, 그 뒤에 문장을 다듬는다.(거의 빠꾸가 날 확률은 없다. 양심적이고, 경험이 있는 대필자의 경우는 논문심사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양심적 우라까이'를 한다. 이 일을 몇 번 해보면 느낌이 오는데, '만학도'를 대상으로 한 논문심사는 꽤 '여유'가 있다. 문단을 통째로 복사하거나 하는 '미친짓'만 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티나는 표절'만 하지 않는다면, 어지간하면 넘어간다.)참고자료의 경우는 해당 논문들의 참고자료를 그대로 ctrl+c, ctrl+v하면 된다. 여기서 밥로스가 등장하면 된다.
"참 쉽죠?"
2. 박사급 석사논문
대중적인 주제로 쓸 수 있는 논문의 경우에는 '제작'에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마이너한 주제를 다루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좀 복잡해진다. K 군의 경우에는 전공이 철학이었다. 철학을 공부했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경제, 경영, 정치, 행정 등등의 석사급 논문을 짜깁기 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다.(당신이 글쟁이라면, 작정하고 논문 3~4편을 써보면, 얼마나 쉬운지 알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마이너한 아이템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선 참고 할(짜깁기할)논문의 절대수가 적다. 논문이 적기 때문이다. 종교학이나 민속 관련 주제 나오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마이너 할수록 단가는 올라가게 되고, 결국 이런 석사논문을,
'박사급 석사논문'
이라고 말하게 된다. 짜깁기를 해서 칸만 채워나가는 논문이 아니라 오리지널로 '작업'을 해야 하기에 박사급 석사논문이라고 말하며 단가를 올리는 것이다.(어떤 이는 논문 대필한 작품을 가지고 연구지원금을 받을 수 없냐는 정말... X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마이너한 학과(학과의 '질'적 평가가 아니라 논문의 절대량에 따른)의 경우에는 대부분 '짠한' 경우가 많기에 의뢰를 거절하는 게 약간은 감정적인 부분도 고려되는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사회에 나왔다가, 사회생활하면서 뜻한 바(?)가 있어(대부분이 자신들이 활동하는 분야의 이익단체나 협회의 '장'을 하고 싶어 하는데, 여기에 도전하려면 선거를 해야 하고, 선거를 하려면 학벌이 공개되고, 학벌이 높으면 유리하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에)전문대를 다니거나 특수목적 4년제를 가거나, 전문대 다니다가 편입을 하거나 해서 일단 학사를 따놓고, 일하면서 계속 대학원을 가는 경우이다. 물론, 학문에 뜻이 있어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의 경우에는 학문과는 담을 쌓기 때문에 '논문'같은 거대한 산을 만나면 대필을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이런 '특수직종'에 있으면 대학원 석사를 따는 게 '남는 장사'다. 실기 위주이기에 어찌어찌 석사까지만 따놓으면 약간의 이론과 결합해 겸임교수 자리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타이틀이 되면 자신의 활동 분야의 '협회장', '단체장' 선거에 출마할 때 유리하다. 만약 일이 좀 잘 된다면, 무슨 무슨 조합장 선거에도 치고 올라갈 수 있기에 완전 남는 장사다.(조합장 한 번 하면 정말 로또 터지는 거다. 이름 없는 국회의원이나 어지간한 시의원보다 더 짭짤하다!!)
(어떤 '특수직종'에 있던 고졸출신의 사장님은 뜻한 바 있어 이런 장기적인 계획을 짜고, 대학을 물색하고 있다. 야망이 있어 보여 좋게 보이는데, 끝까지 자신만의 힘으로 학문적 성취를 이뤘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하게 된다.)
(모 지방대 경영학과 이야기인데, 논문 대필자가 '석사급 논문'의 대필을 의뢰받았다. 최신 트렌드에 따른 경영예측에 관한 걸로 '새끈하게' 뽑아달라는 의뢰. 이 대필자는 다른 글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막판에 가서 S와 H, L 그룹에서 나오는 거시경제 예측 발표와 전망에 대한 보고서와 외국의 경제 전문지 사이트의 기사들을 가져와 구글 번역기를 돌려 논문을 만들었다. 통과되면 '때땡큐'고, 아니면 1~2번 수정을 보면 될 줄 알았다. 자기가 봐도 허접한 수준이었기에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이게 통과되고 덤으로 '우수논문'이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논문'은 그 대학교 대학원의 참고할 만한 '좋은 논문'으로 불리고 복사되며 논문의 '틀'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전설처럼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그 논문의 수준이 어떤가는 모르겠다. 다만 작성자의 말로는 '발'로 썼다고 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대필료를 돌려줄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이때 이후로 대필자는 '논문심사'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됐고, 어느 정도의 기준치인가를 확인하고, 그 기준치의 최저점에 맞춰서 글을 쓴다고 한다.
"우리가 장인도 아니고, 적당한 기준이면 되잖아요. 최선의 최선이 꼭 좋은 건 아니죠. 최선을 다해야 할 때 몰아야죠."
반박할 수 없는 말이다. 단 돈 1~2백에 팔려나가는 논문. 그것도 연구자의 이름이 박히지도 않는 글에 최선의 최선을 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대학원을 가는 이 중 많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꿈'과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다닌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지방에서 '유지행세'를 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학문에 대한 생각보다는 하나의 타이틀로(하긴... 그렇지 않으면 딸 이유도 없겠지만)석사를 바라본다. 그 결과가 바로 '대필'인 것이다. 정말 제대로 된 연구윤리를 고민하고, 학문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다면 논문대필을 의뢰할까?
3. 논문심사
이해한다.
지방대학교의 재정상태란 것을...
그리고 지방이기에 가질 수 있는 '작은 사회'에서의 인맥... 생업을 가진 이들이기에 이들에게는 학생들과는 '조금' 여유 있는 기준을 적용한다는 걸...
서울 대학의 대학원 수업방식이나 대학원 교수님들의 논문 심사 기준을 접해 본 경우는 없기에 서울은 논외로 치겠다. 내가 '석사논문'을 주제로 교수님들과의 접점을 잡은 게 지방대학이었기에 지방대학만을 기준으로 삼았다.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라고 볼 수도 있다. 특정한 몇몇 대학의 몇몇 교수님들의 돌출행동을 전체의 오류로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최소한 내가 '봐온' 특정 교수들의 성향은 그러했고, 최대한 자신들의 상황과 입장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화법'으로 '여유'를 보여줬다.
"최대한 편의를 봐주겠다."
"주경야독하는 분이신데, 핸디캡 드려야죠."
"여유 있게 하시되... 정 어려우면 주변에 '도움'을 받아보시죠. 저도 신경 써드릴 테니..."
(여기서 교수들이 말하는 그 '신경'이란 게 말 그대로 연구자의 양심을 지킨 '호의'인 경우도 있다. 논문에 대해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이들을 위해 조교나 똘똘한 대학원생을 붙여서 '첨삭'을 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수혜자'가 감사의 마음으로 밥이나 커피를 사는 건 당연하고, 여기에 얹어 '차비'조로 얼마간을 건네는 건 한국적 정서에서 허용범위 안이다. 그러나 그 '도움'이 학교 앞 '복사업체'로 연결되거나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용돈이 필요한 대학원생으로 이어진다면 허용범위를 한참 넘어섰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조차도 내게 논문 관련 청탁이 들어오면 대뜸 이렇게 물어본 게 된다.
"담당교수랑 친해요?"
"그럼, 친하지... 아삼륙이지."
"그럼, 인터넷 뒤져서 적당한 가격으로 찾으세요."
"어허, O작가! 그런 걸 어떻게 믿어? 내 원칙 알잖아? 믿고 쓸 수 있는 '제품'만 쓰잖아. 돈 좀 더 들더라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내 섭섭지 않게 해 준다니까."(정말 '말도 안 될' 금액을 제안 받은 적이 있다.)
"지방, 직장인, 석사... 이렇게 3요소가 결합됐죠? 그럼 어지간하면 다 통과돼요. 그러니까 엄한 데 돈 낭비하지 말고, 적당한 업체 찾아보세요. 말만 잘하면 일백 선에서 쇼부 칠 수 있으니까요."
호의와 배려가 어느새 관행이 되고, 그 관행이 어느 순간 최소한의 기준조차도 무너뜨리게 된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특수한 상황의 극히 예외적인 사건이길 바란다. 내가 말하는 이야기가 일반화의 오류에 빠진 글이길 바랄 뿐이다. 아마,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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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시절 내 논문은 정말 쉽게 통과됐다. 대학 시절부터 글밥 먹고 살던 나였기에(대학 3학년 때부터 글을 팔았다.), 논문도 크게 보면 '주제를 잡아놓고 쓰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논문심사에 대해서는 딱히 말할 그 무엇이 없다. 앞에서 언급한 기준... 그러니까 지방의 약간 느슨한 수업 분위기(특정 경우에 한해서), 생업에 종사하는 만학도, 교수와의 인간적 유대(아무래도 학생들보다 유대를 쌓는 게 쉽다. 연배도 비슷하고, 지역사회에서 오가다 마주치다 보니)가 있는 경우에는 어지간하면 다 통과된다고 보면 된다. 정말 대놓고 표절한 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우라까이는 다 통과된다. 내 자의적인 판단이지만,
'학부논문의 기준을 석사에 적용한 경우'
라고 보고 있다. 학부논문의 경우는 학문의 성취나 증명이 아니라 논문작성 방법을 가르치는 것에 의미를 두기에 '논문이란 걸 이렇게 쓰는구나'라는 걸 학생들이 확인하고, 그 작성법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고, '표절'의 경우만 아니라면 조금 부족하고 미성숙하더라도 어지간하면 다 통과시켜준다(요즘은 졸업시험으로 대체하는 것 같던데 나는 아직도 논문을 쓰는 게 맞다고 본다. 대학의 설립취지를 생각한다면, 4년의 수학결과를 정리하는 논문 한 편 정도는 내놔야 하는 게 아닐까?)
두려운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어느 순간 이런 논문대행이나 대필에 대해서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K 군이 내게 해 준 말이 있다.
"형, 그래도 논문을 돈 주고 사는 사람은 양심적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양심적?"
"생각해봐요. 교수들... 자기들 연구실적 맞추겠다고 제자들 논문 가로채거나 표절하는 거보다는 훨씬 양심적이지 않아요? 적어도 논문대행을 맡기는 사람들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잖아요. 최소한 대필료는 주잖아."
"(웃음) 그러니까 교수들은 날로 먹는데, 저 사람들은 돈 내고 구매한다?"
"(웃음) 교수들이 욕 처먹는 이유가 그거잖아. 아주 날로 먹으려 하니까... 하긴 태생이 그런데 어쩌겠어?"
K의 말이 맞는지 모른다. 최소한 논문대행을 원하는 이들은 '대가'를 지불한다. 그렇다면, 교수들은? 교수들도 학부나 대학원 시절 담당 교수들에게 착취당했으니, 이제 그 '비용'을 회수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런 논문대행은 관행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한 나라의 장관 후보자들도 논문을 표절하거나 절취하는 마당에 직장인들이 살아보겠다는... 혹은 미래의 '야망'을 위해 대학원 타이틀을 따겠다는 데 이걸 단죄할 만한 도덕적 정당성을 어디서 구한다는 말인가?
나름 행복한 삶을 산다고 우기는 이들에겐 항상 음악이 있다. 도통 삶이 행복한지 모르던 사람이라도 어느 날 갑자기 기분 좋은 일이 생겨 흥이 날 때면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대기 마련이다. 반면에 피곤하고 힘들게 사느라 온갖 짜증이 넘쳐 ‘씨발 누구 하나 걸려라.’ 하시는 분들 옆에서 흥겨운 노래 한 자락은 ‘덤벼라. 개새끼야.’ 에 필적하는 위력을 갖기도 한다.
게다가 '신뢰를 아니 할 수 없지 않아 → 믿지 아니하지 않지 않을 수밖에 없지 아니하니 → 아니 이런 씨발 알았어. 그냥 믿을게.' 한다는 필자의 최근 통계로는,
1. 나이가 어릴수록 음악을 많이 듣는다는 놀라운 사실과 2. 같은 나이여도 동안인 사람이 노안인 사람보다 더 많은 노래를 듣고 있으며, 심지어 3. 죽은 사람은 하루에 음악을 단 한 차례도 듣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아 씨발 엄청나다!!
음악이 없는 사회는 죽은시인의사회
행복지 않은 곳에 음악이 없고, 희망이 없는 곳엔 노래도 없다. 음악은 행복의 증표이고 희망의 표현이며 생명연장의 꿈을 이루는 매우 헬리코박터 하는 거시기다. 또한 지구를 공격하는 외계인마저 무찌르는 놀라운 무기가 되기도 하니 인간에게 음악은 죽음보다 삶에 가깝다.
팀버튼의 화성침공(1996) - 외계인 퇴치에는 컨트리 음악이 짱이다.
전 국민을 다 죽여버릴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딴지 총수의 소송비가 굳어 딴지스의 회식비로 쓰이게 될 그날까지 흥겹게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음악을 포기할 수 없다. 하여 십여 년간 딴지 눈팅만 하며 충분히 즐거웠던 필자는 이제는 글도 써야겠다 싶어 오늘 그 첫 번째로 딴지스 제위께 좋은 음악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며칠 전 벅스뮤직, 엠넷, 네이버뮤직 등에 새로운 앨범 하나가 떡하니 올라왔다.
떡!!!!!!!!!!!!!!!!!!!!!!!!!!!
이름하여 “도밍고 1집”
도밍고 1집에 수록된 곡들은 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 남미 파라과이에 2년간 봉사활동을 다녀온 도밍고(본명:편효영)가 파라과이에서 지내는 동안 칠공을 뚫고 꾸역꾸역 흘러넘치는 감수성과 창작 욕구를 감당치 못하여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을 잃은 뒤 수일 후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는 기타가 들려있고 노래는 이미 수 곡이 완성되어 있더라는 조~올라 말도 안 되는 전설 같은 후문이 도는 곡들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주인이 의식을 잃은 틈을 타 손가락과 입이 벌인 개별적 일탈 행동에 의한 산물로서 혹여나 익숙한 코드와 멜로디가 들린다 해도 도밍고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으니 딴지스 제위께서는 지적을 삼가고 다만 매우 인디인디하게 창작욕을 불사지르며 새로이 등장한 새내기 뮤지션에게 뜨거운 박수 한번 쳐주고 계속 읽어나가길 바라겠다. 자 일단 박수~
수록곡은 타이틀곡인 ‘차코바람’부터 ‘이방인의 사랑’, ‘히치하이킹’까지 무려 3곡이나 들어있지만, CD가 너무 남아 싸~비스로 3곡 중 2곡의 MR을 다시 담았다.뭐 이런 걸 다...총 5트랙이다.
차코는 파라과이의 북쪽의 광대한 황야지대다. 거의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곳으로 연평균 기온이 20도를 넘고 여름(남반구의 여름은 12월~2월)에는 섭씨 50도를 웃도는 겁나게 더운 지역이다. 바람조차 뜨끈뜨끈한 그런 곳을 겁대가리 없이, 그것도 여름에 도밍고 외 3인이 도보여행 비슷하게 갔다가 더위 왕창 먹고 돌아왔다. 이 노래 ‘차코바람’은 도밍고가 더위 먹고 정신이 나가서 만든 노래이다.
그런대로 쓸만한 보이스와 왠지 모를 익숙한 코드를 갠춘하게 쌈싸낸 들음 직한 곡이라 평하겠다.아쉬운 점은 가사에 ‘홍경 형님’이라는 특정인의 이름을 거론함으로써 대중성이 다소 훼손되어 매우 인디스럽고도 아마틱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음반제작 초기부터 부분적 개사의 필요성에 대해 수많은 의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밍고는 절대 바꿀 수 없으니 차라리 음반 안 내고 만다...라고 했을까?
알아보니 도밍고에게 ‘홍경 형님’은 세상의 수많은 형님 중 ‘참 형님’으로 모실 수밖에 없는 절대적 형님으로서....... 필자다... 하..하하..하하하
이는 순전히 필자의 인품이 훌륭해서 초래된 일이므로 뭐 어쩔 수 없지 싶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딴지스들 또한 필자를 형님으로 모시고 싶다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욕구가 마치 변강쇠의 오줌빨처럼 강려크하게 뿜어지고 있겠지만 아쉽게도 이미 챙길 동생들이 너무 많으니 받아들이지 않겠다. 진심... 미안하다.
아 이미 가사를 보고 짐작했겠지만, 필자는 진짜 말이 많다. 하하하.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헛소리와 농담을 포기할 수 없게 태어났으니 ‘홍경 형님 말수가 줄어들었다.’라는 것은 극도의 위기상황을 지칭하는 관용적 표현 정도로 이해해주면 된다. ‘홍경 형님도 말수가 줄어들 만한 상황이다.’처럼 응용해서 사용할 수 있겠다.
쨌든, 도밍고 1집의 타이틀곡 ‘차코바람’은 극도로 힘든 상황이지만 희망을 잃지 말고 힘을 내자는 무척 응원다운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이라 하겠다.
요즘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게 참으로 힘든 상황이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보았던, 뭔가 변화되는 것만 같았던 수많은 희망을 기억하면서 우리 다 같이 힘을 내어 보자. ‘차코바람’을 들으며 힘을 내자.
수록곡 2. 이방인의 사랑
두 번째 트랙에 수록되어있는 곡은 파라과이의 어여쁜 세뇨리따에게 뻑가서 들이대다가 시원하게 까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노래 ‘이방인의 사랑’이다.
*Te amo te extraño te quiero (사랑해, 보고싶어, 좋아해) 내게 말했잖아
도밍고 넌 외국인
Ya se que soy un extranjero(그래 난 결국 외국인이었어)
미안해 이제와 널 생각해 널 바라봤던 내 모습을 후회해
반짝거리는 네 미소에 내 맘을 줬고
넌 웃으며 점점 멀어져가고 남겨진 내 눈에 눈물이
*
이방인도 사랑해 이방인을 사랑해
이룰 수 있을 줄 알았던 내 사랑이 이제와 나 후회해
No quiero que nos lastimemos(서로 상처주기 싫어)
파라과이에 생각보다 미인이 많지 않아 필자는 살짝 실망하긴 했었지만, 가끔 출몰하는 미인들을 길에서 만나면 ‘이거시야 말로 해외봉사활동의 소소한 기쁨이로세.’ 생각하며 지냈더랬다.
반면에 도밍고는 봉사활동을 열심히 해 축복을 받은 것인지 미인들을 꽤 많이 만났었나 보다. 애석한 것은 어차피 언젠가 한국으로 떠나버릴 남자에게 쉽게 마음을 내어줄 리 만무하니... 내 그럴 줄 알았다.아.. 미인하면 우즈벡인데.. 우즈벡으로 언제 봉사나 한번..
어쨌든 파라과이 여인의 사랑은 못 얻었지만, 노래는 하나 건졌으니 형이 참으로 축하해주마.
‘이방인의 사랑’은 장르로 치면 롹발롸드 되시겠다.시작부터 둥둥 대는 베이스의 울림이 마치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두근거리는 심장의 울림같이 느껴져 가사와의 어울림이 그럴싸하다.
또한 전반부 베이스의 둥둥거림과 후반부 일렉기타의 강렬한 사운드의 대비는 노래가 전체적으로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준다.아마도 작곡보다는 편곡에 의한 결과로 여겨져 편곡을 맡아주신 박동현 님께 따로 후한 점수를 드리고 싶다.
타이틀곡인 ‘차코바람’에 비해 쉽게 따라부르고 쉽게 걸려드는 맛은 없어 좀 아쉽지만 모든 노래가 동요처럼, 후크송처럼 다 따라부르기 좋아야 하는 것은 아니니 어쨌든 잘 만든 노래라고 생각한다. 다만 가사는 결국 냅다 까이고 괜히 마음 줬다고 후회한다는 찌질한 내용이니 필자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점수를 조금 깎아야겠다.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맘 줬던 것마저 후회하면 쓰나.
수록곡 3. 히치하이킹
마지막 곡으로 세 번째 트랙에 수록되어있다.전반적으로 나른한 느낌이 묻어나는 노래로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히치하이킹이 원래 이런 느낌이었나?’하는 의구심이 싹튼다.
이 노래를 듣고 나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매우 나른하게 느껴지는 보이스와 멜로디는 듣는이마저 축 늘어지게 하여 숙면에 매우 좋을 것으로 예상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음악으로 권장할만하다. 숙면을 위한 도밍고의 배려, 칭찬해 마지않는다.
필자는 도밍고가 이 노래를 만들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떠났을 당시 함께하지 못했으므로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곡 전반에 흐르는 나른하고 늘어지는 분위기를 보건대, ‘태워주는 차가 더럽게 없었나 보다.’하고 짐작하게 된다. 2분 15초쯤에 곡에 변화가 생기자 ‘드디어 차를 얻어탔구나!’하고 생각했지만 금방 다시 나른한 분위기로 돌아가는 것을 봐서는...
분명 어떤 차가 태워주려고 멈췄다가 시커먼 외국인 사내놈 둘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놀라서 내뺀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지도에 표시된 곳이 엔까르나시온
가사에 나오는 환희의 도시 엔까르나시온은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에서 375km가량 남쪽으로 떨어져 있는 도시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에서 마산까지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갔다는 소리인데...
노래가 나른해질 만하다. 그 더운 나라에서 말이지.
어쨌든 멜로디를 통해 히치하이킹 당시의 그림이 그려지는 이 안 봐도 비디오와 같은 놀라운 음악적 표현력은 신예 가수 도밍고가 싱어송라이터로서 충분한 자질을 갖췄음을 시사한다.음악의 시각적 표현력에 다시 한 번 박수를 쳐준다. 짝짝짝. 부라~보~!!
나머지 4번 트랙과 5번 트랙은 ‘차코바람’과 ‘이방인의 사랑’ MR이니 소개 생략이다.
앞서 밝힌 것처럼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도밍고가 해외봉사단원으로 파라과이에 2년간 머물면서 창작욕이 불타올라 그 뜨거움을 못 견뎌 불가피하게 토해낸 곡들이다.
그럼에도 봉사에 관련된 노래가 없다! 2년간 놀다 왔느냐?
사실 도밍고는 타 단원들에게 정말로 모범이 될 만큼 봉사활동을 훌륭히 수행하고 현지언론에도 그의 봉사활동이 소개될 만큼 왕성한 봉사활동을 한 모범단원이다. 그럼에도 봉사에 관한 노래는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볼 때, 역시 사람은 일할 때 보다 놀 때에 창작욕과 감수성이 폭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타! 레이디가카께서 바라는 창조경제와 국가발전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좀 놀아야 된다.
주4일 근무 정도가 딱 적당하겠네!
어쩌다 보니 글을 쭉-쭉- 길게도 썼구나. 이 글 쓴다고 날 새서 피곤하니 나도 어여 ‘히치하이킹’이나 들으며 한숨 자야 쓰것다.
노래소개마다 링크해둔 미리 듣기 감상해보고 마음에 드는 곡은 서슴없이, 가차 없이, 부끄러워 말고 다운받아도 된다.
앨범 홍보해주면 혹시나 콩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니, 다른 건 몰라도 필자의 순수한 마음만큼은 의심하지 말아주길 바라며 그런 의미에서 많이들 다운받고 즐겁게 듣길 바란다. 물론 CD로도 구매할 수 있었으나 워낙 인디인디한 도밍고가 수작업으로 CD 만들기 힘들다고 정확한 수요조사를 통해 꼴랑 10장만 제작하는 바람에 이미 절찬리에 매진되었다. 혹여 기대는 않지만, 댓글이라도 많이 달리면 신인가수 도밍고를 닦달해서 공동구매라도 추진해본다.
어쨌든, 서두에 밝힌 음악과 인생의 상관관계를 고려해서 다들 음악 많이 듣고 살자. 이상!!
프롤로그와 0편이 나오고 4개월이 지나서야 1편이 나왔다. 순서대로라면 이번엔 2편이 나와야 맞지만 수능이 100일도 남지 않은 지금, 벌써 10년도 지난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지금은 하늘 아래 알 수 없는 어느 곳에서 배 나온 아기 아빠가 되어 살고 있을 그 친구가 생각이 나 버렸다. 따라서 내 마음대로 목차를 뛰어넘어 본다.
이 이야기는 첫 키스와 첫 섹스 시도에 대한 이야기.
0. 로리타 콤플렉스 1. 안전지대와 멜빵 2. 오봉 배달부 3. 음성사서함과 러브레터, 그리고 스토커 4. 첫눈에 반한다는 것 5. 김짱과 노짱 6. 그에게 가는 막차 7. 첫 담배 8. 애기야 9. 감기 10. 벽 11. 수컷들 12.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13. 쓰리썸과 그리스 14. 고목나무의 다람쥐 15. 일본남자는 별로 16. 첫사랑이 돌아오다 17. 이탈리아 남자란 18. 영혼이 닮았다 19. 11살 20. 놓치고 보니 아까운 남자 21. 여행지의 불길 22. 와우폐인 23. 하늘에 별이 보여? 24. 손호영 닮은꼴 25. 청산리 벽계수 26. 자살금지 27. 그의 친구 28. 첫 프로포즈 29. 12년의 우정 30. 꽃돌이 31. 섹스도 사랑이라면 32. 에이즈의 기억 33. 상상인연 34. 부잣집 외동아들 35. 줘도 못 먹는 남자 36. 애 딸린 남자 39. 친구라며? 38. 진심이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닌가 봐 39. 현재진행형? 40. 흑형
기억 속 그 아이는 잘 구워진 식빵맨같이 생겼다.
맛있겠...
벌써 10년도 넘어 버린 이야기. 고3이었던 나는 평범한 수험생들이 그러하듯 앞에서는 수능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뒤에서는 할 거 다 하면서 나름의 유희를 즐기고 있었더랬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가 좋았다고 할 만한 점이 있기는 한 것이, 코앞에 보이는 목표가 자명했고, 좋든 싫든 따라 할 길잡이가 있었던 거?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지금, 말 그대로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 시간을 준비도 되지 않은 채로 맞이하게 된 지금, 사실 가끔은 그 시절의 내가 부러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한 번쯤은 망설여 보게 될 듯한 고3 시절, 내 인생에 드디어 제대로 된, 바꾸어 말하면 어느 정도 이상의 스킨십이 진행된 스토리가 전개되었다. 한 번 제대로 붙은 불은 고3이라는 소화기로도 진화되지 않은 채 내 존재 전체로 옮겨붙어 당시 내 생활을 전소시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숙사에 살고 있던지라 한 달에 딱 한 번의 귀가와 일주일에 한 번의 외출만이 허락되었는데, 이 엄격한 규율이 무색하게도 나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기숙사를 빠져나가곤 했다. 네모진 얼굴과 구릿빛 피부에 유난히도 까만, 마치 서리태 같은 눈동자를 하고 있던 그 친구는 나와는 다른 도시에 살고 있었다. 학교에서 그가 사는 곳까지는 시외버스로 한 시간 남짓.
그에게 가는 길은 항상 어두운 밤길이었다
야자를 빠져나오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고3에게는 온갖 특권이 쥐어지는바, 나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특히 생리통은 좋은 핑계였다. 생리야 보통은 한 달에 한 번 찾아오지만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이보다 더 자주 찾아오기도, 일주일보다 더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아랫배 혹은 허리를 부여잡고 약간의 특수효과 처리로 식은땀을 연출해 내면 교실을 빠져나와 기숙사로 들어갈 수 있었다. 기숙사에 들어가 사감 선생님의 조퇴 리스트에 도장을 받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챙긴다. 다음날 학교로 돌아오면 곧장 수업에 들어가야 하므로 가방에는 다음 날 입을 교복과 책 몇 권을 넣는다. 그리고선 야자 쉬는 시간, 기숙사를 오가는 인파가 몰리는 바로 그때를 틈타 쥐새끼마냥 학교를 유유히 빠져나온다. 당시 교문에 설치된 관리실은 그저 전시용에 불과했으므로 기숙사만 빠져 나오면 만사 오케이. 필자의 용의주도함으로 인하여 단 한 번도 중간에 걸린 적이 없었음은 보너스.
학교 주변은 그저 논밭. 시골 길을 10분 남짓 걸어가다 보면 읍내 풍경 비스무리한 동네 길로 접어 든다. 그 황량한 길을 조금 더 걸어가면 나오는 쿰쿰한 냄새의 시외버스터미널. 버스를 잡아타고 그 아이가 있는 도시로 향한다. 버스에서 내리는 나를 기다리는 그. 그리고 일상에서 탈출한 해방감과 해냈다는 묘한 성취감에 그를 보는 설렘이 더해진다. 우리의 데이트는 별게 없었는데, 수줍게 손을 잡고, 주황색 가로등이 켜진 어두운 길거리를 걸으며 노래를 부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게 다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밤의 마력에도 우리는 꽤나 순진했던 것 같다. 아니, 그저 내가 순진했던 걸까? 만약 그저 나만 순진했던 거라면, 성적 에너지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임을 감안해 볼 때, 어쩌면 내가 그 아이를 고문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긴 하다.
그런 식의 만남이 지속된 지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때였다. 여름과 가을의 중간쯤. 해가 지면 조금은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던 그런 때였던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귀가 날, 나는 곧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그 아이를 만나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모처럼 밝은 날에 만난 그 아이의 얼굴은 햇살을 받아 더욱 빛이 났고,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바닷가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점차 태양이 빨간빛을 잃어가며 그 색을 하늘에 나누어 주기 시작한 그 때, 우리는 더이상 말이 없었다. 그리고 울리는 전화벨 소리. 각자의 집에서 왜 안 들어오냐며 귀가를 독촉하는 전화가 몇 통 온 이후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던 것 같다.
이런 노을을 배경 삼아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의 망설임이나 선택은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굳이 그 감정을 분석해 보자면 이런 걸까 싶다. 잠깐 잠깐의 만남 이후 이어지며 커져 버린 애잔함과 노을 빛깔에 물든 서로를 바라보는 설레임, 그리고 그에 더해 부모의 간섭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하고 싶다는 10대의 마음. 이런 것들이 뒤섞여 일으킨 화학작용에 우리는 말 없이 서로를 응시했고, 곧이어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와 닿았다. 첫 키스. 만약 그 때 우리의 부모님이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면 우리가 그 날 그 장소에서 키스를 할 수 있었을까? 모를 일이지만 부모의 간섭이 없었다면 그 날이 아니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저지를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77남 0편을 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사실상 그 아이와의 키스가 내 인생의 첫 키스는 아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진정한 첫 키스는 21세기에 접어들어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늦여름 저녁 무렵의 그 키스. 다만 그의 입술이 포개졌을 때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보는 장면처럼 놀란 토끼 눈을 뜨거나 하지는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이 당연히 일어나야 하는 바로 그때에 내게 닥친 것 같았다. 눈은 질끈 감은 채.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이 지나가고 눈을 떠보니 이미 해는 바다 아래로 자취를 감추고 있었고, 태양의 잔상만이 힘겹게 하늘에 남아 점점 그 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게 어색해 진 나는 아무 말 없이 까만 콩 같던 그 아이의 눈과 바닥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저... 너 첫 키스지?"
"으응?"
안 그래도 어색한 분위기에 어색한 침묵마저 더해져 참을 수 없는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 걸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나는,
"어떻게 알았어?"
"아~ 니가 너무 굶주려 있던 것처럼 마구 덤벼서 그런 것 같았어."
첫 키스. 그것도 내 인생의 첫 키스 직후, 뭔가 로맨틱한 말이 나올 거라고 기대했었던지라 그저 머리가 '띵~' 했다. 굶주려 있었다니? 내가 덤볐다니? 나는 그저 내 입안으로 들어오는 혀의 감촉을 좀 더 느껴 보고자 내 혀로 맞대어 보고, 살짝 맛보고 흡입해 보고 그러다 강약조절도 한번 해보고 했을 뿐인데. 뭔가 억울했다. 서툴렀다면 그저 서툴렀다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굶주렸다"느니"덤볐다"느니 하는 어휘를 사용했던 걸까? 사실 아직도 본 필자는 잘 이해가 안 된다. 그냥 시원하게 물어보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그리하지는 못했다. 만약 그 심리상태 혹은 사고의 흐름이 이해가 되는 독자가 있다면 조언해 주시라. 어쩌면 문자 그대로 내가 정말로 굶주려서 덤볐을지도 모른다는 건 하나의 가능성.
그 키스 이후에 입술에 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 걸 키스점이라고 이름 붙였다. 어느 시점까지는 키스를 하고 나면 그 점의 색이 점점 진해지는 것을 느꼈으니까. 헌데 지금은 오히려 그 색이 옅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제대로 된 격렬한 키스를 못 해 본 지가 어언... 쩝, 노 코멘트.)
(여기 난 점은 어떻고 저기 난 점은 어떻고 하는데 입술에 난 점은 그럼 무슨 의미?)
여튼 다시 그때 시점으로 돌아가서."너 첫 키스지?"이딴 말을 하는 걸 보니 이 자식은 첫 키스가 아니었을지는 몰라도 여성을 세 치 혀로 홀리는 스킬은 갖추지 못한 병아리이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병아리 주제에 위세를 떠는 것으로 보이는 그에게 "그럼 너는 아니냐?!"하는 간단한 반격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이야 그게 뭐라고, 백만 번도 더 물어볼 수 있지만 그때 나는 호기심이 많든 혹은 발랑 까졌든 그래도 아직은 눈에 별을 달고 있던 십 대 후반의 소녀였을 뿐이니까. 그래도 대강 눈치로 이 새끼 유경험자구나 싶긴 했다. 왠지 모를 허무함도 밀려왔다.
지금이라면, 만약 한 남자와 키스를 했는데 그가 곧이어 첫 키스였노라 고백하면 '이 거 병신 아닐까', 혹은 '그냥 도망가 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지만 당시에는 달랐던 게다. 내게 이미 특별해진 그 사람에게 나 역시 특별한 사람임을 '처음'이라는 것으로 증명받고 싶었던 걸까. 그러고 보니 내가 만났던 그 많은 사람 중 나와의 키스가 첫 키스였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정말 별것도 아닌데 왠지 가슴 속이 아련하달까 혹은 배 속이 허하달까. 배가 고픈가.
하지만 그 아이도 별수 없이 고작(?!) 키스 경험이 전부였던 것 같다. 그 날의 키스 이후 우리의 관계가 확실히 보다 육체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음에도 불구, 그 아이 역시 나를 뭐 제대로 리드할 만큼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성에 대한 호기심은 내가 그 아이보다 앞섰던 것인지 내가 오히려 더 과감한 시도와 요구를 했던 것도 같다. 그러고 보면 손만 잡던 관계와 키스를 한 관계 사이에는 참으로 많은 간극이 존재하는 듯 하며, 키스란 마치 어떤 문을 과감히 열어 제낀 것 마냥 보다 많은 진전(!)을 가능케 하는 하나의 중요한 계기로 기능하는 것 같다.
앙드레 프레보(Andre Prevost),
"정신적 사랑은 분출 없는 화산과 같다"
키스 이전의 스킨십이란 손을 잡고 팔짱 혹은 어깨를 감싸는 등 주로 일상생활에서 의복으로 굳이 가리지 않아도 되는 부위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키스 이후의 스킨십은 그 범위가 점차, 또한 비교적 급속도로 넓어진달까. 이를테면 우선은 가슴을 비롯한 신체 여러 부위에 대한 터치, 그 이후에는 살끼리의 부대낌. 처음에는 손을 상대의 옷 속에 넣어 만지는 정도의 부대낌이었다면 점차 그 부대끼는 면적이 보다 넓어지고, 동시에 세분화되는 것. 그리고 삽입, 여러 각도와 여러 위치, 여러 장소에서의 삽입. 뭐, 물론 모두가 이 단계를 거치는 것도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지만 적어도 나의 첫 경험들은 대강 이런 단계를 차근히 밟아 갔다.
첫 키스 이후 우리는 점차 서로의 몸을 탐하였다. 키스 이전의 데이트가 밤거리를 거닐며 복음성가(!)를 부르고 수다를 떠는 게 다였다면, 키스 이후의 데이트는 말보다는 행동이 많아졌다. 어느 순간 그 아이는 내 가슴을 움켜 쥐기에 이르렀고, 그 아이의 거친 숨과 내 가슴이 지닌 그 능력에 나는 놀라면서도 일종의 흥분감과 재미를 느꼈다. 그렇게 두 달 정도 지났나? 그날도 야자를 제쳐 두고 시외버스에 몸을 맡겼던 그런 밤이었다. 곁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풍경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인지라 소도시 밤 풍경의 그 황량함도 나는 마냥 좋았다. 어쩌면 내 현실, 그러니까 기숙사에 갇혀 수능만을 위해 달려가는 것 말고는 그 어떤 것도 가치 없어 보이는 그 현실을 잠시 잊기에 그만한 유희도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미술을 하고 있던 그 아이는 그날따라 나를 불 꺼진 학교로 데려 갔다. 미술실 안 널찍한 책상에는 그 아이가 작업을 하는 여러 도구가 널브러져 있었다. 갇혀 있던 물이 한순간에 터져 나와 콸콸 흘러내리듯 우리는 욕망에 사로잡혔고 작업대 위에 누워 서로를 탐하기 시작하였다.
서로를 쓰다듬다 결국 서로의 옷을 벗기기 시작하는 순간, 미술실 밖에서 수위 아저씨의 걸음 소리인 듯한 소리가 들려 왔고 정신이 퍼뜩 든 우리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 조용히 학교 밖을 빠져나왔다. 완전 흥분 상태에서, 아직 완수되지 못한 금지된 장난을 계속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혀 그 아이의 집으로 향했다. 꽤 오랜 기간을 만난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 집에 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 아이의 방에 들어간 우리는 잠시 포즈되었던 욕망에 다시 재생버튼을 눌렀다. 이미 금지라는 빗장은 풀어진 지 오래였으므로 그 아이는 이번에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내 옷을 벗겼고, 나는 그에 별다른 거부는 하지 않았다. 단,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므로 슬쩍 상체나 하체를 일으켜 티셔츠와 바지를 벗기기에 조금 더 수월한 조건을 만들어 주었을 뿐이었다.
곧 우리 둘은 모두 알몸이 되었다. 빛은 그리 밝지 않았기에 그의 몸 구석구석을 다 볼 수는 없었지만 들뜬 두 남녀의 알몸이 서로 닿는,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그 감각에 몸의 모든 촉각 세포가 긴장에 긴장을 거듭하여 곤두서는 그런 순간이었다. 아니, 보이지 않았기에 그의 손길 한 번에도 온몸이 떨려 왔다. 그의 몸은 내 몸을 덮었고 본능이 명하는 대로 내 몸은 그의 몸에 반응하였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기에 두려웠고, 두려움은 더욱 나를 흥분시켰으며 이미 나는 이성의 영역을 넘어 다른 차원으로 진출하고 있었다. 일이 이대로 계속 진행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나의 첫 섹스는 그저 시도에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발목을 잡은 것은 한국의 성교육...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77남 32편 '에이즈의 기억'에서 이미 풀어놓은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저 링크 타고 가기가 귀찮은 독자들을 위해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내 무지로 인하여 두 다리를 벌리지 않았고, 그 아이 역시 그 이상의 시도를 감행하지 않았기에 우리의 금지된 장난은 애무에,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욕망을 바라는 만큼 분출하지 못해서였는지 다음 날 아침 무언가 상당히 어색해진 상태로 나는 학교에 돌아왔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고3의 일상 속으로 안착했지만 그 아이와의 관계에는 무언가 변화가 생겼다. 양 끝에서 같은 힘으로 당겨 팽팽해진 상태의 고무줄이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은 그 탄성을 잃어버리듯. 물론 그 이유 중에는 그 아이와 나 모두 고3이었고, 수능을 이제는 한 달 반여 정도밖에 남겨두지 않았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분명 있었을 테다. 하지만 이제껏 정신 못 차리고 그 아이와의 관계에 푹 빠져 있던 내가 급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데에는 더이상 그와의 관계가 이전만큼의 감흥과 자극을 제공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유가 더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후 별다를 것 없는 만남이 몇 번 이어졌고, 곧 우리는 서로 수능 끝나고 나면 만나자는, 아주 합리적이면서도 쿨한, 사회의 시선에서는 아주 바람직해 마지않는 약속을 하고선 기다렸다는 듯 점점 멀어져 갔다. 수능이 끝난 후, 약속대로 우리는 몇 번의 만남을 더 가졌지만, 이제는 제대로 현실로 닥친 미래에 대한 수많은 고민들, 이를테면 어떤 대학에 가야 하나 등과 같은 사소하지만 아주 중요해 보이던 그런 문제들에 묻혀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만약 그 날 우리의 첫 시도가 미수에 그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더 오래 만났을까? 만약 그랬다면 나는 수능이라도 제대로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아주 쓸모 없는 의문을 지금 시점에서 한 번 품어 본다.
그와의 마지막을 두고 고민하고 있을 때 내 머리에 자리하고 있던 생각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대학에 가면 핑크빛 로맨스가 펼쳐질 텐데 꼭 이 아이랑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걸까?', '나는 서울로 대학을 가지만 얘는 지방에 남아 있을텐데 내가 왜 얘랑 같이 있어야 하지?' 등과 같은 알량하고 유치하면서도 속물 같은 생각들을 그 꽃같은 나이에 나는 이미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 내게 더 이상의 자극을 제공해 주지 못했고, 어디에선가 유입되어 체화된 병신같은 생각은 점점 나를 설득시켜 가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사무치던 그리움, 미친 듯이 솟구치던 욕망이 무색하게 아주 흐지부지하게 우리 관계는 끝이 났다. 그러면서도 당시 나는 대학에 가면 내게 다가올 장밋빛 인생을 꿈꾸며 그저 설렘에 행복해 했던 것 같다. 물론 대학은 절대로 장밋빛 인생을 공짜로 내어주는 마법상자는 아니었다만.
만약 그 아이와 그날 밤 거사를 제대로 치렀다면? 분명 그와의 열정적인 관계가 조금 더 오래 유지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결국엔 같은 이유, 그러니까 나는 서울로 대학을 가고, 그 친구는 지방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이유로 헤어짐을 고하지 않았을까. 이제 바로 맛볼 수 있는 '대학생활'이라는 탐스러워 보이는 케이크를 이미 식어빠진 인스턴트 커피와 먹고 싶지는 않다는 허영 혹은 솔직함이 내게 있었다. 직전까지 내 척박한 현실에 즐거움을 안겨주는 도피처로 기능하던 그가 내 발목을 잡을 밧줄이 되어 버릴 기미가 보이자 나는 참으로 현실적이고 과감하게 그의 효용가치 상실을 선언하고 떠나 버렸다.
이제 그 친구의 점수를 매겨 보자. 이번만큼은 정말 이 표가 별로 쓸모없다고 여겨지는데, 당시 내게는 이런저런 것들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 100점 만점에 71.5점이 나오기는 했으나, 내가 필요할 때 항상 있어 주었으니 100점. 게다가 로맨틱한 첫 키스 100점 추가. 성적 에너지 발산의 계기를 만들어 준 점 또 100점 추가. 합이 300점. 그러면 뭐하나, 그에 대한 내 흥미가 떨어지고, 내 즐거운 미래를 망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별 망설임 없이 핑크빛 대학생활을 위해 과감히 떠나 버릴 수 있었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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