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대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을 훌쩍 넘기고,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자기 자식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나 좀 알자며 40일이 넘게 목숨을 건 단식을 했지만 '놀러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걸 왜 정부한테 따지냐'는 권력의 태도에서 마치 자국민이 백만 명쯤 죽어도 전혀 끄떡 없을 것만 같은 어떤 '강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벽'에 의한 통치를 실감하고 있는 요즘.
'세월호 대참사 여파로 내수가 침체되었고, 그로 인해 나라 재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니까 이제 고만 좀 해라'라는 사회 분위기는, 미친 놈들과 같이 살아가려니 세상 참 어렵다는 깨달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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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찌라시들이 구라치는거야 '전례가 많은 일'이지만 정부부처 장관들이 민생을 운운하며 '입법촉구 호소문'이라는 걸 발표하고 그러는 건 좀 별 일인 것 같다. 뭐, 좀 있으면 이런 것도 뻔해지고 우린 익숙해지겠지. 아마도 그동안 정부와 새누리당이 꾸준히 짖어오던대로 세월호 여파로 경기가 침체되었고 그걸 지들이 간신히 살려냈다는 뭐 그런 소리를 하고 싶은 모양이다.
<경제는 '심리'라고 한다면 시장의 심리는 우리를 하염 없이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간신히 지켜온 경기회복의 불씨에 다시 찬물을 끼얹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근데, 한 번 생각해보자. 혹시 여러분들이나 주변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대참사 때문에 친구들과의 여행약속을 취소했거나 사려던 물건을 안샀거나 아니면, 마시려던 술을 안마셨는가?
우리가진짜그랬던가?
1. 소매판매액지수
민간의 소비동향을 살펴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지표 중에'소매판매액지수'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설문에 의한 조사가 아닌,실제 판매액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실제 소비에 대한 동향을 잘 나타내는 지표이다.
그럼, 최근 3년 간의 소매 업태 별 소매판매액지수를 살펴보자.(하늘색으로 표시된 '총지수'에 주목)
총 지수를 보면, 2014년 2월(②번)이 2014년 4월(①번), 5월(③번)에 비해 낮다. 세월호 사고가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걸 감안하면 이미 2월부터 낮았고 5월에는 증가했다. 또한 2013년 4월, 2012년 4월에 비해오히려 판매액지수는 증가했다.
그 밖에도, 경기동행지수도 이미 그전부터 하락하고 있었고,숙박업생산지수 등 서비스생산지수는 5월, 6월에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렇듯 각종 통계지표들이세월호 대참사와 민간소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통계에서 그렇게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하며 선량한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우김)'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저들의 방식으로 다시 그래프의2012년 12월을 살펴보자.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가 있던 2012년 12월. 이제 '이명박과 공구리들'의 막장통치를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사람들의 소비심리가 9월부터 12월(④번)까지 마구 살아나고 있다.
그러다가 쥐 대신 닭, '또 하나의 가축'이라는 멘붕 상황에 빠진 사람들은 18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는 2013년 2월(⑤번)까지 소비를 줄였고 이후,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쓰고 죽자는 심정으로 돈을 쓰기 시작해서 다시 소비는 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석해도 되는 거냐? 그러지 좀 말자.
왜 같은 통계를 보면서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가?
통계라는 게 나쁜 의도를 가진 놈들이 사기 치는 데 쓰기 시작하면 이것만큼 지랄 맞은 게 없다. 세월호 대참사가 소비자의 실질적인 소비동향과 얼마나 상관이 있는지는 상식있는 여러분들이 알아서 판단하시라.
2. 경제순환
다들 잘 알겠지만 경제는 다음 그림처럼 각 주체들이 각자 역할을 하면서 순환한다.
<출처 : 네이버>
그런데 만약, 어느 사회에서 정부가 공공재를 가계에는 똑바로 공급하지 않고, 몇 개의 특정한 기업에만 공급하고 있다면. 게다가 그 공공재를 많이 공급 받은 기업이 정부에 세금을 적게 내면서 가계에는 후진 상품을 비싸게 팔고 있다면.
그런 사회에서 가계는 그저 열심히 일이나 해서 세금이나 내고 그 상품의 가치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며 구입하는 것에 만족하며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걸까?
3. 주권자, 소비자
국민 304명이, 모두를 구조할 수 있을 만큼 오랜 시간에 걸쳐 죽는 상황이 생중계되었던 대참사 이후에도 '권력자의 사생활 보호'에만 관심을 갖는 정부와 유가족의 목숨을 건 단식에 막말하는 여당, 그리고 수만 명이 모여 시위를 해도 똑바로 알리지 않던 찌라시들이 국민의 소비동향에 대해서는 왜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 나라의'주권자'라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저들은 우리를 그냥'소비자'라고만 여기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은 가계를 쥐어짜서 노동을 착취하고, 빚을 내서라도 가계가 소비를 하게 만들어야 자신들이 똑바로 역할을 하지 않아도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가계의 소비는 매우 중요하다. 이런 삐뚤어지고 극단적인 논리가 아니더라도, 소비는 경제순환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경제학자들은 유효수요 즉, 소비에 대한 얘기를 주구장창 하는 것이다.
그동안 가계는 소비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는데, 소비를 위해 기업에 소득을 늘려달라고도 해봤고 소비자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에 공공재를 똑바로 공급해달라고도 해봤다. 특히, 정부에는 우리 주권자들 아니, 소비자들이 계속 소비를 하기 위해서는 계속 살아있어야 하니까 쓰레기 같은 고기가 밥상에 돌아다니는 것을 막아달라고도 했고, 기업에 계속 노동을 공급하기 위해서 작업장에서 일하다가 죽지 않도록 해달라고도 했다. 수백 명의 소비자가 한꺼번에 죽는 대참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똑바로 수사해서 처벌하고 제도를 바꾸자고도 했다. 그것도 목숨까지 걸어가면서.
그러나, 다른 두 경제주체들이 자기 역할을 똑바로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혀 개선될 여지가 없다면. 이 상황에서 '가계'라는 경제주체가 소비자로서 취해야 할 입장은 무엇일까?
세월호때문에 경기가 침체됐다면, 우리가 의도적으로 경기를 침체시켜 정부와 기업을 압박하는 게 가능하겠네?
올커니!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소비를거부하는것이다.
4. 싸움의 방식
과거 군부독재정권시절의 정부가 사람을 잡아다가 직접 두들겨 패고 죽이는 야만적인 방식으로 국민을 통제했다면, 새누리 정권은 악법을 이용하고 필요하다면 만들어서라도 통제하는 나름의 '세련된' 방식을 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들의 저항방식은 거의 변화하지 않았고, 스스로 힘들고 지쳐가는 방식을 그대로 하고 있다. 물론 주말에 거리에 모이고, 목숨을 건 단식투쟁에 동참하는 분들의 뜻을 폄훼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그러한 과거 방식의 투쟁은 인간의 생명가치를 존중하는, 구성원들이 각각 양심과 도덕이라는 인간성을 가진, 그래서 그런 투쟁이 벌어지면 사람들이 지지하거나 같이 싸울 수도 있는, 그런 사회에서나 통하던 방식인 것이지 투쟁 당사자들을 비난하는 사이트에서 순위를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벌레들이 기사 쓰는 세상에서 통하는 방식은 아닌 것 같다.
예컨대 누군가 단식투쟁을 하면 과거에는 그걸 모욕하기 위해 열심히 쫓아다녀야 하니 힘도 들고 별 효과도 없었겠지만 지금은 트위터와 각종 게시판에 도배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접하게 만듦으로써 그걸 믿게 만들거나, 점점 지겨워지게 만들어 관심이 멀어지도록 만드는 게 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대한민국 시위의 메카가 되어버린 광화문은 이미 각종 최적화된 장비를 갖춘 경찰에게는 너무 뻔한 앞마당이라 시위를 진압하는 데에는 거의 완벽하게 최적화되어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시위에서 시위를 이끄는 강력한 지도부도 없고, 있다고 해도 그거 따라다닐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다.아마도 이걸 계속 반복한다면, 이제 더 이상 촛불시위를 비롯한 대부분의 시위는 별로 효과도 없이 그냥 지쳐만 갈 것이다.
사람들의 분노는 이미 트위터라는 완충장치에서 다 소모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미안함을 표현하기 위해 일일단식에 동참하기도 하지만(그렇다고 그걸 '자위'라고 폄훼해선 안된다) 유가족이 목숨을 걸고 단식해도 꿈쩍 안 하던 정권이, 특히 사람사는 세상을 얘기하는 종교 지도자에게 의장대 사열이나 보여주는 그런 수준의 정권이 그걸로 충격 받을 일은 전혀 없다. 만약, 정부통계에'국민단식투쟁 참여지수'같은 게 있거나 UN통계에'정부병신력지수'같은 게 있어서 그게 정부의 국정방향을 결정하는 지표가 된다면 모를까.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비를 거부하는 상황은 정부와 기업으로서는 수만 명의 단식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현상이 틀림없다.
소비자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 또는 그냥 '죽은 척 하기'. 이건, 이 시스템의 소비자로서 실행하는 '단식투쟁(Hunger Strike)'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인구가 줄어드는 '시스템 단식'을 경험하고 있다. 이대로 몇 백 년 뒤에 한민족은 멸종하겠지.
만약 이 '절약투쟁'을 한다면 그냥 집에서 소비를 안하는 게 아니라, 이만저만한 불만이 있어서 소비를 안 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냥 소비가 줄어들면 저 멍충이들은 그게 세월호 때문이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인구가 왜 줄어들고 있는지 모르는 것과도 같다)
물론, 특정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불법으로 간주하는 '국법'이 지엄한 나라에서, 게다가 효과적인 불매운동이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나라에서 그런 게 될 리가 없다.
하지만, 만약 어느 유명한 트위터리안이 "세월호 특별법이 유가족들 뜻대로 통과되지 않는다면 난 일주일 동안 XX마트를 가지 않겠다"라고 했을 때 그의 팔로워들이 "나도 안 가겠다"라고 동참을 하고, 그 결과로 세월호 특별법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XX마트의 매출에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나라 살리겠다고 금반지 내 놓던 그 능력. 사회적 연대.
만약, 그런 게 남아 있다면, 그걸 확인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게 제대로만 된다면 꽤나 강력한 싸움의 방식이 될수도 있을 것 같다. 시스템을 불매하는 거니까.
매출이 부진해진 XX마트가 직원을 해고하면 어쩌냐는 반론도 분명히 나올 거다. 그런데 매출이 늘었다고 해서 XX마트가 사람 안 짜르겠나 하는 생각을 해보면 금방 답이 나올 거다. 원래 단식은 '자기파괴'를 전제로 하는 거다.
최소한 일부 정신나간 어르신들과 대학생들이 단식투쟁 하는 데서 음식을 잔뜩 처먹는 것과 같은 유치한 짓은 못할 거다. 뭐 걔네들이 '과소비 투쟁'이라도 하겠냐.
끝으로, 돈이 없어서 못 쓰는 것과 돈이 있어도 안 쓰는 건 다르다. 지금 이 시스템에 강력하게 경고하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돈이 없어서 못 쓰는 상황이 올 거다.
뭐. 소비를 안 한다고 잡아가기야 하겠냐.
<그냥더열심히. 최선을다해. 가만히있는거다.>
추가
1. 지록위마(指鹿爲馬 :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우김)
진시황 시절 막강한 권력을 가진 '조고'라는 환관이 있었는데, 진시황이 죽자 자신의 아바타를 황제로 앉혔다. 이후 아바타 대신 그냥 황제가 되려던 조고가 반대파를 색출하기 위해 황제 앞에서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했다. 그러자 황제 주변의 공무원들은 닥치고 있거나, 말이라고 맞장구치거나, '그건 사슴이오'라고 하는 놈들로 갈렸는데.
그 중 사슴을 사슴이라 부른 자들이 모두 감옥에 갇히자 그 뒤로 모두들 제 의견을 말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다.(읽은 척 사기 치면 곤란한 책)
2. 정약용의 편지
조선시대 학자 정약용이 18년 유배 기간 동안 책을 쓰며 아들들에게 쓴 편지 중에 이런 게 있단다.
"절약이란 아무리 값이 싸고 흔한 물건이라도 꼭 필요한 수량만 구입하고 아껴쓰며 소중하게 다루는 태도를 말한다. 또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은 마음을 자제하며 분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생활에 여유가 있을수록 절약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라고 하여 절약의 중요성을 아들들에게 당부했다.
아마도 18년 간이나 유배를 시킨 못나빠진 조선 정권에 대한 '분노의 절약 투쟁'이 아니었을까 싶다.ㅎ
3. 미안한 마음에, 하루 정도 같이 굶어 줄 수는 있어도 소비를 끊는 건 못하겠다면,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어느새 여름이 다 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쌀쌀해진 날씨도 날씨지만, 점점 다른 색으로 변해가는 초목들을 보면 '아, 정말 이번 한 해도 금방 지나가는구나' 생각을 합니다. 하루하루 다시 추워지는 날씨에 이번 겨울은 당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두려움도 앞서지만, 부지런히 살을 찌우며 씩씩하게 월동준비를 하고 있는 동물들을 보면 반성도 하게 됩니다.(견인차님은 현재 캐나다의 졸라 추운 동네에 거주중입니다. - 편집부 주)
D사의 요리사 R모씨
쥐!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디즈니 사의 마스코트이자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의 상징인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아니면 아름다운 프랑스 뒷골목에서 맛있는 요리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라따뚜이>의 레미? 아니면 시궁창에 눈을 희번득 거리며 온갖 병균과 기생충을 옮기며 사대강 갉아먹는 시궁창 쥐?
1. 쥐냐?! 흑사병!!
쥐에는 많은 종류가 있고 생김새와 크기 모두 제각기 조금씩 다르지만, 진짜 쥐과에 속하는 녀석들은 대부분 구세계(old world)나 참쥐(true rat)라고 불리며 대부분 아시아에서 온 녀석들입니다. 가장 흔한 종은 갈색 쥐로 모두가 시궁창 쥐로 알고 있고, 노르웨이 쥐라고도 불리지만 본래 서식지는 중국 북부였습니다.
니하오!
이 갈색 쥐들은 흑사병의 원인으로 지탄 받기도 했지만 실제 흑사병을 옮겼을 것으로 보이는 개체는 쥐벼룩이고, 그 흑사병 걸린 쥐벼룩들을 옮긴 것은 갈색 쥐가 아닌 검은 쥐들이었습니다.
바로 요놈!
흑사병을 옮기는 쥐벼룩이 검은 쥐에게 붙으면 검은 쥐도 흑사병에 걸려 죽고, 죽은 검은 쥐를 떠나 따뜻한 다른쥐를 찾던 쥐벼룩이 차선책으로 사람에게 붙으면 사람도 흑사병에 감염되는 것이지요. '이 흑사병으로 1346년~1353년 유럽에서만 75,000,000에서 200,000,000명이 사망하였습니다'라는 게 가장 최근까지도 유력한 가설이었으나 최근 3월, 영국에서 발굴된 유해들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당시 영국 국민 10명 중 6명을 죽인 흑사병은 쥐벼룩에 의해 감염되는 선페스트(Bubonic Plague)가 아닌 인간들 사이에 기침이나 재채기 등 공기 중으로 옮았을 폐렴 흑사병(Pneumatic Plague)일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합니다.
휴... 내가 그런게 아니였어...
흑사병의 원인이 검은 쥐였든 아니든 검은 쥐가 당시 유럽에 많이 서식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검은 쥐의 엄청난 다산 능력(한 쌍의 쥐가 일 년에 1,500마리 생산!)도 한 몫했지만, 당시 유럽의 도시형태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하수처리가 엉성했고 지저분했으며 그 와중에 쥐들이 살기에 애매하게 좋은 환경, 말하자면 드럽지만 먹을 것은 많은 요상한 환경을 제공했기에 검은 쥐들도 정착해서 살았던 것이죠. 검은 쥐들은 아시아의 동남부에서 유럽으로 옮겨갔으며 11세기부터 중동에서 십자군 따라 배 타고 유럽으로 건너가서 유럽재패에 성공했지만, 현재는 갈색 쥐에게 일인자 자리를 내어주고 이인자로서 세계 쥐 개체수를 유지시키고 있습니다.(엄청 많다는 거임)
D사의 R씨는 갈색쥐 입니다 :)
요렇게 가장 유명한 두 가지 (레알)쥐가 있지만, 보통 우리가 ‘쥐’를 말할 때는 거의 모든 설취류의 동물을 통틀어 부르기도 합니다. 케피바라부터 캥거루 쥐까지 쥐 가족들은 전부 일단은 쥐! 집에서 애완용으로 많이 키우는 기니피그도 쥐! 그래도 오늘은 갈색 쥐나, 검은 쥐 같은 레알 쥐들에 대해서 알아봐요 :)
내가 쥐라니...
2. 인간은 사회적 동물, 쥐도 사회적 동물
많은 사람들이 쥐라고 하면 치를 떨지만, 사실 쥐와 인간은 상당히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일단 유전자만해도 80% 이상 일치할 뿐만 아니라 극히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것 또한 더할 나위 없이 닮은 동물입니다.
대부분의 야생동물이 그러하듯 쥐들 또한 경험으로 주변상황을 인지하고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기 위해 그것을 기억하고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야생에서 실수는 곧 죽음과 같은 것이니까요. 하지만, 쥐들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료 압력(Peer Pressure)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즉, 주변 눈치를 보고 행동한다는 것이죠. 쥐들은 의외로 온순하며 다른 쥐들과 함께 있을 때 편안해 하고 혼자 떨어지면 우울해 합니다. 그런 이유로 다른 쥐가 없으면 그 관심과 사랑을 사람에게 보이기 때문에 반려동물로서도 적합하죠.
또한 어떤 면에서 쥐는 인간보다 상당히 나은 사회성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로 사회보장 제도가 있다는 것이죠. 보통 쥐라고 하면 조금이라도 약한 개체는 피도 눈물도 없이 오작오작 뼈까지 씹어 먹을 것 같은 냉혈동물 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프거나 병든 개체가 있으면 먹이도 가져다 주고 그루밍도 해주면서 보살펴 줍니다.
남이 돌봐주는 것도 즐기긔
이것은 물론 은연중에 '내가 아프면 너도 나를 보살펴 주겠지' 하는 사회적 기대감에서 오는 행동이겠지만, 직접적으로 보살핌 받았다고 해바라기씨를 갖다 바쳐야 하는 천조국의 의료시스템이나 박 모 공주님이 추진하시는 의료제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쥐가 먼저다!'의 정신으로 서로 돕고 돕는 사회적 행동입니다.
3. 까하하하하하!!
쥐가 내는 소리를 생각 하면 찍찍! 찍!!! 찍찍찍!! 외에는 별로 드는 생각이 없지만 소리를 이용한 쥐의 의사소통은 의외로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청영역이 16~20,000 헤르츠라면 쥐의 가청영역은 200~90,000 헤르츠로 우리가 듣지 못하는 초음파까지 들을 수 있죠.
방금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은데...
그리고 더욱 더더더더더 재미있는 것은 쥐들도 사람처럼 깔깔거리며 웃는다는 것입니다. 손으로 배를 간질간질하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면서 웃어댑니다. 우리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그 소리가 초음파기 때문이죠. 초등학생들 웃음 소리나 낙엽 굴러가는 것을 본 중학생들보다 훨씬 높은 소리로 ㅋㅋㅋㅋㅋㅋㅋ 하기 때문에 우리는 들을 수 없고 그 소리를 몇 단계 낮춰서 들려주는 박쥐 감지기로 들으면 쥐의 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4. 사실 대단한 녀석들
쥐들은 (인간기준에서 봤을 때)더러운 서식환경에서 실제로 많은 질병을 옮기기 때문에 항상 과소평가 당하고 유해동물로 지탄 받습니다. 하지만, 쥐는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생명체입니다.
헛둘헛둘
쥐는 안타깝게도 사람보다 시력이 훨씬 떨어집니다. 낮은 시력이라도 빛에는 상당히 민감하기 때문에 밤이 되면 오히려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후각, 미각, 청각이 아주 뛰어나기 때문에 천적을 피하고 음식을 찾기에 적합하죠. 점프력도 좋고 스피드도 빠르고 인지능력도 뛰어나며 문제 해결 능력도 출중합니다.
바쁘신 분들은 30초부터 당신의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
5. 사실 나름 깨끗하다
'더러운 해충이다!'라는 타이틀은 쥐로서는 상당히 억울한 타이틀입니다. 쥐들은 사실 물을 좋아하고 씻는 것도 좋아하고 고양이 마냥 하루의 상당 시간을 그루밍하고 몸단장 하는 데 쓰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난 분명 쥐 목욕를 검색했는데 왠 목욕탕 아저씨가...
단일 개체, 동일환경으로 봤을 때 쥐는 오히려 같은 환경의 개나 고양이보다 깨끗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쥐는 어둡고 좁은 곳을 좋아하는 동물이고 그런 곳은 보통 더럽습니다.
또한 보통 꽤 큰 무리를 지어 생활하기 때문에 단 한 마리라도 뭔가에 감염된 상태라면 다같이 우르르르르 감염 되므로, 헌터바이러스폐증후군, 신증후성 출혈열, 라싸열, 렙토스피라증, 림프구성맥락수막염, 옴스크출혈열, 페스트, 서교열, 살모넬라, 남아메리카아레나바이러스, 야토병 등을 사람에게 감염시킬 수 있습니다. 고로 길 가다가 쥐를 만나거든 잡거나 괴롭힐 생각하지 말고 피하세요. 그리고 집에서 쥐가 발견되었다면 쥐들 지못미지만, '세ㅇ코' 부르세요... ㅠㅡㅜ
잘 좀 닦아봐
6. 인간을 위하여...
('인간을 위하여 공헌한...'이라고 말하면 오만하기 그지 없으니)여지껏 수 많은 동물들이 인간을 위해 수도 없이 죽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며, 누구나 이에 대해 최소한 한 가지의 견해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동물 실험은 길게는 기원전 3,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실험 쥐의 경우 18세기 갈색 쥐가 유럽으로 건너가 그 중 알비노증이 있는 쥐들이 선별 교배되어 지금의 실험 쥐가 탄생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그 후 실험용으로 다시 품종번식 되었습니다. 실험 목적으로는 유전, 화장품, 약품, 질병, 우주과학 등등 온갖 용도이며 실험의 끝은 조기 사망(제 명 다 하기 전에 죽음)이죠. 실험용으로 쥐가 사용되는 이유는 나름 최근에 밝혀진 유전적 유사점 말고도 번식시키기 쉽고, 다루기 쉽고, 수명이 짧고, 몸이 작아서 병증의 심화과정이나 약의 반응과정이 다른 동물보다 훨씬 짧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만 한 해 약 일 억 마리 정도의 실험 쥐가 소비됩니다. 다행인 것은 실험 쥐를 대신할 위의 마이크로칩 등의 신기술 개발이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이죠. 아무리 쥐와 사람의 DNA가 비슷하다해도 각 질병, 약품 등에 일으키는 반응은 인간과 쥐의 생김새만큼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쥐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밀접하게 붙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옛날 로마 사람들은 쥐를 행운의 상징으로 여겼으며 인도 북서부의 비카네르에 있는 까르니마따 사원에서는 신성시 되고 있고 한국에서는 십이간지의 첫 번째로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지구상에 단일목으로는 가장 많은 수의 포유류이며, 인류가 생산하는 총 식품의 상당량을 야금야금 뺏어먹기도 하고, 많은 질병을 인간에게 옮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인간은 엄청난 수의 쥐들을 실험용으로 사용하죠.
어떤 쥐들은 반려동물로 선택되어 평범한 가정견과 비슷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머리 좋고, 보기보다 수영 잘하며, 의외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은근히 좋아하는 이 동물을 ‘더러운 쥐새끼!’라고 한 단어로 정의 내리기에는,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모습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쉽습니다. 요즘 부정부패 사건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어떤 쥐랑은 다르게 많은 반전매력이 있는 이 동물에게는, 더럽다고 미워만 할 수는 없는 어떤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자성어 중에 사상누각이라는 단어가 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허술하고 무너지기 쉬운 것을 지칭한다. 이런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 중 '영혼 없는 예술'만큼이나 사상누각이란 말이 어울리는 것도 별로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또 그 공허한 것 중 성수대교만큼 우리 사회에 큰 파란을 준 누각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예고되지 않은 참사는 없다'는 말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성수대교 붕괴의 기억을 이제 뒤적여보자.
1. 성수대교
성수대교는 1976년 10월 16일에 개통된 한강을 가로지르는 교량으로, 당시까지 기능 위주로만 따져 만들던 다리에 대해 미적인 기준을 추가시키는 등 새로운 시도를 했던 건축물이었다. 그래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이 개통식에 참석하는 등 사회적으로 많은 이목을 끌었다.
성수대교는 하늘색을 색상으로 채택하고 트러스식이라는 새로운 공법을 채택함으로 빼어난 미관을 자랑하며 한강의 새로운 자랑거리로 떠올랐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과 튼튼함은 반비례한다는 옛말처럼 그렇게 튼튼한 교량은 아니었다. 모든 건축물이 그렇듯, 기본적인 시공과 꾸준한 유지보수가 더해진다면 내구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서 건물을 가장 빨리 올린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나라에서 그것을 지었다는 것이 불행이었다면 불행이었으리라.
2. 조짐은 보였다.
1994년 10월 21일, 운전자들은 성수대교에 깔린 거대한 철판을 보게 된다. 철판이 깔렸던 이유는 상판부의 이음새가 심하게 균열이 일어난 것을 가리기 위한 땜빵 조치였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고작 철판 따위로 엄청난 무게의 다리가 갈라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균열은 커졌고 철판을 지날 때마다 운전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몇몇은 이를 서울시에 신고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당일 오전 7시 48분경, 다리의 중간 열 번째와 열한 번째 교각 사이, 48m에 이르는 상판이 붕괴한다. 교각과 교각 사이가 뚝 하고 떨어져 버린 것이다. 사고 부분을 달리던 승합차 1대와 승용차 2대는 그대로 상판과 함께 떨어졌고, 붕괴한 지점에 걸쳐있던 승용차 두 대는 물속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붕괴지점에 뒷바퀴가 걸려 조금 늦게 떨어진 버스는 하필이면 천장부터 떨어져서 붕괴한 다리 상판과 충돌했다.
이 때문에 버스에서만 20명이 죽었고 그 외에 승용차와 승합차에 탑승해있던 8명이 사망한 것은 물론, 17명이 부상당하여 총 49명의 사상자가 나온 황당하기 짝이 없는 참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3. 무엇이 문제였나?
성수대교는 앞서 말했다시피 수려한 외관의 트러스식 공법으로 만들어졌다. 트러스식 공법은 이음새가 잘못되면 무너지기 쉬운 공법이다. 미관을 추구하기 위해서 기둥 사이 거리를 120m나 떨어뜨려 놓았는데 힘이 집중되는 부분의 핀은 지속적인 피로누적과 다리 위를 지나는 차들의 진동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 아무리 강철이라고해도 이런 구조로 극악한 조건을 이겨내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동시에 과적 또한 문제로 지적되었다. 붕괴 전 성수대교가 받아낼 수 있는 총 중량은 32t 정도였는데 40t이 넘어가는 차들도 다리 위를 씽씽 달렸다고 한다. 특히 1993년 도에 동부간선도로의 새로운 개통으로 교통량은 폭증했으나 서울시에서는 설마 다리가 무너지겠냐는 생각을 가졌는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았었다.
앞서 구조적 문제를 설명하며 압력이 집중된다 언급했던 이음새의 부실함 또한 문제가 되었다. 아니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에 다리의 이음새 부분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이 발견되었고, 그와 더불어 심하게 녹슬었을 뿐 아니라 이음새에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시켜야 할 구조물 또한 제대로 시공되지 않았다. 덤으로 이들을 연결하고 있어야 할 볼트를 무리하게 욱여넣어 변형된 점 또한 발견되었다. 심지어 볼트를 제대로 고정시키지도 않아서 손으로도 풀 수 있을 정도였다.
단순히 시공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애초에 시공의 부실함을 발견했다면 도로 통제 등으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당시에는 20년 이상 된 교량에만 정밀안전단속을 시행했었다. 연수가 20년이 채워지지 않은 다리들은 눈으로만 대강 훑어보고 가는 수준이었고, 당시 교량을 점검하는 데 사용되었던 굴절자동차들은 전문지식이 없는 공무원들에게는 그냥 눈금 좀 많은 자동차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와 더불어서 서울시에서 대학교수들에게 의뢰하는 교량점검 또한 단순히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는 점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다.
4. 희생자들
성수대교 사고가 우리 뇌리에 더욱더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까닭은 어쩌면 지금의 세월호와 비슷한 부분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꽃다운 나이의 청소년들이 사고에 휘말려 사망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당시 추락한 버스에는 무학여고생 8명과 무학여중생 1명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 모두 즉사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수십 미터 높이에서 머리부터 떨어졌는데 살아 있었다면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사망자의 절반에 가까운 수가 버스에서 발생했던 이유는 앞서 말했다시피 천장부터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와 별개로 물속으로 떨어진 승용차의 탑승자들은 상대적으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물에 떨어져 큰 충격을 받지 않았기에 깨진 창문을 통해서 탈출한 이들도 몇몇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구조대는 사고 직후 20여 분동안 물속에서 시신 3구를 인양하고 오전 10시경 구조대가 포크레인을 통해 버스를 들어 올리자 버스 아래에 으깨진 6구의 시신을 발견한 다음 버스 안까지 수색하여 총 20여 명의 사상자를 발견, 11시까지 총 24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11명을 구조하는 데 성공했으나, 그중 8명은 병원으로 이송되는 도중에 사망했다.
구조현장에는 표창을 받기 위해 서울로 향하던 의경대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교량이 추락하면서 같이 추락한 피해자들이었으나 다행히 크게 부상당한 이가 없어서 구조활동에 많은 공헌을 했다고 전해진다.
5. 대응
다리가 상판째로 뚝 떨어져 버린,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 서울시와 경찰의 대응은 재빨랐다. 사실 초기에는 장난전화로 생각하고 넘겨버리는 일도 없지는 않았다. 하기야 누가 갑자기 전화해서 다리가 끊어졌다고 전화하면 장난으로 생각할만하다. 그러나 그 전화가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서울시와 경찰청은 재난본부를 설립하고 휴가 중인 경찰관을 모조리 불러들인 이후에 성수대교 근방에 폴리스 라인을 설치, 그리고 구조활동에 나선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에 딱 20분이 걸렸다.
사후대응은 재빨랐으나 구조활동에는 제약이 많았는데, 한강의 수압이 강해 물속으로 추락한 사람들의 구조속도는 더뎠고, 살아난 이들은 자력으로 탈출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버스는 말할 것도 없고.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서울시는 우회도로 표지판을 설치하여 영동대교와 동호대교로 교통량을 분신시키고 교통신호 주기를 변경하는 등, 교통혼잡을 예방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당일 오후 7시,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원종 시장이 경질되었다. 동시에 개원 중이던 국회가 일체 중지되었고, 24일에 김영삼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방송이 나가는 등 정치계의 행보 또한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러한 당시의 정치권의 행동을 보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미개했는지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세월호 때의 10분의 1 수준인 32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에 민생법안을 처리하기 바쁜 국회가중지된 데다가 대통령이 30여 일이 아닌 3일 만에 대국민 사과방송을 하다니,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 아닌가?
사고의 수습이 대강 끝난 후 서울시는 성수대교의 재시공을 발표하는데, 총 공사기간 3개월이라는 파격적인 속도로 교량을 수리하여 교통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웬 정신 나간 소리냐는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 방침을 철회하였다. 결국 1995년에 현대건설이 시공에 들어간 뒤 2년 후인 1997년에야 성수대교는 재개통 된다.
이 재시공에도 상당히 재밌는 부분이 있는데, 국내 최초로 해외 감리업체가 국내 감리업체와 함께 감리에 나섰다는 것이다. 당시 국내 감리업체가 건설사와 담합하는 등 부패를 드러내 보인 터라 우리나라 정부는 국내 감리업체에 대한 불신을 갖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세태가 잘 드러난 시공이 바로 성수대교의 재시공이었다고 하겠다. 후일 가양대교의 시공 시에는 아예 국내 감리업체의 참여를 제한해버리는 등 여러모로 국가적 망신살이 뻗친 사고였던 것이다.
6. 처벌
성수대교 사고의 처벌은 이례적으로 강하게 이뤄졌는데, 간단히 요약해보면 동아건설의 부실시공에 대한 처벌로 재발 방지를 노린 대처였다 할 수 있다. 성수대교 사고의 재판은 우리나라 재판계의 한 획을 그을 만큼 대단한 사건이었다. 사고 대상자들을 모조리 잡아넣기 위해서 사법계가 대한민국의 법적 통설을 부정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재판에서 사법계가 들고 나온 것은 과실범의 공동정범이라는 개념으로 기능행위 지배설이라는 공동정범 이론을 박살 내는 것이었다. 기능행위 지배설의 이론을 간단하게 풀어보자면
가해자들이 각자 맡은 범행의 부분이 합쳐져서 범행이 완성되는 것으로 모두가 공범
이라는 내용인데 과실범의 공동정범에 대해서 사법계가 내놓은 답으로는
이 사건 성수대교와 같은 교량이 그 수명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건설업자의 완벽한 시공, 감독공무원들의 철저한 제작시공상의 감독 및 유지·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들의 철저한 유지·관리라는 조건이 합치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위 각 단계에서의 과실 그것만으로 붕괴원인이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합쳐지면 교량이 붕괴될 수 있다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고, 따라서 위 각 단계에 관여한 자는 전혀 과실이 없다거나 과실이 있다고 하여도 교량붕괴의 원인이 되지 않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붕괴에 대한 공동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 할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들에게는 트러스 제작상, 시공 및 감독의 과실이 인정되고, 감독공무원들의 감독상의 과실이 합쳐져서 이 사건 사고의 한 원인이 되었으며, 한편 피고인들은 이 사건 성수대교를 안전하게 건축되도록 한다는 공동의 목표와 의사연락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피고인들 사이에는 이 사건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죄에 대하여 형법 제30조 소정의 공동정범의 관계가 성립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판례 97도 1740 발췌)
줄여 말하자면 '너그들은 의무의 이행을 성실히 하지 않았으므로 다 유죄'라는 이야기다. 물론 앞서 말했다시피 일반적인 법적 통념을 깨버리는 행위이기에 비판도 꽤나 있었는데, 대표적인 비판으로 이들이 고의성을 가지고 구체적인 행동은 한 것은 아니기에 이런 개념은 있을 수 없다라는 내용이 뽑힌다. 다만 이런 비판을 제기한 이들도 사법계의 판결에는 찬성했다. 왜냐하면 책임자들에 대한 과실은 인정이 되나 그 원인이 확연하게 입증되지 않기에 모조리 무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죄형법주의(법률이 없이는 범죄도 없고, 법률이 없이는 형법도 없다는 뜻으로 범죄와 형법을 미리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는 이야기)의 원칙상 맞는 이야기지만 국민의 감정을 생각해보자면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법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실로 멋진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7. 여파
이후 서울시의 인문계 학교배정에서는 절대로 한강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생기는 등-10년 후 폐지되었지만- 국가적인 트라우마를 남겼다.
사실 다리가 무너진다는 것을 서울시에서 예측 못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당산철교라는 실로 낡아빠진 다리에서 붕괴위험이 이미 감지되어 지하철이 서행하는 등 여러모로 조치를 취한 덕에 성수대교가 먼저 무너지는 상황이 온 것일 뿐이라 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수대교가 붕괴되고 난 이후에 당산철교는 바로 수리에 들어갔다.
성수대교가 재시공된 이후에는 모든 다리들은 과적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게 단속하고 있다.
8. 총평
성수대교는 여러모로 국가적인 전환점이 된 사고였다. 관선시장인 이원종 시장의 경질을 시작으로 우명규 시장과 최병렬 시장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끝내는 신호탄이기도-물론 최병렬 시장의 마지막은 눈뜨고 봐줄 수 없을 만큼 안타까웠다.-하였으며, 우리나라 건축물들에 대한 불신이 피어나기 시작한 사건이기도 하다.
다만 그 불신이 행동으로 나타나지 못해 후일 더 큰 사고를 맞이하게 되었음은 씁쓸한 따름이다. 끝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mbc에서 방송했던 한 아버지의 울분에 찬 인터뷰를 읽어보도록 하자.
"앞으로 이런 일이 얼마든지 올 수 있어!
올 수 없다고 장담 못 해!
미리미리 방지한다고 하지만 이미 늦은 거야."
자 다음은 대망의 삼풍이다. 참고로 재난에 대한 이야기는 삼풍 이후에 광주 대단지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한 후에 끝이다. 그 이후에는 독재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가도록 하겠다. 독재자의 첫 타는 살라자르다.
'강산에'(7월 19일) - '김간지X하헌진'(8월 2일) - '눈뜨고코베인'(8월 30일)으로 이어지는 Live Bunker1 여름특집 게스트들이 모두 화끈하게 공연을 완수했음을 알려드리는 본 기획우원의 마음이 뿌듯하다 못해 손녀딸이라도 안고 팔짝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김반장과 한마당스'의 공연이 김반장의 급작스런 병가로 인해 연기된 것인데… '김반장과 한마당스'의 공연은 곧 다시 재개할 예정이니, 아쉽다기보다는 곧 다시 만날 생각에 설레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눈뜨고코베인'의 폭풍 연주
'눈뜨고코베인' 임무완수 인증샷
이렇게 많은 뮤지션(밴드)들과 뜨거운 여름을 함께 보냈다. 하지만 이제 곧 추석이요, 하늘은 높고 말도 살찐다는 가을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이제 곧 우리와 함께 할 밴드. 민족의 명절 추석과도 매우 잘 어울리는 동시에 가을의 정취와도 매우 잘 어울리는 바로 그 밴드. 바로 ‘아마도 이자람 밴드’다.
우선 이자람
자. ‘아마도 이자람 밴드’에서 이자람을 맡고 있는 이자람에 대해 살짝 짚고 넘어가보자.
이자람의 사천가
이자람은 일단 국악인이다. 그냥 국악인이 아니라 판소리(춘향가, 적벽가)의 이수자이며, 최연소 춘향가 8시간 완창기록을 가지고 있는 소리꾼이며, '사천의 선인'(1938~1940년 집필되어 1943년 초연된 독일 극작가, 연출가인 브레이트의 작품)에서 착안한 <사천가>를, '억척어멈과 자식들'(1939년에 발표, 1941년 초연된 막과 장의 구별에 따른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12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나열식 희곡으로 역시 브레히트의 작품)을 모티브로 하는 <억척가>를 성공시킨, 재능 있는 젊은 국악인이다. 게다가 '서편제'의 뮤지컬 배우이자, 루마니아 연출가 가보 통파의 작품 ‘통파의 죽음’을 통해 일인 다역을 소화한 연극 배우이기도 하니 국악인이라는 표현보다 올라운드 예술인이라는 표현이 적합하겠다. ‘아마도 이자람 밴드’의 멤버로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니 말이다.
'아마도 이자람 밴드' - 행방불명
아마도 이자람 밴드
이자람(보컬, 어쿠스틱 기타)을 중심으로 이민기(기타), 이향하(퍼커션), 강병성(베이스), 김수열(드럼)으로 구성된 ‘아마도 이자람 밴드’의 시작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P 2장과, 싱글 하나, 정규앨범 한 장이라는 바이오그래피가 10년을 역사를 가지고 있는 밴드의 이력치고는 다소 소박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이자람이 올라운드 예술가로, 이향하는 그와 함께하는 악사로, 이민기가 장기하와 얼굴들의 멤버로 활발하게 활동해왔으니 '아마도 이자람 밴드'는 오랜기간 각자의 음악과 활동을 집결시키는 ‘베이스 켐프’임과 동시에 근근이 모이는 것 같아도 할 건 다하는 인디 음악계의 ‘어벤져스’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더뎌보이지만 늘 꾸준했던 '아마도 이자람 밴드'는 얼마 전 새로운 EP, <크레이지 배가본드>를 발표하면서 새로움의 갈증을 호소했던 팬들에게 흡족할만한 컴백을 선사했다. 천상병 시인의 ‘달빛’ ‘나무’ ‘크래이지 배가본드’ 등의 작품에 이자람이 곡을 붙이고, 아마도 이자람 밴드가 편곡에 참여했다. 새 앨범을 통해 그들은 포크와 개성있는 리듬이 가미된 그들만의 색깔있는 음악을 더욱 뚜렷하게 선보였다. 이런 게 ‘시너지’가 아니면 대췌 무엇을 ‘시너지’라 할 수 있겠는가. 그 시너지가 당췌 멀 뜻하는지 궁금하실 분덜도 계시겠다. 궁금증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덜 아시다시피 그들의 음악을 직접 마주하며 확인하는 거다.
일시 : 9월 13일(토) 오후 8시 30분
장소 : Bunker1
티켓 : 여전히 그딴 거 없다. 자발적 후불제.
자. 그들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그들의 멜로디에 내 몸을 맡기고 어깨춤을 춰 보자. 그들의 리듬에 맞춰 명절에 쌓인 콜레스테롤을 씻어버리고, 그들의 노랫말을 벗삼아 이미 옆에 와버린 가을의 정취를 만끽해보자.
간만에 본 기획우원 장담 함 드간다. 올 여름, 뜨거운 열대야로 메말라버린 우리덜의 감성을 '아마도 이자람 밴드'가 씐나게 리필 해 줄 것이다. 그럼으로 '아마도 이자람 밴드'가 선사해 줄 리필의 현장에 본 기획우원도 한자리 꽤 차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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