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딴지 마빡 이야기/2014

딴지일보 마빡 2014. 09. 30

by 꾸물 2021. 12. 27.
반응형

 

 

[국제]이슬람 이야기 <1>

 

기사 - [국제]이슬람 이야기 <1>

2014. 9. 30. 화요일 슈르나 현재 우리의 상황과는 큰 관련이 없는, 먼 곳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물론 세계화 시대이니 돌고 돌아 우리와도 관련이 있기야 하겠지만 딱히 현재까지는 국제 뉴스에

www.ddanzi.com

2014. 9. 30. 화요일

슈르나

 

 

 

현재 우리의 상황과는 큰 관련이 없는, 먼 곳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물론 세계화 시대이니 돌고 돌아 우리와도 관련이 있기야 하겠지만 딱히 현재까지는 국제 뉴스에 자주 나오는 것 외엔 별 관련성은 없다. 따라서 이 글은 국제 시사 상식을 탐구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 탐구의 끝에서는 아마도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찾는 알흠다훈 마무리가 기다리고 있기만을 바란다. 아니면 이걸 왜 해.

 

탐구의 대상은, '이슬람 국가'로 지칭되고 있는 영문 두 글자, IS다.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국가들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물론 그런 의미로도 쓰여온 단어이지만 요즘 사용되고 있는 IS는 Islamic State의 약자로, 국가 인정을 못 받고 있는 신생국가다.

 

이게 국기다. 이슬람교는 우상숭배를 격렬히 부정하기에 어떤 상징도 없이 흑백에 글씨 쓰고 끝.

 

신생국가라 하면 남수단이나 동티모르처럼 당연스럽게도 무장투쟁을 안 할 수가 없다. 국가 설립과 존속에 필요한 영토 및 자원을 얻기 위해서는 그걸 이미 갖고 있는 주변국에게 받아내야 하고, 그런 걸 순수히 내줄 국가는 없으니까 말이다. IS의 무장투쟁은 지금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무장투쟁의 대상은 어마무지하게 멋지다.

 

전세계다.

 

쿠란 말고도 이런 책을 보고 있는지... '이슬람에 의한 세계정복'이 국가 목표다. 진짜다.

 

국호에 이슬람이 들어가기 때문에, IS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슬람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IS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가 설립했으니 이런 극단주의가 왜 등장했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러자면... 이슬람교를 성립시킨 사도 무함마드 때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이슬람교의 최초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변해갔는지를 알면, 현재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초기 이슬람 역사는 꽤 재밌는 이야기다. 막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대하 드라마다.

 

그러니까 시간부터 되감아보자. 아랍권 인명에 둔감할 독자들을 위하여 중요한 등장인물의 이름은 굵게 표시해둘 테니 집중하여 기억해두시라. 역사 상식 타임 고고씽.

 

IS 이전에, 이슬람이 뭔지부터 알아보자규.

 

비-이슬람 지역에서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에서는 특히 이슬람교의 인지도가 매우 낮다. 신도 수도 적고, 일단 한국은 불교와 기독교(카톨릭 포함)의 세력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행위 덕택에 다른 홍보 효과가 다 씹어먹혀버린 탓도 있다. 그래도 사도 무함마드가 이슬람교의 창시자라는 것은 대부분 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식으로 종교를 만들었는지 모를 뿐.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다 보니, 뉴스에서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이 어쩌니 해도 머리 위엔 물음표만 뜬다. 사실 이 '시아파 vs 수니파'만 이해해도 정치적인 의미의 이슬람은 거의 다 이해한 거다. 이 갈등을 설명하기 위해서 돌아가야 하는 시작점은, 사도 무함마드의 죽음이다.

 

무함마드는 부족국가와 도시국가들이 투닥투닥하며 살던 중동의 중세 어느 날, 아랍 족의 쿠라이쉬 부족 중 하심 가문에서 태어났다. 참고로 이 하심 씨족은 지금도 존속하는 가문이다. 현재 요르단의 왕가거든.

 

미남인 아버지를 닮아 존잘이었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요절하고 숙부 손에서 자라며 빈부격차 쩌는 메카의 가난뱅이로 자란다. 가난해서 문자도 모르는 문맹이었지만 언어 능력 자체는 뛰어나서 말과 시에 능했다.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도 무함마드의 구술로 정리된 것인데, 그 문학성이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쿠란에 이르러서 아랍어가 하나의 언어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랍어 공부가 중급 이상으로 올라가면 반드시 쿠란을 공부해야 할 정도다.

 

아무튼 무함마드는 가난을 못 벗어나고 조무래기 무역상으로 살면서 결혼을 못하고 있다가, 존잘에 달변이어서인지 돈 많은 과부와의 결혼에 성공하여 인생의 승리자가 된다. 스무 살 차이 나는 누님이었지만 부부 관계는 열라 돈독했다고. (안 그럴 이유 있나... 남편은 잘생긴 연하남이고 아내는 경제권을 쥐고 있으니...)

 

원래 명상도 좋아하고 종교적인 무함마드는 가난을 벗어나 인생 좀 펴게 되자, 원래 오덕질하던 분야인 종교 탐구에 전념한다. 그러다가 메카 교외에서 천사의 계시를 받고...

 

이슬람을 창시한다.

 

두둥- 존잘 형님의 세계구급 성인 등극이다.

 

 

 

 

 

[산하의 가전사]구르카 이야기

 

기사 - [산하의 가전사]구르카 이야기

2014. 09. 30. 화요일 산하 산하의 가전사 “가끔 하는 전쟁 이야기 사랑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왜 전쟁과 사랑이냐... 둘 다 목숨 걸고 해야 뭘 얻는 거라 그런지 인간사의 미추, 희비극이 극명하

www.ddanzi.com

2014. 09. 30. 화요일

산하 

 

 

 



산하의 가전사

끔 하는 쟁 이야기 랑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왜 전쟁과 사랑이냐... 둘 다 목숨 걸고 해야 뭘 얻는 거라 그런지 
인간사의 미추, 희비극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얘깃거리가 많을 거 같아서요.” 

from 산하


지난 기사

[산하의 가전사]신기전으로 이인좌를 잡다
[산하의 가전사]그들은 무슨 꿈을 꾸었을까
[산하의 가전사]마그다의 빗나간 사랑
[산하의 가전사]1991년 5월 25일 김귀정의 죽음
[산하의 가전사]800년 전 고려에서 일어난 일
[산하의 가전사]영화 <명량> 개봉을 맞아
[산하의 가전사] 김취려 장군과 못난 최충헌
[산하의 가전사] 거목 이병린의 슬픔
[산하의 가전사] 슈바이처와 헬레네

 

 

 

구르카 이야기

 

얼마 전 늦장가 가는 친구 녀석이 네팔에서 신부를 데리고 와서 함께 자리를 했다, 신랑 나이는 좀 많고, 신부의 나이는 물경 20대 초반이었다. 네팔에 가서 일하는 중에 만난 양갓집 규수였고 네팔에서 정식 결혼식도 치르고 온 처지. 이건 도둑놈 정도가 아니라 ‘특수강도’가 죄목으로 마땅한 상황이지. '이 이명박같은 놈!' 이라는 소리까지 튀어나오려 했는데 의절할까봐 그만 뒀어. 네팔 처갓집에서는 별 일 없었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녀석의 표정이 스산해지더군.

 

“처숙부가 그러더라고. 너 내 조카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목을 따 버릴 거라고, 구르카 용병 알지? 거기 출신이시거든,”

 

그 순간 나도 춥다 싶을 정도의 한기를 느꼈지.

 

혼자서 탈레반 30명의 공격을 물리친 영국군 구르카 병사 디프라사드 푼

 

구르카 용병의 이름을 들어는 봤겠지? 그들은 세계 최강대국 두 나라와 상대하면서 명성을 드날리기 시작한 네팔 내 부족의 이름이야. 

 

18세기 말, 구르카는 네팔 지역을 장악한 뒤 히말라야 산맥 저편의 티베트로 쳐들어갔고 티베트를 장악하고 있던 청나라와 막부딪쳤어. 북경에서 대략 한 5천킬로미터 떨어진 변경이었지만 건륭제는 단호하게 대응했고 청나라 군대를 출동시켜 이들을 네팔 땅으로 돌려보냈지. 하지만 그 와중에 청나라 사람들은 무지막지한 구르카인들의 용맹을 끔찍하게 경험하게 되었어. 

 

인도를 정복한 영국도 마찬가지였어. 네팔을 정복하고자 원정대를 보냈을 때 그들은 별안간 나타난 귀신같은 군대의 현란한 칼질에 넋을 잃고 말았어. 하지만 보아하니 이 구르카 용병들이 영국군 포로를 대하는 관습이나 전쟁 체계 등이 몹쓸 야만족 같지는 않다고 판단한 영국군 사령관 에드워드 샌더슨이 이런 건의를 하게 돼.

 

“어차피 생길 것도 없는 산지를 정복하느니 이들의 독립을 인정해 주고 이들을 대영제국의 용병으로 삼읍시다. 싸움은 겁나게 잘해요.”

 

예나 지금이나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인 네팔의 농사꾼에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병사가 되는 것은 대단한 혜택과 수입을 거머쥐는 일이지. 구르카 용병은 그 후 대영제국의 깃발이 펄럭이는 곳, 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귀찮은 곳에서 그 깃발을 펄럭이게 됐어.

 

 

 

 

 

 

[국제]쓰레기로 만든 퇴비에서 건진 희망

 

기사 - [국제]쓰레기로 만든 퇴비에서 건진 희망

2014. 09. 30. 화요일 SamuelSeong 관련 기사 [남 일 같지 않은 그라민 그룹의 궤적 ] 간만에 송고한 그라민은행 이야기가 우울함을 흩뿌렸던 것 같다. 필자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독자들께서 그렇게

www.ddanzi.com

2014. 09. 30. 화요일

SamuelSeong

 

 

 

 

 

 

간만에 송고한 그라민은행 이야기가 우울함을 흩뿌렸던 것 같다. 필자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독자들께서 그렇게 읽으셨다니 사실 좀 유감이다. 낙관할 수도 없지만 비관할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쓴 건데 그렇게 읽혔다니... 사실 희망이라는게,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 편에선 희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안그래도 인터넷 구리구리한 네팔에서, 아주 슬픈 결론이 날 것 같아 두려운 홍콩 이야기를 다루느니 다른 기사들을 송고하는게 나을 것 같아 먼저 보낸다. (그러면 홍콩 이야기는 다른 누가 하겠지...).

 

 

1. 해발 5000m에서의 자원전

 

본 기자, 작년에 초장거리 택배에 나섰던 적이 있다. 한겨울에 네팔에 들어왔었는데 일이 꽤 길어져 어느새 4월 중순이 되었다.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인도 대륙의 더위를 실감하고 있던 즈음에 뜬금없이 티벳 라싸에 갔다올 일이 생긴것이다. 42도를 가뿐히 넘긴 부처님 탄생성지 룸비니에서 카트만두로 달려가 짱박아 놨던 겨울옷들을 몽땅 챙겼다. 출입국 서류를 받아 새벽차를 타고 네팔 국경도시 코다리를 넘어서 티벳 가이드와 조우하니 이런 날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꽤나 추울것이라고 생각하고 짐을 잔뜩 챙겨 올라가긴 했지만, 이틀만에 42도에서 영하 5도로 바뀌니 사알짝 정신이 혼미해졌다. 뭐 엉덩이는 편했지만.

 

 네팔에선 항상 이런 도로를 달려야 한다

 

그런데 티벳으로 가는 길에는 이런 도로가 펼쳐졌다

 

아스팔트 포장된 도로 너머로 보이는 저 산이 바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다. 물건을 받을 분들이 기다리고 계시는 곳이 라싸였던 관계로 고산증까지 감수하면서 정신없이 달렸기 때문에 라싸 도착할때까지 찍은 사진은 그리 많지 않다. 라싸에서도 기껏 찍은게 오성홍기 날리는 포탈라궁이었고.

 

라싸의 포탈라궁

 

물건 배달을 마치고 나니 그제서야 평소에 관심을 두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워낙 급하게 배달을 갔고, 배달 경비만 기 백만원 들어가는 일이었던지라 라싸까지 달려갈 때는 정말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풍광을 보니 문득 이 지역의 풍습들이 기억나면서 가이드에게 질문을 퍼부어댔다.

 

내 경우에 해발 4천미터와 5천미터를 구분하게 해주는 것은 직빵으로 오는 고산증이었다. 해발 4800미터를 달릴때만 하더라도 멀쩡했는데 해발 5천미터만 넘어가면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그리고 밖을 내다보면 덤불이 안보였다. 사실 이것이 해발 4천미터대와 5천미터대를 분명하게 나눠주는 지표 중 하나다. 해발 5천미터 이상에선 아무것도 안 자란다. 거기다 높은 고도에서는 박테리아가 그렇게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는다.

 

환생한 스님들을 이 지역에선 림포체라 부른다. 고위급 림포체 외에는 모두 조장(시체를 들이나 산에 두어 독수리 등의 새가 먹도록 하는 장례법) 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이 지역이 워낙 나무가 귀하기 때문이다. 자원이 귀해서 야크의 뼈로 염주를 만들었던 지역에서 조장은 사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게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