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11월11일), 본지 필진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오는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할 G20 정상회의를 맞아 호주의 일부 교민들이 세월호 추모 집회를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특별한 일 아니나 사소한 문제가 있다. 국내에서는 이 집회의 존재를 알 수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기사를 쓰는 지금도 관련 기사는 없다.
연락을 준 필진으로부터 집회 관계자를 급히 소개받아 인터뷰했고 첫 집회가 오늘 오후 1시(한국시간 기준. 호주 브리즈번 기준으로 2시)라 본지 SNS을 통해 실시간 중계하기로 결정했다.
현재(오후 1시 03분)는 본지 SNS로 호주 브리즈번의 상황을 실시간 중계 중이다. 한씨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해당 내용을 정리하는 터라 이어질 인터뷰는 반말로, 요점만 정리하니 독자제위의 양해바란다.
<현재 청와대 홈페이지 메인>
오늘 마무리된 박 대통령의 APEC정상회의 성과와 오는 G20정상회의의 치적에 대해선 많은 언론이 바쁠 게다. 동종업계 의리상, 놓치기 쉬운, 아니, 관계자들이 그렇게 언론사에 주구장창 연락을 했기에 놓칠 리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일부러 놓친 것만 같은 오해를 낳을 수 있는, 이런 집회 보도라도 메꾸어 짐을 덜어주자.
다음은 금일 새벽에 있었던 집회 관계자와의 인터뷰다.
김이 본인, 한이 집회를 신청한 'Brian Han'이다.
1. 브라이언 한? 당신 누구냐
김: 늦은 시간에 미안하다. 호주에서 열리는 G20을 맞아 세월호 추모 집회를 한다 들었다. 본지 필진에 의하면 그 기획자가 당신이라는데 맞는가.
낮에는호주현지인이운영하는회사에서직장생활을하고밤에는한국중소기업상품과농수산물을호주시장에소개하기 위한사업을준비해왔다.9월 중순경에맹장염으로PA Hospital에서수술받은후,건강상의이유,그리고세월호 집회준비로약9주째휴직상태다.이번 집회가끝난후, 직장에복귀하고사업도본격적으로진행 할 예정이다.
2.막내 아이가 살려달라는 꿈과 호주경찰
김: 본지가 호주로 당장 갈 수도 없고 현재 확인이 불가한 상황이 많다. 본지 독자들, 의심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 당신이 전문 집회꾼또는북측으로부터교란및선동을받았을가능성,배제할수없다.왜이집회를기획했는지 날 납득시켜달라.
한: 지금질문에포함된단어가 내게는아주생소한 말이다. 내가북쪽에가장가까웠던적은동두천에잠시살았던게전부다.세월호비극이일어난후,한 달 동안매일같이한국뉴스를 봤다.심한우울증에걸릴만큼충격적이었고이대로계속뉴스를보다가는정말우울증에걸릴것같아서그후로뉴스를거의보지않았다. 9월에급성맹장염수술 받았다. 병원에누워있으면서주변의아픈분들과3일을 지내며많은생각을했다.
<오늘 한국시간 기준 12:24분, 호주 브리즈번의 세월호 추모 집회 보호를 위해 규모 파악 및 위치 선정을 돕고 있는 호주 경찰>
그래, 고마워.하면서 그렇게 인터뷰 했다.옆집아저씨와인생사는이야기하듯.호주경찰과의인터뷰는이야기거리가많지만시간관계상 줄이겠다.
3. 앞으로 G20까지 4차에 걸쳐
김: 이런 집회가 있을 때 대사관이나영사관에서아주잘(?)해주는 경우가 있다. 친절하게안부를물어준다던지.
한: 대사관이나영사관등에서안부전화를받은적은없다.인터넷에광고올리면서실명과전화번호를공개하지않았다.솔직히말하면,두렵기도했다.내가어릴 적에한국에서받은반공교육,박정희대통령님은신이다, 반대하는놈은빨갱이,이런 거에브레인워시당해서혹시나에게안부를물어오면어떻하지라는 느낌이 있다. 솔직히 두려웠다.
지금생각해보니시드니에서uri라는분이메일을보내왔는데답장을드려도한번도연락이없다.이름도uri. 왠지KGB냄새가나고좀이상해서이후로메일안보 냈다. ....첫번째질문엔 무지긴장했는데이제 나도 슬슬딴지일보스타일에맞춰 답변을 하네.(웃음)
김: 세월호 집회 광고에 <브리즈번교민행동>이라는 글자가붙어있던데이단체는뭐하는단첸가.
한: 앞서 말한 것처럼 <브리즈번교민행동>이라는분들과만난건약2주전이다. 나는그분들을정확히 모른다.알고싶지도않다.세월호추모 집회에뜻을함께할뿐이고내가할수있는최선의노력을다할뿐이다.그분들은이미그룹으로일을해왔고 나는혼자다.
따라서 김웅재 목사라는 분이 자연스럽게 리더가 되었고 지금 나는 인터넷, 컴퓨터 스킬을 활용하여 측면에서 돕는다고 할까, 함께 한다고 할까, 뭐 각자 맡은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다.
<한국시간 기준 오늘 오전 11:29분. 집회 장소로 기차타고 가는 도중, 브라이언 한이 찍은 김웅재 목사>
나말고도 <브리즈번교민행동>일원이아닌분들도몇 분있고정말열심히준비하고 있다.그분들실명을말씀못드리는 게안타깝다.결론은 나는 <브리즈번교민행동>일원이아니며이번일이끝나면다시만나게될지, 아마거의어려울것같다.직장도다녀야하고 사업도열심히준비해야하고.
암튼,첫번째만남을가진후,함께뭉쳐서준비하자,그래서그때부터모든 집회광고를한번에묶어내기로했고그래서 집회횟수가많아진것이다.날짜시간 등은특별히의미를가진것은아니다. 집회는총4회에걸쳐서 한다. 집회관련정보는 보내는 링크(클릭시 연결)를참조해달라.회원가입없이댓글가능하니많이응원해주시기를부탁드린다.
김: 마지막으로 집회허가또는기획중에어려웠던거있음말해달라.국외라서말못한장애나고민. 뭐 그런 거 .
한: 내가 신청하고승인된 11월15일가두행진에대해서만말씀드리면,나서고자마음을먹은후에참막막했다. 나는 SNS을거의하지않는다.카카오톡정도.그래서이걸어떻게사람들에게알릴까하는것이제일힘들었다.나름노력한다고 내가좋아하는 언론사등에메일을보내봤지만무반응이었다.우연히알게된트위터리안 한분께부탁을드렸고그분께서 너무나 열심히도와주었다.공개적인인터뷰에서그분께감사드린다는말씀을 하고싶다.
한씨가 감사드린다는 인물은 본지 필진인 <황야의이리>다.
4. 오늘의 집회 현장 in 호주 브리즈번
다음은 본지가 실시간 SNS로 중계한 오늘 호주 브리즈번의 집회 현장이다. 퍼그맨 기자가 현장 관계자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정리했다.
[호주세월호집회현장]장소, 호주의 Brisbane City Queen Street Mall. G20회의장소와 가까우며 브리즈번에서 가장 중심가에서 시위 진행 예정. 현재 경찰이 규모 파악 및 위치선정 돕는 중. pic.twitter.com/1THI9v21vn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진도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여 304명의 생명이 숨졌습니다. 수사에 진전 없이 6개월도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비록 지난 10월 31일 여야가 특별법 제정에 합의했지만 이 합의안은 피해자 가족들의 요구인 독립적이고 철저한 수사를 보장하기에는 많이 미흡합니다. 그래서 바다에서 숨진 304명의 생명들에 대한 진실을 묻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들은 왜 한 명도 구조되지 못하고 산 채로 바다에서 서서히 죽어야만 했나요? 정부는 그들에게 제대로 된 구조의 손길도 주지 못하고 거짓말만 계속하고 있나요? 정부로부터 자유롭지 않아서 언론과 방송은 제대로 진실을 보도하지 못했나요?
이들의 구조에 대한 우리의 간절한 희망은 304명의 생명들과 함께 바닷속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국가의 무능력과 부패 앞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할 것이라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박대통령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그 약속을 저버렸고, 경찰과 공권력을 동원하여 유족들의 요구를 묵살했습니다. 유가족들은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패와 정부기관의 규제 완화에서 기인한 구조 실패에 대해서 성역 없는 수사와 기소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며 유가족과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진실을 위한 싸움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은폐하는 불의를 그냥 좌시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대로 침묵한다면 정부는 얼마든지 또 진실을 은폐하려 들 것입니다. 우리 미래의 너무나 많은 것들이 진실 규명에 달려 있습니다.
이 싸움은 또한 우리의 생존권과 안전권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생명과 안전이라는 천부인권을 보호할 책임은 기본적으로 국가에 있습니다.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와 책임 방기는 또 다른 비극적 재앙을 가져올 것이고, 이를 막기 위해서 우리는 정부에 반대해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G20 정상회담에서 보여줄 박근혜 대통령의 웃음은 우리로 하여금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숨진 10대 학생들과 그 유가족들의 비통함을 기억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월호 침몰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책임자를 심판할 것을 촉구합니다.
오늘 집회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은 맥시멈 15명으로 규정돼 있었다. 한 씨는 20명 정도의 인원이 참여했고 집에 급하게 아기를 보러가야 할 사람,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 등과 교대하며 행사가 진행되었다고 전했다.
집회를 마무리 하던 중 사복 경찰 한명이 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들의 안전을 위해서 알려준다. 현재 시드니에서 이곳 브리즈번으로 온 사람들이 다른 어딘가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들과 최대한 당신들을 벌려 놓고 만나지 않도록 하려한다. 집회를 할 때는 가능하면 개별행동을 하지 말고 같이 모여있어라.'
한 씨에 의하면 오늘 브리즈번에서 어르신 50명이 시위를 했고 대양주한인회총연합회 쪽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해당 소속 회원에게 직접 들었다 한다. 대양주한인회총연합회 이동우 회장은 <모국과 재외동포를 부끄럽게 만드는 시위는 자제해야 합니다>라는 성명서를 발표,"모든 해외동포들의 가슴을 울린 세월호도 우리 모국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준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며박 대통령의 방문을 환영하고 정부 규탄 시위를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청와대는 오늘 마무리된 제22차 APEC정상회의와 관련"세계 최대 경제권인 아·태 지역 정상들과의 협력 외교를 강화하고, 역내 무역 자유화와 경제 통합 진전 등에 기여하는 기회가 됐다"고 스스로 평했다.
모두, 오늘 일어난 일들이다.
추신: 한 씨는 마지막으로 '이름을 밝히기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이 집회에는 영웅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 없다. 행여 기사에서 나 혼자 뭘 한 것 마냥 오해가 생기게 나가지 않았으면 한다. 모두 함께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고 전했다.
역사적으로도 이 조세저항의 문제로 인해 붕괴된 국가의 사례는 너무나 흔해서 도대체 무엇부터 예를 들어야 할지 모를 정도다. 굳이 찾을 필요도 없다. 오늘날 전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영국을 상대로 내야 하는 세금에 상응하는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된 나라가 아닌가.
바로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이라는 토머스 제퍼슨의 명언이 이 상황을 아주 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말이 나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은 거대한 식민지를 통째로 잃었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탄생했다.
조금 더 과거로 올라가자면, 1381년 영국에서 벌어진 와트 타일러의 난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흑사병이 창궐하고 백년전쟁을 진행하는 동안 궁핍해진 사람들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두세라는 명목으로 세금을 쥐어 짜려는 영국 왕실에 맞서 농민이나 하급 장인들을 포함한 사회의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이 폭동으로 인해 대법관을 비롯한 고위층 인사가 대거 학살 당하고, 런던까지 반란군에게 장악당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이를 수습하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으며 향후 프랑스를 상대로 하는 전쟁에 필요한 세금을 걷는 것을 포기하게 됨으로써 전쟁의 양상까지 바꿔 놓게 된 큰 사건이었다. 이 사건 역시 핵심은 과도한 세금 문제였다.
영국 사람들도 참 답답한 게 인두세 과세로 인한 와트 타일러의 난이라는 역사적 교훈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참 후손인 마거릿 대처 수상이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었다는 것.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 정권이 지역 주민세, 사실상 인두세를 부활시키려 하자 1990년 전후로 해서 영국 각처에서는 시민들의 폭동이 전개되고 1990년 3월 31일 런던에서는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의 새로운 세법이 발효되는 것을 막기 위한 대규모의 폭동이 일어나기에 이른다.
샌드맨님의 글은 2번 더 납치될 시, 삼진 아웃의 원칙에 따라 딴지 필진으로 임명되어 강제 노역에 동원됩니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내리 쬐던 11월의 어느날 오전. 미국서 일하는 선배가 <미생>을 봤는지 트윗을 날렸다.
"저런게 진짜 한국 회사생활이냐? 말도 안돼."
이런 소리를 하시길래
"저건 그나마 순화된 건데요?"
하고 대답을 하다가 결국 딴지일보 독투에 글 하나 싸지를테니 봐달라고 했다.
참고로 필자는 소위 대기업이란 곳을 3군데나 거친 과장급 직원이며, 맞벌이를 하는 와이프도 소위 대기업이란 곳을 다닌다. 지금부터 이야기 할 '회사에서 겪은 사건들'은 지극히 일부이지만 엄연히 직접 보고 겪은 현실이며, 굳이 대기업임을 밝힌 이유는 잘난체 하려는게 아니라 대기업도 이 정도인데 중소기업으로 내려오면 더 할 것이라는 추측을 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여기서 소개하는 내용은 경험담이란 것을 다시 한 번 밝히는 바이다.
아울러 취업 대란인 현 시기에 취직만 하면 인생필거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께도 이 글을 드린다.취직을 하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고 축하할 일이지만, 그에 따른 앞으로 겪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ㅡ,.ㅡ
1. 구타
대형 건설사 직원으로 현장에 나갔다. 현장 소장은 부장급이며, 다들 서울 안쪽의 4년제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이다. 즉 고등교육 다 받은, 토익도 스펙도 상위권이었던 인간들이란 말이다.
현장에 전일 지시사항이 좀 미비하게 되어있었고, 그 구역 담당자를 심하게 문책하던 부장님은 안전화 발로 쪼인트를 두 대씩 까고, 주먹으로 배를 적당한(?)강도로 때리며 쌍욕을 시전하였다. 이 쌍욕은 담당자가 그대로 먹고 수십배 증폭해서 단종 하도급 업체에 날려줬다.
2. 협박
지시한 서류 작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장이 보고서를 몇 장 보다가 허공에 확 던지며
"야 씨발, 과장이나 되어가지고 서류가 이 따위냐? 인사고과 때 보자. 이 새끼야"
했다. 이 광경을 본 신입사원은 그 다음 주에 퇴사했다.
3. 야근
오전 회의시간에 부장이 어떤 서류작업을 과장에게 시켰다. 과장은 오후 내내 다른 일을 하다가 오후 여섯시쯤 밑에 대리를 부른다. 부장이 던진 작업을 대리한테 설명하고 내일 아침에 보여달라고 한 뒤 퇴근한다. 퇴근하면 집에 가는게 아니라 부장이 부른 술자리에 간다. 대리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일하고 있는데 8시쯤 부장한테 전화가 온다.
"너두 술자리 참석해"
4. 휴일 출근
명절 연휴로 5일을 쉬게 되었다. 연휴 전날 상무한테서 명절 잘 보내라는 메일이 온다. 명절 잘 보내고 오라는 짧은 인사와 함께 마지막 줄은 아래 문장으로 마무리.
'저는 당일 차례만 지내고 출근 할 예정입니다.'
5. 여성차별
먼저 밝히자면 이 회사는 아래 사건이 벌어지던 당시에도 국내 10대 재벌로 큰 회사였다. (2000~2005년)
여직원이 정규직이어도 대리 이상 진급이 되지 않았다. 남자는 군대 경험을 인정해줘서 사원 3년하고 대리 다는데 여자는 사원 5년 해야 대리 달아주면서 과장으로 진급을 안 시켰다. 당시 정규직 여직원이 결혼을 하면 계약직으로 전환하였고, 임신을 하면 서울 본사 근무하던 사람을 지방 현장으로 발령냈다. 정규직으로 입사해서 잘 다니던 그 친구는 결국 퇴사하면서 동기들이 환송회를 하자 남자 동기들에게
"너희들이 회사 간부가 되면 이런 말도 안되는 경우를 바꿔달라"
고 펑펑 울면서 자리를 떴다. 이런 점들은 노조가 있던 회사를 합병하면서 노조가 들어오자 고쳐졌다.
6. 악담하기
부장이 발주처에 올라가는 보고서를 더 이상 제출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3개월뒤에 자신의 실수로 발주처와 관계가 악화되었고, 약간의 망신을 당하자 막내 팀원에게 발주처와 싸워야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그간 우리가 줘야 할 모든 서류를 빠짐없이 줬는지 확인해 보라고 지시하였다. 당연히 부장의 지시로 올라가지 않게 된 보고서가 논란이 되었다. 이걸 왜 3개월간 하나도 보내지 않았냐고 온갖 쌍욕과 함께 자신이 당한 망신에 대한 화풀이를 해대길래 막내 직원이 그 보고서 철 위에 네임펜으로
"XXX 부장님 지시로 발주처와 협의된 바 이 보고서는 더 이상 제출하지 않음.
XX년 X월 X일 대리 OOO"
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여줬다. 부장은 말문이 막히자
"그럼 미안해. 이새꺄!"
하고 자리를 피해버렸다.
이후 부장은 회사에서 자기와 친한 부장급들에게 막내 대리 험담을 하고 다녔다. 회사에서 평판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가 없다. 그리고 매일 매일 회사에서 앉아있는 자세, 복장, 심지어 A4용지에 스테이플러 찍는 법등등으로 꼬투리 잡고 갈구기 시작했다. 이렇게 밑에서 일하던 사원 6명을 퇴사하게 만들었다.
7. 복수성 인사평가
1) 싸가지 없는 새끼
인사평가란 것은 1년 동안 직원이 한 일을 제대로 평가하여 등급을 매겨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 부분은 매우 작으며 실제로는 인사고과권자의 마음에 들어야 잘 받을 수 있다. 최종 고과는 담당 중역이 주는데 담당 팀장이 먼저 등급을 매겨 결재를 올리면 임원이 승인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모 팀장은 자기가 좋아하는 직원이 현장에 나가서 현장 소장에게 밉보여 D를 받은 경우가 생기자 이걸 저지하려고 현장 소장과 협의하는데상대평가이므로 담당 팀원 중 하나를 잡아 "내년에 B 줄테니 올해 네가 D 좀 맞아주면 안되겠니?" 하고 물어봤다.(그나마 물어봐주는 건 인간적임)그 팀원은 D가 있으면 다음 인력 구조조정 때 권고사직 1순위가 되므로 당연히 거절.
2년 뒤 담당 팀장이 중역으로 올라가자 해당 직원의 현장 소장이 고과 B로 결재를 올렸는데
"이 새낀 싸가지가 없어. 얘 D줘"
라고 말했다고 한다. 현장 소장 입장에선 계속 변호하였어도 막무가내였다고.. 그 직원은 D받고 이직했단다.
2) 다른 놈 독박 씌우기
아버지가 그 회사에서 구사우로 일했던 적이 있어서 중역들이 모두 아버지 친구인 사람이 입사했다. 건설업 특성상 군미필은 합격이 잘 안된다. 그런데 이 친구는 중역이 모두 아버지 친구이므로 합격. 당시 군미필은 여직원과 동일하게 진급이 늦어 사원을 5년 달아야 하는데 이 친구를 동기들과 같이 진급을 시키기 위해서 2년 연속 A 를 줬다. (사원이 A 받는 경우는 흔치않다. 또 D나 E 를 주는 경우 역시 흔치않다.)
문제는 상대 평가이므로 다른 두 명이 독박을 쓴 것. 한 명은 D를 받고 다른 한 명은 그 다음 해에 난데 없이 E를 받았다. 구조조정 시작하고 E 받은 애는 짤리고, D받은 애는 남아있기는 하지만 저 고과 때문에 지금도 9년째 대리다.
<미생>에서 부장이 300만불짜리 아랍 프로젝트를 맡길 때 오과장이
"저 아랍 애들이랑 안 친하잖아요. 이 일, 저 못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을 주세요"
하는 장면을 봤는데 기가 찼다. 저러면 정말 ㅈ된다. 고우영 삼국지에서 장비가
"밤송이를 ㅈ으로 까라면 까야지!"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회사에선 진짜 흉내라도 내야 할 지도 모른다. 막상 쓰려고 보니 더 쓰기도 귀찮다.
지금 모시는 부장님도 90년대 신입사원이었을 때는 옥상 올라가서 대가리 박는 얼차려도 받았었다고 하던데 지금은 그나마 많이 나아진 것 같다.
<미생> 이란 드라마와 만화를 다 보진 않았다. 따라서 현실과 가깝게 그렸는지 판단할 순 없었다. 다만 오과장이 저런 발언을 하는 부분을 보고 와이프랑 동시에 혀를 차며 뱉은 말은
"과장 나부랭이가 미쳤네"
였다. 회사에서 일을 못하겠다고 하는 것도 우습지만, 저렇게 퉁명스럽게 거절한다는거, 특히 인사고과권을 가진 직속상관에게 저렇게 말한다는 것은 판타지 소설과 같다. 이런 관계가 협력사라는 이름을 가진 회사와 '갑을' 관계로 확장이 되면 정말 얼마나 개막장 스토리가 나오는지 짐작은 하시겠는가?
경비원을 동물 대하듯이 하여 분신자살을 하게 만드는 나라인데, 결국은 이러한 사회문화가 원래 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이런 문화의 뿌리를 찾자면 군대의 상명하복 문화도 나오게 될 것이고, 어린시절 겪었던 학교 문제까지도 소급 할 수 있는게 아닐까?
물론 좋은 팀원들이 뭉쳐있는 좋은 회사, 좋은 부서가 아예 없다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그런 회사가 다수일 것이다. 다수여야 한다. 단, 위에 적어놓은 단편적인 사실들은 분명히 있었고, 상당히 매우 자주 벌어지는 일인 것도 맞다.
신입사원 때 여름 휴가 중 고참 차장이 전화하는 바람에 삼척에서 서울 사무실로 불려 올라와서 휴가가 파투난 적이 있었다. 그 일이 매우 급하고, 네가 했던 일이니 네가 해야 한다고 우기는데야 별 수 없었다. 휴가 전 내가 다 꾸려놓은 서류를 들고 발주처에 제출하기만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부장님이 후에 이 이야길 듣고 차장을 꾸중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라는 분위기였다.
이직을 하고 프랑스 업체와 일을 하게 되었다. 납품 기일을 맞추려니 그 프랑스 업체가 주말도 일하고 여름 휴가도 뒤로 미뤄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었는데 그 프랑스 업체에서 납기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직원 휴일을 못쉬게 하고 휴가를 미룬다는 것은 인권침해이니 계약을 해지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 만큼은 절대 논하지 말라고 했고, 결국 우리 회사가 지체상금을 물면서도 업무를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뭔가 억울했다. 저렇게 프랑스 업체처럼 꼭 되자는 뜻이 아니다. 최소한 간 휴가 만큼은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OECD 회원국이니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니 하는 이런 허상속에 우리의 삶은 과연 행복한가?
두서없이 갈겨쓴 글이지만 이 정도면 트윗을 날렸던 그 선배가, 혹은 직장생활에 로망을 가진 사람들이 1퍼센트라도 진실을 알게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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